소설리스트

192화 (192/201)

선수들 스스로는 떠올리기 힘든 부분이다.

엇박자 갱킹은 많은 걸 신경 써야 한다.

비단 통하고, 안 통하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팀게임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골치 아픈 점이 많다.

"근데 따서 다행이지. 윗정글 다 털려서 동선 좀 꼬이겠는데."

"그것도 신경을 썼어요."

"어??"

클래식러브는 초반갱을 선호하지 않는다.

안정적으로 풀캠프를 돌고 보는 편이다.

게임 이해도가 높은 선수가 왜 그런 판단을 하냐?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야.'

이게 뭔 개소리인지.

불을 무서워하는 것과 같다.

얼마나 뜨거운지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하게 된다.

그 정도를 넘어 화상이 어느 정도 남고, 치유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리스크에 대해 알면 알수록 판단이 꺼려진다.

리턴보다는 리스크가 더 신경 쓰인다.

그 상상을 구체화 시켜주는 것이 전문 코치의 역할이다.

여기까지는 무리를 해봐도 된다.

충분히 짊어질 만한 리스크라는 걸 인식시킨다.

투웅!

고작 조언에서 멈추지 않는다.

먼저 승부수를 던진다는 것.

상대의 움직임을 강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리가스가 아군 윗정글을 카정 치고 있다.

바텀 갱을 갔던 만큼 당연한 대가다.

그런데 블루에 이어 두꺼비까지 빼먹는 건.

"선 넘었죠. 저희도 그 사이에 빼먹으면 돼요."

"호오……."

"쓰렉귀가 랜턴 대기만 해주면 위험할 일도 없고."

상대가 한 발을 더 내디디면, 우리도 한 발을 더 내디딜 시간이 생긴다.

그 확신.

사전에 예측해 박아둔 하나의 와드 덕분에 가능했다.

탑은 어차피 사려야 한다.

아군 블루에 와드를 박아줘라.

게임 전에 조언을 했고, 이를 충실히 실행 중이다.

'이런 세밀한 영역은 코치가 이끌어줘야 돼.'

선수의 개인 센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상대라고 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탑이 와드를 늦게 박았다면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정글 교환을 하지 못했거나.

적 탑이 압박해서 다이브를 당했거나.

상대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지게 된다.

"오모시로이. 운이 좋았네. 그치?"

"예, 뭐……."

정교하다.

단 하나만 어긋나도 그림이 무너져버린다.

일련의 코칭이 단순한 운으로 보일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럴 리가 없잖아.'

얼핏 쉬워 보여도 실제로 행하는 건 어려운 수준이 아니다

왜냐?

상대가 무슨 픽을 할지 알 수가 없다

픽 하나만 바뀌어도 전체적인 구도가 180도 달라지는 게 롤의 묘미다.

이를 순간적으로 파악해 머릿속에 그려낸다.

경기 시작 전, 고작 1분 남짓에 말이다.

경험도 경험이지만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의 재능은 많을 수가 없다.

레오파드는 선수 메이킹은 잘해도 이런 부분에서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TSL 비억슨(산다라)님이 EDC 유(카시오가피)님을 처치했습니다!

물론 그 선수 메이킹.

중요도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전략도 체급 차이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미드 라인이 난감하다.

6레벨 타이밍에 사고가 난다.

점화&궁이 뼈를 야무지게 때리며 분쇄해 버린다.

"카시오가피는 뱀이니까 뼈가 없지 않을까?"

"있는 걸로 알긴 하는데 독부왜노급 의미 없는 고민이네요."

"독부왜노? 왠지 심오한 말이네……."

미드가 박살이 나고 있다.

어느 정도 필연적이기도 했다.

궆을 대신해 나온 유가 준비가 안되어있기도 했거니와.

'애초에 비억슨이 잘하긴 하지.'

북미의 테이커라 불리는 선수다.

솔직히 동급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비교 대상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체급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미 스크림 과정에서 예견된 사실이다.

미드가 반반을 가주는 걸 바라는 것이 힘들다.

꾸웨에에엑-!

알파카의 울음소리가 아니다.

랙싸이가 궁극기를 탔다는 알림이다.

미드가 밀리면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이 정글이다.

본래라면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미드가 밀리면 정글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미드&정글이라는 말이 괜히 일반적인 게 아니지만.

─아군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그것도 미드&정글이 한 몸으로 놀 때의 이야기다.

산다라가 집을 가버린 공백 타이밍.

랙싸이가 아군 바텀과 함께 유유히 용을 챙긴다.

"역시 내가 만든 완벽한 팀이야!"

"하하."

날카로운 상황 판단.

기본기에서 우러나오는 건 맞다.

하지만 이전 과정이 있었기에 이어지는 그림이다.

'미드에서 솔킬 딴 게 무용지물이 된 게 커.'

정글이 잘 컸다.

바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이미 게임의 흐름은 바텀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다.

미드의 영향력은 없다시피 하다.

잘 커봤자 뭐 어쩌라고?

할 수 있는 건 파밍밖에 없는데.

꽈득!

파아앙!

검은 구체를 잡아 뜯고 굴린다.

산다라가 라인을 시원하게 밀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딱 그것 뿐이다.

'미드가 솔로킬 따는 것만큼 의미 없는 게 없거든.'

미드가 솔로킬 따는 게 뭐 어때서?

미드는 영향력을 흩뿌리는 라인이다.

솔로킬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일 뿐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

그냥 라인전을 잘해서 솔로킬 내는 것.

다른 라인의 솔로킬보다 이득이 터무니없이 적다.

탑이나 바텀은 라인이 길다.

웨이브 이득, 정글 드리볼 등 할 게 많다.

하지만 미드는 솔킬 따면 그냥 뭐……, 집 가야 한다.

라인이 짧아서 상대도 금방 복귀한다.

그 사이에 용을 챙기면 미드 영향력은 제로.

이 모든 것이 초반 구도로부터 연결되고 있다.

* * *

TSL은 강팀이다.

현재 MSI에서는 믿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정말 MSI가 시작할 때만 해도……, TSL이 진짜 돌풍을 몰고 올 거라는 예측이 많았잖아요?〉

〈아무래도 IEM에서 보여준 임팩트가 있으니까요.〉

Form is Temporary, Class is Permanent.

폼은 일시적일지언정 클래스는 영원하다.

롤판의 전통 명문팀이기도 하거니와 바로 몇 달 전 IEM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런데 현재 성적이 1승 2패.

4위라는 지극히 유감스러운 성적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아직 대회 기간이 남아있는 만큼 언제 다시 올라갈지 모를 '클라스'를 자랑한다.

와아아아아아!

북미다.

미국이다.

플로리다는 명실상부한 미국의 50개 주 중 하나다.

수많은 미국팬들이 모이게 되는 건 당연한 결과다.

TSL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는 건 따질 것도 없다.

현장의 열기가 뜨거워진 이유 또한.

─TSL 비억슨님이 학살 중입니다!

TSL이 자랑하는 에이스 선수다.

TSL의 승리는 그의 손에서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 만큼 현재 경기도 유리하게 흘러가야 했다.

'미드는 잘 풀렸는데…….'

코치인 로쿠도쿠의 의도대로다.

비억스의 강력한 라인전.

예상대로 유는 버티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 이상이다.

아예 숨도 쉬지 못한다.

자고로 미드는 게임의 중심이다.

자연스럽게 주도권이 넘어오게 돼있다.

EDC의 팀 성향을 고려하면 더더욱.

하지만 흘러가는 구도는 사뭇 다르다.

─레드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바텀 라인전이 처절하다.

포탑이 10분에 밀리고 만다.

TSL은 배수의 진을 치고 결사항전을 도모한다.

투웅!

구리가스의 배치기 점멸.

수풀 뒤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왔다.

포탑을 파괴하는 그 순간을 정확히 노렸는데.

"꾸웨에에엑!!"

알파카가 울부짖는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피해냈다.

심지어 성장과 패시브가 받쳐주는 상태다.

뻐엉!

뻐엉!

스킬을 피하면서도 딜을 멈추지 않는다.

과격한 카이팅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뒤를 봐주던 랙싸이까지 합류하자.

-아니, 저걸 반응해버리면;;

-터졌다 터졌어~

-익숙한 모습이군

-NA는 역시 NA야 LOL

기대에 가득 찼던 북미팬들로서 안쓰러운 광경이 나온다.

한 마리의 성난 알파카를 막을 수가 없다.

현재의 상황이 되어버린 배경은.

"로쿠도쿠, 어떻게 된 거지?"

"클래식러브의 폼이 좀…… 좋네."

절대 공격적인 플레이를 못할 것이다.

호언장담했던 로쿠도쿠의 입장이 애매해진다.

'아니, 뭐지?'

코치로서 가지는 분석력.

당연히 자신감이 밑바탕돼있다.

그 자신감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기다.

꽈득!

파아앙!

미드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것이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정글&서폿 차이로 인한 시야 때문이다.

용도 너무 빠르게 먹혔다.

강제로 싸움을 걸 빌미도 사라졌다.

미드 솔로킬 몇 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TSL의 강점을 하나도 못 살리고 있다.

EDC는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에서 싸우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완벽한 코치 차이.

"이번 경기는 매우 중요했는데 로쿠도쿠."

"모르는 거 같아요?"

"……이런 식이면 곤란해. 너가 자신 있어 해서 일임한 거라고."

이를 인정할 리가 없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반박한다.

자존심 하나는 그 누구보다 세다.

하물며 상대가 앙숙 관계인 레오파드다.

'젠장! 천년에 한 번 나오는 뽀록으로 지다니.'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8강 진출을 결정짓는 풀리그.

각팀이 각각 두 번씩 겨뤄 상위 네 팀을 선출한다.

즉, 다음 경기에서 복수할 수 있다.

흡낫처럼 생긴 머리를 더욱 뾰족하게 세우며 로쿠도쿠는 다짐한다.

비억슨은 분명 특출난 플레이어다.

화려한 피지컬과 스타성은 '북미의 테이커'라는 이명으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다르지.'

어디까지나 비교되는 것이다.

동급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어째서 테이커가 수많은 스타급 미드 선수들 중에서도 단연코 탑으로 분류되는지.

딱 잘라서 설명을 할 수는 없다.

구체적으로 분석한다면 선수마다 장단점이 나뉜다.

테이커라고 단점이 없다는 건 지나친 팬심에서 나오는 편파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TSL 비억슨님이 학살 중입니다!

TSL과의 2차전이다.

정면 한타가 벌어지고 있다.

비억슨의 르풀랑이 맹활약 중이다.

'잘하긴 잘해.'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던 모르피나를 정확히 포커싱해서 잡고 빠져 나왔다.

판단력도, 스킬샷 적중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 뿐이다.

"꾸웨에에엑!"

미친 알파카를 막을 수가 없다.

아군 한 명 죽은 정도로 까뒤집은 눈을 깜빡하지 않는다.

─더블 킬!

트리플 킬!

괴랄한 프리딜로 한타를 캐리한다.

지속딜이 가능한 AD Carry.

일반적인 구도에서는 양팀 에이스의 캐리력 차이가 나는 게 필연이다.

'그걸 뒤집을 수 없는 건 아니야.'

한타라는 건, 교전이라는 건 정말 미묘하다.

그 상황에서 최선의 판단이 무엇인지.

0.1초마다 바뀌고, 달라질 수도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