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47화 (47/221)

〈 47화 〉 (23) 유자법국행(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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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에서는 한 천주교, 조선에서는 천주신교라고 부르는 조선인 천주승,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조선의 내륙을 떠돌면서 자신이 믿는 천주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 그는 1844년에는 부제서품, 1849년에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 다음에 조선으로 귀국한 그는 두 선배, 정하상 바오로와 김대건 안드레아가 조정의 일에도 동원되는 것에 반해서 조선 천주교회의 요청으로 교단의 일을 주로 하게 되었다. 자처해서 조선 내륙의 다른 선교사들은 제한이 되는 조선인이란 점으로 사목을 하고 있었다.

“신부님, 힘드십니까?”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었던 순교 사도들이며 순교자들이 있고 조정의 일도 겸해서 불리어 하고 있는 두 선배님들에 비하면 나는 양반일세.”

최양업 신부를 보필하겠다고 나선 이가 중인으로 역관인 이가 있었다. 최양업 신부는 조선 천주교회에 등록한 성도들이며 그런 이들이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고해성사와 미사를 집전하였다. 다른 천주교회 소속의 선교사, 신부 등도 이런 미사를 집전하려고 조선 조정의 허락을 받아서 움직였지만 최양업 등의 조선인 신부들에 비하면 제한을 받았다.

“신부님이 있기에 많은 이들이 감사하고 인천으로 가서 신부님 같은 신부가 되겠다는 어린 성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자신을 동경한다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그들이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에서 최양업 토마스는 기쁘며 자신을 써서 하나님의 종이 더 늘어난다면 그것만큼이나 기쁜 것도 없었다. 또 듣자하니까 다른 조선인 신부들을 만들기 위해서 천주교회에서 더욱 열심이라는 것을 알자 기뻤다. 그리고 개방 이후로 조선이 변한 것 같다고 느끼던 최양업이었지만 이 것이 자신이 귀국하고는 더욱 그렇다고 느끼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이전보다 은이며 동전의 사용이 비교하자면 좀 더 늘어간 것이 있었다. 조정이 당오전을 발행하고 은으로도 부분적이나마 세수를 걷게 되자 그렇게 내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

“조선이 확실히 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네. 그래도 아직 아버지의 가르침이 필요할 정도로 힘든 이들이 많다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다른 변화는 청나라에서 들여온 돼지로 인한 것이었다. 돼지를 기르는데 이전과 달리 먹이고 찌는 것이 좋아지자 점점 돼지고기들이 많이 풀리고 있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먹여도 되는 것이었으며 이 일에 농사짓기를 아직도 싫어하는 백정들이 꽤 끼어들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갈등이 생기고 있었다. 백정들이 돼지를 기르면서 도살함으로서 돈을 좀 더 벌자, 이런 추세에 일부 평민들이 백정들을 괴롭혀서 돈을 갈취하는 일 등이 생기는 것이었다. 주상인 이영이 백정과 평민들을 화합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직도 화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그 외에 돼지에게도 감저(고구마)와 양감저(감자) 말고도 잡곡을 먹여서 키우려는 이들이 있자 잡곡의 가격이 올라가서 말을 키울 때에 제한이 생길 수가 있었다.

“민생에 대한 보고가 올라가고 있다면 조선의 조정은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물론 나에게 이런 동향을 살피라고 명을 내린 것도 있으니...”

최양업도 결국은 조정에게 협조를 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것이 어학이 더욱 뛰어난 두 선배가 교섭이며 번역 등으로 일을 할 때에 이런 일을 시키게 된 것도 비슷했다. 조선 조정이랑 천주교회의 협상 아닌 협상으로 이런 것이었다.

“신부이면서 사실상 암행을 하는 어사라니. 물론 조정이라면 나를 통해서가 아니면 보고가 있을 것이니.”

이런 혼잣말을 수행하는 같은 신을 믿는 성도인 역관도 들으라는 식으로 가고 있었다. 미사와 고해성사 외에는 일반 조선인처럼 입고 다니는데 특별히 갓이랑 도포를 입고 다녔는데 이를 본다면 선비들이 천하를 주유하는 것으로 볼 것이었다.

“또 지금 조선에서는 세금이 늘었다고 불만이 팽배하더군요.”

“그래도 한 지방에서만 많이 거두라고 하지 않으며 양반들이며 종친들까지 세수를 걷게 하지만 전세가 점점 늘고 여타 잡세들이 늘어나니...”

“그나마 주상 전하가 꽤 일을 하니까 그렇게 폭발하지 않는군요.”

“모릅니다. 천하의 일들은 사람이 단언하여서 알 수가 없지요.”

“그건 그렇습니다.”

조선의 지방 고을에서는 전세가 오르는 것에 당연히 불만이 있었다. 그래도 이 불만을 무마하는 것은 지방재정을 꽤 보전하면서도 다른 잡세 등을 내며 양반들도 점점 호포제가 널리 퍼지고 면세지였던 대부분의 서원이나 궁방전이며 심지어 내수사 소유의 전답, 주상의 재산에서도 세금을 내게 하면서였다. 즉 모두가 세금을 내게 하는 상황이라서 불만을 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조세 부담이 는 것은 달라지지가 않았었다. 여기에 부정부패를 최대한 잡아도 지방의 부패를 다 잡기는 어려웠다. 물론 고을의 육방이 결탁하는 일은 줄었으며 수령의 부패를 육방이 말리는 상황 등도 있었다.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암행어사들이나 최양업 같은 이들에게는 임금에게 올라갈 귀중한 정보이기는 했었다.

그리고 최양업이 앞으로 들를 예정인 고을에서는.... 그들은 육방 관속들이 부패를 그리 저지르지 않고 향반들도 아직 건재하며 이들은 조정의 지시인 향안 등에 서얼이며 중인들을 넣는 것에 찬성하였으나 부임한 수령이 문제가 매우 돈을 밝히는 자였다는 것이었다. 조정에 올린 돈이 부족하다는 명목으로는 벌이는 일들이...

“이방, 환곡 외에 대동미를 올려야할 것이 아직도 부족하다. 이제 대동법이 바뀌어 별공이랑 평공이 통합이 되는데 당연히 부담은 오르겠지?”

“하지만 사또, 그런 말을 감영을 통해서 내려온 것이 없기에 사사로이 할 수가...”

“어허! 그대는 감히 주상 전하와 조정의 뜻으로 부임한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조정을 들먹이면서 규정보다 더 많은 식의 세금을 거두어서 제 빈 주머니를 채우려고 하고 있었다. 경관들의 녹봉이 올랐듯이 수령이 받는 녹봉도 분명하게 올랐다. 그러나 그래도 부족한 이들은 있었다는 것이며 또 녹봉의 양이 오르기는 올라도 기대치 이하라서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 아전들이 녹봉을 못 받았다가 받게 되는 일로 점점 부패에 손을 떼는 것과는 별개로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관으로 파견된 이들이 부패가 온전하게 사라지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의 조정이랑 도 감영들은 이런 곳들을 조사해서 주시하고 있었으며 어사들이며 도감의 군대로 이런 곳들을 이전에도 정리하고 있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곳들 중 한 곳에 가서 아마 신도들을 만나면서 사정을 들을 것이었다. 이 곳의 운명은...

한편, 인천 개방장에 있는 조선 천주교회의 본거지로 기능하고 있는 인천부 조선교구 주교좌 성당에서는 청나라 강남에서 일어난 변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 강남에서 일어나서 더 커질 수도 있다는 민란에 대해서 말이었다. 배상제회라는 무리가 봉기했다는데 이들이 천주를 믿는 이들인지 아닌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들의 조사로는....

“배상제회라는 조직은 기독교 계통의 교리가 있으나 이단이라고 봐야합니다. 배상제회의 우두머리인 홍수전은 자신을 천주의 둘째 아들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들을 도울 이유가 있습니까?”

조선 천주교회에서 파견한 이들이 전하고 서역 상선들이 알려준 정보를 교차 검증하면서 나온 것을 천주교회 상층부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론에 모두가 반응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단입니다. 천주를 믿는 자라도 이단입니다.”

“프로테스탄트 그 이상의 악질들입니다.”

“세상에나, 스스로를 천주의 둘째 아들이라 칭했다고?”

“끔찍한 이단입니다.”

조선 천주교회의 신부들은 조사에 대한 것을 전해 듣자 내린 결론들이 저 위의 말들이었다. 조선 천주교회의 수장인 4대 조선교구장인 장조제프 페레올 주교, 3대 교구장인 앵베르 주교의 후임자인 그가 듣기에도 배상제회는 이단이었다.

“우리는 어차피 저들을 적극 도울 생각은 하지 않았소만, 이 무슨...”

“파리 외방전도회랑 교황청에게 이를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들이랑 엮일 필요가 없다고 말입니다.”

“애초에 우리가 독단으로 행동한다면 조선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겠지만요.”

조선 조정은 조선 천주교회에 대해서 개방장 중심의 전도는 별로 잡지 않았으나 내륙에서의 활동은 일정부분 제한을 하였다. 그래도 최양업 토마스 신부나 내륙 활동을 허용 받은 이들은 지방순례로 미상의 전례를 행하면서도 전도를 열심히 하여서 점점 신도들은 늘어나고 있었다. 또한 이들로 정보망도 꾸리고 있는 조선 조정이었으며 천주교회도 이들로 정보를 얻어서 신규 인원들에게 조선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종의 비밀임무를 가진 왕의 신하들처럼 우리 성직자들을 이용하고 있기는 하지요.”

“우리 교회는 이런 관계로 교세를 유지하거나 늘리면서 있지요. 어차피 조선 정부도 마찬가지로 저들을 그냥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 정부의 반응은 어떻소? 바오로 신부? 안드레아 신부?”

교구장인 페레올 주교의 질문에 두 조선인 신부들이 반응을 보였다. 하나는 최초의 조선인 신부이고 명문가 집안의 일족으로서 그 형인 정철상 가롤로랑 더불어서 조선 조정과 조선 천주교회의 다리가 되어주고 있는 정하상 바오로 신부였다. 다른 하나는 두 번째 조선인 신부라고 할 수 있으며 원래는 첫 번째여도 이상하지 않은 젊은 신부, 그리고 근래에 조선 조정도 더욱 탐을 내는 인재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말이었다. 먼저 정하상 바오로 신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선 정부는 배상제회란 이들이 일으킨 저 반란에 대해서 청을 도와서 진압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은 내부 개혁에 더 치중하고 있지요. 군대의 변화와 내부 개혁으로 조선은 더욱 달라지고 있는데 점점 서역 국가들과의 통교가 늘고 있습니다.”

“그건 알고 있네. 저 반란에 조선은 굳이 끼어들어서 얻을 이익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그럼 조선의 지배층 외의 통역관 등 중간지배층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알고 있소? 안드레아 신부?”

“중인들은 대체로 그 민란이 터진 것이 조선에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라고 청 내부의 문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청나라는 이전의 전례대로 러시아와 국지전에서 조선 군대를 동원한 것 같이 움직일 것을 역사를 잘 아는 중인들에선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런 대답에서 조선 정부며 지도층에 중간지배층들은 조선이 저 청나라의 반란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라고 여기고 있음을 유럽에서 온 조선 천주교회 성직자들은 알 수가 있었다. 물론 조선에서 오래도록 지내온 이들은 벌써 그럴 것이라고 짐작이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황청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조선 정부랑 생각에 의견을 동일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그러는 것이...”

조선 천주교회의 성직자들이 이런 주장을 하게 되자 페레올 주교 역시도 이 의견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배상제회를 도와주자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괜히 엮여 봐야 좋은 일은 없을 것이었으니까 말이었다.

“배상제회에 대한 보고를 조선 조정에도 별개로 전달하면 어떨까 싶네.”

“신뢰를 더 얻기 위해서 입니까?”

“그렇다네.”

이어서 말을 꺼낸 페레올 주교의 말에 모두가 생각을 하다가 동의를 하였다. 조선 조정으로 해야 할 일이 있는 정하상 바오로 신부가 해당 보고서의 사본, 한자로 쓴 것을 전달하기로 하였으며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이에 정하상 바오로가 직접 해당 보고서의 사본을 한역으로 필사해서 전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조선이 네덜란드 대사관 측의 초청을 받아들였다가 파리 외교가며 사교계에 퍼졌는데 프랑스 정부에서는 이런 것에 대해서 크게 상관은 하지 않았다. 다만 네덜란드가 조선과의 교역에 끼어들 생각을 하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엘리제 궁전에서는 프랑스의 현 지도자,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과 그 측근이 대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네덜란드가 움직였다라...”

“어떻게 할까요?”

“내버려두게, 근데, 프로이센도 이에 대한 반응이 어떤가?”

“아마도 프로이센도 조선이랑 접촉을 할 생각으로 보입니다.”

“프로이센 놈들은 왜 조선에게 접촉을 시도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군.”

루이 나폴레옹이 생각하기에는 프로이센이 딱히 조선에 접촉을 할 만한 동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프로이센은 조선에 접촉을 하는 것일까? 해군도 변변치 않은 프로이센이고 아시아와의 무역을 하기엔 여건도 비교적 빈약한 그들이었다. 그러다가 루이 나폴레옹의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렇군. 유럽 외교가에서 프로이센을 더욱 뛰어보려는 술수로 접촉하려는 것이겠군,”

“설마?”

“프로이센이 향유하는 문화를 먼 동방의 조선에게 인정받아서 동방의 나라들도 인정하는 프로이센 문화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자부심에 프로이센이 그만큼 선망을 받을 만한 나라가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이지.”

“그 군대에 미친 자들 치고는 예외군요.”

측근이 말한 대로 프로이센에 대한 대외적 이미지는 프랑스. 러시아에 다음가는 유럽의 군사대국이었으며 문화적 세련성 등에선 아직도 프랑스가 주로 가지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프로이센의 고전주의를 인정받으려고 독일어권이며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열심인 그들이었다.

프로이센의 의향을 알아차린 루이 나폴레옹의 선택은 도리어 프로이센을 무시했다. 조선이 프로이센이랑 접촉해도 그 이벤트 외의 장기적인 계획이 없다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프로이센에 꽤 감명을 받아도 프로이센이 조선에 영향을 줄 만한 여건이 얼마나 있겠는가? 일일이 다 신경 쓰면 귀찮으니까 그냥 두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프랑스 당국은 독일어권의 양대 강국으로 올라갔어도 여전히 프로이센은 프랑스에겐 낮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것이 조선이랑, 프랑스, 프로이센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당시의 루이 나폴레옹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를 나중에 후회하게 될 수가 있었다.

프랑스의 ‘그 콜레주’에 가고 이후에 프랑스 파리와 그 교외의 중등교육기관에 둘러보는 조선의 서유시찰단이 시행할 오늘 일정은 분산 수행이 아니라 단체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그 콜레주에 대해서 조선인들이 생각하는 것은 매우 인상이 깊었다.

‘이 법국에서도 제일 성균관 같은 곳은 이 갈리지라고 만 불리는 곳이 분명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환재 박규수고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갈리지’의 교수가 된다는 것은 매우 영예로 여긴다는 법국의 학자들이었다. 그 통역을 통한 말에서 조선에서도 성균관의 교수 등을 한다는 것을 꽤 영예로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끼었다. 그도 아니면 서원에서 학맥을 계승해서 이를 가르치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여기는 그들이었다.

‘성균관도 왕을 위하여, 정학을 위하여 만들었다. 근데 만약 정학 외의 학문도 다루게 되면 저기 저 곳은 성균관의 변화에 대해서는 국자감이랑 더불어서 좋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성균관을 저리 만들고 일부 고등한 서역 학문은 모방을 위해서 기존에 있는 학당 등을 개편해서 구랑제골 같이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인재를 만들어서 나라를 위해 써야 한다.’

점점 서역을 돌아다니면서 이항로와 기정진의 생각은 점점 달라지는데 정학의 가르침도 활용해서 둘을 보다 절충해서 써보려고 하는 것이었다. 저들 사회에 사람을 뽑아서 올리는 것도 향거리선제를 떠올리고 이를 연대 보증의 방식으로 책임을 지게 하거나 물러나게 하면 되나 하는 일종의 대안도 생각하였다.

그 외에도 자신들이 생각하는 앞으로 조선이 정학이 저들의 학문이랑 문물과 충돌하면서도 변화하고 그 본질을 지키는 조선의 변화를 위한 경장정책안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점점 막연했다가 이번 서유시찰단에서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고 구체화를 해서 써서 올릴 예정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가 되는 이 곳에서 통역을 통해서이지만 그 강의를 들어보는 그들이었다. 이 콜레주에서 가르치는 학문들은 후세에는 인문학이라고 불릴 것들이었으며 그 중에서 조선인들은 법국 석학에 대한 것을 우연하게도 듣게 되었다.

‘법국 석학에 대해서 들어본다면 유주의 석학 중 영길리 석학 서적 외에도 유주의 다른 석학들도 더욱 기대가 되는구나.’

프랑스의 철학 사유와 영국의 철학 사유가 다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서유시찰단이 보기에 영길리의 석학 사유는 법국의 석학이랑 비교한다면 험론(경험론)에 가까운 경향이 강했고 그 외에 공리론(공리주의)이라는 담론을 꺼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석학, 철학 사유는 선대인 데카르트 등의 영향을 받아서 이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여전히 있으며 이는 성리학에서 리를 강조하는 것이랑 비슷했었다. 또 합리론 외의 실증을 강조하는 실증론(실증주의)이 나오나 이는 소수였으며 이웃한 지역에서 온 석학, 간토라는 석학의 거물을 추종하면서 그를 다시 복권하는 신간토론(신칸트주의), 간토의 주장인 합리론 등을 설명하였다.

물론 역관이 그런 용어들을 잘 설명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느끼는 그들이었다. 콜레주를 나서면서 그들은 다음 공무를 위해서 파리랑 파리 외각의 교육기관들로 가는 중에 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그들이었다.

“실증론은 꽤나 파격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성 같은 리(理)를 격물학으로 대체할 수가 있다는 아직은 동의 못합니다.”

실증론이 가장 인상이 깊었던지 그들은 콩트의 실증론을 꽤나 비판도 있다만 이에 대한 실천을 위한 방법을 논하는 것에는 꽤나 긍정이었다. 그들이 여전히 존중하는 정학에도 이를 응용해보려는 시도를 할 생각도 드러내었다.

“그 방법을 다른 곳에 응용한다면 좋기는 합니다.”

“그런 방식의 검증이면 다른 학문, 정학이라도 도움이 될 겁니다.”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것이 말이지요?”

특히나 이런 말을 잘 꺼내는 것은 이항로와 기정진이며 그 외에는 홍순목이었다. 그들은 이미 마음 속에서 파리의 서점이 있다면 법국 석학 서적들을 매우 사들일 생각이었고 이미 목록을 짜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파리와 파리 교외의 교육기관들을 보는데 인상이 깊은 것은 자신들이 생각한 광경과는 다르게 이들도 대학이랑 비슷하게 분필이라는 흰 돌가루 같은 것을 굳힌 것을 쓰며 칠판이라는 검은 나무나 돌로 만든 판을 써서 가르치고 있었다. 대학보다는 작거나 했지만 이런 것을 많이 구비할 수 있는 환경에 놀랍다.

“저런 기구들을 많이 준비할 수가 있구먼.”

“서역 방식의 학당을 만들 때에 저런 것들을 조선에서 만들 수 있게 해야 할 겁니다.”

“당연하네. 신공연무학당에선 그런 도구들을 수입했다네. 하지만 이제는 직접 만들어야 할 시간이 오겠지.”

“그러하니 역관에게 동행하는 관료에게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봐달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일부 서유시찰단의 사람들은 서역 기술을 담당하는 학당을 알고 있지만 아닌 이들은 아니었다. 주로 그런 학당의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쪽은 조정에 속한 고관들이나 중견 관료들에만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칠판과 분필에 놀랐던 것이었다.

“저런 식으로 가르치면 더욱 도움이 되겠지요. 전에 갔던 곳들을 고려하면...”

“옳은 생각이라네.”

그들이 말하는 기초교육이 무엇인지를 보면서 서당에서 가르치던 것을 비교하면서 지켜보는 이들도 많았다. 산학을 비롯한 것을 정말로 가르치고 있었으며 간단하게 글을 쓰는 법 등이 있었다. 서당이랑 비교한다면 산학 같은 것을 좀 더 유심하게 다루고 있었다. 군국기무아문에 속한 환재 박규수 외의 다른 인사들이 그러했다.

‘조선의 사정에 맞게 반영해야지.’

‘사범들이라고 불러야 할 훈도를 기존 향교 외의 것을 확충한다면 그리고 이를 가르칠 것도 고려하면 학당에 그들의 녹봉을 감안하면 세수는 더욱 늘어나야 한다. 우리가 조선에 귀국할 시점이면 세수와 조세 제도가 좀 더 개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관세의 양도 늘어날 것이니까 문제가 없을 것이다.’

법국에서 교육제도를 더욱 보면서 조선에 반영하기 위한 생각과 올릴 보고서며 일기에 쓸 내용을 위하여 그들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열심히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이 또 오늘의 일정을 마치면 다른 나라의 외교관이 방문해 있을 것은 모르고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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