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65화 (65/221)

〈 65화 〉 (40) 천하박람회와 석왕릉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조선에서는 한산대군 이형은 제 첫사랑이 끝난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아버지인 이 나라의 왕인 이영에게 타이름을 받았다. 이형이 좋아한 궁녀, 정확히는 이형보다는 조금 연상인 궁녀였다. 이영은 그 궁녀에게서 자초지종을 이미 들었다. 마음과 같아서는 사람을 이루게 해줄까 고심도 했었지만 이내에 아버지로서 궁중의 법도가 어떤지를 알기에 포기해달라는 타이름을 들었다.

“아바마마...”

“그 아이가 궁녀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도 하지 않을 것이다. 미안하구나. 궁중의 법도에서 궁녀는 사사로이 남과 쉽게 혼인 할 수가 없단다. 궁녀에서 물러나거나, 아니면 주상의 허용으로 특별하게 되는 것이나 궁녀가 아닌 궐의 일하는 하인 신분 등이면 모를까...”

“제 마음이 아픕니다.”

“사랑하는 것이 잘못은 아닌데 이렇게 타일러서 끊으라고 하는 나도 미안하구나. 허나, 법도가 그런 것이란다.”

으름장도 아니었으며 부탁이었는데 아버지의 그런 것에 혼란했던 이형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형을 더 혼란스럽게 한 것은...

“전하, 소녀는 대군 대감을 상전으로서 아끼고 또한 사사로이는 고향의 동생 같아서 그리 한 것인데 대감께서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우려하시는 것은 없사옵니다. 또한 제가 어찌 감히 지엄한 법도를 어기겠습니까?”

이형이 좋아하는 궁녀가 와서 대군 대감을 사모하지 않았고 감히 남동생 같이 봤다면서 라는 말을 들음에 실연의 아픔을 들었다. 그런 이형의 짝사랑이 끝난 것에서는 아버지로서는 안타까우나 군주로서는 궁중의 법도가 범해지지 않아서 안도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궁중의 법도도 점점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궁녀들이 무조건 주상과 국본의 여인으로만 남아야 하는가? 그들도 여인으로서 평범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 나중에 법도를 바꾼다면 이를 바꾸고 싶다. 종묘사직의 대를 이어가려면 후궁 등을 둔다고 하여도 모든 궁녀들이 주상이랑 국본을 섬긴다고 사실상 혼인했다 하면서 이를 내버려두는 것도 과연 이치가 맞는가?’

“알겠다. 너의 뜻을 알겠다. 너를 내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안심하여라.”

“예, 마마...”

그리고 이영은 실연을 한 둘째, 한산대군 이형을 위로할 마음이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얼마나 있는지를 생각하면 말이었다. 그래도 아들에게 위로를 하고 싶은 마음에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풀이 죽었으나 울지 않는 이형을 보면서 말이었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가 있단다. 이 아비가 미안하구나.”

“아바마마....”

그런 아버지인 이영을 약간 원망의 눈으로 봤지만 이해를 하였다. 그래도 제 순정이 부정당한 마음은 너무나도 슬프고 예쁜 보름달도 오늘따라 원망스럽게 이리 밝느냐고 생각하는 이형이었다. 그렇게 이형의 궁녀를 향한 첫사랑, 짝사랑은 꽃이 지듯이 졌다.

한편, 파리에 모인 북부분견대는 예정과 달리 벨기에를 방문하였다가 거기서 대접을 잘 받아서 지냈다. 벨기에 체류를 끝낸 다음에서는 파리로 출발해 도착하였다. 그들은 벨기에에 대한 인상을 나누고 있었다. 벨기에는 네덜란드보다는 더 공방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벨기에는 법국이랑 보다 가깝다는 느낌을 그들은 겪었다.

“백기애(벨기에)는 저지국과는 말이 다르면서 같은 동족이었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습니다.”

“과연 피만으로 동족이 되는 것인지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화가 될 수도 있고 화는 이가 될 수도 있지... 남이 되는 것은 더 쉽지 않겠는가?”

낙론과 호론의 논쟁은 기정진 같은 경우는 이와 화는 다르다고 느끼었는데 후천의 노력으로 그게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느끼었다. 다만 이와 화가 성질이 같은가는 화였던 이와 이였던 이는 처음은 다르다는 견해를 가지었다. 기질의 발현을 중시하였다. 그래도 유주를 주유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이와 화의 차이는 별로 없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있게 되었다.

“누구나 중화가 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의 유주가 라마와 이후에 천주신교 등이며 자신들의 문명권을 만들 듯이요. 우리도 이였다가 중화가 아닙니까? 작은 중화로서 중화가 되고 있지요.”

“노사, 그대의 생각은 더욱 달라진 것 같소.”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정학에 근거하여서 다른 학문들도 포용하고 움직여야 정학은 더욱 정학으로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병학은 낙론을 인정했는데 이를 꽤나 확신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경향사족은 낙론호론 논쟁 중에 결국 누구나 중화가 되려고 노력하는데 이는 무지와 기질을 변화시키면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당장에 조선 그 선조들이나 전조도 이였다가 화가 되어가는 과정이었으니까 그렇다.

“사람이랑 사람의 외는 본연이 같으나 기질이 다릅니다. 아니면 본연도 좀 다르다고도 하지만 사람은 사람의 외랑 같이 살기에 과연 같지 않을지가?”

“화는 인이고 이가 동물이라고 하여도 유주를 본다면 우리가 이라고 여기던 이들은 이가 아닙니다. 중화가 아닌 다른 화이지.”

의도하지 않게 인물성이동론을 논하였는데 이에 대한 것은 유주의 사람들도 통역으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 외는 유주에서도 비슷한 철학적인 논쟁은 있으니까 말이었다. 인간의 존엄을 논하고 사람과 사람 외는 같지 않다고 말하는 쪽과 그렇지 않음을 논하는 것은 유주에서도 있기에 말이었다.

남부분견대가 이후에 합류하고 미리견분견대도 칼레에서 합류하여서 서유시찰단은 셋이면서 하나가 아니라 오롯한 하나가 되었으며 그들의 인원은 더욱 늘어나서 북적북적했으나 2척의 선단은 여전히 충분하였다. 그리고 미리견분견대의 항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그들이었다.

이번에는 저번의 역풍 항해와는 반대로 카리브 해와 북아프리카에 에스파냐/포르투갈 연안을 통과하는 순풍 항해로 돌아온 미리견분견대의 상반된 두 항해 항로 이야기는 흥미를 끌었다. 서유시찰단으로 여럿에서 모인 이들도 법어 혹은 영길리어가 가능한 이들은 통역으로 이를 들어서 흥미로웠다.

“그래서 역풍 항해보다는 좀 더 좋았습니다. 바람도 거칠게 안 불고 해서요. 해류도 비교하면 덜 거칠었습니다.”

“그랬는가?”

그리고 각자가 가져온 것 중에 이최응이 챙긴 것이 매우 이색이었다. 그가 챙긴 것은... 씨앗도 아닌 벌레였다. 그 벌레는....

“누에?”

“조선에서도 누에가 있는데...”

“이 유주의 누에는 조선 누에보다 좀 더 나은 것 같아서 가져오는 것입니다.”

“먼 항해에 저 것이 버틸 수가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함을 표하는 그들이었다. 이최응은 이 누에가 성충이 되어도 수십 마리를 데려가고 알을 퍼트리게 한다면 되지 않을까 하였다. 그리고 그런 형을 속으로 이전과 달리 더 응원하는 흥선군 이하응이었다.

이제 이들은 파리에서 집결하고는 다시 그 다음날에 칼레를 통해서 영길리에 입국하여서 란돈의 천하박람회, 런던 만국박람회에 참예하려고 하려고 했었다. 그들은 법국 등에서 얻은 신문으로 수정궁이라고 번역을 할 수가 있는 유리로 만든 영조물에 감탄하였다.

이들은 삽화 외에도 사진이라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오히려 필요하면 찍어야 한다고 봤으며 인화가 된 것을 가져와서 보고하기 위해서 찍는 것도 있었다. 그림을 그린 것 외에 보고를 위해서 사진을 찍는 발상은 완림군 이재원이 낸 것이었다. 다른 분견대에서도 이항로 혹은 흥선군 이하응이 낸 발상이었다.

“수정궁이라니...”

“영길리의 기술이 대단하군요. 격물이랑 기술은 많이 따라잡아야할 듯합니다.”

“동감이네, 심암. 그 격차를 어떻게 따라 잡아야할지..”

“특허제도라는 것을 잘 활용하고 이 특허를 전국의 신민이 이를 인지하기 편하게 종이를 많이 찍어내게 그런 작물도 필요할겁니다.”

“그렇다고 했지, 환재? 여송삼이라고 했던가? 귀국 중에 구하면 빠르겠군.”

“그렇습니다. 영상 대감.”

박규수와 정원용에 조두순은 다음과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도 란돈의 천하박람회를 매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파리에서 있던 법국에서 열던 산업박람회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그런 것을 매우 기대가 되어 있었는데 이는 그들에게 섭외를 받아서 나중에 같이 조선에 가는 이들도 비슷하였다.

“런던 엑스포라니, 매우 떨려요!”

“그렇습니까? 오배루도?”

“네, 원거.”

비슷한 연배라서 친해진 원거 오경석과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페르트는 오경석의 호를 이름으로 착각해서 불렀지만 이를 정정해주고는 원거라는 말을 더 즐겨서 부르고 있었다. 이런 이국의 친구로 한성에서 열심히 의학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 대치 유홍기가 떠오르고 있는 그였다.

“그럼 원거는 무엇이 기대가 됩니까?”

“천하박람회에서요? 당연히 기대가 되지요. 어찌 기대가 안 됩니까?”

오경석도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오경석 말고도 모든 서유시찰단 소속은 이 박람회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었다. 그들은 이 박람회를 끝으로 유주에서의 체류를 끝내고 귀국행에 오를 예정이었다. 그래서 아쉬울 수가 있었다. 별천지를 누린 기행은 천초를 빼고 더욱 놀라운 것이었으니까 말이었다.

그리고 런던 엑스포에 관람하려고 ‘강풍’호와 ‘명혜’호에 오른 서유시찰단은 능숙해진 항해실력 등으로 느긋하게라도 반나절 만에 영불해협을 넘겼다. 그들은 도파(도버)를 건너서 란돈 땅을 다시 밟게 되었는데 하이드파크에 세워진 수정궁은 사진과 삽화보다 더 웅장하다고 느끼는 그들이었다.

“이를 유리, 모래 등을 녹여서 만든 인공의 돌과 철로 만들지 않습니까?”

“보통의 나무와 흙, 돌을 쓰지 않았다는 것에서 놀랍네.”

그들은 당연하게도 그들의 상식에서 만들어지는 가옥 등의 주택은 아까 열거한 것들을 주로 쓰니까 말이었다. 또 박람회에 전시가 된 것은 주로 영길리에서 나온 발명품, 혹은 획기적인 것들이었다. 영길리에서 구매한 공방에서 일정 부분 쓰려고 산 영길리의 가정용 직물제조기 몇 개를 박람회 등에서도 더 구매하였다.

미리견에서 본 전보 기기도 전시가 된 것에 감회가 새로운 미리견분견대였다. 그리고 무기 중에서도 무엇이 신비한 것이 있을까 했지만 그들은 매우 놀라운 것을 봤었다. 프로이센관에서 전시를 한 것인데 그 무기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보로선의 구루포(크루프) 화포라고?”

“보로선에서 소문을 들은 것이 있었는데 이를 내놓는군요. 무려 철로 포를 만든다고 했지요. 그것도 강철로 말입니다. 무쇠가 아니고요.”

“영길리와 미리견에서도 비슷한 철로 만든 대포가 있지만 강철이라니?”

그들은 프로이센의 크루프 대포에 대한 것을 알고는 놀라웠다. 북부분견대였던 이들은 이 강철대포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실물로는 이렇게 처음 본 것은 아니었고 크루프 공장에 프로이센의 도움으로 이를 시찰할 수가 있었다. 북부분견대는 강철대포라는 것에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을 빼고 다른 이들은 이 크루프 대포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보통의 대포는 구리로 만들었다. 그런데 조선은 구리가 부족하기에 개방 이후로는 구리 대포를 수입하고 왜에게서 구리를 더 수입하는 식으로 이를 대응했지만 그래도 수요는 많지만 공급은 부족하였다. 만약에 철 혹은 강철로 화포를 만들 수가 있으면 철이 비교적 더 흔한 조선에서는 이게 가능하기는 했었다.

주철 화포는 영길리와 미리견에서도 볼 수가 있는데 그런데 강철 화포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강철 화포는 영길리도 아직 만들고 있고 개선품을 내놓고 있다고 들은 박규수는 프로이센에서 그 강철 화포를 내놓은 것에서는 당연히 흥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구리 화포는 수입하고 주철 화포는 조선도 도입해서 만들 수가 있을 것이다. 강철 대포도 나중을 생각하면 이를 수입해서 만들 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또 조선의 서유시찰단은 영길리국의 국서인 앨버트 공에게 초청을 받았다. 이 란돈 천하박람회가 열리게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그가 여왕을 설득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는 것이 오래였는데 앨버트 공은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그들을 잊지 않고 만찬에 초청을 받았다.

정확히는 그들의 수뇌부인 정원용, 박규수, 조두순에 다른 부사 1명에 종친 3명이 말이었다. 앨버트 공은 영국의 영향력이 보다 더 조선에 넓어지기 위해서 직접 여왕을 설득해서 영국의 유능한 인재들이 그들의 고문관에 교육기관을 세우는데 도와야 한다는 견해를 가졌다. 이러는 이유는 빅토리아의 모국인 영국을 위해서 그런 것도 있었다.

‘나는 독일어권 출신이라도 내가 영국의 국서인 것은 잊지 않았소. 그들도 내 진심을 알아주겠지.’

물론 그의 진의를 의심하는 영국 정부 당국은 의구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는 했지만 여왕의 결정이며 조선이 친영이 된다면 꽤 도움이 되기는 했기에 말이었다. 그들이 제대로 접촉해도 반응이 적은 일본이랑 거만한 청과 달리 조선은 비교적 작아서 영국의 영향력에 통제(?)도 받을 수가 있다고 일정 부분은 낙관을 하고 있었다.

비록 러시아는 멀어도 정황상 러시아의 카자크 무리가 조선의 국경지대를 염탐하는 정황을 조선 조정을 통해서 유추해서 주조선 영국 공사가 보낸 보고서로 짐작하고 있었기에 말이었다. 이런 속내와 별개로 만국박람회에 관람하는 조선 서유시찰단에게는 대체로 우호를 가지고 대하는 영국 정부였다. 그들은 또 법국식 만찬을 초청한 서유시찰단 수뇌부와 세 종친에게 베풀어주었다.

“차린 것이 부족할 수가 있지만 많이 즐겨주시오.”

“국서 각하의 배려에 감사를 드립니다.”

박규수가 용기를 내서 직접 영길리어로 말했으며 그 것에 놀랐다가 천연덕스럽게 그 뜻을 알고는 ‘천만에 말씀을‘ 이란 겸양을 보내는 앨버트 공이었다. 그들의 연회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한편, 다른 서유시찰단 일동들은 진기한 동물 취급을 받으면서 보여 지는 것이 매우 익숙해진 상태였던지라 영국 정부가 제공한 식당에서 그동안 유럽 체류로 익힌 유럽의 식탁 예절을 잘 행하고 있었다.

“이를 이제는 능숙하게 해서 다행입니다.”

“나도 그렇다네.”

기정진과 이항로는 능숙하게 서역의 식기를 쓰고 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드는 유럽인들을 무시하면서 저녁을 먹는 일동이었다. 서유시찰단에서 초빙한 이들도 식사를 하는데 그들도 영국 정부가 제공한 식당 등에서 이를 즐기었다.

다만 이들은 법국식 만찬은 아니었다만 영국에서 체류하고 있는 법국 요리사들이 하는 식당이라서 영길리 귀족들과 그에 준하는 이들이 먹는 고급요리들이 아니면 노동자들을 위한 식당은 그들은 체류하지 않기는 했었다.

“이 천하박람회는 꽤 오래 여는군.”

“길게 열어서 많은 이들이 이를 지켜보게 한다는 것 아니오? 우리는 이런 것을 열고 유지할만큼 부유하다고 자랑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언제 우리 조선도 이런 것을 열 수가 있기를...”

“동감입니다.”

그리고 질릴 정도로 몇 달 간에 박람회를 지켜본 그들은 인상이 깊은 것들이 있다면 천축에서 왔다는 고아루(고어누) 같은 보석에 매혹이 되기도 했었다. 언젠가 조선도 이런 천하박람회를 열 수가 있는 나라가 되기를 원하기도 하였다. 물론 조선은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정학의 문집이나 사상을 보여주는 석학 중심의 박람회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박람회 중에서 영길리에서 사들일 조선에서 유용한 것들을 사들였으며 여러 가지로 정보를 더 모으는 그들이었다. 게다가 영길리 고위층들이 여는 연회에 많이 참석해서 이를 마냥 다 물릴 수가 없었다. 또 영길리 측과 고문단 인선으로 추가적인 협상 중이었던 것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은 조선으로 돌아갈 때가 오고 있음을 다시금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이제 조선으로 돌아가는군.’

‘조선은 이 곳 만큼 빛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빛나지 못하다고 혼내야 하는가? 더 빛이 나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조선은 그립지. 그래도 이 별천지에서는 매우 놀라웠다.’

이와는 별개로 조선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운 그들이었다. 아주 빛나는 곳에서 빛이 있지만 흐릿한 곳, 유주에서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조선을 옛 중화와 지금의 이 유주 같이 매우 빛나는 곳으로 만들 마음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임금도 이런 것을 더 보고 조선이 더 달라지면서 조선이 살아남을 수가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 유주와 조선으로 가는 길 중에 애굽도 가게 되었지.”

“애굽 말입니까?”

“생략해도 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가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들은 중간에 빠지는 것 같았지만 서유시찰단 전원은 애굽으로 가는 길을 향하였다. 아마도 1달은 돌아오는 것이 지체가 될 것 같았지만 말이었다. 사실 이전에도 조금 설렁설렁 항해한 경향이 있었기에 기유년(1849년 말)에 출발해서 늦어도 임자년(1852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게다가 항로가 여송도 중간에 들러서 여송삼(마닐라삼)을 구해서 이를 보고할 예정이기도 했었다.

“애굽은 어떤 땅일까요?”

“열사와 흑토의 땅이라고 하더군요.”

그들은 길면 2~3주의 지중해를 향한 항해를 하게 되었는데 거대란 땅들에 거의 둘러싸여서 해류는 비교적 잔잔한 것에서 조선의 서해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서유시찰단 일동이었다.그리고 애굽의 석왕릉 등에 대한 것은 기대가 컸었다.

지금의 애굽은 오스만 제국 아래에 있어도 사실상 독립한 나라와 같았다. 그들은 조선처럼 경장을 열심히 임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처지이고 프랑스를 통해서 우호를 다지던 메흐메트 알리 파샤의 아들인 사이드 파샤는 조선을 생각보다 우호로 대접하였다. 물론 이집트의 그것도 예상치 못하게 시찰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이런 시행착오를 조선도 참조하면 좋기에 시찰단 일동은 찬성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석왕릉이 있는 곳으로 가보게 되었다.

“이 곳이 왕릉인가?”

“돌로 만들었다 인가....”

“아주 거대하군요.”

“저렇게 거대한 것을 요순시기 즈음에 만들었다고?”

애굽의 고대 왕릉에 서유시찰단 모두가 감탄한다. 그 거대한 크기에 말이었는데 다만 서역의 사람들과 애굽인들이 그 왕릉에 올라가도 된다고 하지만 사양한다. 특히 이항로와 기정진이 서유시찰단의 단장인 정사, 영상 정원용이랑 부사 중 박규수에게 말해서 말렸다.

“어찌 이미 옛적에 망국이 되었을지언정 남의 나라 옛 왕릉에 사사로이 올라가겠는가?”

“도리가 아닙니다. 전조의 무덤을 우리도 그렇게 훼철치 아니하였는데 이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옳네, 남의 나라 왕릉이라도 옛 왕릉이라도 이럴 수는 없다고 보네.”

“대신 가까이에 가서 기념을 하지요...”

그 대신에 가까이에서 가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메르, 다른 말로는 피라미드라고 하는 애굽의 석왕릉에 대한 시조를 짓는 선비도 있었는데 그는 바로 이항로였다. 그 목소리는 진중함이 담기었으며 이 석왕릉을 지은 왕조와 민중에게 감탄도 담았다.

“저 열이 넘치는 모래바다에서 오롯이 있는 석왕릉. 빛나는 태양 아래에 먼 옛날의 왕이 잠든 곳이 있다. 저 왕들은 듣자니 요순이랑 비슷한 시기의 왕들이니. 그 나라가 사라졌음에도 석왕릉은 남아서 빛난다.

어찌 저런 왕릉에 올라 가리요. 보는 것으로 충분히 그 왕에 대한 것을 본다. 저 것을 만들기 위한 백성의 노고도 생각하면 힘들지만 자유민들이 지었다.

그런 자들이 알아서 만들었으면 분명 그 나라는 존재할 의미가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 곳에 있는 우리는 그 나라를 상고한다.“

그의 시조를 듣고 달필인 흥선군 이하응은 그 시조, 석왕릉이라고 지어서 나중에 화서 이항로에게 보여주자 시조를 지은 그가 매우 기뻐하였다. 그들도 이항로의 시조를 글로 남겨야 했다고 여기었는데 흥선군 이하응이 이렇게 남기자 모두가 감탄을 하였다.

애굽의 사이드 파샤, 조선으로 치면 도백에 해당하는 이가 말하는 나일강과 바다를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겠다는 것에 그들도 놀랐는데 확실히 그런 운하가 생긴다면 압주를 돌아서 움직일 필요가 없기는 했었다.

그 유용성에는 대체로 찬성을 하였다. 물론 천하의 대해와 해양을 사실상 지배하고 군림하고 있는 대국인 영길리가 과연 찬성할지는 의문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이 말은 오스만국의 애굽 관찰사인 사이드 앞에서는 입을 아끼는 그들이었다.

애굽을 시찰함을 끝으로 완벽하게 서유시찰을 끝낸 그들은 늦어진 만큼 항해를 재촉하기로 하였다. 돌아갈 때에는 더 능숙해진 조선인 수부들이며 조선인 항해사들에게 실습 차원으로 보다 더 맡기는 두 척의 서유시찰단 선단 소속 배에서 유럽인 선장들과 고급 선원들에 선배 항해사들이었다.

‘사랑하는 조선이여, 우리가 돌아오면 빛이 더 밝기를, 그리고 경장으로 더욱 밝아지기를. 서유 문명과 중화 문명의 사이에서 조선은 앞으로 빛이 나게 우리가 도울 것이다.’

서유시찰단의 부사이고 군국기무아문 제조인 환재 박규수의 이런 결의는 매우 빛이 났었다. 그리고 이런 결의를 하는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노구인 영의정 정원용도 그러한 생각으로 속이 빛을 내었다.

이항로와 기정진은 서역 국가들에 대한 경계를 높이지만 그들의 유용한 것을 배우고 정학은 그들 석학과 충돌하면서 더욱 진화할 수가 있으리라 믿으며 귀국하면 등장할 학당에 대해서도 더욱 생각하고 있었다. 세 명의 종친이며 다른 이들도 저마다 생각하는 것을 결의하였다.

또 그들을 따라온 유럽인들, 미리견인들도 자신들이 받았던 것과 배운 것을 조선에서 써주는데 그 것이 도움이 되고 유주 문명이 과거 빛났던 동방을 더욱 빛을 내는데 도울 것이라고 결의하고 있었다. 그들의 도움도 조선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는 나중에 알 수가 있을 것이었다.

그들의 항해는 압주(아프리카)를 횡단하는 것은 고역 같았지만 그들은 키니네 등의 의약품을 가지고 와서 압주 학질 등을 피할 수가 있었다. 유주로 갈 때와는 달리 더 빠르게 돌파할 수가 있었다. 물론 실습 중에 실수를 최대한 수습하는 노련한 유럽인 뱃사람들이 있기에 그러한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