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46화 (46/221)

〈 46화 〉 (23) 유자법국행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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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연회가 있던 저녁의 그 다음날에 파리를 둘러보기 시작하는 조선의 서유시찰단이었다. 파리도 둘러보는데 파리도 그랑제꼴 중에서 파리고등사범학교랑 에꼴 폴리테크니크 같은 곳이랑 소르본 대학교에 일행들을 나누어서 견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랑제꼴에 대해서는 비슷하면서 다른 조직이 조선에 있어서 이해는 빨랐다.

그랑제꼴 중 에꼴 폴리테크니크를 둘러보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박규수와 오경석에 김병국, 이하응이 그 일행이었으며 오경석이 먼저 입을 열었는데 그가 한 말은 성균관이랑 그랑제꼴이 비슷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호응하는 다른 이들이었다.

“성균관이랑 비슷한 조직이 있기는 했군요.”

“우리 조선은 그게 정학이고 저들은 산학, 격물학 등을 할 수가 있지요.”

“우리 조선도 저런 것을 할 수가 있을까요?”

“할 수가 있을 것이네.‘

그리고 다른 그랑제꼴인 파리고등사범학교는 향교 등의 훈도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도 하기 시작한 그들이었는데 이런 것도 필요하면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었다. 대체로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환재 박규수가 대표적이었다.

“훈도 등을 전문으로 만들어야 한다면 좋지요.”

“주상 전하의 의향이 중요하지만...”

“그 분은 긍정으로 생각하실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오경석이랑 김병국에 이하응도 답을 했는데 모두가 긍정으로 표하고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주상 전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으며 나중에 건의를 한다면 긍정으로 답을 할 수가 있다고 짐작한다. 또 한편, 소르본 대학교를 견학하러 간 쪽에서는...

영상인 정원용이 통역의 말을 듣고는 대학이라 불리는 소르본 대학교의 정문 근처를 더욱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정원용을 따라온 이들은 홍순목, 기정진, 이재원이었으며 그들도 소르본 대학에 대한 설명을 통역으로 따라온 역관을 통해서 들으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대학이라, 대학교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고?”

“그렇습니다.”

“큰 가르침을 가르치기 때문인가? 서원 이상이겠지요?”

지금은 많이 줄어든 서원을 생각하면서 말하는 기정진이었으며 그 말을 홍순목이 받아서 답을 하였다. 이 것은 비슷하면서 다른 유주의 학제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다만 우리와는 다르게 다양한 학문을 가르치는데 하나의 학문을 중점으로 배운다고 하더군요. 그 아래는 사람이 알아야할 것들을 꽤 많다고 합니다.”

“서당이나 다른 것들도 비슷하지요. 천하의 사람들은 겉은 달라도 속은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홍순목이랑 기정진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으며 이에 조심스럽게 이재원이 끼어드는 형국이 되었다. 이재원이 말하는데

“유주의 학문을 배우는 제도는 우리가 봐도 나쁘지는 않다고 보오.”

대학으로 유학자들은 성균관이나 태학 혹은 국자감을 생각한다. 다만 대학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에서는 꽤 놀라워하고 있었다. 정학, 성리학을 배우는 이들에게 대학이라고 불릴 만한 고등교육기관은 성균관 같은 것만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복수 이상의 다양한 대학이란 것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위니보시태(유니버시티 : 대학) 라는 것과 갈리지(칼리지/콜레주 : 중학교 혹은 단과대학)가 있는데 각각 복수 이상의 학문을 다루냐 아니면 한 분야를 다루냐로 나뉩니다.”

“우리는 갈리지에 가까운 것들이 많겠구려. 그들의 눈으로 본다면 말입니다.”

유니버시티 혹은 칼리지는 낯설다면 낯설 수가 있으나 전조인 고려에서도 국자감은 저런 유니버시티에 가까웠다. 칼리지는 조선에서도 비슷한 것들이 있기는 했었다. 관청에 가깝지만 사역원이 그러한 것이었다.

성균관도 칼리지라고 할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일부였다. 다만 그랑제꼴에 대한 설명을 들은 쪽은 성균관을 칼리지보단 그랑제꼴이라고 할 것이었다. 이들도 비슷했는데 이는 영상인 정원용이 대표적으로 그런 말을 꺼냈다.

“아니, 성균관은 갈리지 라는 것이라고 하기가 애매하네. 아까 역관을 통해서 들은 구랑제골이라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네. 아마 환재 등도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겠나?”

“그럴 수도요?”

이런 말을 하고는 소르본 대학교 안으로 법국 조정에서 보내온 이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들어가는 정원용 일행이었다. 그들은 소르본 대학교에 대한 설명을 내부에서 더 들어도 많은 것을 여전하게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영길리인들이 알려준 법국의 찬탈자 나팔륜, 나폴레옹의 시기에 꽤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팔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가장 윗사람인 정원용이었며 그를 시작으로 대화는 활발하게 되었는데 가장 열성으로 참여하는 이는 기정진이었다.

“나팔륜은 생각보다 능력은 있던 자로군.”

“유주 천하를 일통하려고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폭군의 면이 있네.”

가장 젊은 이재원이 입을 열었는데 그가 한 말은 꽤나 심오한 말이었다. 그 말에 기정진이며 홍순목에 정원용 모두가 주목을 하였다. 그가 한 말은 단순하지만 복잡한 생각을 담은 것으로 과연 군주의 치세를 하나로 일방적이게 말을 할 수 있는가?

“폭군과 명군, 암군은 과연 나눌 수가 있을까요?”

“모르네. 나도 그대들도 통감을 봤겠지만 우리는 포폄을 중심한다네. 저들은 좀 다르겠지만... 우리도 세상을 보려면 그렇게 단순하게 봐서는 아니하겠지.

허나, 통감에서도 포폄을 할지언정 공사를 구분해서 명암을 대조하지 않은가? 물론 그런 시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 이 복잡해지는 천하를 살려면!”

가장 오래 살았기에 정학에 가르침도 비교하면 깊은 영상인 정원용은 생각보다 편협으로 그런 변화의 시야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이재원의 고뇌를 긍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홍순목이랑 기정진은 그런 시야로 말한 이재원에 놀라면서도 다른 시야로 볼 수가 있음을 속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에꼴 폴리테크니크와 소르본 대학교 말고도 파리 고등사범학교라는 곳으로 향하는 이들은 이항로에 김병국, 이최응으로 대표가 되는데 이들은 이들이 왕정을 뒤엎은 이들이 세운 학교라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가 천주교, 천주신교를 부정적으로 보던 이들이 이를 분리해서 나라에서 지원하는 교육을 위해서 만들었는데 그런 교육에 필요한 이들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는데 리세라는 학당에서 학도를 가르칠 이들을 육성하는 곳이라는 말에는 생각을 달리 하였다.

“나라가 가르침에 힘을 쓰지 않았다니...”

“우리 조선도 그렇게 힘을 써도 향교 외에는 민간의 서원이랑 서당으로 하지 않습니까? 기초의 가르침은요.”

“저들은 왕정을 엎은 이후에 이를 더욱 힘을 썼다는 것이로군요..”

“우리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것들을 들으면서, 그리고 파리 고등사범학교 교정에서 그들은 생각을 더욱 하게 되었다. 잠시 후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이항로였었다.

“우리는 민초를 군자로 만들어서 교화한다고 했지만 정말로 그랬는지는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화서... 어찌 그런 말을?”

이최응이 놀라서 물어보기 시작을 하는데 이항로는 부끄러워지는 마음과 얼굴을 무릅쓰고 말을 다시 이어나가기 시작을 하였다. 그들은 그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이항로는 자신이랑 선현을 뺀 보통의 양반들이 어땠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군군신신부부자자를 논하면서도 모두가 군자가 된다고 말하면서도 전자의 논리로 우리는 분수에 맞게 살라는 식의 행동과 말을 하기는 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아직 군자가 아닌 것은 같은데 그들은 배움이 부족하다고 이를 정당화하며 소인으로 더욱 낮추어서 높이었습니다.”

“천하의 위에 있는 이들이라고 다른 것이 무어가 있습니까? 위에 있으면 하는 것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네. 성현들만큼이나 우리가 군자가 되지 못했기에 그런 것이지 않겠는가? 군자가 되게 다 함께 이제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소.”

그런 이항로에게 위로의 말을 한 것은 이최응이랑 김병국이었으며 특히 김병국은 그가 말하기에도 정학은 좋은 학문이나 사람이 행하기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며 학문이랑 실천은 다른데 이 실천에서 모두가 군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하였다.

“이런 것을 보면서 저들은 군자가 아니어도 이리 되는데 군자를 지향한 정학은 더욱 쇄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이항로를 달랜 일행은 다시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이들에 대한 다른 설명 외에도 수업에 참관하는 것이 있었다. 이는 다른 두 교육기관, 에꼴 폴리테크니끄랑 소르본 대학에서도 서유시찰단은 그렇게 하였다. 조선의 학제, 나라가 정학의 보급을 하기는 했어도 교육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드물었으며 서역의 학문을 더 배우려면 이런 교육기관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들이었다. 특히나 이런 생각을 하는 쪽은 주로 환재 박규수에 김병학이었다.

“내일은 법국의 옛 왕립 갈리지에 간다고 했지요?”

“그리고 오늘 둘러본 고등의 교육을 맡는 곳 외의 공공을 위한 교육으로 나라에 필요한 이들을 만드는 가르치는 다른 학당들을 갈 겁니다.”

이들이 내일 가는 곳 중에 왕립 갈리지라고 말한 곳들은 나중에 콜레주 드 프랑스가 되는 곳으로 인문학으로 불리는 곳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곳들이었으며 콜레주 루아얄 혹은 콜레주 앵페리엘이라고 불렸다가 작금의 프랑스 제 2공화국 시기에서는 그 명칭이 확립되지 않았으나 파리의 그 콜레주는 여전히 높은 위상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의 파리 시내나 근교의 초등교육기관 혹은 중등교육기관을 견학하는 것이었다.

“우리 조선으로 치면 서당 같은 곳에 가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흥선군 대감께서는 저들의 학당을 보고 어떤 생각이 더욱 들었습니까?”

“저들의 학당은 영길리에서도 견학한 것을 고려해도 더욱 무섭습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아마 법국 등의 학당 제도를 꽤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흥선군 이하응의 통찰력에 감탄을 하는 환재 박규수로 종친사환법이 아니라면 더욱 쓰일만한 인재라고 흥선군의 스승이고 그, 박규수하고는 막역한 김정희의 말을 떠올렸다.

‘꽤나 세상 보는 눈이 있다. 배움이 더 깊고 종친이 아니었다면 더욱 중히 쓰일 수가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는데 정작 흥선군 이하응은 자신이 차세대 의정으로 이미 주목을 받고 있는 박규수 등에 비하면 모자란 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막역한 지간인 김병학과 김병국 형제보다도 재주가 떨어졌으며 이 서유시찰단에 같이 합류한 이들에 유학생들로 선발된 이들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여긴다.

그래도 자신은 이 기회를 바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종친이 되어서 능력을 펼치고 싶었으며 서유시찰단은 그런 기회가 됨이 충분했었다. 이 서역의 유주와 미주를 둘러보고 조선을 변화시키는데 주상 전하의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역사에 이름이 남을 것이라고 여기었다.

그들이 숙소에 도착했는데 법국 조정 소속의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와서 한 서신이 시찰단 일동에게 전했다. 이 먼 유럽 땅에서 서유시찰단에게 서신을 보낼 이들은 드물었기에 의문이었다. 물론 저기 영길리에서도 그들을 초청해서 연회를 연 영길리의 양반 혹은 사대부들이 있었는데 그러한가 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모르는 사내를 소개하면서 말했다.

“이 사람은 주 프랑스의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그대들을 초청한다고 합니다.”

“네덜란드가 말입니까?”

법어를 할 줄 아는 역관은 예상치 못한 것이 나오자 당황하다가 서유시찰단의 상층부에게 이를 전하려고 통역했다. 내달국 혹은 저지국이라는 저기 법국이랑 한 나라를 걸쳐서 가까운 나라의 홍이관 통사 혹은 서역 국가들의 예조 소속 현지 관아인 공사관 같은 것이랑 유사한 관아에서 자신들을 초청했다고 전하였다.

“저지국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남압주에서 산다는 서역 사람들의 조상에서는 저 저지국에서 왔다는 이들을 했을 때에 그 저지국?”

“사실 저지국이 저기 남만에서도 영길리국이 천축을 점령했듯이 남만에 큰 섬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듣자 생각을 정리하는 이들이 있는데 대체로 흥선군 이하응, 김병학과 김병국 형제며 환재 박규수에 단장인 정원용 등이었다. 그들 외에도 기정진이랑 이항로도 곰곰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정원용이 입을 열었는데 이는 추측이라도 가장 그럴듯한 것이었다.

“혹시, 통상을 위해서 우리랑 만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견에 박규수가 대표로 나서서 동조를 하였고 다른 이들도 대체로 비슷하였다. 그 것 외에는 저지국 측이 서유시찰단에 접촉하는지를 합당하게 설명할 길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에 대해서 답을 내었다.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저지국은 상행에 관심이 본디 많은 나라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이라면 상행을 연결시키려고 우리랑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입니다.”

“그들이면 충분히 그럴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상행에서 어떤 이익을 우리에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상행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 이익을 얻을지에 대해서는 매우 궁금해 하는 이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 다른 누구도 아니고 기정진이 그가 생각했으나 답변을 하였다. 그 답변은 꽤 그럴 듯하게 보였다.

“저들도 영길리처럼 다양한 상품을 사고팔며 청에서도 장사를 하겠지요. 그리고 큰 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는 우림도 있다고 하니 혹여 나무를 팔수도 있겠지요. 저들이 우리의 사정을 안다면 나무를 베어다가 팔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그리고 저지국이라는 쪽도 영길리랑 비슷한 것들을 팔수가 있겠지요.”

“저지국은 왜국과도 교류를 하는데 왜국의 정보를 그들을 통해서도 빼올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저지국에 대한 이야기로 가니까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지기 시작을 했었다. 저지국, 오란다, 왜어로는 저지국을 이리 가리키는데 그들은 왜국을 통해서 조선을 알았는데 이렇게 늦게 통교를 전하는가는 궁금하였다.

“왜국은 저지국이랑 교류했다는데 그럼 저지국은 이렇게 늦게 우리와 통교를 청할까요?”

“왜국이 방해하고 저들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것을 시도했어도 전대 조정들에서는 꽤 고사를 했을 것 아닌가?”

그렇게 말하면서 넘어가는 그들이었다. 주프랑스 네덜란드 대사관의 초청에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서유시찰단 전원을 모두 대동해서 회의를 시작하였다. 초청에 응하자와 응하지 말자였는데 주로 전자가 더욱 많았다. 그 이유야 주로 다른 서역 국가들도 만나는데 저지국도 통과하는데 이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에 대해서 이야기였었다.

“저지국도 가지 않습니까?”

“미주로 가는 분견대 외에는 우리가 통교하지 않았어도 둘러볼 나라들이 있지요.”

“물론 유학하는 이들은 영길리와 법국에 한정하지만요.”

이런 논지로 찬성하는 이들은 박규수와 흥선군 이하응에 김병학, 오경석 등이었다. 그리고 다른 논지로 초청에 찬성하는 이항로에 홍순목도 있었는데 이들의 논지는 정중하게 초청을 하였는데 이를 마냥 고사하기는 도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실지로 네덜란드 대사관이 전한 서신은 서역의 유주 문자라도 영길리어로 쓰였으며 번역하니까 그 어투가 매우 정중하려고 했다는 것을 들어서 말이었다.

그리고 반대쪽에서는 기정진이랑 흥인군 이최응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저지국을 가도 법국의 외교 공관을 통해서 사전에 만날 필요가 있을지에 회의가 있으며 물욕이 있는 것을 본다면 초청도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단칼에 거절하기 애매하니까 에둘러서 사양하는 식으로였다. 그 외의 이유도 들었는데 그 것은 주로 여건의 문제도 있었다.

“그들을 당장 만나기에는 우리도 일정들이 틀어질 수가 있지요.”

“그럼 저들에게는 휴일인 날에 잡으면 어떻습니까?”

찬성 논지의 사람들이 설득을 하는데 반대인 쪽도 사실 그렇게 강경하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편도 들지 않고 중간에 있는 서유시찰단의 단장인 영의정, 정원용은 그들의 견지에 대해서 귀를 열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유시찰단의 단장, 서유시찰정사인 그니까 그가 현지 조선에서는 가장 높은 결정권자이기는 했었다.

그렇게 논의가 끝난 이후에 정원용은 눈을 감으며 고심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이런 초청을 받아도 나쁘지 않았지만 반대의 말도 합당하고 다른 대안도 있으니까 이내에 마음을 정했다. 그는 눈을 뜨고 그들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들의 말로는 7일 째에 휴일에서 만나자고 하지요. 물론 그가 믿는 신교의 가르침 시간이 끝난 이후에 하자고 하지요. 영길리 방식으로 하면 다시 말이오.”

“그럼 될 겁니다. 일정들은 일정대로 수행하면서 말입니다.”

“그 정도면 불만은 없습니다.”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서유시찰단은 주 프랑스 네덜란드 대사관의 사람들이랑 만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만남이 조선이랑 네덜란드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 만남으로 어떤 변화가 올지에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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