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14) 조법수호통상조규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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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보고는... 법국 측의 사절단 혹은 그들과 같이 오는 수군에 대한 것이라고 말이었다. 드디어 법국과의 통상수호교섭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자 긴장이 되면서도 기대가 된다.
그들은 어떻게 나올지에 말이었다. 물론 이미 준비를 했지만 어디까지 관철하고 어디까지 타협을 할지에 예측이 쉽지가 않았다.
“주상 전하, 법국의 수군이 제물포에 당도했습니다.”
“그런가? 사절단을 보내라. 통상수호교섭을 체결하는 전권대관인 통교정사로 임명해서 이 약조를 총 책임질 신료에 추사로 하겠다. 부사는 유산으로 하겠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주상의 지시에 맞게 신속하게 돌아가는 조선의 조정이었다. 물론 정밀하게 돌아가는 유럽식의 시계처럼은 힘들다. 조금의 굼뜨거나 불협화음 등이 있었다.
사람이 있는 조직이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열심히 잘 돌아가서 준비를 그런대로 끝마치고 제물포로 이들을 이동시키라고 했었다. 도화서의 환쟁이들을 보내는데 약조를 담으려고 그러는 것이었다. 이전의 영길리국과 했던 두 차례의 약조들도 그러했는데 특별히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인천부의 제물포로 이동하는 조정의 존재들은 통교사로 통교정사인 추사는 지난 영길리와의 그 것을 임했다. 환재는 조정의 일로 자리를 비웠어도 상관이 없었는데 유산도 우수한 인재이고 세상을 떠난 천초의 제자들도 있으며 이들이랑 동행하는 이들에는 앵베르 주교가 지정한 이들 중 모방 신부에 정하상 바오로 신부도 있었다.
“법국은 역시 주상께서도 당부를 하신 대로 학문, 천주학에 대한 것을 중시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에 대한 논의가 없었으면 더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보이오.”
“동감입니다.”
추사와 유산은 대화를 하면서 가고 있었는데 둘이 봐도 주상이 혜안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아직 말직이지만 명문가로 백사 이항복을 배출한 경주 이문의 귤산 이유원은 이를 들으면서도 주상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분 아래에서 조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왕도이지만 힘도, 술수도 쓴다.’
주상보다 5년은 연하로 1846년에 과거에 붙은 귤산은 속으로 점점 변한 조선을 돌아보고 있었다. 어쩌다보니까 법국과의 조규를 맺기 위한 조선 조정이 파견한 통교사의 하급 수행원으로 가는 귤산으로 조선은 점점 달라지고 있다 여기는데 이 것이 마냥 좋은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고 느낀다.
그래도 주상이랑 저 앞의 두 사람 등이며 여러 두각을 나타냈다는 이들이 있으니 그런 이들의 보좌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천부로 빠르면 반나절이면 도착을 할 것이다. 물론 그 다음 날에야 협상을 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 통교사의 수뇌부로 조선 조정도 이미 이렇게 예측을 했었다,
“손님들은 인천부랑 제물포 개방장이 잘 책임을 지고 있겠지요?”
“그들이면 잘 해내고 있을 것이야.”
그리고 한편, 제물포 개방장관이랑 인천부사는 청과 월남에서 온 법국의 손님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영길리인들이랑 교류를 하면서 유주식의 고기 요리를 흉내 낸 것에 조선의 요리들도 올라왔는데 좀 호화롭게 차렸다.
조선의 요리 한상차림에 대해서 코스라는 개념이 점점 흔해지는 프랑스 본토에서도 과거의 프랑스, 한상을 성대하게 차리는 것이 떠오르는 세실 제독이었고 이는 프랑스의 외교관도 비슷했었다. 외교 사절단의 대표인 두 사람은 영어는 어느 정도 할 수가 있기는 했는데 프랑스어의 발음 영향도 있어서 조선의 통역관이 듣기에는 헷갈리기는 하지만 말이었다.
“차린 것은 적지만 맛있게 들어주시오.”
“오, 조선 지방 정부의 성대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수저를 들었고 설명으로는 숟가락은 스푼이라는 비슷한 것이 있었다. 다만 포크가 없어서 젓가락을 포크의 대체로 잡았으며 고기는, 스테이크처럼 구운 것을 조선 측이 썰어주었다.
두 사람이 먹어보니까 고기는 보리의 향이 풍부하고 맛이 있는데 조선의 소라고 했었다. 영국인들이 꽤 좋아할 법 하다는 생각을 하는 세실 제독이고 프랑스 측의 외교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선의 수프로 먹을 만하다고 여기는데 물론 프랑스의 요리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두 사람은 말없이 조선이 제공한 요리들을 음미를 하고 있었다.
‘흠, 탐색전인가?’
그리고 대화를 시도하는 조선 측의 관료들, 정확히는 개항지의 행정관이랑 그 배후 행정구역의 행정관의 모습에는 흥미롭다고 여긴다. 프랑스 측의 외교관은 적당히 장단에 맞추어줄 생각을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흥미로워서 대화에 열중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외교관은 동양의 문화를 연구하고 알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음악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그렇지 않아도 불렀습니다. 대령하라.”
“예, 어서 오시오!”
우연인지 모르지만 외교관의 마음을 산 셈이었고 조선의 음악 등을 알려주려고 관아의 악공을 부른 인천부사였다. 세실 제독은 말없이 지켜보는데 목적을 잊지 말라는 듯이 헛기침을 했는데 그런 제독의 암묵으로 하는 경고에 머쓱해지는 외교관이었다.
“사양 말고 즐기시지요.”
“알겠습니다.”
프랑스 대표 두 사람의 그런 것은 인천부사랑 제물포 개방장관이 의도적으로 모른 척을 하였고 악공들을 데려왔는데 제물포 개방장 관아에 말이었다. 악공들 외에도 노래와 창을 하기 위한 이들도 데려오는데 이들은 대체로 관기 혹은 인천부의 기생들이었다.
하늘하늘하고 화려한 복식을 입은 조선인 여성의 모습은 세실 제독이랑 그 외교관도 주목을 한다. 흥미를 가지는데 이는 정확히는 음심이 아니라 탐구욕이었다.
물론 이것에도 우월주의가 은근히 담겨있었는데 백인 여성은 아닐지라도 아름다운 존재에 대해서 말이었다. 사실 프랑스는 흑인 사이에서의 아이도 있으며 일정 부분에서는 동양인들을 비교적 덜 우습게 알기도 했었다. 다만 이 것도 사람마다 다른 것이기는 하였고 아편전쟁 이후로는 백인우월주의가 더 심해졌었다.
조선인들의 음악과 춤에 이내 집중을 시작하는 두 사람이었고 둘이 보기에는 조선의 음악은 꽤나 들을만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악기라도 대나무 종류가 꽤 많았고 현악기가 분명한데 누워서 연주하는 것도 있자 이 것이 신기하다고 여기는 그들이었다.
“신비롭군요.”
“문화가 다른 것을 고려하고 일정 부분으로 알기는 알았는데 보고서나 서책으로 아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좋습니다.”
“그렇다고 봅니다.”
정보는 모으고 있는데 듣고 읽는 것이랑 체험하는 것은 다르다고 실감하는 두 프랑스의 고관이다. 두 사람의 모습에 잘 먹혔다고 생각을 하는 인천부사였고 그 사이에 파발. 정확히는 통교사의 출발을 알리고 늦어도 밤에는 도착함을 알렸다.
이에 대해서 프랑스 측은 정식 회담은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래서 상관이 없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통역을 통해서 이를 전해 들으니까 인천부 측도 안도를 했었다.
“크게 문제는 업소, 어차피 내일부터 회담에 협상을 할 것이라고 봤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무엇을요.”
연회에 악공과 기생들의 공연을 보면서 둘 사이의 긴장감은 꽤 사라졌다. 제물포의 영길리 공사도 이에 참여할까 했지만 바빠서 공식적으로는 불참을 했었다. 다만 영국은 이미 프랑스의 접근을 꽤나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그들 말고도 미국의 접근도 정보력을 통해서 분석해 예측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조선이 그들이랑 통교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렇지요, 다만 최혜국 등의 것은 다른 나라들이 가져가지 못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제물포의 주조선 영국 공사관에서는 프랑스 함대의 방문을 가지고 현지 영국 외교관들이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공사의 주재 아래에서 시작한 회의, 그들의 대화에서 선임 서기관이 그런 말을 했었다. 선임 서기관의 말에 이해를 못하는 신참 서기관인데 그는 궁금하고 혹시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입을 열었다.
“인삼판매 같은 것 말입니까?”
지금 영국이 누리고 있는 우위는 인삼 판매쿼터가 최대 2천 근, 파운드로 치면 약 2,826 파운드를 살 수가 있었는데 이는 조선이 인삼을 생산하는 것이 늘면 더 협정으로 늘릴 수가 있었다. 근데 이 인삼, 그 중에 홍삼은 금 1.5 파운드, 조선의 단위로 사면 금 1근에 사도 강남에서는 최소 금 3파운드, 금 2근 이상에 팔수가 있었다.
평균 금 4.5 파운드로 팔아치워도 금 12714 파운드를 얻었고 영국식 롱톤으로 환산을 한다면 금 5.6 톤을 벌어들인다. 이 외에 홍삼 관련은 운송비를 좀 비싸게 받으며 조선의 상선 전력이 빠르게 늘어도 영국의 배를 용선해서 들어가는 경우가 아직은 더 많았다. 이런 저런 것으로 영국은 동양의 인삼무역에 걸쳐 있고 이를 해양무역으로 확대함으로 벌어들이는 간접적인 이익은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
“인삼 자체는 꽤 돈이 되지만 그것은 주로 조선이니까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편 보다 비싸게 팔아치울 수 있는 것이지. 지금 인도산 아편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텐데?”
“넵...”
인도산 아편의 판매량은 줄어들고 있었는데 이는 어이가 없게도 청나라에서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 재배가 늘어서 그렇다. 아편 중독이랑 인삼 관련의 풍문으로 인삼 판매량은 더욱 늘어났고 이에 미국의 화기삼도 덩달아서 수요가 늘어난 상황이다.
하지만 청나라인들에게 인삼의 왕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조선의 인삼이었는데 봉금령에 사는 만주인들이 가져오는 만주삼도 조선의 인삼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그런 인삼이 저 청나라 강남에서는 더욱 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인삼을 배로 실어 와서 파는 영국과 조선은 그 시세차이로 더욱 이익을 벌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이를 청나라 북부에 팔 때는 싸게 팔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아마 점점 조선에서는 이 것이 불만이 될 수 없다고 추측해 판단하는 영국 공사관 일동이다.
청도 시세 통일을 하려고 시도를 할 것이니 말이었다. 그런 것은 넘어가서 다시 대화는 조선과 프랑스 간의 외교협정으로 집중을 하는데 그들은 이미 프랑스랑 외교 협정을 위해서 외교관을 하나 보내줄 수가 있다고 조선 조정에 비밀리에 의사를 타진한 상황이다.
아마 조선 측이 수락하면 영국은 외교관을 파견해 최혜국 등의 것을 막아줄 수 있었고 영국도 하지 않은 최혜국 대우를 타국에게 허락할 수 없다는 심보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는 아마 인삼에 대한 것보다는 종교에 대한 것을 더 중시할 것이었다,
영국이 그동안 입수하고 정리한 첩보에 입각하면 조선 내 가톨릭교회의 확장 외부 요인은 프랑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통상수호 이후에 가톨릭교회를 앞세워서 그 영향력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는 영국 본토 내각과 조선의 영국 공사관이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성공회도 이를 청할까 생각도 하지만 종교적인 접근보다는 다른 것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조선에게 종교는 기복신앙적인 것이 강하고 세속적이었다. 유학의 영향이며 불교은 심한 말로 하자면 민간신앙 수준으로까지 약화가 된 상황이었다.
“경제와 군사, 정치 등에서 고문직을 우리가 꽤 독점하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오히려 신교쟁이라고 종교에 연관이 되면 큰일입니다. 학문으로 접근하는 이들이고 제사문제는 조선의 가톨릭교회가 금지 철회를 청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영국인들은 이런 고심을 하는 사이에 조선의 통교사는 저녁 즈음에 인천 제물포 개방장에 도착을 했다. 조선의 마군 일백여명에 보군 200명에게 호위를 받고 오는 그들이었고 그 행렬을 개방장에서 살고 있는 영국인들도 지켜봤었다.
그리고 추사는 영길리의 공사관으로 서신을 역관과 귤산 이유원에게 쥐어주고 전하라고 한다. 그런 것에 나름 막중한 임무에 놀라는 귤산이었는데 귤산이랑 달리 역관은 이런 쪽에 꽤 동원이 되었는지 그러려니 한다. 귤산은 벽돌로 지은 영길리 공사관으로 갔는데 그 모습에 감탄을 하게 되었으며 한옥 중에 돌을 많이 쓴 것은 예쁘지가 않은데 이는 좋게 보였다.
역관은 능숙하게 영길리어로 말을 전하는데 이를 수령하는 것은 공사관의 사환인 조선인이 아닌 영길리인이었다. 귤산은 서역인을 처음 봤는데 확실히 다르게 생겼다고 여긴다. 허여멀건 도깨비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어쩌면 조선말을 알지도 모르고 알아서 들으면 기분나빠할 것이니 말이었다.
“서신은 잘 전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양국의 우호가 유지가 되기를!”
“아닙니다. 두 국왕 폐하의 왕관에 항상 빛이 있을 겁니다.”
이런 상투적인 말을 하고 돌아서는데 귤산은 왜 영길리 공사관에 서신을 전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과 법국 간의 약조인데 영길리에서 이에 끼어들 일이 있는지에 대해서 그렇다.
그래서 잠시 후에 귤산은 같이 동행한 역관에게 말을 건네는데 왜 그런지에 너무 궁금해서 말이었다. 그 것에 역관이 가르쳐주는데 영길리에서 비밀리에 조선의 서역국가와 통교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사를 타전해서 라는 사실에 대해서다.
‘아니, 그냥 우리를 돕는답시고 교류하려는 다른 서역국가에게 자기들 이상의 이익을 못 얻게 하는 것 아닌가?’
이에 귤산은 그냥 영길리는 자신들이 받지 못한 좋은 조건을 가져가는 훼방하려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을 한다. 이는 사실 그 역관이나 조선 조정도 가지는 감상이기는 하지만 이를 굳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는 것뿐이었다.
다음날이 되었고 프랑스 측 협상단과 조선 측의 통교사에 조선이 초빙한 영길리인 외교관이 낀 기묘한 협상판이 시작이 되었다. 새벽 일찍은 피해서 아침상은 먹고 하자는 취지로 서역의 시계 기준으로는 10시에 시작했는데 이는 조선의 기준으로는 사시 중간에 말이었다.
서로 이미 준비를 한 것이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순조롭다. 프랑스어랑 유럽어의 종교라는 개념이 조선에서는 없어서 조선 측의 학문에 대한 해석은 넓게 봐서 이를 의역하기로 한다. 조선 측에서도 프랑스어 판에서는 그런 의역을 허용했는데 이미 선교사들이랑 협의를 본 것이기도 했다.
프랑스 측은 이미 조선의 가톨릭교회가 조선 정부랑 협의를 본 것을 알고는 놀랐다. 사실 프랑스는 조선 정부가 강하게 반대를 할까 이미 우려를 했었는데 이렇게 생각보다 협조를 하는 것에 말이다. 다만 불만이 있다면 이들이 활동을 하려면 일종의 믿음에 대한 세금을 내는 일이 그렇다.
‘마치 무슬림 같이 하는군.’
‘믿어도 세금이나 군역으로 이를 부담하는 것인가?’
‘믿음을 시험하는 것인가?’
하지만 조선의 가톨릭교회는 합의했고 이미 문서를 작성했다고 모방 신부랑 조선인 신부인 정하상 바오로의 설명을 듣자 자신들이 개입하기 애매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프랑스 측에 대해서 종교와 학문의 장려에 대한 것을 빼고 최혜국 특혜 등은 받지 않게 하려는 영국인 외교관이 프랑스의 외교관은 좀 거슬린다고 생각하며 세실 제독도 이는 비슷했는데 두 사람 다 그 영국인 외교관이 조선이 초빙한 외교 조언가라서 참는다.
“최혜국은 우리는 바라지 않을 것이오. 물론 준다면 상관이 없지만...”
“우리가 조언을 드리는데 최혜국은 이권을 뜯어가는 방식이라서 그렇습니다. 이권을 제공해서 공동개발 등을 하려면 최혜국은 딱히 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최혜국 같은 것은 별로 바라지 않았고 오히려 교회의 설립은 조선에서는 개방장에서는 개설을 허락하는 것을 받아내려고 주력했었다. 그 이외에는 수의 제한을 받기로 했으며 여기에 높이 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프랑스는 이에 대해서 반발을 하다가 타협을 했는데 이렇게 해봐야 낮은 첨탑에 종루여도 교회 건물을 세우는데는 충분하다고 말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예상보다 빠른 2~3일 만에 조선과 프랑스 간의 통상수호조규가 맺어졌고 프랑스랑 조선을 중재하는 것은 영국인 외교관 외에도 조선 천주교회의 두 신부들이었고 정사인 추사가 꽤나 유연하게 굴었다. 프랑스와의 통상수호조규문의 약조들은 영국이랑 대동소이했으며 여기에 학문의 장려와 지원에 교회에 대한 영조는 개방장이랑 허가한 곳에만 하기로 우선 제한을 하는 것으로 조항이 추가가 되었지만 말이다.
“각자의 나라에서 이 것을 승인하고 인증하면 되겠습니다.”
“법국 수사제독이랑 예조 관원께서 유화로 대해서 이리 쉽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조선 측에서 더 적극으로 나서서 성사가 되었지요.”
서로에게 덕담을 하는데 프랑스는 영국보다 더 유화적으로 나왔다. 물론 나중에 영국보다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호시탐탐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톨릭교회가 조선 정부와 이리 타협을 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 같지만 오히려 행동의 제약은 사라졌다. 서역인들은 아직 외교관이나 고문이랑 일부 인사를 빼면 조선 내륙으로 갈 수가 없었다. 오히려 가톨릭선교사들은 이를 드나들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 성과면 적당하다. 영국보다 못하게 성과를 이룬 것이 아니니 말이다.’
외교관이랑 세실 제독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당장에 많은 것을 얻는다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조선이 이제 프랑스에게도 문호를 개방을 했다는 것에 만족했고 이제 프랑스 고문이나 가톨릭 선교사들을 고용해서 이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늘려가는 것이 프랑스 측의 동양에서 대전략의 일부이었다.
그래서 당장 초조하게 굴고 있지 않는 것이다. 전권대표인 세실 제독을 보조하려고 온 외교관이 주조선 프랑스 공사로 정식 임명을 받았으며 임시로 공사관 건물을 제물포 개방장에 구하기로 한다. 앞으로 종 3품의 홍이관통사에 개방장관의 일은 더 늘어날 것이다.
제물포랑 부산포에 진남포가 조불수호통상조규를 조선 조정이 승인을 하고 프랑스 정부도 승인을 하면 프랑스에게 바로 개방이 될 것이었다. 프랑스는 개방장 내에 조계를 개설할 수가 있었는데 영국도 이미 개방장에 한정해서지만 인천 조계를 개설했다.
개방장관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개방장 내의 조계들 관리로 고생을 할 것이다. 통교사는 프랑스와 체결한 조규의 서류를 도성의 주상에게 이를 전하려고 움직이고 프랑스와의 조규로 이를 기점으로 조선 천주교회는 양지에 나왔다.
다만 신앙을 지키기 위한 대가로 세금에 현물, 그 것을 내지 못하는 이는 군역을 지기로 하는 것이라서 절반의 자유였다. 그럼에도 숨통이 트인 그들이며 이런 것에도 기뻐하는데 이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이들은 있었고 상소를 올리는 이들은 언제나 등장을 했었다, 특히나 심한 자들의 경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