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23) 유자법국행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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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인가? 강남의 분위기가 수상한 것 같다고?”
“그렇습니다. 홍이관 등을 통해서며, 아국 상인들이 가서 청의 상인들이랑 분위기가 어떠하냐고 하니까 공기가 불운한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정말로 그러한가?”
“청나라 내의 풍문을 교차해서 알아보니까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보입니다.”
“허어...”
이러한 보고를 보면서 조선 조정은 대화를 논의하고 있었는데 대체로 의견이 갈리었다. 청이 밉더라도 보고를 하자는 쪽에 청이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니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갈리고 있는데 주상인 이영은 후자에 마음이 기울었으나 두 의견을 더욱 들어보고 결정을 할 것이었다.
“이를 청에게 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청에서도 이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일로 바쁜데 상국인 대청이 알아서 잘 처리를 하겠지요.”
“그래도, 청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함구한 우리에게 굳이 죄를 물을 수 있으니 미연에 방지합시다.”
“청이 우리가 이런 것을 전하면 자신들을 염탐한다고 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 굳이 보고를 해야겠습니까?”
“영길리랑 우리 조선이 다르더라도 조선은 굳이 이 일에 끼어서 말려들 필요가 없습니다. 청이랑 우리가 그런 의리를 굳이 같이 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렇게 의견을 나누는데 조선 조정에서는 청에게 딱히 보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군국기무아문이며 지금의 조정에서는 청의 상황을 보면서 조선이 그런 일에 휘말리지 않게 운신의 폭을 넓혀서 내부의 경장 등 체질 개선이 더욱 중요했었다.
‘그래. 지난 전쟁처럼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다. 자칫하면 나선정벌, 그 이전에 후금이던 시절에 우리 조선의 군대를 끌어다가 싸우게 할 것인데 무엇 하러 그래야만 하는가?’
국조보감 등을 읽으면서 지난 열성조 대 중에서 청이 후금이던 시절이랑 이후 나선, 아라사와의 분쟁이 있을 때에 청은 조선의 군대를 이용했던 전례가 있었다. 전자는 아까 명이랑 싸울 때에 조선 군대를 동원했던 것이었다.
“나는 굳이 우리가 상국의 일에 열심히 관여를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렇습니다. 전하.”
“하오나, 나중에 청이 꼬투리를 잡으면....”
“그들이 그렇게 하려면 나중이고 우리도 항변을 최대한 하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신중하게 나가야 할 것이다.”
주상인 이영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자 굳이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쪽은 이에 호응을 했으며 그대로 보고를 하자는 쪽은 우려를 여전히 표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는 설득을 하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대충 대응을 정리한 다음에는 조선 조정은 여전히 일을 지속하고 있었는데 개방장에서 문제가 따로 발생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었다.
“또, 이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호열자입니까?”
“그렇네.”
개방장들에 호열자가 다시금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미 달자와 청을 통해서 들어왔을 호열자는 서역인들도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으며 위생 문제가 발생하자 각지 개방장의 개방장관이랑 홍이관 통사에 영길리, 법국, 미리견의 공사관들 및 영사관이랑 협력해서 호열자를 경험으로 어떻게 대처할지를 조심스럽게 시행해보라고 했었다. 개방 이전에도, 전면 개방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조선은 당연히 호열자와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호열자를 상대해야 하는 일선의 개방장들이며 그 개방장 근방의 고을 수령들은 골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호열자는 조총이나 무당으로도 쫓아낼 수 없는 역병이었는데 이를 쉬이 대처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물을 깨끗하게 하고 옷이며 사람의 몸을 좀 더 깨끗하게 하면 낫지 않겠는가?”
“소금을 통한 것도 있습니다.”
“개방장 내에 서역인 의원들도 호열자를 어떻게 대체할지 잘 모르는 것이라고?”
서역인 의원들도 이를 잘 모른다는 것은 조선 당국 입장에서는 난처하기는 했었다. 사실 서역, 유주 제국에서도 호열자로 죽는 이들은 꽤 발생하고 있었으며 이는 천하대국인 영길리라고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대처는 해야 하니까 어쩔 수가 없으니 그들 의견도 들어서 머리를 맞대고 나서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들도 겪은 것으로 대충 어떻게 하면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을 하지만 확신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 아니니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예!”
호열자는 조선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괴롭힌 지금 전 지구에서 공공의 역병이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위생이 보장된 환경을 늘려나간다고 해도 당시에는 이 호열자, 콜레라의 정확한 원인을 몰랐기에 이런 권고를 몰랐으며 콜레라균이 들어간 물로 인한 질병이 발생할 수가 있었다. 그래도 이를 방치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며 조선 당국은 지방이던 중앙이던 다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선은 내부 쇄신이며 호열자 등을 수습하며 나라를 바꾸어 나가려고 열심이던 상황에서 청나라에서는 정말로 불온한 기운이 저기 강남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으며 이중에서는 기독교와 도교를 섞으며 자신이 상제, 하나님의 둘째 아들이라고 칭하는 홍수전이 배상제회라는 중국의 실정이랑 토착 신앙을 흡수해서 그에 맞는 집단을 만들어서는 반청의 기치에 반유학을 내세우면서 활동은 과격화가 되었다. 점점 청나라를 전복하려는 봉기를 일으킬 예정이었다.
“청요들을 타도하고 이 모순이 된 세상을 다시 바꿀지어다. 만민이 평등하고 변발 등을 하지 않으며 진실로 민초를 위한 나라를 세울 것이다.”
“청요를 토벌하라!”
“와아아!!!”
“만주족은 하얀 여우와 붉은 개의 자손이다. 그들은 미개하고 야만스러운 종족이었으며, 야생 여우를 사악한 황제로 앉혔다. 만주족의 궁정은 여우 떼와 개떼가 몰려 사는 곳이다. 여기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중원의 한족 관료들은 개나 돼지보다 못한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다. 만주족들은 이 중원에 들어와서 한족들에게 변발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의 전통 의상에 어긋나며, 짐승과 오랑캐 같은 모욕이자 만행이다. 또한 만주족들은 중원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모두 궁궐로 끌고 가서 첩으로 삼았다. 그 때문에 3천 명의 미녀들은 구역질나는 짐승들에게 몸을 더럽히고 말았다. 그리고 기근이 들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거나, 부패한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을 착취해도 만주족들은 그저 방관만 하고 있을 뿐이다. 저들은 우리들이 가난해져 약해지기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일어나자!”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 청은 필요 없다!”
“앞으로 나의 나라에서 청이랑 만족은 필요가 없다!”
이런 말을 하면서 공공연하게 청나라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에 대해서 광서성에선 이들을 진압하려고 관병이며 지방의 자치 민병대가 이들이 봉기를 선언한 금전촌을 공격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배상제회의 신도들이며 가담한 쪽에서 이들을 먼저 공격하였고 광서성은 토벌군을 더 조직하여서 공격하였으나 필패하였다. 참으로 폭풍전야인 강남이었다.
이런 일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제 유주에 있는 조선 서유시찰단은 영길리에서의 체류를 끝내고 도버 항에서 법국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전에 그들은 각자의 임지를 둘러보며 란돈에 다시 모여서 유주의 서역 문자로 쓰인 서역 석학 원서를 사들이고 있었는데 특히나 란돈의 서점에서 이를 열심히 사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박규수였지만 말이었다. 여기에 유학생으로 남겨놓을 일부를 빼고는 법국으로 향했다.
‘이것들을 읽을 수가 힘들겠지만 여기에서 떠돌고 그러면 나름 유주의 말에는 더욱 늘기는 하겠지.’
영길리어는 기본은 할 수가 있는 박규수이고 통역 담당인 역관들은 말이 필요 없으며 다른 시찰단원들도 사전을 가지고 서역 문자를 보고 아예 원서를 직접 씨름하면서 읽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지만 말이었다. 도파, 도버 항에서 출발해서 법국의 갈래, 프랑스 칼레 항에서 내려서 그들은 법국의 경내로 이동을 할 수가 있었다.
“법국은 산이 많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네. 영길리도 북부는 산이 많지만 본토의 남부는 평탄한 땅이 많더군.”
“기관차를 타고 보니까 영길리는 공장 외에도 농장에 목장도 있었는데 넓은 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법국은 어떨까요?”
이들이 타는 배는 조선에서 유주까지 이 곳으로 데려온 배를 그대로 타고 있었다. 조선인 수부들이며 이런 이들도 서역을 둘러보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며 그들도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넓어졌다. 시찰단이랑 같이 간 배들에 속한 조선인 수부들은 그 중에서는 천축까지도 갔다 온 이들도 꽤 있지만 이들도 그 이상의 장거리 항해는 처음이며 이들이 보고 들은 것은 민간에도 꽤나 충격이 될 것이 분명했다.
조선인 수부들은 서유시찰단이 상륙하면 그 포구 근방에서 머물면서 움직였지만 그들도 포구와 인근 밖을 보면서 유주 천하를 알 수가 있었다. 유주의 이야기를 저들도 민간에 전할 것이니 말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에 일부는 분견대를 형성하여서 서유시찰단의 일부랑 같이 미주의 미리견에 갈 것이었다. 아마도 미리견과의 조선의 수교를 미리견 의회가 통과한 이후에는 그들, 서유시찰단은 미국의 국빈으로 예우를 받으면서 미리견의 중심지인 동부를 둘러볼 것인데 누가 될지는 알 수가 없었으며 이는 서유시찰단을 태우고 온 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것보다는 법국에 대한 이야기를 꽃피우고 있는 조선의 서유시찰단이었다.
“갈래라는 포구는 도파랑은 비교하면 만만치 않게 아름다웠습니다.”
“도파의 하얀 절벽. 백악 절벽도 절경이었죠.”
이런 것을 논하면서도 그들은 서역의 서적 혹은 한역했던 본국 조선에서 읽은 것을 바탕으로 서역의 역사를 논하기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찰이 맞으며 놀러 온 것이 아님을 잊지 않고 있으며 항상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시시콜콜한 내용이라도 조선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빠짐없이 보고서나 개인의 일기에 이를 다루고 있었다. 일기에도 쓰고 나중에 귀국했을 때에 이를 보고서에 반영할 때에 추가하려는 것도 있다. 그들은 서역의 역사도 논하고 있었는데 갈래라는 땅은 묘한 땅이었기에 말이었다.
“여기 갈래는 영길리의 지배에 아래에 있던 땅이라고 합니다.”
“묘하군요.”
“거의 백년, 아니 백년에 넘게 전쟁을 했던 시기에도 그 이후에도 갈래는 영길리의 지배에 있다가 법국이 탈환을 했다죠.”
“그렇군요.”
칼레는 정말로 조선이 보기에는 묘한 땅일 수도 있었는데 여전히 이곳에는 영길리계 사람들이 흔하며 자신이 믿는 가르침, 신교를 지키려고 나라를 나와서 법국으로 나왔고 이후 전쟁에서도 여기를 두고 영길리랑 법국 간의 공방전도 있었다는 말에는 요충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데 우리는 여기 갈래에서 법국의 도성으로 가야지요.”
“그렇습니다.”
“너무 시간을 지체하면 법국의 위정자들이 우리 조선을 더욱 좋지 않게 볼 것이요.”
이런 말을 하면서 파리로 향하는 철도가 있음을 알고 이를 타서 이동하는데 영길리 조정의 도움으로 그들은 법국의 화폐로 환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들의 여비는 조선 조정이 내기는 했지만 기본으로 청에서 인삼을 팔아서 얻은 금은을 영길리 파운드로 환전해서 영길리를 체류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영길리 조정은 이들의 숙소를 다 준비하고 있었고 법국 조정도 편의를 봐주기로 이야기는 되어 있었다.
“철도는 항상 타보는데 조선에 도입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물론 그 것도 다 돈인데...”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써야 할지도 모르지요.”
“어디에 먼저 설치하면 좋을까요?”
“당연히 인천부의 제물포 개방장과 한성을 연결함이 먼저지요.”
그들은 항상 철도를 타게 된다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영길리에서 철도를 처음 탄 이래로 말이었다. 그들은 란돈 못지않다는 말을 들은 파리에 대해서는 그들도 기대가 되기는 했었다. 법국은 이 곳, 유주(유럽)에서도 강한 세력을 가진 나라인데 그들의 국력은 농업 외에도 다른 것에도 역량이 나타났다.
격물학, 과학에 대한 발전에서 법국, 프랑스가 기여한 것은 정말 많았다는 것이었다. 법국의 석학 서적을 수집하고 그들의 다른 학문에 대한 것도 데려오기로 결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철도의 열차 칸 하나를 빌려서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법국의 기관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보는 광경들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는데 법국의 넓고 기름진 북쪽 토지에 감탄하고 있었다.
“다시금 생각하지만 법국은 넓은 들이 영길리국 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보네. 저 넓은 들을 보시게나.”
“추수기가 아니겠지만 진가루를 만드는 밀로 황금벌판이 될 겁니다.”
“우리랑 달리 여기는 밀을 갈아서 진가루로 밀병을 만들어 먹지요.”
파리로 향하는 철도에서 아까의 논의 외에도 서유시찰단의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데 유주의 식생활에 대해서 그런 것이었다. 건병, 건빵 등이 조선에 들어오며 서역의 식생활 방식도 꽤 소개가 되었지만 익숙하지가 않은 상황이기는 했었다. 그리고 서역의 밀과 조선의 밀은 차이가 있는데 무엇이 원인인가 생각을 한다면 참 묘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차이가 그저 토양의 차이라고만 막연하게 알려져 있는데 환경 등의 다양한 요인은 어렴풋이라고만 짐작을 하는 그들이었다. 칼레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는 길어도 반나절 짧아도 하루의 반에서 반을 소모해서 파리에 도착했으며 많은 이들과 화물을 내려놓았으며 그렇게 파리역에서 내리는 이들 중에서는 조선의 서유시찰단 일행들이 있던 것이었다.
“파리라....”
“이 곳이 파리군요.”
“묘하군...”
“어디인들 묘하지 않은 곳이 있습니까?”
“뭐, 그렇다네.”
법국의 도성인 파리는 많이 묘하다고 느끼는 일행들인데 후세의 현대인들이 흔히 아는 그 모습이 아니지만 조선의 한성보다 훨씬 큰 도성이라는 것을 서유시찰단도 깨닫는데 란돈이랑 비교해도 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세련됨에선 아직 란돈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서유시찰단이었고 좁은 굽이굽이한 도로는 한성의 뒷골목도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빈민의 모습에서 어디 천하이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 하지만 파리 개조 사업 중인 곳들엔 놀랄 것인데 그 것은 특히 훨씬 넓고 깔끔한 도로에 말이다. 훗날 파리 개조 사업을 한성 개조 사업에서 많이 참조할 지도 모른다.
이는 나중의 이야기일 것이고 또 법국인들은 영길리인들처럼 이 동양의 작은 나라?-그리 작은 나라가 아니지만....-에서 온 시찰단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그런 시선들을 다시 느끼고 있는 서유시찰단 일동이었다.
“우리를 빤히 봅니다.”
“우리가 저들을 신기하게 보듯이 반대로 마찬가지일 것이네.”
영길리 때처럼 대범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는 서유시찰단이었으며 그런 움직임에 그들도 점점 관심을 끄기 시작했었다. 파리에는 지금 집정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
그는 루이 나폴레옹으로 대륙의 찬탈자라고 영국인들이 그리 부르는 자, 나폴레옹 1세란 제호를 가졌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였다. 그는 지난 7월 왕정에서 수교한 동양의 나라인 조선을 자신들의 자존심도 세우고 이들로 동양에 영향을 더 키울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들이 파리에 나타났다고? 우리는 그들을 초청해서 융숭하게 대접을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각하.”
“차질이 없어야 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집정의 거처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이를 짐작하는 이들은 드물거나 있어도 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 서유시찰단이었다. 법국 조정의 대표, 집정이 보낸 사람의 안내를 법국 내에서 꽤 받게 될 것이었다. 법국 조정에게 친서를 전달하고 그 법국의 집정인 루이 나폴레옹을 접견하게 된 서유시찰단이었으며 집정의 거처인 집정궁으로 쓰이는 엘리제 궁전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집정으로 끝날 사람이 아닌 것 같군....’
‘분명 군주의 자리도 거머쥘 사람으로 보인다.’
서유시찰단은 법국의 집정인 루이 나폴레옹을 직접 보게 되자 그가 키는 작으면서도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다고 느끼었다. 당시의 조선인들은 유럽인들에 비해서 그렇게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루이 나폴레옹은 유럽인이라고 쳐도 좀 작은 키였다. 도리어 법국의 집정인 루이 나폴레옹은 예상보다 키가 큰 조선인들에게 더욱 흥미를 느끼면서도 이들에게 어떻게 프랑스의 우월함을 보일 수가 있을지에 대해서 고심하고 있었다.
“이 나라, 프랑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조선 왕국의 시찰단 일동 여러분, 나는 이 프랑스의 지도자인 루이 나폴레이옹이오. 왕이 없는 나라의 왕 같은 존재, 시민들이 선출해서 프랑스를 이끄는 자가 되었소. 이 프랑스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유학생으로 프랑스며 유럽을 많이 배우시지요.”
거만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공식의 발언으로 그들, 서유시찰단을 환영하는 느낌의 말을 하면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루이 나폴레옹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일정에 대해서 그가 제안을 꺼내니... 그 제안에는 생각을 해보는 조선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