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5화 (195/201)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움직임이 과감한 듯 안정적이다.

오직 하드훈만이 가능한 미묘한 포지셔닝이다.

'거미여왕이 와도 충분히 드리볼 칠 수 있어.'

나루도 텔레포트를 타고 복귀했다.

경험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딜교환도 밀릴 거라 생각 안 한다.

선수의 기량을 믿는다.

상대의 한계를 분석한다.

SKY T1의 코치진은 분명 유능하다.

─EDC 클래식러브(랙싸이)님이 SKY 황금수염(치비르)님을 처치했습니다!

그렇기에 그 이상을 바라보지 못했다

클래식러브는 다재다능한 선수다.

게임 이해도, 챔피언 폭, 피지컬, 판단력……, 전부 S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괜히 한국에서도 세체정 드립이 나왔던 게 아니지.'

한국 솔랭에서 워낙 잘해서.

중국인임에도 구설수에 안 올라서.

한국 서버 수질을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러울 정도다.

국내에서도 평가가 높은 이유가 있다.

저평가의 여지가 없는 훌륭한 선수다.

하지만 원래 다재다능과 무재주는 한 끗 차이다.

퍼엉!

콰흑!

폭탄 거미가 터지며 물어뜯는다.

거미여왕이 정글링을 돌고 있다.

별 거 아닌 광경이지만 눈가에 주름이 잡힌다.

'너무 정석적이야.'

정글몹을 먹고, 갱킹을 간다.

일련의 과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행한다.

그것이 일류 정글이 가지는 품격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모든 챔피언에 있어 정답은 아니다.

테이커가 리메이크 전 아자르의 숙련도가 아쉬웠던 것과 같은 이치다.

거미여왕은 정석적인 움직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게 되나? 시야에 체크 됐을 것 같은데……."

"랙싸이도 달려오고 있긴 하겠죠."

"랙싸이는 땅굴을 파고 움직이는 거니까 엄밀히 말하면 수영 아닐까?"

"독부왜노급 의미 없는 씹소리네요."

캡잭과 죽이 잘 맞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 바텀에서 다이브가 이루어진다.

'확실히 좋은 타이밍이라고 보긴 힘들어.'

이미 서로 한 번 정비를 했다.

적 정글이 바텀 동선이었던 탓에 수월하게 파밍한 치비르의 상태가 좋다.

다이브 내성이 없는 조합도 아니다.

터억!

그럼에도 과감한 판단.

실뭉치를 쏘며 폭탄 거미를 푼다.

점멸로 흘리고, 탈진을 건 시점에서 실패한 듯 보이지만.

슈루룩-!

나무카이가 텔레포트를 탔다.

나루와 달리 복귀텔을 쓰지 않았다.

탑에서 터졌던 참사가 바텀까지 이어지게 된다.

풀피, 그것도 잘 큰 치비르.

하지만 핑퐁이 무려 네 차례에 걸친다.

거미여왕은 물론 나무카이도 핑퐁에는 일가견이 있다.

─EDC 클래식러브(랙싸이)님이 SKY 황금수염(치비르)님을 처치했습니다!

반억지로 잡아낸다.

서포터가 점멸로 살아가도 이미 이득이다.

4인 다이브이기 때문에 빅 웨이브까지 통째로 손실시킨다.

'거미여왕을 잡았으면 무리를 밥 먹듯이 해야 돼.'

무리 같아 보이는 설계.

아무튼 잡았으니 됐음!

대충 그런 느낌이 드는 창의적인 갱킹을 해야 한다.

정석 정글러 입장에서는 껄끄럽다.

마치 탕수육을 부어 먹는 느낌이다.

이 집은 부어 먹는 집이라고는 하는데, 먹으면서 왠지 불편해.

클래식러브는 플레이 스타일이 정석적이라는 단점 아닌 단점을 지닌다.

하지만 안 하는 거지, 못하는 게 아니다.

이렇듯 코치가 길잡이 역할을 해주면.

구오오……!

자드의 궁극기.

미드에서 딜교환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는 딱히 큰 기대가 들지 않는다.

'하드훈이잖아.'

딱딱하다.

안정감 있는 플레이를 자랑한다.

유체화를 키고 웅덩이로 표창을 여유롭게 흘린다.

그 의미는 크다.

고작 킬각을 회피한 정도가 아니다.

상대의 조바심을 유도해 궁극기와 턴을 빼낸 셈이다.

자드의 존재감이 확 줄어든다.

블러디체리는 성장할 시간을 스스로 벌었다.

일반적인 흐름이라면 슈퍼 플레이였을지도 모른다.

터억!

퍼엉!

거미여왕이 점멸로 벽을 넘는다.

쏘아진 실뭉치를 맞점멸로 피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임에도 반응은 좋았지만.

─EDC 클래식러브님이 학살 중입니다!

확정딜이 너무 찰지게 박힌다.

체력도, 웅덩이도 빠져 버티지 못한다.

그렇게 잡고 거미줄로 유유히 살아 돌아간다.

"네이스~ 역시 나의 완벽한 팀이야. 거미여왕도 완벽하게 소화하네."

"하하하."

일련의 플레이.

클래식러브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TSL전과 마찬가지로 세부 조율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판을 만들고, 성장을 시키면 무리를 할 근거가 생겨.'

성장이란 이름의 자신감.

주도권이 바탕된 시야 차이.

이렇듯 근거가 받쳐주면 그 누구보다 훌륭히 소화할 수 있다.

아무리 비공식적이라도 '세체정'이다.

그 세 글자는 쉬이 붙는 칭호가 아니다.

한 번 물꼬를 틀자 스노우볼이 빠르게 굴러간다.

* * *

프로팀의 대결.

한쪽의 전력이 우세하다고 항상 같을 결과를 맞이하는 건 아니다.

〈하드훈의 블러디가 힘들겠는데요.〉

〈미드에서 킬을 따인 게 좀 컸죠?〉

〈그것도 영향이 있지만……, 가장 큰 건 할 게 없어요.〉

클끼리 해설이 입을 연다.

신규챔은 몰라도 틀딱형 챔피언에 관해서는 지식이 꿇리지 않다.

미니맵에 핑이 무수히 찍히고 있다.

그 이유.

상대의 위치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난전, 합류전 구도가 돼버리면 블러디는 붕~ 떠버립니다.〉

이전 첫 EDC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궆의 랄라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전장을 피로 적시는 기염을 통했다.

하드훈 한정 OP챔.

그런 정의가 내려질 정도다.

하지만 블러디는 결국 블러디일 뿐이다.

퍼엉!

바텀 1차 포탑.

거미여왕이 다이브 압박을 주고 있다.

이런 구도에서 블러디체리는 계륵이 된다.

〈그냥 포탑을 내주는 선택을 하네요.〉

〈잘 크지도 못한 블러디가 어설프게 내려가 봤자 도움도 안되고, 가다가 잘릴 위험도 있어서…….〉

3분 타이밍의 선취점.

이어진 바텀 다이브와 미드 킬.

그로 인해 게임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졌다.

성장형 챔피언이 블러디는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잘하고, 못하고 이전의 이야기다.

챔피언이 가진 한계다.

애초에 이런 상황이 되어서는 안됐다.

반대로 이런 상황을 유도시켰다.

그러한 해석도 가능하다.

〈EDC가 초반 설계를 잘 준비했고, 그때부터 멱살 잡히고 맞고 있습니다. 지금 게임이 거의 7부 능선을 넘었어요.〉

EDC가 약체화 됐다고 한들.

승산이 적은 거지, 없는 게 아니다.

자신들이 유리한 흐름으로 이끌 수만 있다면 그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초반에 너무 망했네

-지냐 설마?

-아, 에반데;;

-지면 귀국 못할 준비해라 ㄹㅇ

EDC는 그것을 실현시키고 있다.

해설진도 되짚을 만큼 설계가 뛰어났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찌 됐건 시청자들이 중요해 하는 건 결과다.

특히 한국 롤팬들.

국제 경기에서 지면 그냥 밥상 뒤엎는다.

몬타니카호, 이완드래곤X 이러면서 숱한 비난을 쏟아낸다.

선수들이라고 이를 모를 리 없다.

* * *

애국심, 나쁘게 말하면 국뽕.

평소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사람도 막상 자신의 일이 되면 묘하게 들끓는 그런 게 있다.

국제전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들의 심정이 그러하다.

"我无法阻止杰德。缺乏防御。"

"아, 나무카이와 맞라인이라 아직 방어력을 못 갖췄구나!"

SKY T1의 탑솔러 왕린이 유창한 중국어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

중국어는 모르는 팀원들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아듣는다.

"형이 마크해야 될 거 같은데? 괜찮아?"

"최대한 해볼게."

"?不起。 我??。"

중국어를 쓰는 이유.

선수들도 딱히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경기가 아주 끝난 건 아니다.

숨을 쉴 여유 정도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어도 썼을 것이다.

블러디체리가 자드만 마크할 수 있다면 정말이다.

화락!

챠라락-!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나게 성장을 잘한 상태다.

스플릿에 특화돼있으며 1 대 1은 극강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강함.

얀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일반 유저들이 흔히 하는 실수를 프로들이라고 안 하지 않는다.

구오오……!

수풀에 숨어있던 자드가 달려든다.

하드훈의 블러디를 향해 퍼붓는다.

얼핏 위험천만한 그림이 그려졌지만.

촤아앙!

촤악-!

흑사병을 뿌리며 분사한다.

피를 쭉 빨며 웅덩이로 비빈다.

유체화의 빠른 속도로 자드와 거리를 벌린다.

살아남았다.

사실 거기에서 만족해도 된다.

한 턴 벌어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한데.

─SKY 하드훈(블러디체리)님이 EDC 유(자드)님을 처치했습니다!

점화가 꺼지면 유체화의 시간이다.

블러디의 유지력이 빛을 발한다.

쫓아가 결국 잡아내고 만다.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

강민철 해설도 감탄하리 만큼 엄청났다.

1 대 1 일기토의 승리.

단순하게 킬 하나의 가치가 아니다.

〈이러면 숨통이 좀 트이는데요?〉

〈왜냐! 왕귀 챔피언이 블러디가 킬을 먹었기 때문이죠!〉

분당 CS 10개를 넘는 기초 체력까지 뒷받침된다.

블러디체리의 존재감이 갑자기 폭발한다.

심지어 흘러가는 게임의 주도권.

─레드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설마 자드가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EDC는 바텀에 추가 인원을 분배하지 않았다.

1차 포탑이 생으로 나가고 만다.

글로벌 골드 차이가 좁혀진다.

자드도 1 대 1 자신감을 상실했다.

게임을 굴러가는 속도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꾸웨에에엑!"

물론 여전히 유리하다.

라인전에서 쭈구리 마냥 맞고 있던 그 시절이 아니다.

알파카의 성난 울음소리가 패왕색 패기를 내뿜는다.

하지만 그 패기.

일정 이상 수준의 적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SKY T1은 한 명, 한 명이 전부 S급에 해당하는 선수들이다.

촤아앙!

용 한타가 시작된다.

유체화를 켠 블러디체리가 진입한다.

흑사병을 흩뿌린 순간부터 존재감이 이전과는 다르다.

실제 미치는 데미지 또한.

어쩔 수 없이 포커싱이 쏠린다.

EDC의 성장 정도를 생각하면 순삭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띠이잉……!

조냐의 물시계.

자드를 잡고, 포탑 골드를 독식한 덕이다.

한타 구도가 본래와는 180도 달라지게 된다.

〈와~~ 궁을 너무 예쁘게 발라서 설마 했는데…….〉

〈아직 약해요. 아직 약합니다.〉

2 대 2의 교환.

하지만 미드라이너인 블러디가 죽었다.

앞선 자드와의 교전에서 점멸이 빠져 추가 핑퐁이 불가능했다.

─레드팀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아쉽게도 용을 내주고 만다.

세 번째 용이 먹힌 건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 흘러가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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