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61화 (61/221)

〈 61화 〉 (36) 더 커지는 강남의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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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통해서 교섭하여 성하의 사람을 보낼 수가 있다면 좋겠는데...”

“옳습니다. 조선에서 더욱 선교의 자유를 보장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제한이 된 선교를 더 폭넓게 되기는 원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가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서유시찰단 남부분견대가 이를 동의해서 시행할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었다. 과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지는....

저기 중유럽의 북부, 프로이센의 베를린에 도착하는 열차가 있었다. 그들은 프로이센의 중요한 것들을 구경하였다. 일부는 프로이센의 김나지움 등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김나지움은 서원처럼 정학 등, 서역의 석학 등 사람에 대한 연구와 타국의 언어를 배웠는데 서원이랑 사역원도 섞이었나 생각을 하였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굳이 타국의 말을 배우지를 않았는데 반대로 여기 유주의 지식인들은 다시금 생각을 하면 그들이 동경하던 라마와 희랍의 옛 말이나 주변국의 말을 배우는 것을 교양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런 것은 본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하기는 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를 이미 실천하는 이가 있었지. 환재가 말일세...’

정원용은 특히나 영길리어 등을 익혀서 생각보다 잘하는 환재 박규수, 미리견 분견대를 이끄는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저들의 교양은 조선에 빗댄다면 옛 명나라 말 등을 알아서 이로 교양을 가지는 것도 기초라고 여기는 것이었다. 거기에 교린하는 나라들의 말도 어느 정도 아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것을 이야기를 하는 북부분견대의 일원들이었다. 그들의 의견은 대체로 나뉘는 것이 있었다. 조선 등의 동양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쪽이었고 저들의 것도 일정 부분은 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전자를 논한 이들도 후자에는 동의를 하였다. 후자를 논한 이들도 우리도 그런 것을 할 줄 알면 지식을 높이 쳤는데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필담으로 통하니까 그럴 필요성이 적었지요.”

“그렇네.”

“천초 같은 이들은 드물기는 하였지요.”

“그 분은 여송의 일부 족속이 쓰는 말을 어떻게 더 정리하려고 했었지요. 유구어도 말입니다.”

정씨 형제의 영향으로 그런 것을 꽤 정리하기 좋아했던 천초의 책을 생각하는 북부분견대의 일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차피, 서역의 언어를 전에도 이야기를 했다시피 조선에서도 지배층과 지식인들은 이 것이 필요하게 되었으니까 그렇다. 앞으로의 천하는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그들이었다. 그들은 대화를 멈추고 유리로 된 차창 너머의 광경들을 지켜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성벽이 사라지고 있는 읍성 고을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저기가 베를린이군요...”

“그렇군...”

열차를 통해서 본 베를린은 생각과는 달랐다. 기대한 것 보다 더 멋이 있었다. 그들은 속으로 그 관료의 말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할 수가 있었다. 나날이 변화하는 베를린이라는 것에서 놀랐다. 급격한 변화는 바라지 않는 그들이었다.

그래도 저런 고을의 모습은 런던이랑 파리와는 별개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프로이센 고전주의에 대해서 동경은 아니었다. 유럽의 작금 도시에 대한 계획도시에 대한 것이었다. 계획도시는 조선에서도 있기는 하였다. 선선대인 정종대왕이 세웠던 수원의 화성 근방에 고을이 그런 것이었다. 나중에 조선도 서역풍의 고을을 만들려고 할 때에 화성이랑 이런 프로이센의 베를린, 나중의 파리에 대한 것으로 도움이 될 것이었다.

‘참으로 좋은 읍성이다.’

‘우리 한성도 그렇게 성곽을 걷어내야 할까?’

‘보로선도 문물이 좋기는 하였다.’

‘보로선을 보면서 조선은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많도다.’

그들은 그런 미래를 잘 몰랐지만 프로이센의 베를린은 꽤나 매력이 있는 도시라고 첫인상을 그렇게 남기었다. 이제 그들은 프로이센에서 무엇을 더 배우고 알 수가 있을지에 기대를 하였다. 김나지움에서 프랑스어를 통해서 김나지움 수업 중에서 독일어권의 석학을 더욱 알 수가 있기는 하였다.

덕어를 알지 못하기에 완전히 맞지는 않았지만 김나지움을 수학하고 외교관으로 지내는 프로이센 관료 덕에 이해가 쉽게 법어로 그리고 이를 법어에서 조선어로 통역하는 번거로움이 따랐지만 말이었다.

그들이 도착한 베를린의 분위기는 꽤 처친 상황이었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가을 위기라고 부르는 것에서 그런 것이었다.

“우리가 이 곳에 왔어도 그렇게까지 의미가 없겠지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전쟁이 나기 직전이었다니...”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랑 러시아의 요구에 굴복하여서 독일어권에서 프로이센의 복수주도권 공인을 사실상 후퇴해야만 하였다. 게다가 에어푸르트 연방, 또 프로이센의 독일 연방 복귀 등을 약속하는 문서를 작성해야만 할 것이었다.

이전에 러시아의 괴뢰국인 폴란드 입헌왕국 영토인 바르샤바에서 러시아의 확실한 가담으로 무너진 상황이었고 이미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인 체코 모라비아에 있는 올뮈츠에서 이에 대한 프로이센이 꿈꾼 꿈은 무너져야만 했었다. 소독일주의 혹은 프로이센의 복수 주도권 공인이란 원대한 꿈은 뒤로 물러나야만 했기에 프로이센의 군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그런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이런 내막을 잘 모르는 서유시찰단 북부분견대는 이에 대해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그냥 프로이센의 베를린, 멋이 있지만 작금은 매우 처진 모습이라서 씁쓸함도 있는 이 도시를 구경하고 있었다.

“근데 기시감이 있군.”

“법국의 느낌도 의외로 나네요...”

게다가 프랑스의 느낌도 있는 도시라고 여기었다. 서유시찰단 북부분견대는 역시 이를 잘 모를 수가 있는데 베를린에 프랑스의 신교도인 위그노들이 이주해서 많이 정착했기에 나날이 달라지고 있어도 법국의 느낌도 아직 남아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법국이 문물이 좋았기에 이를 모방하면서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요?”

“그 말, 일리가 있네.”

“우리도 중원의 문물을 모방한 것은 비슷하니 그럴 수 있지요.”

기정진은 중화의 문물을 조선이 모방하고 수용한 것이랑 비슷하게 여기어서 그러려니 한다. 다른 이들도 그럴 수가 있었다. 물론 이건 법국 출신들이 꽤 이주해서라는 것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었다. 그런 것을 다 알고 있기에는 조선은 유주를 알려고 노력하면서도 시간이 짧았다면 짧았다. 게다가 세밀하게 알아야 하는 것도 있으니까 그렇다.

기정진은 베를린을 보면서 생각하며 일행에게 입을 열었다. 프로이센이랑 하노버 등을 지나면서 그동안 생각을 한 것을 그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보로선은 조선에게 이미 도움을 주고 있기는 하지요. 금나지온(김나지움)이라는 것도 고려하고 이들의 석학이며 이들이 이룬 다른 격물에 대한 것도 법국보다 낫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서역의 예악 등은 이 지역들에서 꽤나 많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예법을 아는데 예악도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먼 동방의 그들 모국인 조선에 있는 이영이 알았다면 매우 기뻐할 것이었다. 기정진의 그런 주장에 대해서 주상을 떠올리는 영의정 정원용이었다. 나중에 기정진을 별도로 칭찬하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기정진의 말도 매우 일리가 있었다. 그들의 예법이랑 교양을 알려면 다른 문물, 예악 등도 알기는 해야 하였다.

“그렇다네. 아마도 법국에서 이상으로 저들의 예악을 알아야 하지 할 수가 있겠지.”

“역시나 그렇겠지요?”

물론 이런 것은 나중에 오지리에 도착해서 남부분견대도 할 것이었다. 아니, 그들이라면 오히려 이태리 반도에서 그들의 예악을 알려고 할 것이기는 하였다. 아마도 미리견분견대를 빼고 북부랑 남부, 두 분견대는 예악 감성으로 바쁠 것이 분명하였다. 프로이센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근방을 지나게 되었다.

베를린은 그 건물이랑 호헨촐레른 왕조의 성인 베를린 성이 가장 상징적이었는데 그들은 아주 큰 개선문들을 유주 중 영길리와 법국의 도성에 있는 것들을 보면서 그들의 문화는 상무가 기반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승리와 평화 등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조선의 성문들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이었다. 그 것도 옛 라마의 영향이라고 듣기는 하였다.

저 브란덴부르크 문 등의 유주에서 개선문을 보면서 완림군 이재원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조선에서도 저런 영조물을 만들 때가 오기를 바라기는 하였다. 물론 그게 과거 평화를 기원한 저 브란덴부르크 문이기를 바랬다.

‘우리 조선도 저러한 문을 만들어서 조선이 살아남고 사사로이 타국을 침략하지 않고 평화를 추구함을 보일 수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북부분견대가 향하는 곳은 베를린 성, 현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왕조의 보통 머무는 궁궐이지만 본디 성관이었다. 주로 여름 궁전이 있는 포츠담이 아닌 지금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부부와 그 후계자인 빌헬름 왕자 일가가 지금 이 베를린 성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이들을 알현할 예정이었다.

‘지금 보로선의 임금은 민중이 올린 제관을 거부하였다는데 폭군일지도 모르겠군,’

‘그는 어떤 군주일까?’

법국 등에서 이 보로선의 군주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었던 북부분견대였다. 그리고 그는 막상 만나자 생각보다 괜찮은 군주였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는 한문으로 된 친서를 읽지는 못했어도 그 것을 꽤나 정중하게 받아들였다. 또 자식이 없어서 양자 대신에 후계자인 왕자, 조선으로 기준하면 대군도 꽤 괜찮아 보였지만 무관이었다는 것에서 조선이랑은 확실히 유주의 왕실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프로이센에 방문한 것을 환영하오. 머나먼 동방 왕국의 신하들이여, 이 곳 프로이센은 그대들을 신의로 우호로 대하겠소. 국빈에 예하게 대할 것은 이미 있으며 그대들을 위해서 이 프로이센을 최대한 열심히 돌아보시오. 독일어권도 방문한다면 북부면 우리 프로이센이 그런 것을 더 도와줄 것이오,”

생각보다 선선하게 그들을 정중하면서도 도와주겠다고 하는 프로이센의 군주에게 대체 소문이랑 저 모습에서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해서 조선인들은 이를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두 모습이 다 저 군주의 얼굴이 모두 맞지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보로선의 대군주께서 보인 신뢰와 호의를 잘 받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선은 돌아갈 때에 귀국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조선이랑 보로선이 우호로 조약을 맺는다면 이를 긍정으로 상신할 수가 있을 겁니다.”

정원용의 말은 역관의 법어, 그리고 그 법어를 독일인 외교관이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 전해졌으며 불안감이랑 자신의 무너진 이상으로 미쳐있음을 이방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는 조선에 대한 것을 그들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저들이 섬기는 조선의 그 군주는 자신들이 생각한 이상으로 권력이 강하면서도 그 아량으로 신하들이 이를 견제한다는 것에서 놀라면서도 조선의 왕권이 매우 반석에 있다는 것을 짐작하였다.

그 신성한 왕권을 정당한 통치자에게 들려서 조선을 바꾸려고 영도하는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대왕 같은 이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만나지 않은 조선의 대왕을 생각하였다. 물론 그 군주를 만나지 못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었으며 빌헬름 왕자는 이 북부분견대 일동을 유심히 보면서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여기고 있었다.

그들이 프로이센에 오고 좀 시간이 지났을 때에 오스트리아 올뮈츠에서는 프로이센이 독일연방의 복귀와 주변 독일어권의 간섭을 하지 않는 내용을 담은 협약 문서에 서명하였다. 이 것은 꽤나 빠르게 소식이 전파가 되었다. 프로이센의 강경한 이들은 이를 굴욕이라고 말하면서 매우 분노하고 있었으며 프로이센 현지는 매우 분노했으나 자유주의자들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과욕을 부린 것인가?’

‘우리랑은 상관이 없으나 조심해야 한다.’

‘언행을 신중하고 역관들에게도 주의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조선의 서유시찰단 북부분견대 측에서도 듣게 되었는데 자신들이랑은 상관이 없어도 프로이센이 과한 욕심을 부린 것인가? 생각을 하면서도 입을 함부로 열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위로하였다. 또 이들의 그것에 이용이 되지 않게 조심을 하였지만 프로이센은 이후에 오스트리아를 무력이 아닌 수로 그 자존심을 긁으려고 조선 서유시찰단 북부분견대의 독일어권 방문 중 프로이센을 오스트리아보다 먼저 방문한 것을 더욱 홍보하고 있었다.

주로 프로이센의 관료들이 이런 것을 주도했으며 올뮈츠 협약 이후로 위상이 떨어진 지금의 임금,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대신에 조선이 왕세제라고 인지하고 있는 빌헬음 왕자의 묵인으로 말이었다. 그리고 이런 양상으로 돌아가자 북부분견대에서는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이거 남부분견대 쪽이 고초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구먼...’

특히나 북부분견대의 대장이자 서유시찰단장이요 영의정인 정원용은 속으로 오지리에 도착할 동료들이 혹여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었다. 허나 다행이도 오스트리아 제국은 이런 술수에 말려들지 않았다. 아마도 남부분견대 큰 고초를 당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한편 미리견 분견대는 뉴욕에서 좀 더 체류한 다음에 미국 관원의 안내로 미리견의 도성인 화성돈부(워싱턴 D.C)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의 집정관저에 방문하여 미국의 밀러드 필모어를 만날 수가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미리견의 집정, 대백리새천덕(대통령)은 풍채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았으며 서역 식의 복장을 입고 백악관의 응접실에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에 그 모습을 봤던 서유시찰 미리견 분견대는 하얀색의 관저는 영길리와 법국의 궁전들 못지않게 아름답다고 여기었다. 미리견의 집정관저는 아주 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집정으로서 있을 곳으로 격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들이었다.

“우리 미합중국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조선 왕국의 시찰단 여러분!”

밀러드 필모어는 매우 정중했으며 그 풍채 좋은 모습에서는 조선에 대한 일정한 호감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였다. 필모어는 전임자보다 더 아시아에 관심이 있는 이였기에 말이었다. 이제 서유시찰단 미리견분견대의 대장인 박규수가 필모어를 비롯한 미리견 조정 고관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박규수 등의 미리견분견대 일동은 절을 굳이 할 필요가 없음을 서역에서의 예절을 배웠기에 하지 않았고 서역 방식의 인사, 악수 등을 하지만 그래도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나름 동양의 예절을 보여주었다..

“조선에서 온 서유시찰단의 부사이고 이 분견대의 대장이고 조선에서는 경장을 담당하는 관청의 고위직으로 있는 박규수라고 하오. 아국 조선은 그대들도 알고 있지만 라마에 버금가는 문명일 중화를 동경하며 더 나아가려는 나라오. 수 천 년의 역사가 있는 우리가 미리견에게 우리가 어찌 나아갈지를 알려고 이리 찾아왔습니다. 귀국을 통해서 많이 배울 것을 찾는데 도움을 주시지요. 수교를 한 우방끼리 말이지요. 여기 우리 조선의 주상께서 쓰신 친서를 드립니다.”

그리고 박규수의 말을 역관인 소년 역관, 오경석의 유려한 영길리 영어로 전하였다. 젊은 소년의 영길리 영어를 듣고 감탄하면서 박규수의 겸양을 담으면서도 조선의 자부심을 담은 통역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들을 잘 맞이하였다. 미리견도 나은 나라임을 강조하면서 그대들에게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말이었다.

또 이영의 친필로 쓴 친서를 전하였다. 그들은 이를 받았지만 그 문서의 해석은 나중에 해야 할지도 몰랐으나 북부분견대 측에서 미리 영길리어로 번역한 것도 따로 전하였다. 이런 친절에는 의외로 호감이 조금 더 생기었으나 미리견 측은 바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의를 알고 잘 신청하는 친절한 동방국가라고만 더 인지하였다.

‘조선은 우리 미국에 더욱 좋은 이익을 가져다 줄 지에 대해서는 더 알아 봐야 한다. 그래도 유럽에서도 무시를 당하기 좋은 우리 미국에서 이렇게 정중하게 예우를 해주는 이들인데 이들을 함부로 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밀러드 필모어는 사람 좋은 미소를 북부분견대에게 여전히 지어보면서 나라를 위한 이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걸린 정치적인 압력을 벗어나려고 열심이었다. 백악관에서 그들과의 만찬을 준비하였는데 아직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 친서에 적힌 내용이 궁금하여서 읽어봤는데 번역을 잘해서 그런지, 그리고 원래 글을 쓴 사람도 엄청 달필인지 표현이 매우 좋았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는 미리견분견대에게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 말을 하였다. 그들의 군주와 그들을 칭찬하여, 이른바 기름칠을 하여서 조선의 대미 외교가 보다 원활하고 우호로 진행이 되게 말이었다. 그 칭찬의 말을 오경석이 통역하는 과정이 있었다. 이를 들으면서 의미가 없는 칭찬이 없다고 생각하는 미리견분견대의 일동이었다.

“우리 주상 전하께 칭찬은 감사를 드립니다. 미리견은 보는 눈이 더욱 있군요. 미리견의 동부를 거닐 수 있게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주상 전하를 칭찬하여서 우리에게서 호감을 사려는 것이로군. 그래도 미리견은 딱히 그런 야욕을 보이지가 않는다. 저들이랑도 우호를 맺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여부가 있습니까? 마음껏 둘러보시지요. 우리 미국 정부가 여러분들의 이동에 대해서 편의를 봐드리겠습니다.”

‘유학생들이 없는 것이 좀 아쉽다. 하지만 저들이 귀국하고 다른 유학생들을 보낸다면 우리 미국에 꽤 오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속을 감추면서 그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앞으로 미리견분견대는 매우 바쁠 것이었다. 이는 사실 다른 분견대들도 마찬가지며 이보다 더 바쁜 이들은 있었다. 지금 조선에서 열심히 조정에서 혹사에 준하게 일하고 있는 이들이 말이었다. 이를 생각하면서 미리견분견대는 바쁘다고 불평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가 되지 않아서 한 해가 지났다. 새해가 되었으며 그 새해인 1851년 1월이 되자 청나라의 강남에서는.... 금전촌에서 세력을 더 모은 배상제회 무리는 본격으로 난을 일으키면서 강남, 광서에서 광동을 치기 위한 움직임을 일으켰다. 이들의 곁에는 많은 이들이 가담하면서 배상제회의 무리는 세력을 더욱 불려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경우는 유랑민이나 소수민족이었으며 지난 청과의 전쟁에서는 보호받지 못한 양광의 현지민보다 더 못한 처우 아래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정의 대응은...

“강남에서 소요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인가?”

도광제가 선택한 후계자는 서자임에도 능력이 좋고 모두가 꽤 많이 인정했던 황제감인 혁흔이 아니라 인품으로 조정에서 인정을 받았던 혁저였는데 혁저는 인품이 좋다고 여겨졌기에 그런 것이었다. 특히나 도광제는 혁저가 사냥에서 화살을 쏘지 않은 것으로 인효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기에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

옹정제 이후로 굳어진 청나라의 후계자 선포 방식인 황제가 생각한 후계자를 그 함명을 쓰고 상자에 넣고 황제 사후에 이를 숨겨놓은 곳에서 찾아서 그 지명에 입각해서 혁저, 그는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그는 자신의 연호를 함풍으로 정했는데 그가 황제가 된 첫 해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었다.

“어찌 수습을 더 해야겠구나.”

“네, 폐하...”

“어서 대책을 마련하라!”

“네, 폐하!”

젊은 황제는 신료들에게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를 내리는데 당연히 원론적인 진압에 대해서만 이야기가 나왔다. 청나라 조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세를 확장하는 이들에게 당황하면서도 진압을 시도하려고 열심이었다.

그리고 청나라 조정이며 많은 이들은 몰랐을 것이었다. 이들이 일으킨 봉기가 매우 오래갈 것이라고 말이었다. 그들을 진압하려고 다른 성들의 총독과 순무에 주방팔기의 전력들이 동원될 예정이었다. 이와는 별개로 일이 점점 커지는, 강남의 그 것이 단순한 소란이 아니라 거대한 반란이 되어가는 것에서 한탄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서는 임칙서의 죽음을 안타깝게 논하는 이들이 있으니 주로 한족 관료들이었다.

“병사한 임칙서 대감이 계셨다면...”

“조정이 무리하게 만들어서 병사하게 만든 분입니다.”

“조용!”

그들은 결국에는 말을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죽은 임칙서가 살아 돌아올 수도 없는 일이었으며 이제 기세를 더 올리는 배상제회를 어떻게든 기세를 꺾어야만 했었다. 그들은 배상제회의 홍수전이 전조인 명의 주원장 같이 되는 것을 청나라 조정, 특히나 만주인들이 원하지 않고 있었다. 또 조정에서는 다른 제안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럼 조선의 병마를 동원하여서 이를 친다면 어떠할까 의견이 있사옵니다.”

“조선의 병마를 동원하자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다른 제안이라는 것은 이전에 나선정벌, 더 이전이면 명과 싸울 때에 조선군을 동원한 것이랑 비슷하게 그들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서역 나라들에게 그 진압을 도와달라고 하기에는 청나라는 아직 저 반란을 자력 혹은 번국들의 동원이면 진압할 수가 있다고 여기었다. 다만 조선도 굳이 동원을 해야 하나에 대해서는 그들 사이에서는 의문이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조선의 병마가 우리보다 강한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대청은 저 무도한 자들을 알아서 정리할 수가 있다.”

함풍제 혁저는 조선군의 수준도 의심이 되며 청나라의 자력이면 이들을 정리할 수가 있다고 여기었다. 작년 중의 그 일은 관군이 방심해서라고 여기는 그였다. 그리고 그런 의견에 군기대신들이며 대청 조정의 고위층들이 동조하였다.

사실 조선의 병마를 동원하자는 것은 청나라 군대가 형편없는 것도 있지만 낌새가 간혹 이상한 조선이 딴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하는 의도였었다. 이를 주장하는 이는 이전에 조선에게 관세를 물리자고 제안했던 그 한족 대신이랑 의견을 같이 하는 신료들이었다. 설령 이를 공개하여도 조선을 낮게 보던 청나라 조정 내 다수의 대신과 함풍제는 넘겨짚는다고 여기면서 그 제안은 반려가 되었다. 당장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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