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62화 (62/221)

〈 62화 〉 (37) 군제의 추가 개혁, 라마에서의 설전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흥한멸청!”

“흥한멸청!”

“상제의 나라가 이 곳에 오게 하자!”

“상제의 나라가 오기를!”

“적폐를 청산한다.”

“만주인들이랑 그에 손잡은 한간들을 몰아내자!”

강남에서 제대로 봉기를 한 배상제회 무리는 청나라 조정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세력을 모으고 있었다. 이에 대한 보고가 북경으로 제대로 들어갔을 때도 연락이 늦어서 관군과 강남의 주방팔기들 만으로 대항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들이 주창하는 사상으로 가담자들은 더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나 여성의 위치를 더 올리자는 제안에 호응하는 지방 여성들도 많았으니...

그리고 이 봉기가 더 커졌다는 소식을 강남의 개방장들이랑 홍콩에서 들은 것을 조선 상선들이 조선에 전하였다. 이런 소식으로 강남의 그 소란이 더 심상치 않게 되었다고 여기는 조선 조정의 일동이었다. 이영은 그런 보고를 들으면서도 경장의 일을 집행하였으며 그 경과 등에 대한 후속 대응을 논하고 있었다.

“군사 계급이랑 제대의 변화는 어떠한가?”

“전하의 지시대로 고문단이 올린 보고서에 따라서 수정하였습니다.”

병조 소속의 군, 무관과 군관이며 병졸의 모든 군사 계급을 서역의 방식을 넣어서 수정하였다. 그래서 병졸은 졸, 상졸, 졸장으로 두었으며 군관, 하사관에 해당하는 이들부터는 정부참, 그리고 장군으로 번역한 것은 정 대신에 대를 넣어서 대부참으로 하였다. 이런 식의 적용으로 조선군의 군사 계급은 다음과 같게 되었다.

“졸은 졸, 중졸, 상졸, 졸장이 있으며 군관으로 불렸던 이들은 이들의 별칭 중 하나인 장교(將校)에서 따와서 참교, 부교, 정교라 하고 그 위의 무관은 하급인 사관(士官), 선비 사 자에 관리 관 자로 하여서 그 명칭을 참사, 부사, 정사로 한다. 그리고 그 위는 영관으로 참령, 부령, 정령을 두며 장군의 자리에 대부참을 하여서 참장, 부장, 대장으로 하겠노라.”

“예, 전하!”

“대장은 품계를 2품으로 두며 경군의 6군영에서 쓰던 대장과 사는 동급으로 둘 것이다. 또 경군도통사는 대장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둘 것이다. 이는 도원수를 제외하고 두는 것이다.”

대장의 직급이 유동적이었는데 사실 정 2품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영도 이런 이들을 고려해서 대장을 우선 2품으로 둔 것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경군 중 6군영의 대장 자리가 너무 높은 것일 수도 있기에 이를 나중에 조정할 여지를 두고 있었다.

“전하, 대장의 계급을 가진 이들이 많은데 이를 나중에 조정을 하실 것입니까?”

“삼군부의 의견을 듣고 더욱 조정 등을 하면 될 것이라고 여긴다.”

이제 편제의 개편에 대한 제안을 오군영 말고도 이를 적용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 왕명에서는 오-대-기-초-사-부-영의 구조를 오-소대-중대-대대-연대-영-통어영/통제영/도통부로 편성이 되었다. 대-기-초-사-부를 소대-중대-대대-연대로 이를 대체하였다.

소대 아래의 오는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오히려 오 위의 기존 대에 해당하는 제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있기는 했었다. 이는 더 추가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영은 유럽 군대 기준으로 한다면 여단~사단으로 잡고 있었다. 또 상위의 통이 붙은 통제영/통어영 같은 군영과 도통부는 유럽 군대의 군단에서 그 이상으로 분류가 되었다. 이제 지방의 군영들, 감영과 병영에 진무영 등은 해당하는 편성을 더 적용이 될 수가 있을 것이었다. 신하들은 이렇게 정리가 된 군사의 제대 편성에 대해서 의견을 내었다.

“전하, 경군의 여러 군영들에 적용하니까 재편을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 기존 우리 조선의 체제를 이들에게 맞게 편성하여도 되었는데 아예 간소화를 하려고 대(隊)란 명칭을 기준으로 그 크기로 구분하기로 하였다.”

“그러면 훈련도감 등 삼군문의 3대장에 대한 명칭도 나중에 수정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것은 다음에 논해도 될 것이네. 대장의 수를 정해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군제의 후속 개편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훈련도감, 금위영 다음으로 서역방식의 군대로 완전히 재편이 된 것은 어영청이었다. 그리고 총융청, 수어청에 경군에 속하는 장용영과 심도를 지키는, 심영이라고도 불리는 진무영도 재편이 한창이었다. 다만 진무영은 포대와 돈대들을 운용해야 했기에 포군 부대의 편성은 제일 많은 곳이었다.

또 이영은 군제 개편 외의 다른 개혁이었던, 정학연을 중심으로 한 행정구역의 재편성에 대한 안건 보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큰 골자는 8도를 12성, 혹은 13도로 재편하는 일이었으며 그 외의 중요한 골자는 지방 고을에서 향회를 더욱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 것에 경재소가 무용한 상황에서 유향소 혹은 향회를 어떻게 견제할지에 대한 의문을 담아서 지방사족들의 월권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 유산 정학연은 다음과 같이 반론을 담아서 이야기를 하였다. 먼저, 사족들의 경우는 세금을 거두는 부분에서 이를 논의할 수가 있는 부분 등에 대해서 권한을 주고 향약을 주관하여서 해당 고을의 관련한 일에 담당하는 것은 관례적으로 존재했었다. 이에 대해서 이를 일정부분 인정하지만 월권을 하지 못하게 수령 등이 이를 견제하고 원래도 수령은 어사 외에 향회가 견제함이 있으니 서로가 견제를 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말을 들은 신료들은 정학연의 의견을 좀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들이 이해를 한 것이 맞는지 다시 물어보는 이도 있었다. 이영은 이미 정학연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에 그 반론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관례로 암묵으로 있던 것을 공인하여서 이를 바탕으로 지방의 통치를 보강하고 지방사족들을 더욱 충성케 한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앞으로 있을 관제 개편에 대해서 겸직을 줄이고 관직이 늘어나는 작금의 제도로는 조선이 경장을 하는데 무리가 있기에 제도를 바꾸어야 하기는 합니다. 이는 지방의 통치를 위한 고을들도 재편해야 합니다. 도를 분산하여서 관할의 부담을 줄이고 보다 더 낫게 지방 통치를 해야만 하옵니다.”

그런 명목으로 조선 8도를 더 분할할 생각이었다. 실제 생활상도 반영할 예정이었고 그래도 탁상공론이 되지 않기 위하여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있었다. 당장 시행하기엔 단기에 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말이었다. 그리고 공조의 보고를 받게 되었다.

공조가 이영과 의정부에게 올렸던 보고는 매탄에 대해서 소금을 만들 때에 이를 적용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 것이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조참판이 이영이랑 의정부의 두 정승에게 이를 아뢰고 있는 중이었다. 조선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소금은 나무를 써서 불로 이를 점점 가열해서 만드는 것이었는데 나무 대신에 매탄, 석탄으로 이를 성공한 것이었다.

“정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소금을 전하의 건의대로 이를 써보니까 괜찮았사옵니다.”

“그렇다면 매탄을 소금을 만들 때에 잘 사용하면 되겠구나. 그리고 매탄이 다른 곳들에도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해야 되겠구나.”

“그래야 할 것이옵니다.”

다른 보고들이 이어지면서도 이영은 정무 외에도 왕실 내부의 문제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알아본 것이 사실이었다. 제 둘째아들인 한산대군이 제 전각 소속의 어린 궁녀를 연모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 궁녀는 한산대군 이형이 저를 사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고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미안하게도 꺾고 다른 혼처를 관례 이래로 제시하면 될 것이라고 여기는 이영이었다. 아내인 왕비와 어머니인 대비에게 알리지 않고 그저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었다.

이래저래 이영이 조선의 경장과 가족 문제로 정신이 없을 때에 남부분견대가 라마에 도착해서 겪은 일은 이전에 이야기했던 라마 법왕청의 그 요구 때문으로 그들은 당황하였다. 라마 법왕령의 생각보다 호의어린 환영을 받았지만 이게 다 의도가 있었던 것이었다. 남부분견대는 그래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마의 법왕이면 일국의 대군주(자주국의 군주)와도 같으며 천주신교의 수장인 존재인데...’

‘그래도 그런 요구는 억지가 아닙니까?’

‘우리는 그러한 권한이 없지요.’

그들을 당혹하게 만든 것은 연회 중에 있던 일이었다. 금육일이라서 생선 요리가 올라왔는데 유럽의 그런 금육일에 대한 것은 이제 익숙해져서 넘기었다. 그런데 이들이 연회를 끝내고 한 요구에서 어이가 없어지는 남부분견대 일동이었다.

“우리는 조선이 선교의 자유를 더 주기를 바랍니다. 또 교회를 세울 자유도요.”

“파리 외방전도교회와 우리 로마 교황청은 귀국의 교회에서 평신도 지도자들이나 일부 성직자가 제안하는 제사에 대한 허용 재개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 두 가지의 말로 남부분견대는 라마 법왕에 대한 평가를 더 수정하였다. 1848년의 그 일로 보수적이라고 들었지만 그래도 남의 나라, 먼 이방의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면모를 보이는 모습에서 말이었다. 후자는 조선 천주교회에서 조선인들 쪽이 세우는 숙원의 의지였다고 그들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이를 수락해서 시행할 권리가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천주신교의 교단을 대표하는 라마의 법왕이시여.”

역관이 법어로 남부분견대장인 서유시찰단 부사가 하는 말을 통역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부사의 말은 계속 이어지기 시작하였는데 로마 교황인 비오 9세는 추기경들과 같이 이를 듣기 시작하였다. 비오 9세는 반동적인 인물이 되었어도 개인으로서 그는 좋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먼 동방에서 온 소왕국이 왜 그런 자유를 요구함에 권한 밖의 일인지 외의 이유를 들어보고자 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법어를 할 줄 아는 라마 법왕청 측의 신부가 교황의 말을 통역하였다. 그리고 부사가 입을 열어서 이를 다시 설명하였다. 그 말은 좀 길어지지만 통역은 꽤나 매끄럽게 되었다.

“그대들은 선교의 자유 등을 논하는데 우리는 그대들이 기준해서 나라로서 이를 막을 권리가 있습니다. 만약 법왕의 영토에서 우리가 서원을 세우고 그대들의 믿음, 신교 등을 방해한다면 이를 용납할겁니까? 우리가 서역과 교류하기 위해서 주상 전하께서는 타협을 했습니다. 이를 제한하더라도 말입니다. 개방장에 그들의 교당을 세우고 내륙에 드나드는 것을 주로 조선인 천주승에 일부에 한해서 내륙의 신도들을 관리하는데도 허락하고 있습니다.

헌데 그러한 타협은 부족하다고 대가도 없이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한다면 도리가 있습니까? 무엇보다 우리는 유주 땅을 돌아다니면서 이를 견문하고 그에 대한 보고를 정리하여 귀국하면 이를 올리려고 온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멋대로 결정해서 구두로 협의할 정도로 권한이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의견을 들어서 그대들의 요구를 보고에 담아서 논할 정도만 있습니다. 법왕께서 이를 요구하시려면 정식의 교린 사절로 이를 청하여 주십시오.

또 제사에 대한 철회 문제는 우리 조선 조정이 요청한 것이 아니기에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제사 금지를 철회한다면 주상 전하와 우리 조정은 그대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여기는가?”

비오 9세는 역지사지를 말하면서 자신들은 최대한 사정에 맞게 천주교회를 용인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거래, 혹은 교섭이 없이 이를 요구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말하였다. 또 정식의 사절을 보내서 이를 청하고 그들은 정말 그런 권한이 없으며 그 요구를 들었다고 보고를 올려서 전하는 정도만 할 수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우리와 거래를 청하고 있군... 만약이라는 것이지만 제사에 대해서 조선과 조선이 숭상한 유학은 제사를 꽤 중시한다. 제사 금지를 철회한다면 그 자유를 늘릴 수가 있다고? 차라리 다른 것을 제안하겠다!’

“그렇군....”

그래도 교황은 조선이 거부할 것이라고 여기고는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가 로마 교황청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 필요 이상으로 조선을 압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였는데 우선 요구를 하고 이를 건의하게 할 정도로 만족해야 할까 여기었다. 그러다가 교황 비오 9세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교황청 차원의 상주 사절을 파견한다면?’

1815년의 빈 협약에 의거하여서 교황대사 혹은 교황공사의 위치는 타국 외교관계의 상주 외교관에 준하는 자리였다. 이를 이용해서 교황청이랑 조선의 연결을 해보고 그 교섭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비오 9세였다.

물론 교황이라고 이를 보내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선 조선과 접촉해서 교섭을 더 끌어내고 아니 된다면 해당하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수이다.’

이를 감추고 알겠다고 하면서 그럼 요구를 전해 달라고 검소한 복장에 웃음으로 호감을 사려는 비오 9세였다. 다만 이를 전해도 서유시찰단 남부분견대는 보고서에 이 요구를 어떠한 대가 없이 이루어줄 수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라마 법왕청이 나중에 사절단을 보내서 상주하는 법왕공사를 개방장에 두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에 우리 교황청이 그대들을 방문한다면 좋을 것입니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다만 찾아오는 손님을 이유 없이 박대하는 이들은 아닌 것이 우리 조선이랍니다.”

“우리의 요구가 그대들에게 과할 수도 있으니 지금 물러나겠소.”

“하지만 성하!”

교황이 생각보다 잘 물러나자 서유시찰단 남부 분견대에서는 의혹을 가지고 이를 보고 있으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교황청 소속의 다른 추기경들은 이 것을 당황하면서 말리려고 하였다. 그들은 조선이 서역과의 관계를 중시함을 이용해서 프랑스에 도움을 청해서 이를 관철할 생각이 더 강했다. 그들은 교황 비오 9세에 비하면 더 강경하였던 것이었다.

“어허, 저들에게 해당한 요구를 한 것으로 우선은 만족합시다.”

“하지만...”

“그대들이랑은 따로 이야기를 할 것이 있소. 아 조선에서 온 그대들은 이 로마를 잘 보고 그대들 나라에 보다 더 도움이 되기를 바라오. 그 견문이 더욱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런 그들을 비오 9세가 제지하였고 그들의 대화는 잘 끝났다. 조선의 임금인 이영이 쓴 친필, 특히나 이 것은 라마 법왕에게 친히 보내서 내용이 다른 서신을 나중에 읽어볼 생각이기는 하였다. 조선의 남부분견대는 연회에서 입맛이 이미 달아난 상황이었으나 억지로 라마 법왕청이 제공한 요리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라마 법왕청에 대한 악담을 하고 있었다.

‘리소르지멘토를 주창하는 사르데냐에게 병합 당해버려라....’

‘이리 오만한 자들이 있다니...’

‘라마의 천주신교 측이 요구함이 과한데 이는 당연히 받아들이면 안 되거나 받아들여도 상응하는 조건을 수락해야만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저 법왕은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유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구나....’

이 와중에 악담을 하면서도 비오 9세를 유심히 보는 이는 남부분견대의 대장이자 서유시찰단의 부사 중 하나로 그 이름은 조두순이었다. 1827년 이래로 20년 넘게 조정에 근무를 한 그는 예조 판서였다가 좌참찬이 되었고 그 상태에서 서유시찰단의 부사 중 하나로 서유시찰단을 이끌고 있었다. 동지사 혹은 연행사 등으로 외교는 익숙해진 상태였기에 꽤 적당한 인선이었다.

50대의 노신인 그는 아마 돌아간다면 정승 등의 고위직에 앉을 수가 있을 것이었다. 이런 그가 생각하기에는 저 라마 법왕, 곧 예순이라는 저 자가 무엇인가 일을 일으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그도 라마 법왕청이 한 요구를 마냥 좋지 않게 여기었다. 그래도 요구는 전하지만 아까도 생각했듯이 견해를 밝혀서 올릴 것이었다.

‘이 일은 매우 불쾌하다. 역시 조선은 필요한 것만 수용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남부분견대에서 가장 라마 법왕청의 요구에 반발하는 마음이 강한 것은 화서 이항로였다. 그는 남부분견대에서 사르데냐와 라마에서 겪은 일들이 좀 그렇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이를 대놓고 드러내서 무례하다고 화를 내기엔 관직도 없는 저가 나설 수가 없고 조선에 혹여나 누가 될까 봐 우려해서 나서지를 못했다.

라마 법왕 측의 그 것에 천주신교에 대한 생각을 좀 더 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부분견대가 다른 분견대들보다 심적으로 힘든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 불편한 시간 이후에서는 나름 나쁘지 않았다고 느끼는 그들이었다.

이태리 반도 나라들 중에서 북부는 그들이 보기에도 꽤나 멋이 있었다. 그리고 일부는 참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들 북부의 부와 상공업 단지 등을 더 보면서 말이었다. 그리고 남부 분견대의 이태리 기행이 지속이 되는 중에 미리견 분견대에게 생긴 일은 조선에 왔었던 미리견 상원의원이랑 대담 중에 있었다. 그 일은 어떤 일이었는가 하면...

“노비에 대해서 말이요?”

“네, 각하. 전 각하와 조선의 고관들인 여러분에게 노비와 노비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물어보는 것입니다.”

미리견분견대에게는 조금 당혹스러운 상황이 있기는 하였다. 윌리엄 수어드라고 하는 이 미리견 공직자가 미리견분견대를 환영하기 위해서 연 사교연회에서 그들에게 접촉해서 정중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본론을 꺼냈다. 그들과 하는 대화로 관련한 것이었기에 말이었다.

이에 대해서 쉽게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은 이하응, 오경석, 홍순목이었고 박규수도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견해를 밝혀달라고 청하는 그 모습에서 본심을 논하려고 입을 여는 박규수였다. 그는 조심히 잠깐이나 조선의 상황을 생각해서 논하려고 하였다.

“다른 이들은 모르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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