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23) 유자법국행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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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선에서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곧 방문할 고을에 대해서 중앙의 이조와 호조 관원들은 의구심을 가지고 그 고을에 대한 것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들이 보는 문서 중에서는 표로 만든 것이 있었다.
“고인이 된 다산 대감이 고안했다던 표인데 이를 바탕으로 기입하게 되었는데 아예 수요가 늘었으니까 전용 목판도 만들지 않았나?”
“그렇지요. 그래도 변화를 바로 파악해서 잘 만들었다고 봅니다.”
“헌데, 이 고장에 대해서 최근에 부임한 수령의 임기가 시작이 된 이후로 1년 뒤에 비용이 감영에서 올린 것과 달리 별개의 세수를 낸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해당 문서들, 작금의 주상이 이전에 호적을 재정리하고 세수를 확인한다고 다시 매긴 장부들, 조정에서도 저장해서 보관 중인 것들을 검토하는 중이었다. 그 외에 이조 인사들이 그 수령에 대한 인사 평가들을 보면서 혐의를 조사 중이었다. 이 혐의는 이미 의심을 받고 있었는데 김병연이라는 방랑 선비의 투서로 전해진 것이 발단이었다.
“김병연, 김삿갓이란 양반이 가끔씩 이런 투서를 썼지.”
“안동 김문의 일족이지만 가끔 안동 김문에 대한 부정어린 풍문을 가장 앞장서서 말하는 이가 그였지. 방랑해서 풍류를 좋아하는 이가 그라고...”
김병연은 과거라면 과거로 시간이 꽤 지난 평안도에서 있던 홍가 놈의 반란에 반군에 가담했던 평안도 군수 중 벼슬까지 받았으며 반란군 간부의 목을 자기가 베었다고 했다가 기군망상을 저지르고 처형당한 김익순의 손자였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나중에 알고는 매우 실망했으며 조선의 변화에도 제 가문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염치를 알고 머리가 좋고 지식을 알아도 과거를 포기하고 방랑한 이였다. 그리고 조선을 떠돌면서 지은 시들은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조부만 아니었으면 과거에 붙을만한 사람인데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시가 조금 저속한데 풍자함이야...”
“가끔은 보면 시원하다오. 물론 잡담은 이쯤하면서 일에 집중하지.”
김병연, 김삿갓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업무를 이어나가는 호조와 이조의 관원들이었다. 김병연의 투서로 조사가 시작된 것이 있는데 그의 위명 외에도 이전 전적을 생각해서 시도하는 것임은 분명했다. 이 일에 대해서 이미 암행어사가 투입되었고 추가적인 조사를 할 예정이었다. 그의 비리를 파악하고 사실이면 파직하고 한성으로 압송한 다음에 사간원이랑 사헌부에서 이를 조사하기로 하였다.
“큰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닌데....”
“네, 그런 큰 문제의 예시인 역병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합니다. 감영을 통해서 그런 것을 도 자체에서 거두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아닐 여지가 큽니다.”
그 수령이 모르는 사이에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갈 고을은 이미 조선 조정에서 주시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최양업 토마스 외의 암행어사가 내려가고 있었다. 그 암행어사의 중요한 1차 목적지는 그 고을이었다.
한편 그 고을의 향반들이랑 아전들은 수령 외에 이미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 논의의 주제는 수령의 비리를 어떻게 알려서 이를 막으며 수습할지에 대해서였다. 극단의 일부 향반들은 수령을 잡게 민란 형식으로 일어나서 총대를 메고 일을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 그것은 너무 극단이 아닙니까?”
“신문고도 울리지 못하면 그렇다. 상소를 하기엔 상소가 어떻게 올라가서 처결이 되기엔 늦지 않소?”
“그 사이에 저 수령은 임기를 마치고 떠날 수가 있다오.”
극단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거가 이러했는데 민란을 오인해서 진압을 강경하게 당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걱정을 고려해서 말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김병연이 자신들 고을 관련으로 중앙에 투서를 올린 것을 몰랐다. 그리고 최양업 토마스를 통해서 비리를 전해질지는 몰랐었다. 천주신교를 믿는 중인 중에 하나가 이내에 그 사실을 떠올리고 묘책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어떻습니까?”
“무엇인가?”
“천주신교의 천주승이 이 고을을 지나가는데 그 분에게 고해서 조정에 전해달라고 하면..”
“흐음...”
중인의 이런 의견에 반대하던 이들은 그럴 듯하다고 여기다가 극단으로 치달아서 민란을 운운하는 이들은 반발하였다. 그것도 언제 도착할 지가 모르는데 어떻게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6방 아전들과 다른 아전들은 나중에 처벌해도 민란은 아니 된다는 생각이었으며 대체로의 향반들도 이에 찬성하는 편이었다. 향회를 연 척하면서 이렇게 위장해서 모의하는 것도 그 눈치 빠른 수령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느릴 것이오.”
“해서 주상 전하께 불충을 벌이자는 것이오?”
“그렇소.”
그 말, 그 단언에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한 사람에게 모두가 눈이 집중되었다. 그는 눈 하나 끔뻑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을 다시 이어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럼 저런 자를 묵인해서 나중에 같이 기군망상으로 벌을 받을까요? 그럴 것이면 불충을 각오하고 일어나서 주상 전하의 은혜로 이 곳에 온 수령 주제에 주상 전하를 들먹이면서 세금을 멋대로 거두고 이 중의 일부를 챙기는 자를 그냥 두어야 합니까?”
“그래도 민란은 아니 되옵니다.”
그의 말은 어느 정도 그럴 듯은 해보였으나 극단인 것은 여전하였다. 이에 대해서 다른 한 사람이 반박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민란이 자칫하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 중점을 두면서 말이었다.
“민란은 최후의 수단입니다. 이를 쓴다면 또한 주상 전하께선 지방의 군대로 우리를 진압하려고 할 것이요. 일견에서 정당하다고 해도 모두에게 정당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은 온건하게 처리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당장 일어나서 처리해도 되지만 절차와 법도를 최대한 따라야 할 것이 아니요?”
“그리 말해도 늦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그러니!”
“그리고 우리는 알리고 최선을 다했으면 피해를 입었으면 입었지, 저자를 묵인하고 옹호한 것이 아닌 우리가 같이 처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요. 작금의 주상 전하께선 그러하실 분이 아닙니다.”
한 선비의 설득으로 민란을 일으키자는 쪽은 우선은 잠잠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령의 비리 증좌들을 다시 철저하게 모으자고 말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고을을 방문하였다.
수령은 그를 만나지 않았지만 신부 일행에게서 돈을 뜯어낼 생각이 컸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고해성사를 듣고 주일 미사를 집도하고 다음 고을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접촉하는 이는 육방 아전 중의 가장 서열이 높게 취급되는 고을의 이방이었다. 이방이 신부에게 말하였는데 그 내용은 그에겐 익숙하지만 여전히 충격인 내용이었다.
“수령이 대동법에 대한 평공 세금을 멋대로 더 거두었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직 어사 어른이 오지를 않은 것 같으니 천주승께서 이를 전하여 주십시오.”
“조정에 말입니까?”
젊은 천주승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이방인데 최양업은 살아있었다면 자신의 아버지뻘 나이대의 어른이 저리 부탁하는데 들어주지 않는 것이 애매하였고 비슷한 임무를 받기는 했던 그였다. 그렇기에 고심을 하다가 받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에 수령이 신부와 그 신부를 돕는 중인은 관헌으로 불렀더니만 대뜸 요구를 하였다.
“그대는 천주승이라서 당연히 믿는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내는 세금인 신교세를 알 것입니다.”
“그렇소.”
매우 탐욕스러운 얼굴이며 얼굴은 살이 찌고 몸도 꽤나 비대한 수령, 원씨라고 했던가. 그런 수령이 억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매우 역겨우며 성서 속의 서기관과 바리사이들이며 세리들이 저러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였다. 수령이 무슨 요구를 할지에 대해서 짐작을 이미 하고 있는 그였는데 역시나가 역시나였다.
“그대가 천주신교의 천주승인데 이 고을의 신도들이 신교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고 있으니 그대가 대신 내어주시오,”
“개개의 세금은 개개에게 물어야 합니다. 천주승인 저한테 무는 것은 부당합니다. 비록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로, 주님의 것은 주님에게로가 옳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이 고을에서 신교세를 내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그들은 감히 주상 전하의 은혜를 이렇게 갚고 있지 않소?”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 최양업 신부 보고 신교세를 빨리 내라고 강요하고 있는 수령이었다. 그가 요구하는 신교세는 훨씬 많았다. 1년치라고 운운하는데 기실은 이미 신교세를 고을의 천주교를 믿는 성도들은 낸지 오래인데 최양업 신부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고을의 사또인데 그 것을 듣고 매우 어이가 없어하는 신부랑 그 수행을 하고 있는 중인이었다.
우선은 듣고 있었지만 점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이미 신교세를 납부했다는 것을 들었는데 사또는 말이 달랐다. 그러니까 둘 중 하나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데 이방의 말도 들어본다면 사또 쪽에서 거짓말을 함이 분명하였다. 그가 내놓으라는 것이 신교세로 무려 은으로 하면 30냥이 넘었다. 즉 쌀로는 60석이 넘었다.
“어서 답을 하시오! 그대가 내지 않으면 그들을 잡아다 벌할 것이니!”
“멈추시오, 낼 수 없는 자는 군역으로 대신한다가 있지 않소?”
“그들에게 굳이 군역이 아닌 관아에서 벌을 주고 일을 시키면 그 만이란 말이...”
사또의 말을 자르고 들리는 큰 목청의 목소리들이 들렸다. 그 것에 사또는 놀랐고 신부에 신부의 수행원도 마찬가지였다. 그 목청의 주인공들은.. 역 혹은 감영에서 데려온 이들이었다. 암행어사의 출두를 부르짖고 있었다.
“암행어사 출두야!”
“죄인은 당장 고개를 숙이고 오라를 받으라!”
“이 자의 죄를 입증할 관아의 증좌를 확보하라!”
증좌를 확보한다는 말에 최양업 신부가 말했다. 암행어사와 그 수하들에게 말이었는데 암행어사는 최양업 신부를 알아봤으며 그가 말하는 것에 반색하면서 빨리 달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 증좌를 내가 받은 것이 있으니 주겠습니다.”
“아니, 천주승인 도마가 아니오? 그대가 마침 여기를 지나고 있었군... 근데 뭐라고 했소? 증좌가 있다고?”
“그렇습니다. 나도 증인이 되고 우리 성도도 증인이 되어 줄 것이요.”
“그렇군. 어서 증좌를 주시오.”
“알겠습니다. 내가 가보도록 하지.”
“네, 신부님.”
최양업 신부가 자신의 숙소로 가는 중에 이방 등은 그 소식을 듣고 암행어사에게 수령의 비리를 고하기 시작하였다. 수령은 일이 이렇게 되자 얼굴이 굳어지고 창백해서 마치 죽은 사람 같아졌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잘못을 빌었지만 문제가 있다면 암행어사는 이미 조사에 대한 것을 중간에 알고 내려왔기에 그러한 것이었다.
변명 따위는 소용이 없었으며 그들의 고변과 다른 증좌들을 종합해서 그를 파직하고 서울로 압송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다른 고을의 수령이 이 고을을 대신 관리해야 할 것이었다. 임시 관직을 돌려도 지금 조정의 외관직은 겸직을 배제하려고 해도 관리의 혹사는 폭증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조세에 대해서 장난을 치는 이들이 있는 것이 한심하면서도 꽤 있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자 관아에는 많은 이들이 몰려있었다. 원님, 사또인 자가 암행어사에게 제 비리와 잘못을 들키고 관아의 옥에 구치가 된 것을 듣고 몰려온 것이었다. 어사가 조사 결과를 적은 두루마리를 펼치면서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죄인, 전 옥구 군수인 원학갑을 기군망상이랑 더불어서 비리로 탄핵한다. 신교세를 사사로이 갈취하고 대동미를 멋대로 더 거두었으니 이에 책임은 별로 진다. 그대의 가산으로 이를 메울 것이 분명할 것이다. 죄인을 한성으로 압송할 것이다.”
그 판결을 같이 지켜보는 이들 중에서는 최양업 신부와 그를 모시는 중인도 있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서 관아에서 추가로 신교세를 더욱 거두었는지도 확인하고 부풀려서 내게 한 것은 돌려받았다. 대동미 중에 사또가 빼돌린 만큼 은으로 이를 메우고 아까 말한 대로 부족한 것은 중앙의 조정이 은으로 보충하고 가산을 그만큼 압류하기로 했었다.
“세상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세상이라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세상을 바꾸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현세가 지옥 같을 지라도요.”
“맞아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조선의 변화를 도웁시다.”
최양업은 조선 내륙을 떠돌면서 이런 것들이 간혹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는 조선의 변화가 과연 무조건 빛만 있는가도 생각했었다. 이런 고민을 나중에 인천부 제물포에 있는 교회 형제들하고 나눌 생각이었다.
‘어디이던 빛과 그림자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조선은 이전의 상황보다는 더 나을 수가 있을 것이지 않은가?’
최대한 긍정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래도 간혹 보이는 그늘을 최양업 신부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유주, 유럽에서도 이런 것은 비슷하게 있다고는 했었다. 그러면 이 진보라는 것이 마냥 긍정이 아닐 수 있다는 자신이 믿는 가르침의 선배들이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시 더 생각하게 되었다.
‘항상 변화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유학에서도 천주교에서도 먼 위대했던 옛날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가르침에 중심해서 그 변화에도 그 가르침을 현실에 반영해서 위대했던 옛날은 아니지만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
최양업 신부도 어렴풋이나마 아는 것인데 사실 지금의 유럽은 유럽에서 온 신부들이 지나가듯이 말한 것 이상으로 특히, 프랑스는 공공교육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철저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이는 왕정복고로 숨통이 트는 것 같았지만 그때나 지금의 제 2 공화정은 정교분리를 포기하지 않아서 다를 것이 없었고 오히려 후자는 더 강화하였다.
사립 교육이라면 종교 단체가 운영해도 문제가 없고 종교 관련 수업도 일정은 비슷했다. 다른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가톨릭교회와 그들이 기존에 교육에서 향유하던 기득권은 도전을 받고 있었다. 마치 지금 조선에서 정학이 다른 학문들의 유입으로 그 위치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랑 비슷하게도 말이었다.
‘조선에서 우리 천주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학은 자리를 도전 받으나 보전할 것인가? 앞으로는 참 복잡하구나. 허나 나는 천주께서 주신 사명을 하고 이 나라 조선에 천주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조선의 변화를 보고 싶다. 빛과 어둠이 나뉘어도 말이다.’
최양업 토마스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동안 옥구에서 머물다가 다시 다른 고을을 향해서 나갈 것이었다. 땀이 어린 힘든 길을 다시 이어나갈 그였다.
한편, 이제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유년사관학교를 돌아보는 것으로 7일 기준으로 주말의 특별한 만남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 전의 교육기관들을 둘러보는 두 번째의 날에서 숙소에선 네덜란드에 이어서 프로이센도 조선하고 접촉을 한 것으로 이어졌으며 그들의 초청도 네덜란드 다음의 일정으로 잡기로 하였다. 유년사관학교에 대해서는 서유시찰단에선 꽤나 갑론을박이 있었다.
“저런 어린 이들을 데려다가 무예 등의 가르치는데 저들이 정학을 제대로 익힐 수가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성년 이전 까지는 가르치고 무관을 가르치는 학당에 입교하여 수학하게 두는 것이 낫습니다.”
어린 이들을 무관으로 키우게 하려고 가르치는 것은 좋으나 대체로 그게 학당 차원에서 두어야 할지는 아니라는 의견을 하는 이들이 기정진이랑 홍순목에 흥인군 이최응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 반박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흥선군 이하응과 이항로, 김병국 김병학 형제였다.
“우리가 정학을 배울 때에도 어릴 때에 시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소학 등의 기초를 배우고 난 다음에야 정학의 사서삼경을 배우지만 이는 병학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물론 어린 이들에게 기초를 가르치고 나중에 제대로 병학을 수년 이상은 수학하거나 아님 그런 것을 가르친 이후에 병졸로 삼는다면 더 나을 겁니다.”
“아울러 우리 조선은 무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만 무보다 문은 여전히 중시합니다. 그래서 무관을 설령 적게 길러도 제대로 된 이들이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무과에서 무관을 뽑아서 그 수를 높였어도 질은 어땠는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저런 학당이 있다면 군사에 대해서는 더욱 이점도 있을 겁니다.”
팽팽하게 언쟁하는 것은 아니나 유년사관학교에 대한 이견은 꽤 있었다. 정원용이랑 박규수는 유년사관학교에 대해서는 있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성균관이나 옛 한성의 4대 학당, 향교, 서원처럼 정학을 가르치는 곳들이 있는데 따로 배우던 병학이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래서 소년들을 모아서 무과에 뜻이 있는 이들을 가리키면 될 수가 있었다. 아마 무과를 존속시키면서 서역 국가들처럼 이런 병학당(사관학교)을 만들어서 운영하면 될 수가 있는데 병학당도 병학당에 다니기 어린 소년들은 소년병학당 같은 것으로 무관이 될 뜻이 있는 자만 모으면 되었다.
“병학을 배워도 여기에 정학도 배우게 함도 둔다면 맞을 겁니다. 서역의 병학과 중원과 우리의 병학에 정학이며 서역의 학문도 배우게 하면야....”
박규수가 입을 연 것에 논쟁은 멈추었는데 그가 낸 답이 그들이 생각하기엔 병학을 배울 이들에겐 힘이 들겠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무관들에게는 그런 것이 당연해질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과연 문관이라고 다를지에 대해서는 그들도 이내에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관들도 더 고생할 것은 확정이니 말이었고 그들이 돌아본 것 중에 조선에 반영할 것을 넣으면 미래의 문관들도 피할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