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45) 병진호란(제 3차 조청전쟁)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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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도 저들, 청에게 이 전쟁의 책임을 물리기 위하여 북벌을 더욱 오롯이 선언하겠다! 내가 더욱 슬플 것은 북벌 중에 죽어갈 아 조선의 군병들과 부담을 질 백성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벌이라고요?”
“전하!”
북벌, 그리고 그 말로 조정은 담담하지만 결단이 넘치는 말을 한 이영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과거에 조선은 그들의 먼 선조 대부터 두 호란의 치욕을 기억하고 북벌을 준비했으나 점점 강해지는 청나라를 보면서 그 꿈은 흩어졌었다. 그래도 그렇게 증강한 군대는 어찌 어찌 지금의 조선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10년이 넘는, 강산이 변하고도 남는 시간에서 서역 유주의 군대 훈련 방식을 들여오는 것을 통해서 군대는 더욱 강해졌다. 과거에 상정했던 전략과 더욱 발전한 군세로 청나라의 군대를 우선 격퇴했다. 그리고 그 것은 북벌로의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나아갔다.
현재 청나라의 정세는 내부의 변란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조선을 향해서도 손을 뻗었다. 그보다 더 어리석게도 내부의 변란은 커지는 와중에 영길리와 법국과는 전쟁이 일어나 싸우는 와중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아 조선의 변화를 알면서도 우리를 얼마나 낮게 깔보았는가?’
몇 개의 전선을 만드는 어리석은 행위를 했는데 물론 조선을 매우 만만하게 봐서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청나라의 예상보다 조선은 서방의 군대보다야 훨씬 미숙할지언정, 더욱 썩어가던 청나라의 군대보다는 강했다. 그런 자신감, 청나라 군대가 생각보다 별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확신이 생기는 그들이었다. 그래도...
“그 말인즉슨... 전하께오서는 청나라로 중심을 하는 이 동양의 천하를 부정하겠다는 것이옵니까?”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전하께서는 더욱 아실 것입니다.”
경은 김좌근을 비롯한 신료들은 얼떨떨한 모습을 보였다. 신료들 사이에서도 간혹 북벌을 운운했고 무반과 일각의 소장파 관료들 사이에서 북벌을 운운하는 것은 알았지만 매우 진지하게 이를 시행할 수가 있을지에 대해서, 과거에 대한 생각을 가진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그 변화할 미래,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걱정하였다. 경은 김좌근도 입으로는 전쟁과 북벌을 생각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치였다.
그 길이 과연 조선에게 맞는가? 선조들이 주창하였던 북벌을 쉬이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었다. 그런 우려와 긴장을 하고 있는 많은 신료들 중 노신들을 지켜보면서 이영은 눈을 감고 잠시 저의 생각을 정리하였다. 조선은 이미 청에게 먼저 공격을 당했다.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청을 믿을 수가 없다. 그들에게서 우리가 오롯이 홀로 서는 것, 독립하려면 청과 우리의 관계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청나라를 상국으로 섬기지 않을 것이다.
청과 우리는 아버지와 자식지간 같다고 할 수가 있으나 저들은 우리에게 신의를 보이지 않고 믿음을 저버리고 우리가 한 짓이 아님에도 공격한 것은 알 것이다. 무도한 이들이었다. 저들의 밑에 이제 아 조선이 계속 있어야할 이유가 있는가?
아버지가 먼저 천륜을 어긴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도 기망한 것이 있을 수가 있다. 그에 대한 것을 논한다면 할 말이 없다만 아 조선은 무익한 일에 낄 이유가 없다. 허나 이렇게 휘말리는 것에서 피할 수가 없다면 우리는 청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전쟁을 할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는 북벌을 해야만 한다!”
주상인 이영이 이어간 말에서는 정학, 성리학의 도리에서도 그렇게 책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이 계속 거부했음에도 이를 강요하였고 하지 않은 짓을 뒤집어씌우며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해왔다. 물론 조선이 일부러 속인 쪽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짓을 명분으로 합당치 못하게 먼저 공격하였다. 더는 조선은 이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다.
“전하...”
“아 조선은 이제 새로운 미래, 앞으로의 천하에서 도를 지키면서 아 조선의 국운을 도모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신들은...”
조정을 대표하는 중신들이 입을 열어서 그들에게 논하고 있었다. 뜸을 들이지만 그들이 평소에도 생각해왔던 것을 정확하게 집고 있는 주상인 이영의 말이었다. 그리고 점점 사라지던 친청파에 도리어 들어난 친서파, 아님 조선중화로의 길을 추구하는 파벌 등으로 청이 이렇게 나서면 조선도 참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전하, 북벌을 위하여 더욱 함께 하겠나이다!”
“저들에게 억류되어서 고초를 겪었던 이들, 특별사의 동료들이며 평안도에서 불귀의 객이 된 민중과 병졸들을 위하여 행하소서.”
“그 누구도 아 조선의 북벌을 막을 자들은 없을 것입니다!”
신료들도 그런 것에 동조를 한다. 복수심? 당연히 있었다, 청나라에게 과거의 치욕을 갚자? 그런 것도 당연하지만 1844년, 도광 24년 이래로 청나라는 조선에게 멍에를 씌우려고 한 것이 있음을 알기에 더 가까운 치욕에 주목을 한다. 물론 무수히 많은 사대부들이 가지고 있는 병자년 그 호란의 상처도 오래도록 남아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증오는 점점 희석되던 중이었다. 다만 그 것을 가까운 과거의 치욕이 결부가 되어서, 그리고 이 전쟁이며 주상이 한 북벌 선언으로 다심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조선은 청나라에 대한 원한을 잊은 적이 없다, 단지 잊어버릴 뻔 했을 뿐이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많은 장졸들과 민초에게 죄를 지을 수가 있으나 그럼에도 이대로 당할 수가 없도다. 많은 장졸들과 민초에게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며 우리의 자손들에게 이런 것을 피하게 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를 도와주기를 바란다.”
주상인 이영이 이렇게 입을 열고 신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서역의 고문들에게도 따로 입을 열어서 도움을 청함을 논하였다. 그러한 모습에서 서역의 고문도 자신들의 고용주인 조선 국왕을 최대한 도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대들에게 감히 청하네. 영길리와 법국인들이 아닌 고문도 있다고 기억한다. 그대들하고 상관이 없는 전란임에도 이 조선을 더욱 도와줄 수가 있겠는가? 군사고문을 제외하면 전쟁에 나설 일은 아니네. 원래 맡았던 직무에 최선을 다해서 아국을 도와주게나. 그대들이 원하면 전시 수당을 지불할 수가 있네.”
역관들은 그 말을 그들에게 전하였다. 전시수당은 솔깃하였지만 조선에서 그동안 고문으로 근무하면서, 그리고 조선에서 그들에게 보인 신뢰를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그들 중 대표들, 선임 고문들과 신 고문 중 가장 고문으로서 직급이 높은 이들이 입을 열었다.
“추가수당은 더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귀국이 우리에게 지불하고 있는 돈이며 혜택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일국의 군주께서 이렇게 낮게 청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고용주인 조선 국왕께서는 당당하게 우리를 추가 근무하는데 지시하소서.”
“맞습니다. 물론 나중에 추가 수당을 신청할 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조선이 우리에게 보인 신뢰와 고용하면서 든 돈에 성과가 있을 때 마다 지급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우리의 고용주인 조선을 위해서 일해야지요!”
그런 두 대표들이 하는 말을 역관들이 고하였다. 그런 모습에서 주상인 이영은 그 말에 기쁘면서도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끼었다. 최대한 개인의 감정은 감추면서 다시 입을 여는 그였다.
“그대들의 헌신은 아 조선은 결코 잊을 일이 없을 것이네. 아 조선에 홍복이 가득하다.”
“전하!”
“지엄한 명령을 내리시어 선언하시옵소서!”
유산 정학연과 환재 박규수가 대표로 입을 열어서 북벌의 선언을 청하였다. 그런 두 총신을 필두로 경은 김좌근 등 조선 조정을 구성하는 모든 파벌과 모든 대신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와서 청하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리고 위엄을 갖추고 단호한 목소리로 조선 조정의 총의를 담은 명령을 친히 옥음으로 선언하는 이영이었다.
“아 조선은 북벌을 선언하노라! 우리가 입은 피해를 저들에게 배로 아니 그 이상으로 돌려줄 것이다! 허나, 사사로이 청나라인들을 죽이지 말라. 물론 투항을 권유해도 거절하고 항전하는 이들 중 주모자들과 청나라의 만주인들은 예외이다.
특히 여진의 후예인 만주인, 그 자들에게 본디 자신들의 자리를 똑똑히 기억하게 해주어라! 화와 이가 종이 한 장 차이라도 신의를 저버린 짐승만도 못한 자들에게 우리의 복수는 이제야 시작이라고 말이다!”
“주상전하! 천세!”
“조선 천세!”
“북벌의 뜻을 받들겠사옵니다!”
그리고 그 선언 이후에 조선 조정에서는 이 전쟁에 들어갈 전비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비변사의 권한이 약체화가 된 이래로 전쟁을 위한 비변사를 제대로 소집한 것이었다. 조선도 청을 상대로, 청이 아무리 약체화에 다양한 전선이며 내전을 겪고 있다고 해도 건곤일척의 결전들이 있을 것이었다.
이 전쟁에 주로 동원을 할 것은 경군과 조선 북부의 정예한 지방군들이었다. 관북과 관서의 강력한 지방군, 그 지방의 의병과 포군 등의 민병대며 경기의 지방군도 동원하기로 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유주인 조선 조정을 위해서 일하는 고문들도 배석하였다. 그들을 위해서 고위의 사역원 소속 역관들도 배석하였다.
“아 조선이 청과의 전쟁에서 쓸 전비는 적게 잡아도 은자 200만 냥은 넘을 듯 하온데.”
“전쟁이 장기화가 된다면 더 비용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심하면...”
“막대한 전비를 아 조선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군. 500만 냥, 아니 그 이상도...”
그러한 막대한 거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전쟁은 막대한 돈을 소모했었다. 게다가 나중의 미래를 위해서 감수할 거금이었다. 조선이 지금 경장을 하고 있을 때에 세수는 어떻게든 은자 1500만 냥이나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낙관하지 않았다.
이미 사용처를 정해놨던 예산들을 고려하면 이를 삭감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어디를 삭감해야 하나, 이를 감수해야 할지도 고심이었다. 주상인 이영은 도박을 하지 않으려고 했기에 다른 방법을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는 조선에 은항(은행), 은을 쌓고 이를 이용하는 환전객주 같은 곳들을 공영으로 운영하자고 해서 조선에 영란은항(영란은행) 같은 곳을 만들려고 지금까지 세수에서 떼놓아서 모은 돈들이며 왕실의 내탕금을 더 푸는 식도 검토하고 있었다. 신료들은 별세, 전쟁세를 거두는 것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은항을 위한 예치준비금은 굳이 건드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내탕금과 전쟁세 외에 다른 방도가 있습니다. 서역의 조선에 우호적인 나라들에게 차관을 빌리는 것입니다.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향향에 있는 서역 은항들에게서 차관을 빌릴 수도 있고요.”
“그렇습니다. 다른 것은 조선의 내부 유력자들, 조정 대신들이며 왕족들과 지방의 유력자들에게서 세금 외에 그들이 가산을 처분해서 돈을 납부하는 대가로 이를 나중에 그 채권들의 가격에서 배당금을 주는 식이옵니다.
기간은 10년으로 넉넉하게 잡으시면 되옵니다. 이자는 1/20을 하면 제일 적당할겁니다. 나라의 가장 큰 위기에서 너무 큰 사욕을 부리기에는 그들도 나라를 알 것이니 말입니다.
외국과 외인들에게 국채를 파는 것도 생각을 했지만 조선인들을 상대로 파는 이 조정에서 발행하는 공채보다는 돈이 덜 모일 것이 분명하기에 조선인만을 한정해서 조정이 발행하는 공채를 만들어서 조정에 전비를 헌납하는 이들에게 이를 주시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서역의 고문들 중 영길리인 재정 고문과 법국인 재정 고문이 이렇게 아뢰었다. 두 재정고문들이 내놓은 대안은 다음과 같았다. 서역 국가들 혹은 홍콩 등에 있는 서역 은항들에게서 전비를 빌리는 것이었다. 이는 서역 국가들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일이었다.
다른 것은 공채라는 것을 발행하는 것이었다. 공채, 채권을 발행하여서 그만큼의 채권 가치를 산 것을 대가로 이자 등을 받으면서 그 기간 동안 지불한 것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급전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무리한 단기 채권이 아닌 적당한 시간의 채권을 주면서 채권이 부당할 이자율은 지나친 고액이 아닌 1/20로만 부담하게 하였다.
“흠....”
“차관과 공채라...”
역관들을 통해서 이를 듣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조선 조정의 일동이었다. 세수에 대규모로 칼질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걸리는 것은 외국에게 차관 등의 대출을 받는 것은 우려가 되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환재 박규수가 입을 열어서 두 재정 고문들에게 임금을 대신하여서 물어보기 시작하였다.
“영길리 등에게 돈을 빌리자는 것인가? 조정 직할의 은항을 만들기 위한 예치준비금을 준비한다고 하자 지난 몇 년 동안 영길리와 법국 등은 아 조선의 조정 직할 은항에 관심을 보이며 돈을 투자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전비에서도 빌려준다는 것이요?
전에 서유시찰단에 갈 때에 서역은 전쟁을 할 때에 전비를 우호국과 자국 은항 혹은 타국 은항에서 빌린다는 것은 알았네. 하지만 그만한 담보가 필요하지 않은가? 돈을 빌렸을 때에 그를 갚기 위한 이자가 얼마나 할지도 알아야 하지. 아 조선은 담보로 잡힐만한 것이라고 별로 없네.”
그런 환재 박규수의 질문에 대해서 두 재정 고문은 무엇인가를 담보로 하는 차관은 조선은 불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까 말한 공채처럼 이자를 붙여서 이를 상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담보로 해도 이자가 되는 것 외의 차관 등을 대출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이 방법도 홍콩 등의 동양에 있는 유럽인들이 세운 은항 혹은 금융회사에서 조선에게 얼마나 대출 혹은 차관을 제공할 수가 있을지에 대한 문제였다. 자국이 지켜보는 선에서 조선의 신용은 마냥 높은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 영길리인 재정고문이었다. 그래도 이런 정략적인 상황에 청이 질 것이 명백한 이 전쟁에서 조선에 흔쾌히 돈을 빌려줄 유럽인 거상들은 많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영국 정부도 조선이 세울 조선왕립은항에 예치하라고 조선에게 은자로 환산해서 차관으로 줄 돈은 100만 파운드, 은자로는 500만 냥 이상을 볼 수가 있었다. 조선이 아무리 전쟁을 장기로 끌어도 조선의 늘어난 세수 역량과 특별세며 아까의 공채를 고려하면, 또 조선 조정이 차관을 지나치게 많이 빌리지 않을 것이니까 전비로 우리 영국은 최대 50만 파운드 선에서 전비차관을 빌려줄 것이라고 본다.’
또 조선은 청과 달리 서역 국가들이 가지는 신뢰는 비교적 높은 것은 맞았다. 아마 홍콩을 빼고 조선은 충분히 높을 수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것을 염두를 두면서 개혁총괄부의 두 장관(군국기무처의 제조) 중 하나인 로드 팍을 설득할 말을 꺼내는 영길리인 재정 고문이었다.
“어차피 10년 넘게 만기로 해서 차관은 이자를 1/20으로 한다면 될 것입니다. 급하게 돈을 모으려고 해서 높은 이자를 약속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담보도 급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당장은 조선의 재정, 전쟁세를 거두는 것과 평소 군대에 쓰던 것을 사용한다면 될 것입니다. 군대를 대규모로 동원하는 방식이라도 지나친 장기전이 아니면 될 것입니다.”
환재 박규수, 그리고 그를 비롯한 조선 조정의 관료들은 차관을 빌리는 것도 검토를 하게 될 것이었다. 이어서 환재 박규수 말고는 귤산 이유원이 질문하였다. 이제는 중견 관료가 되었으며 호조에서 꽤 인정을 받고 있는 그가 질문하였다.
현재 왕실의 재정을 담당하는 내수사를 제외하고 조정 재정을 총괄하고 있는 호조의 관원이 질문하는 것이라서 재정고문들도 살짝 긴장을 하였다. 그리고
“그렇군. 채권을 외인들에게 팔지 않는 것은 조선이 서역 국가들에게 채권을 팔아도 이게 얼마나 돈이 모아서 될지 장담이 안 된다고 하였지요? 조선이 그만큼 서역 국가들에게 채권을 팔아도 단기에 돈이 모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조선인들이 그 채권이라고 쓴 종이에 얼마나 신의를 보일 수가 있을지가 모르오.”
더 돈이 많은 서역 외인들에게도 단기에 돈이 몰리지 못한다면 조선인들도 비슷할 수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물어보는 귤산 이유원이었다. 물론 주상인 이영에 귤산 이유원 등은 공명첩을 대신해서 공채를 풀어준다면 더 나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 이들 중에서 더 많은 공채를 사고 재산을 조정에 납부한 이들이면 지금 논의가 되고 있으며 일부 제정 중이던 훈장이란 서훈도 올려주면 될 수가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하였다. 다만 이 것도 그들의 제안대로 공채가 성공적으로 전비를 마련할 수가 있다는 보장이 확실해야만 가능하였다.
“그 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채를 만기 10년 이상에 이자가 1/20이면 내는 이들은 큰 손해가 아니옵니다. 게다가 조선에 위기가 처한 상황에서 조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이들은 조선의 이 수도와 지방에 나누어서 있는 양반들입니다.
그들은 조선에 위기가 생기면 가장 열심히 나설 이들입니다. 또 민중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관보를 활용하시면 될 겁니다. 조선의 국왕께서 북벌을 선언한 것과 평안도 지방민들의 피해를 더욱 강조해서 보도해서 지배층의 탐욕으로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조선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전쟁임을 강조한다면야...”
관보, 조선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신문이었다. 조선에서는 여송삼(마닐라 삼)과 아마의 보급에 서역식 종이 제법이 들어오면서 나온 것은 늘어난 종이의 양이었다. 그리고 이 점점 양이 늘어나는 종이를 처리하려고 한 일은 다음과 같았다.
책 등을 더 발간하는 일이었다. 활자를 활용하고 책틀을 더욱 활용하는 식으로 나섰다. 그 외에도 늘어난 종이의 양으로 책의 공급을 감당하고도 남자 이에 서유시찰단에 참여했었던 종친 중 완림군 이재원의 제안이며 다른 신료들의 제안으로 보고서로도 쓰던 조보 대신에 조정이 하고 있는 일이며 소식을 전하기 위한 서역권의 뉴스페이퍼를 모방한 관보를 등장시킨 것이었다.
민간에서도 관보를 모방한 신문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공신력으로는 관보를 이길 수가 없었기에 한성에서는 이 관보가 압도적이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따져보고 전문가들인 서역 고문들의 의견을 들어보면서 주상인 이영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역시 과인이 생각한 대로 저들의 제안을 잘 활용한다면 전비의 부담은 준다. 물론 10년은 뒤에서는 조선은 부담을 안을 수가 있다. 그래도 이 당장을 극복하고 내실을 다진다면 전비를 마련한다고 구한 공채며 차관의 이자에 원금을 갚을 여력이 꼭 생길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영이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귤산 이유원도 납득하면서 이제 신료들은 그 통역이 되었던 말을 다 듣고 주상인 이영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에 결론은 고려한 조선 조정의 일부 대신들은 이영에게 아뢰었다. 그들의 주장은 대체로 비슷하였다. 먼저 유산 정학연이 입을 열어서 논하였다.
“전하, 저 주장에서 수백만 냥의 은자를 나중에 대가를 치루더라도 온건하게 모을 수가 있는 것은 저 차관과 공채에 그리고 아까도 언급을 하였던 별세 같은 것이옵니다. 굳이 세수에서 업무에 쓸 돈을 칼질 할 일이 적을 듯으로 사료가 됩니다,”
이영은 조정의 대신들을 다 둘러보면서 눈을 반쯤 내리감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서 재정 고문들이며 많은 신료들이 그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자세히 들어본다면...
“아 조선의 두 재정 고문들이 하는 말이 매우 합당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별세로 전쟁세를 임시로 거둔다고 나의 어명, 하교로 내리며 이를 널리 전하기 위해서 하교를 관보에 실어서 온 조선에 알리도록 하라!”
“예, 전하!”
그리고 다음날, 조선국 관보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리게 되었다. 그 내용에 많은 이들이 분노를 하였다. 조선의 임금께서 내린 하교도 신문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하교도 파발 등을 통하여서 온 조선에 알려지고 있었다.
‘아 조선은 청나라의 비열한 짓, 조선에게 누명을 씌우고 조선을 공격하였다. 따라서 조선의 평안도에 사는 백성들이 상하였으나 다행히도 충성스러운 평안도의 관군과 의병들이 이를 격퇴하였으며 그 잔적들을 경성에서 급히 보낸 경군의 1개 군영이 합류해서 소탕 중이도다. 우리는 더 이상 청나라의 밑에 있지 않을 것이다. 청나라의 책봉을 거부하며 청나라에게 맞서 싸울 것이다. 이 전쟁에서 죽을 이들이 있다면 나를 원망하라.
그럼에도 나는 조선국의 국인들이며 국인들을 이루는 다수인 민초들에 그 자손을 위해서라도 이 청나라와의 전쟁, 원하지 않았으나 그들이 걸어온 이 싸움에서 이제는 진실로 응하겠다. 북벌을 이루리라. 나와 조정에 충성하는 이들은 이 전쟁을 도와주기를 요청하노라. 가산을 내놓는 이들은 그 내놓은 가산만큼의, 아니 그 이상으로 돌려주겠다.
저들에게서 아 조선이며 그대들의 가족들이며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나라.
-대조선국 주상-‘
이러한 전교며 관보의 소식으로 조선 천지가 진동하였다. 대체로 그들은 청나라의 만행에 더욱 분노했으며 주상이 선언한 북벌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그리고 공채에 대한 것을 듣음으로 그들은 일어났다. 특히 그들 중에서는...
위정척사파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다 조선을 위한 충정이 있었다. 그렇기에 서유화를, 부정으로 봤었으나 이는 그들의 얼을 지키고 절개를 위해서며 조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백성의 목숨을 함부로 저울질 하지 않기 위해서 참았고 서역인들을 알려고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서유시찰단의 정보로 알고는 점점 그들도 위정척사인 두 사람의 간신히 한 노력으로 동도서기를 감안하였다. 또 동도서기를 넘어서 서유의 사상도 넣어서 더욱 변화하고 그들의 제도를 보고 조선에 부족하고 필요한 것을 보고 배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 전쟁에서 조선을 위한 충정을 행동으로 보이려고 한다.
“북벌을 이루자! 명나라에 대한 복수와 정묘병자에서의 굴욕을 씻자!”
“주상 전하와 열성조께서 바라신다!”
“포군에 더욱 모이자! 창의포군이여 모이라! 북벌포군!”
“의병에 나설 이들은 나서라!”
지방의 양반 중 향반들은 청의 행위를 격퇴하고 북벌을 선언한 상의 말에 동조한다. 북벌은 거의 모든 유림이 꿈꾼 것이었기에 서유시찰단의 귀국 이후에 공인하고 편성한 포군에 등록했던 이들 말고도 조총을 가진 이들에게 포군에 들어오라고 권유하고 북벌의 당위성과 조선을 지켜야함을 강조했다.
포군에 등록하지 않은 북방의 포수들은 당연히 포군에 들었고 삼남에서도 포군에 지원하는 포수와 농민들이 생겼다. 향반은 각 고을의 창의포군, 북벌포군이라고 편성된 의용병의 중요한 인사를 맡으면서 주상의 명에 따라서 배를 타고 북상할 준비를 했다. 이미 내륙에서 관아에 신고하고 올라갈 이들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내야 될 세수부담이 좀 부담스럽고 속으로 툴툴거리는 백성이 많았다. 이 때에 경상도 향반들은 세수를 더 내겠다고 나서며 다른 지방도 지방관들이 닦달하자 내었다. 전비가 모이고 가산을 내놓고 공채를 향반들도 나라를 위하여 사들인다. 이런 모습에서 불만은 완전히는 아니라도 밑으로 가라앉는다. 향반이 지방의 민심과 여론을 달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