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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다시 위대하게!-57화 (57/221)

〈 57화 〉 (32) 사르데냐에서 만난 걸물, 왜인동래정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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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이태리 반도는 물산이 우리 생각보다 풍족한 것 같습니다.”

“토리노라는 사루대나 왕국의 도성도 멋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런 토리노보다 풍류가 대단하다는 배니수라는 곳은 어떤지 기대가 있지 않습니까?”

토리노에서 사르데냐 왕국의 국왕에게 조선 국왕의 친서를 전달한 서유시찰단 남부 분견대는 그들을 대접하는 만찬을 받아서 이를 나누고 있었다. 사르데냐 귀족들은 이 동양의 왕국에서 온 시찰단, 꽤나 많은 정보들이 영국을 통해서며 법국 등에서도 빠르게 신문이 보도가 되기는 했었다. 그들의 일부가 사르데냐를 방문한다고는 알았는데 이국의 사절들은 꽤나 정중하여서 호감을 가졌다.

그들이 생각했던 동양의 나라들 사절들은 청나라 때문인지 매우 오만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고정관념이 아닌 조선인들에게는 좀 놀라기는 하였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었는데 그들의 매우 정중한 모습에서 그들을 은근히 더 만만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발생한 문제는 자못 심각한 것이었다.

“그대들의 왕은 대체 어떤 원숭이요? 유럽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왕이 와서 우리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오? 매우 무례하구만!”

한 귀족이 포도주를 매우 과하게 마셔서 조선의 서유시찰단 남부분견대 일동에게 법국의 말로 한 말은 상당히 결례인 말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에 동조하기에는 그가 한 말은 농담으로도 포장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선을 넘긴 발언이었다. 사르데냐의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도 그 발언에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무례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서유시찰단 남부분견대는 매우 불쾌한 모습이었다. 특히나 가장 분개한 사람은 조선의 종친인 흥인군 이최응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충의를 보이고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자신의 임금이 모독당한 것에서 매우 분노를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남부분견대의 대장인 부사도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법어가 가능한 역관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라고 하였다.

“그대들은 나라의 임금이 얼마나 바쁜지는 알고 말하는가? 우리의 주상도 여기에 오실 수 있지만 백성을 위하여서 남으셨다. 그런데 그대들 중 하나는 나의 주군이시고 조선의 적법한 통치자로 그 분이 여기 있다면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할 자가 그대인데 감히 남의 나라 군주를 능멸하는가?!

사르데냐의 위정자 중 일부는 이렇게 인의가 없단 말인가? 사르데냐의 군주랑 같이 대등한 자리에 있으신 분인 우리 주상께 감히!”

부사의 말을 법어로 통역하였다. 그리고 그 술에 취한 귀족은 그 말을 듣고 이를 모욕이라고 생각하자 달려들려는 찰나였다. 이에 대해서 이최응도 지지 않고 부사의 앞을 막고 달려들려는 자세를 취하였다. 다행히도 그 둘을 멈추게 한 것은 사르데냐의 왕이 앉는 옥좌에서 들리는 호통 소리였다. 사르데냐 어로 말리었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어가는데 법국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이가 이를 통역하는데 법어를 아는 역관이 그 것을 듣고 부사며 남부분견대에게 전하였다. 사르데냐의 임금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그 밑의 신하인 귀족 하나가 보인 무례를 자신을 봐서 용서하고 자신이 사과를 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대들의 경애하는 군주를 모독한 내 부하에게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봐서 이를 용서해 달라. 그리고 내가 저 무도한 이를 대신하여 사과하겠다. 그대들이 느끼었을 분노를 생각하면 정말로 미안하도다...”

한 나라의 국왕이 친히 자식의 잘못도 아닌데 사과를 한다는 것에서 서유시찰단 남부분견대로서는 매우 놀란 일이었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르데냐의 귀족들은 그 술에 취한 귀족을 매우 좋지 않게 보고 있었다. 비록 지금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사르데냐 내부에서 악명이 높다고 해도 사르데냐를 대표하는 자이며 사르데냐의 왕인데 그런 그가 사과를 하게 만들 정도로 양국의 체면을 상하게 할 결례를 저지른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귀족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매우 당황하다가 자신의 왕에게 고하고 있었다. 아직 술에 취해서 그러한지 횡설수설에 가까웠다. 정작 그 말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기분이 전혀 좋지를 않았다. 도리어 그의 기분을 더욱 상하게 하였다.

“폐하께서 어찌 사과를 합니까? 저들은 뒤떨어진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폐하를 만나러 왔으면 당연히 저 뒤떨어진 자들의 왕이 더욱 존귀의 예로서 찾아와야지요! 저는 잘못이 없고 당연히 폐하는 잘못이 없는데 어찌 하여...”

“그만! 저 자가 술에 많이 취했으니 곱게 돌려보내라. 일국의 시찰단이고 고위 신료들인 이들이며 한 나라의 왕족도 온 사절을 이렇게 무례하게 대한 이는 이 연회에서는 필요가 없다!”

화를 내는 158cm 대의 이 사르데냐 국왕은 근엄하면서도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그 귀족의 말을 자르고 쫒아내라는 말을 우회하여서 내렸다. 그러다가 필요가 없다는 말로 그의 죄를 고하였다. 궁정의 시종들이 백작 이상으로 보이는 그 귀족을 조심히 잡아서 쫒아내었으며 그는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퇴장을 당하였다.

“그럼 어떻겠소? 내가 다시금 사과를 하겠다. 정말로 저런 이를 밑에 두고 간수하지 못하여 모독이 가득한 말을 듣게 하였다.”

“아닙니다. 사르데냐국의 대군주께서 결단으로 불필요하게 얼굴을 붉힐 일이 더 커지지 아니하여서 감사드립니다. 어찌 임금이 하는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통역을 통해서 이를 듣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도 속으로 매우 안도를 하였다. 그는 이런 일에 자신이 사과를 하고 싶지 않았으나 프랑스랑 영국의 지원을 받으려면 이들이 유심히 관심을 가지는 조선에게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에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사과를 하지 않기엔 찝찝한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과를 한 것이며 다행이도 제대로 받아주는 것으로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아까의 그 소동으로 연회를 이어가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내려갔다. 남부분견대를 배려하여서 사르데냐 왕국의 재상이 이만 연회를 폐하자고 주청을 하였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역시도 이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회를 끝내라고 하였는데 아쉬움이 있으나 왕궁의 연회장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있었다.

‘조선에 온 이들에게는 우리 사르데냐가 무례를 끼쳤다. 그나마 국왕 폐하께서 다행히 잘 처신하여서 다행이었다. 나중에 우리가 이 반도를 통일하고 저들이랑 논의를 한다면 그들이 우리에게 호감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아도 나중을 위해서 필요하지 않겠는가?’

안경을 낀 중년의 사내는 서유시찰단이 쉴 숙소가 있는, 그들이 나간 방향의 문을 지켜보다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공병 장교로 군을 복무했다가 은퇴했으며 혁신적인 변화를 벨기에 등지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경제의 변화 이후에 정치의 변화가 있다는 확신으로 그 혁신을 지지하는 자였다. <<리소르지멘토>>지를 발간했으며 그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카보우르 후작가의 차남인 카밀로 카보우르는 자신의 나라 임금이 가진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고 조선이란 먼 동양의 나라에게 관심을 표하였다. 나중의 관계를 위해서도 우호의 시선을 만들면 좋았다. 괜히 적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 카밀로 카보우르도 가지는 지론이었다.

‘그들이랑 따로 대화를 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데...’

그리고 며칠 뒤에 카보우르는 그들이랑 대화를 할 기회를 잡았다. 그들이 나눌 대화는 그렇게 가까워서 그들의 생각을 진지하게 나누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하였던 것은 일종의 탐색전이었다. 서로를 다 드러내지 않고 서로의 그릇을 재려는 게임이었다.

원래면 오래 체류하지 않고 라마, 로마로 갈 예정이었던 서유시찰단 남부분견대는 술에 취해서 무례를 범한 그 귀족이 직접 나서서 사과를 하고 그들을 위한 연회를 열기로 하자 더 머물기로 하였고 그 연회에 카보우르도 참석하여서 이렇게 대화가 성사가 된 것이었다. 카보우르도 당대의 귀족이라면 배우는 프랑스어를 알아서 그 프랑스어와 역관을 통해서 대화를 하였다.

“현재 유럽에서도 많은 화재를 귀국 시찰단이 몰고 있습니다. 그런 인물들이고 나라에서도 검증한 인재들이 돌아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한 번 이렇게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일국 고관이자 제후의 아들인데 단순하게 접근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렇습니까? 우리는 이런 용기 있는 이를 좋아합니다. 카보우르 경은 나라를 위하지요?”

‘나라를 위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세워야 하는 것은 이 반도의 통일 이탈리아다!’

“그렇습니다. 큰 꿈을, 나라를 위한 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남부분견대의 김병국은 카보우르를 지켜보는데 범상치 않다고 여기고는 있었다. 고위 귀족인데 거만함이 없으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일하는데 그 것이 개인의 사욕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꽤나 크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는 김병국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카보우르는 자신과 대화를 하는 주로 젊은이들이 있지만 늙은이도 있는 조선인들을 보면서 범상치가 않다고 여기었다. 특히나 카보우르가 제일 예의 주시하는 것은 저보다 훨씬 연상으로 꼬장꼬장해 보이는 이와 더불어서 유해보이면서도 눈치가 좋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이 분명한 이었다. 조선의 왕족은 그렇게 뛰어나 보이지 않지만 충성 하나는 대단해보였다.

“그 큰 꿈은 혹시, 이 이태리 반도를 일통하는 것이오?”

김병국이 한 말, 정확히는 역관을 통해서 전해진 그 말에 카보우르는 순간적으로 평정이 흔들려서 진심으로 당황하였다. 표정은 여유로움이 사라졌다. 김병국은 리소르지멘토 등 법국 관원에게 들은 것을 듣고 그리고 이들의 이전 이야기를 들으며, 선왕이 통일 전쟁을 위해서 움직였다가 왕위를 지금의 왕에게 물려주고 얼마 전 죽은 것을 듣고 카보우르의 그 것을 이렇게 물어본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들 곁에서는 많은 이들이 없어서 더 들은 자들은 없었다.

“그렇습니다.”

여유롭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카보우르는 그 것이 옳다고 보기에 수긍하였다. 애초에 그는 이 사르데냐 왕국 내에서 리소르지멘토를 주창하는 개혁적인 사람이었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지지하며 강해진 이탈리아를 바라고 있는 이었다. 그런 그에게 먼 동방에서 온 조선의 김병국이 해줄 조언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카보우르에게 그 것을 믿고 잘 시행할고 말하였다.

“나는 그 것의 대의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오. 그러나 그대들이라면 잘 할 수가 있을 겁니다. 마치 저 내가 있는 동방에서 많은 이들이 중원의 통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중원의 통일로 평화가 왔기에 말이었습니다. 그런 마음. 이태리 반도를 평화로이 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 마음일 것이니 말입니다. 이태리 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이태리의 일통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망설임 없이 사죄한 이 나라의 군주이신 분과 손을 잡으면 될 겁니다.”

덕담이지만 리소르지멘토,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이태리 반도의 평화와 이태리인들을 위해서 라고 추론하여서 그 일은 중원 통일만큼이나 선의로 그들이 일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카보우르를 계한의 제갈무후처럼 제 군주를 보필하여서 이태리 반도의 평화와 그 백성의 평온을 위해서 하고 있음을 김병국의 눈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통찰력이 좋은 그는 카보우르에게 맞는 덕담을 하였다.

그리고 카보우르는 그런 말을 통역으로 듣자, 속으로 매우 기뻤다. 이방의 조선에서 온 이들 중 하나가 리소르지멘토의 대의에 찬성한 것 같아서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물론 그 기쁨을 보이지 않고 안경을 고쳐 쓰면서 말하였다.

조선에서 온 이들 중 부사인 조두순과 연상인 이항로를 빼고는 카보우르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는 연장자에, 부사와 이항로에게는 일국의 제후 일족이니까 애체(안경)를 써도 이게 딱히 자랑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아는 애체보다 화려하지 않은 검소한 애체에 오히려 그가 검소한 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이 이태리는 통일해야만 외세의 영향 없이 이태리만의 자존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장애물이 있어도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잘 되기를 바라오.”

그렇게 김병국과 다른 둘이 카보우르는 인연을 맺었다. 그들은 이 리소르지멘토를 꽤 긍정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귀국할 때에 이런 것을 설명하고 리소르지멘토를 조선에서는 나중에 청에게서의 사대를 청산하는 것으로 갈 수가 있었다. 많은 유럽의 사조와 정국에 현상들은 알게 모르게 서유시찰단 전체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으로는 조선의 동래에서는 왜관에 일부러 들어온 사쓰마 인들은 무기를 얻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것이 조선은 무장을 반입하게 이를 들고 올 수 있는 것은 정부와 정부 간의 무기 거래 혹은 조선의 관료가 조선 조정의 지시로 무기를 구매한 것 정도였다. 그 외에는 어지간해서는 무장을 사사로이 가져올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조선에서는 민간이 유구와 달리 서양의 무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들은 유구를 거쳐서 마카오로 가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었다. 그래도 다른 임무인 조선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사쓰마 측은 꽤 알 수가 있었다. 왜관이 더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말에 개방장이 점점 더 번성하고 있다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찾아보고 싶었다.

“우리가 나갈 수가 없다니...”

“사람을 매수하면 됩니다.”

“얼마에 매수가 되겠는가?”

하지만 조선 당국이 이를 불허하는 모습이 있기는 했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행적이 왜관 근방에 배치가 된 조선군이나 조선의 관원들에게 들어가고 있음을 잘 모르고 있었다. 동래부사의 쓸데없는 염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보가 들어오자 이 대마도에서 새로이 교체가 된 이들은 상당히 수상한 구석을 알아서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매수를 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이를 역이용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조선 측이었다. 그들 중에 상급자가 동래부사에게 이를 보고하려고 조심스럽게 자리를 비웠다. 매수를 당한 이가 되거나 매수를 당한 이들을 찾아야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경상도, 그 중에서 동래부는 항상 일본을 경계하고 있기는 했었다. 근래에 일본에서 무역 규모를 늘리자고 자꾸 청원하여서 귀찮기는 하였다. 대마도주 측의 독단이라는 견해가 조정에서는 중론을 차지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매수를 할지라도 원하는 정보는 쉬이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동래부사는 이에 대한 보고들을 들으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이미 유출이 되었을 정보, 조선이 보다 적극으로 양선을 굴리고 있다는 것은 말이었다. 허나 이런 것은 대마도를 통해서 정보가 이미 왜국의 강호 대군부(쇼군이 있는 에도의 막부)에게 넘어갔을 것이라고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동래부사의 상관인 조선 조정도 예측은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근데 조선 측의 예측과 달리 살마에서 온 이들이었다. 살마, 사쓰마라고 해서 구주의 남부에 있는 번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왜 강호, 에도에 있는 대군부 대신에 정탐을 하러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당황하였다. 그러다가 성호 이익이 이전에 경고했던 사실을 부사는 불연 듯이 떠올렸다.

이는 부사가 생각하기로는 가설에 불과하였지만 이 말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강호의 대군부, 에도 바쿠후에게 반기를 들려고 이러는 것이 아닐까에 대해서 말이었다. 솔직히 낭아삭기, 왜국의 말로는 나가사키 혹은 낭가사키라고 하는 곳에서도 저지국을 통해서 무기를 구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곳을 제치고 굳이 조선에서 무기를 구하는가에 대해서였다.

“이거 생각보다 더 보통의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동래부사는 그런 혼잣말을 하고는 일을 하면서 한성의 조정에 다시 올릴 장계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왜국 내부에 상황을 더 잘 알기 위해서 무언가 조치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대마도주를 통해서 전해지는 서신은 쉬이 믿기가 어려웠다, 대마도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국서를 조작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가 쓴 장계가 파발마를 통해서 빨리 올라가도 7일에서 보름은 걸릴 것이었다. 그 사이에 저 수상한 자들이 무슨 목적이 있는가를 더 의심하면서 주시하는 것이 부사의 임무 중 하나일 것이었다. 조선은 대마도, 왜국과의 무역을 더 늘린다고 해도 그 것이 서역 국가들과의 교역과 육로를 통해서 청나라 북부, 배를 통해서는 남부로 하는 교역보다 이익이 될 지는 의문이 있었다.

이는 동래부사만이 아니라 조선 조정에서도 비슷한 견해가 많았다. 물론 대마도를 적당히 달래고 인삼 판매 등을 해준다면 이전 숙종대왕 시절만큼은 아니라도 은을 수급할 수가 있으니까 교린도 고려해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리고 조정에서도 동래부에서 올라온 파발을 통해서 이를 논의하고 있었다. 백정의 처우 개선 개량 논의는 꽤 뜨거웠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고 주상인 이영이 제안하고 고을 수령들이 제시한 것들을 일정 부분은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노비에 대한 것은 아직은 논하기를 모두가 꺼리었다.

동래에서 올라온 장계들을 보면서 대마도에서 온 이들로 위장한 이 왜인들은 누구인지 논의를 이어가는 조선의 조정 인사들이었다. 주로 나온 주장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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