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45화 (45/221)

〈 45화 〉 (23) 유자법국행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세상에나!”

“대포의 구멍을 저런 식으로 뚫었다니.”

“주조 대포 외에도 다양한 면모가 있었군요.”

“동차들도 보시지요.”

“기존 우리가 쓰던 동차보다 끌기 좋다고는 알았지만 육상용 대포들의 동차는 더 낫군.”

물론 육전에 쓸 수가 있게 동차가 육군이 쓰는 것이랑 동일한 동차는 조선에서도 수입한 양선에 일부가 있었지만 이 동차들은 제갈량이 만든 것이랑 비슷하게 흔들림이 덜한 것을 알자 이런 동차들은 산지랑 구릉이 많은 조선에 상당히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법국의 군기시, 도성 파리에 있는 군기시는 영길리 란돈의 군기시 중 가장 큰 것보다 더 크다는 생각을 했었다. 군기시 공방에 대해서 조선은 이만한 공방 혹은 공창을 가질 수가 있을까 생각은 했었다. 무리를 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이를 해낼 수가 있었지만 그래도 탈이 있을 수가 있다고 우려를 했다.

‘이들을 이리 만든 격물학 외에도 석학을 더 알면서 이를 적용하고 따라간다면 과연 당장의 이들 만큼은 아니라도 가능할까?’

‘주상께서 직접 보셨다면 좋았을 것이나 아쉽게도...’

‘내가, 우리가 주상께 이런 것을 잘 전해야만 한다.’

이런 씁쓸한 생각과 조선에 부족했던 것들을 들여와야 한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법국 군사고문단이나 영길리 군사고문단에 기타의 고문들 의견도 일리가 크며 조선의 사정에 맞게 더욱 반영해야 함을 느끼며 위기감을 항상 느끼고 있지만 이 것에서도 다시 강하게 느끼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저녁 만찬, 루이 나폴레옹이 주관하는 연회가 열렸다. 서유시찰단 일동이랑 법국 조정의 고위직만 참여한 조촐한 연회였는데 마음 같아서는 성대한 법국의 도성 파리에 유명인사들을 다 모아서 연회를 열고 싶었던 루이 나폴레옹이었지만 조선 서유시찰단의 사양으로 이렇게 열게 되었던 것이었다. 조선인들은 영길리의 요리 보다 밥이 더 맛이 있다고 여기는 법국의 요리였다.

물론 그들이 영길리 궁정에서 먹은 밥은 법국 숙수들이 만든 것이었지만 말이었다. 이를 몰라도 궁정이랑 그 밖의 요리들은 꽤 차이가 났다는 것은 알 수가 있었다. 법국은 영길리랑은 다른 차이를 그들은 나중에는 더 알 것이었다. 조선인들이 대화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유주의 식례에 익숙하지가 않으니.”

“영상 대감, 그럴 수 있지요. 저들의 식기에 마냥 익숙하기는 아직 힘들지요.”

“환재, 우리 유학생들이 꽤나 걱정이로군.”

“그들은 잘 적응을 할 겁니다. 너무 걱정은 마시지요.”

영상인 정원용이랑 부사로 군국기무아문의 제조 중 하나로 사실상 군국기무아문의 2인자에 해당하는 환재 박규수는 이 연회에서 둘 만이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게 되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법국의 요리는 입이 즐거워지지만 조선인들의 입에서는 상당히 기름이 진 요리인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포도주는 달지 않고 묵직하면서도 쓰지만 향은 좋습니다. 영상 대감.”

“그런 그렇습니다. 조선의 머루주랑 비교해도 확실히 다르오.”

“유주의 포도주는 물 이외에는 과실만으로 담근다고 합니다.”

“우리는 곡물이 들어간 누룩 등을 쓰지 않는가?”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네. 환재.”

고심을 하면서도 법국 조정이 제공한 연회의 요리들은 최대한 즐기고 있는 서유시찰단이었다. 그들은 속으로도 화려한 모습에서 연경사 같은 청에 갔다 온 이들이라도 청의 요리들에도 밀리지 않는 호사한 요리들이 많다고 여기었다. 기정진과 이항로, 두 사람은 생각은 이러했다. 먼저 기정진은..

‘이들은 이렇게나 물산이 풍부한 것인가? 우리에게 자신들의 우월성을 높이려는 것은 어디이던지 비슷한 것이었다. 물론 저기 왜국에서도 통신사를 대접하려고 좋은 것을 내놓은 것이었다. 즉 제 나라의 강성을 보여주기 좋은 것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당연하다. 그러니까 너무 기분이 나쁘지 않게 하자. 듣자하니 우리 조선도 법국의 사절들에게 좋은 요리를 대접하지 않았나? 그 이면의 모습에도 음식에 죄는 없다. 다만 조금 기름지군.’

그리고 이항로의 경우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정진이랑은 비슷하면서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었는데 사대와 교린의 방식도 더욱 준거를 하면서 말이었다.

‘우리 조선은 이들보다는 약하다. 그래서 저들은 자신들이 상국이라고 여기면서 주었을 것이었다. 화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가 없는 나라이다.

그리고 교린을 고려하면 이들이랑은 대체로 우호로 대해야 한다. 이들을 사대하지 않으나 이들의 사유를 담은 석학이며 그 석학 아래들에 있는 것들은 모방하면서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 이들은 사대를 원하는 것이 보이나 우리는 교린을 원한다.

그대들이 부하에게 주듯이 주는 것은 조선을 위해서 먹으나 그 정신부터 우리는 지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이랑 대등하게 교린하게 우리는 강해질 것이다.’

서역의 국가들을 우호로 여기어도 각자는 그게 굴욕인지 그리고 나중을 더욱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있으나 적어도 기정진은 이항로 보다는 온건해보였다. 물론 이항로도 현실을 인정하면서 나라의 힘이랑 위상이 더 올라가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런 연회들은 서로의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또 한편, 파리의 이런 소식을 접한 이들은 이미 영국의 유럽 각국 외교공관들에서부터, 유럽 각국의 본국들은 조선의 서유시찰단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꽤나 예의주시를 하는 나라들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프로이센과 네덜란드였다.

전자는 프랑스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관계가 없었지만 저 동방의 왕국이 방문해서 자신들의 문물을 칭찬하면 위상이 올라간다고 여기고 있었다. 여타 유럽이랑 비슷하게도 그리스와 로마를 동경해서 그런 고전주의에 힘을 쏟고 있는 나라들 중 프로이센은 프로이센 고전주의가 더욱 고취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국빈으로 초청하고 체제 등의 프로이센이 외교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성과를 얻을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후자인 네덜란드는 자국령 동인도 식민지에 일본의 데지마 섬을 통해서 조선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과의 무역을 통해서 이익을 더 보고 싶기는 했었다. 주프랑스 네덜란드 대사관에서는 조선인들에 대한 논의를 공사랑 대사가 하고 있었다.

“공사, 조선의 그들은 전권대표들일까?”

“그 것은 모르겠습니다. 대사 각하. 영국에서 모은 정보를 고려한다면 이들은 다른 유주국가들이랑 통상을 맺으려고 왔다하기 보단 영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우리 유럽을 둘러보겠다는 것입니다.”

공사의 그런 말에 실망했다가도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네덜란드 대사였는데 그는 공사에게 이런 의견을 내고 있었다. 공사도 그 의견을 우선은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가? 그래도 교섭을 해서 이런 의사를 그들에게 전하고 나중에 접촉하면 어떨까 생각은 한다네.”

“이미 미국이랑도 통상수호조규를 했다는데 너무 늦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프로이센이랑 오스트리아랑 다르게 동인도 식민지들을 앞세워서 그들의 인사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외교를 했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빨랐으면 좋았지만 조선이랑 통교를 하려고 하면 내부 문제로 꽤 골머리를 앓았지 않은가?”

공사의 말과 대사의 말을 종합한다면 네덜란드는 내부 사정으로 곤란을 겪고 있었다. 통합 네덜란드 왕국이 해체가 된 이후에 네덜란드 내부에서는 자유주의 문제로 내홍이 있었으며 연속적인 시위랑 혁명의 분위기에서 조선이랑 수교를 한다는 것은 관심 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헌법을 입헌군주정으로 하고 이후 의원내각제화가 되는 과정에서 나온 국내 정치 문제가 더 중요했기에 말이었다.

“그들의 숙소에 사환을 보내서 이를 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그래, 권유가 낫겠지.”

주프랑스 네덜란드 대사관은 조선인들에게 서신을 쓰는데 그들은 네덜란드어를 모르니까 프랑스어 혹은 영어는 알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두 언어로 쓴 서신 2개를 작성하라고 서기관에게 지시하는 대사였다.

“알겠습니다.”

“이것을 또 누가 전할까요?”

“3등 서기관에게 지시하면 될 것 같네. 공사.”

네덜란드의 조선 서유시찰단 초청 계획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파리에 있는 주프랑스 프로이센 대사관 같은 경우에는....

“저들을 우리의 나라에게 초대해서 얻는 다른 이익들이 뭐가 있을까요?”

“큰 실익은 없겠지.”

프로이센 대사관에서는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프랑스에 부임한 프로이센의 대사는 그들을 초청해서 얻는 위신은 물질적인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여기었다. 반면에 프로이센 대사 밑의 1등 서기관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로이센은 그런 작은 동방 나라에게 칭송을 받아내려고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없다.’

“큰 실익이 없다면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1등 서기관을 보면서 대사는 속으로 꽤나 아직 눈이 작다고 여기고 있었다. 차라리 그가 알기로는 보수적이라도 꽤 안목이 있다고 말이 들리는 프로이센의 지방의원으로 활동 중이고 보수당의 젊은 중진으로 주목 받는 35살 중년인 사내를 떠올린 주프랑스 프로이센 대사인데 그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저기 1등 서기관보다 낫지 않은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지. 그 외교관 경력도 없는 애송이를 그렇다고 여기에 보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여기에, 그는 지방의원이고 국내의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있겠지.’

“큰 실익은 없어도 장차 프로이센이 이들이 있는 동양에 더 진출을 한다면 도움이 되겠으며, 우리 프로이센이 베를린을 북방의 아테네로 만드는데 이를 보여주면서 저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면 저들을 이 유럽에서 만나서 모국에 돌아가서 이를 보고하고 우리는 저들에게 영향력을 줄 다른 교두보를 얻을 수가 있다네.”

“그래도 실현성이...”

“아까도 말했다시피 동방의 소왕국이 우리를 인정한다면 우리의 문화는 그만큼 성숙했음을 유럽에 보일 수가 있네. 위신 등 장기적으론 있지.”

대사의 설득에도 미온적인 반응의 1등 서기관이었다. 물론 대사는 그래서 이들을 만나는 것을 포기할까 생각을 하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 대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지 행운은 그에게 찾아올 것이었다.

그리고 한편, 조선에서는 주상인 이영이 쓰러졌었는데 이로 인해서 조정이며 내의원 등 조선의 중요 행정기관들은 멈출 뻔 했었다. 그가 쓰러진 것은 과로에 의한 것이었는데 어의들은 과로를 하지 말라고 간언을 하고 있었다.

“전하, 과로가 심하오니 좀 더 쉬엄쉬엄하소서.”

“이렇게 몸을 축내시면 저희들로도 한계에 도달하고 전하의 몸은 더욱 축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일을 미루면 군국기무아문이며 삼군부며 의정부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주상인 이영이 이런 말을 함에도 어의들은 더 쉬라고 뜯어 말리고 있었다. 정학연과 김정희 등 군국기무아문의 고관들이랑 의정부와 삼군부의 고관들은 주상인 그가 과로로 쓰러진 것에 더 쉬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들 중 군국기무아문 쪽에선 그 관련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군국기무아문 관청의

전각 내에서 두 사람이 말이었다.

“전하께서는 괜찮으신 것입니까?”

“아직은 더 쉬어야 한다고 어의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상 전하께서는 빨리 업무를 보시려고 하시니...”

추사 김정희와 유산 정학연, 군국기무아문의 중요 제조들로 환재 박규수가 없는 사이에서 유정학연은 2인자의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박규수까지 한다면 3명의 제조로 군국기무아문을 총괄하고 있었다. 그들이 아래의 사람들이랑 상의하고 경장안을 정리하며 임금과 의정부가 경장을 집행하는 일을 돕고 있었다.

또 삼군부를 통해서 전달받은 군의 경장을 보고하는 역할도 하며 삼군부랑 의정부에 경장을 제안하는 역할 등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권한이 꽤 커지나 월권은 방지가 되지만 이론상 임금의 제가와 의정부랑 삼군부의 승인이 있다면 경장에 대해선 상당한 권한이랑 집행을 할 수가 있었다.

“우리 군국기무아문은 주상 전하의 지지가 제일 중요한 임시관청이지요.”

“그렇지요. 그래도 의정부랑 삼군부가 우리를 최대한 존중하니까 경장이 흘러가지요.”

“지방의 경우는 의정부 협조가 절실하지요.”

“맞습니다. 외관들은 의정부 아래에 있으니 말입니다.”

군국기무아문의 권한은 두 기관의 협조가 있어야만 경장을 주도할 수가 있으며 그 협조를 구하는데 가장 필요한 이는 주상, 이영의 제가가 있어야만 이런 협조가 원활하였다. 그래도 임금이 아픈데 경장의 제가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임금의 제가가 필요한 것을 제외한 이미 진행 중인 경장들에 대한 업무를 집중해서 처리하기로 결정을 하는 두 사람이었다.

“전하의 제가가 필요한 것들은 올려놓고 전하가 병석을 털고 일어나시면 하면 되고....”

“지금은 그 동안 이미 제가가 떨어진 것들을 중심으로 일을 해나가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중간의 보고도 보고서를 써놓고 경과를 알려드려야겠지.”

“시대가 바뀌니까, 만기친람은 더욱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유산...”

만기친람, 주상이 모든 정사를 관여하고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제 세상은 그러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기는 했었다. 아마 이런 식으로 주상이 과로로 쓰러지는 일이 생기면 더 업무 분산이 이루어져야 하기는 했었다. 심지어 이 것도 주상의 지시로 상소문은 중요한 것만 다루고 이제 중요 보고로 축소하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한편, 자신의 전각에서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서 쉬고 있던 이영은 앞으로 밀릴 일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쉬는 것이 쉬는 게 아니었다. 과로로 하루는 꼬박 길게 잠을 잤다는 말을 어의를 통해서 들은 그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는 반성했었다. 왕비랑 세자에 세자빈이며 아직 혼인하지 않고 궁궐에 같이 사는 한산대군 등 가족들에게 걱정을 샀다는 것도 말이었다.

‘나라를 생각했지만 내 몸을 신경 쓰지 못했군, 덕분에 가족들이 걱정을 사지 않았는가? 역시, 만기친람도 옛말이라는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른 대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주로 생각을 한 것은 의정부 서사제도를 해서 최종 제가를 빼고 모든 심의는 의정부로 거치는 방식이었으며 군국기무아문의 경우는 경장안을 최종 검토하고 의정부에게 올려서 심의를 받아서 주상에게 올라오는 방식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었다.

삼군부의 일도 병조를 통해서 의정부에게 심의를 받는 식으로 말이었는데 이 경우에는 의정부가 더 일이 많아지겠지만 말이었다. 물론 정말 중요한 것은 주상도 심의에 들어가서 심의를 끝낸 이후에 바로 제가를 하는 방식의 융통성도 열어놓았던 것이었다.

“그래도 경장을 하면서 줄어든 인원에 정사를 관할하라면 꽤나 힘들구나.”

병조도 삼군부랑 경군 도통부로 기존이랑 비교하면 군을 관리하고 지휘하는 부담을 줄였는데 군국기무아문으로 경장안의 정리와 경장의 집행에 경장 관련 총괄을 하는 임시관청을 두며 경장 업무의 부담을 줄였음에도 이렇다. 지금 주상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의정부 서사제에서 좌상과 우상의 권위며 의정부의 위상 외에 권한도 커질 수가 있었으나 중요 집행 실무는 육조가 맡으며 의정부의 백관회의도 장차 다른 회의체 조직을 만들어서 백관회의에서 하던 심의 업무를 분리할 수도 있다고 여기었다.

“영길리국의 도당 같은 것을 생각하면 권한과 업무를 줄이면 도당이랑 비변사 같은 폐회가 없을 것이었다. 이 역시도 겸직을 시키면 아니 될 것이고...”

물론 이는 백관회의와 비슷한 회의체 관청의 존재를 조선 사회에서 얼마나 인정할 지에 대한 것으로 더 신중할 생각이었다. 의정부 서사제랑 비슷하면서 의정부에게 좀 더 권한이랑 업무를 실어주는 식으로 가도 지금의 체계를 유지하면서 가면 한동안은 괜찮을 수가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군령과 정무의 분리를 여전히 심혈을 기울이면 말이었다.

“원손이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구나.”

2년 전에 태어난 원손이 쓰러질 때에 큰 아들인 세자와 더불어서 눈에 밟혔던 이영이었다. 원손의 탄생을 매우 기뻐했는데 그 기쁨을 서유시찰단으로 유주로 간 사람들과는 누리지 못했다는 것은 이영의 개인적인 아쉬움이었다. 서유시찰단에 속해서 유주로 떠난 이들은 환재 박규수 외에도 그가 일부 눈여겨본 인재들이 있기야 했었다.

“그들은 잘 지내고 있겠지? 돌아오면 많이 좀 더 달라져 있을 것이야. 원손이 태어난 것 이상의 변화들이 말일세. 그대들이 돌아오면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이며 세상의 변화를 더욱 알고 달라진 조선을 같이 더욱 이전과 달라지게 해보세. 물론 달라지지 않을 것도 있겠지만.”

이런 혼잣말을 전각의 창문을 통해서 하늘을 봤다가 다시 누웠는데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쉬고 난 이후의 정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생각을 다시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영은 쉬는 것이 쉬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엄밀히는 쉬는 것은 맞았다. 다만 다시 일을 하기 위한 잠깐의 것이기에 취미인 예술을 한다는 것은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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