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77화 (77/221)

〈 77화 〉 (45) 병진호란(제 3차 조청전쟁)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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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였소. 금위사.”

“아닙니다. 경군 도통사 대감.”

평양성 외곽에 차려진 경군 도통부 아래의 경군 5개 군영들이 근방에 분산하면서도 지휘부가  모이기 좋게 세워진 숙영지에서는 금위사 국빈 신관호가 경군 도통사인 임태영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60대의 나이로 경군 도통사, 대장의 계급을 가진 그는 늙은 나이에서도 서역 병학에 대해서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마 이번 전쟁에서 끝나면 그는 물러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평안도 관군이 역시 훌륭하더군. 아, 내가 전임 평안도병마절도사라서 그런 것은 아닐세.”

임태영의 농담에 신관호는 웃음이 날 뻔했다가 참으면서 보고를 이어갔다. 그도 평안도 관군이 이렇게까지 선전을 해줄 것은 기대를 했었지만 상상이라서 놀라기는 했었다. 보고를 들으면서 임태영은 신관호며 평안도 병마절도사인 정기원을 칭찬하고 있었다.

그들의 장계는 이미 올라갔다. 임태영은 여기에 더해서 공적을 세운 두 사람에게 포상을 줄 것을 건의하는 장계를 올릴 예정이었다. 그 큰 공적을 세운 정기원은 아마도 영전하여서 경군 도통부에 적을 둘 수가 있을 것이었다. 임태영은 두 사람을 비롯한 공을 세훈 이들에게 포상을 건의할 생각이었다.

“아마 그대들은 훈장을 받게 될 것이네.”

“그 서역에서 들여와서 만든 제도 말입니까?”

“그렇다네, 무관이니까 자응장에 대한 것을 받을 것이야. 당연하고 아마 팔괘장도 추가가 될 수가 있네.”

경군 도통사인 임태영이 언급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포상 중에서 훈장이 있었다. 그리고 이 훈장 제도를 들여올 때에 정원이 있는 훈장이어야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유럽의 영길리인들과 법국인들이었다. 사실 이는 유럽의 기사단 문화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조선에서는 이를 청금록 같은 것에 수록되며 제사 등에 올라갈 수가 있는 이들을 한정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기면서 이를 납득하여 정원이 있는 훈장이 등장한 것이었다.

1853년 이후로 시행이 된 해당 훈장에 대한 규칙은 왕명을 통해서 나왔으며 의정부가 이를 심의하고 승인함으로서 공인이 되었다. 서역식 훈장을 제대로 받은 이들은 드물었는데 임태영의 특채로 자응장에서 꽤 높은 훈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훈장이라니...’

‘관직이며 품계도 올라가겠는데 훈장은 서훈을 고려해서 남발을 자제하라고 했으니 그 것도 받으면 영광이다. 하지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 속으로 기뻐하지만 아직 전쟁은 시작되었고 북벌도 할 수가 있기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그러한 그들의 의지를 짐작하는 경군 도통사 임태영은 속으로 조선군의 미래가 밝다고 여기었다. 그리고 경군 도통사를 찾아온 이가 두 사람이 있었다.

“도통사! 종사관입니다. 중군장께서 뵙자고 청합니다.”

“중군장이? 들라하게.”

경군 도통부의 중군장이 도통사인 임태영,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그를 자신이 머무는 군막에 들라고 하는 임태영이었다. 그 말이 있고 난 이후에 경군 도통부의 중군장을 맡고 있는 군언 심능우(초명은 심영규)와 경군 도통사 임태영을 보좌하는 종사관이 그의 군막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임태영보다는 젊어도 꽤 나이가 있는, 50대 중반인 심능우는 그를 보면서 긴장한 표정이지만 동시에 환희를 담은 얼굴로 자신의 상관인 임태영에게 고하였다. 그리고 임태영과 그 자리에 있던 두 고위 무관들도 귀를 의심하였다. 그 것은...

“그 것이, 도통사... 주상 전하의 선전관께서 찾으십니다. 주상 전하의 어명이 왔습니다.”

“어명?!”

종사관은 이미 귀띔을 받았는지 별로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세 명의 저 보다 더 높은 상관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속으로 그럴 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넘어갔다. 그리고 경군 도통부 중군장인 군언 심능우는 긴장한 표정은 사라지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도통사!”

“선전관은 모시고 있는가?”

“예. 지휘관들을 소집해서 어명을 같이 들으시지요.”

심능우가 말한 것에서 임태영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종사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평양 근방에 조선군의 중요 중추들이 모이고 그들이 함께 선전관이 보낸 주상인 이영이 내린 왕명을 들을 것이었다.

“아. 알겠네. 종사관! 다른 지휘관들도 불러 모으라. 의병장과 포군장들도 마찬가지다.”

“예!”

이런 상황에서 신관호와 정기원 모두 의아한 모습이기는 하였다. 그들은 그 왕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니까 선전관을 이미 만났을 중군장의 모습에서 짐작하니까 ‘북벌’에 대한 명령이 아닐까라고 여기었다. 중군장은 본디 북벌을 제일 강하게 주장한 인사였었다.

‘북벌인가? 정말로 우리가 북벌을 하는 것인가?’

‘북벌이라니... 평안도의 관군도 그 북벌에 낄 수가 있는가? 기쁠 수가 있지만 아 조선쪽에 너무 많은 죽음이 있지 않기를....’

정기원은 많은 우려를 하고 있었다. 승장이라고 하여도 피해를 입은 것을 알기에 그러한 것이었다. 이런 정기원처럼 국빈 신관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추격부대를 보냈지만 피해가 발생한 것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으니 말이었다.

‘선전관이 어떤 어명을 가져왔을지는 알게 될 것이다. ’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도...’

이후에 조정이 보낸 선전관이 그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에 경군과 평안도 관군의 지휘자며 포군 및 의병의 지휘관들이 다 모인 것을 알고는 왕명이 적힌 전교를 친히 선전관이 읊기 시작하였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조선군에서도 쟁쟁한 이들이 많았다.

경군 도통사 임태영 대장, 경군 도통부 중군장 겸 훈련도감사 심능우 대장, 경군 어영사 심낙신 부장, 금위사 신관호 부장, 수어사 이겸희 부장, 장용영의 대장인 장용사 이용희 참장, 평안도 병마절도사 정기원 부장, 훈련도감 중군 양헌수 정령 등 조선군의 경군과 북부 지방군 중 평안도의 중요 지휘관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전해진 왕명에 대한 전교는 다음과 같이 요약을 할 수가 있었다.

북벌에 대한 선언이 있었으며 북부의 민병대에 함경도 병력을 포함하여서 청나라와의 국경인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서 연경으로 서진할 군대는 봉천이라고도 불리는 성경, 명나라 때에는 심양이라고 불린 도시를 점령한 다음에 연경으로 진군하라고 하였으며 함경도의 군대와 함께할 이들은 청나라의 길림장군과 흑룡강 장군 아래의 병력을 제압하고 서진을 하는 군대를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삼군문과 장용영에 평안도 병영, 감영군에 그 배속의 포군 및 의병 등은 서진군으로 배속하며 수어청은 황해병사 지휘 아래의 황해병영과 합류하여서 압록강을 넘은 이후로는 함경도의 남병영과 북병영, 함경도 감영의 군대, 그리고 함경도 포군 및 의병으로 구성된 북진군이 두만강을 넘어서 북진하면 북진군에 합류하라.”

서진군, 베이징을 공략하기 위해서 투입되는 병력에는 경군의 최정예인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에 장용영을 합치고 평안도의 감영과 병영에 평안도 포군 등을 배속하여서 편성한 것이었다. 북진군은 함경도 관군에 함경도 민병대에 수어청과 황해도의 황해 병영의 합류시키는 편성이었다.

그리고 여차하면 다른 지방의 감영군과 병영군도 동원할 예정이었다. 그야말로 국운을 건 북벌이라는 것을 평양 외곽의 경군 지휘관들이며 평안도 관군 지휘관들에 의병장과 포군장들도 실감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 내려진 전교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선전관은 계속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북벌군의 총대장이자 서진군을 지휘할 이는 경군 도통사로 하고 북진군을 지휘할 이로 수어사로 하며 서진군의 도체찰사로 의주에 있는 정원용으로 임명하고 북진군의 체찰사로 조두순을 임명한다. 그리고 경군 도통사 임태영을 북벌군 도원수에 임명한다. 그대들은 북벌을 꼭 수행하고 완수하라.”

“삼가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삼가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파발을 통해서 조선군의 북벌군이 그렇게 편성이 되었다. 수어사 이겸희 부장은 자신이 북진군의 대장으로 임명이 된 사실에 놀란 모습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조선군 내에서는 청나라를 벼르고 있었던 심정이 강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북벌을 이룬다는 사실에 조선군의 무관 및 군관들이며 교관들은 매우 기뻐하면서도 앞으로의 전쟁에서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편 교동도의 삼도수군통어영에서는 민간에서 징발한 선박의 선적부를 검토하고 있었다. 교동부사가 모두 겸직하던 경기도수군절도사와 삼도수군통어사가 분리가 되어서 교동부사와 별개로 임명이 된 경기수사가 수군통어사를 겸직하는 상황이 되었다.

항해감과 경기수영을 중심으로 서역식 수상 전력을 보유한 군대, 해군을 창설하려고 준비 중인 상황에서 터진 전쟁에 경기수사 겸 삼도수군통어사로 복직한 이규철은 매우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조선군에서 만들어진 계급은 유주 나라들에서는 뭍의 군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서역 수군의 실태를 반영했다고 하기는 무리가 있다. 사관(士官)에 버금가는 위치의 간부들이 선박에 있는데 이를 장교로도 불렸던 교관들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주상 전하께서도 이를 고려하여서 교관 혹은 장교들보다는 위지만 사관 아래의 새로운 계급을 만들라고 하였지.”

실제로 과거 유럽의 상선과 해군에서는 훗날 부사관이라고 지칭되는 이들의 위상이 낮았다. 선장 혹은 함장의 권한으로 잘릴 수가 있는 숙련이 된 수부들 정도로 취급하였다. 그들의 위상보다 더 높은 것은 선박 내의 직별을 책임지는 자리들이 육군에서 칭하던 왕이 임명하는 것을 기준으로 미임관 간부인 부사관들에 해당하면서도 대우는 더 높았다.

선박의 간부, 상선사관들 아래이지만 간부에 준하게 취급을 하며 일반 수부들이며 숙련이 된 수부 혹은 고참 수부들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자리가 있었다. 이는 아무리 봐도 뭍의 군대, 육군에도 필요한 것이기에 건의를 할 예정인 이규철이었다.

“사관에 준하는 자리, 자격을 거쳐서 주상 전하의 군대에 명령하는 무관들과 군관보다는 낮아도 장교보다는 높으니까 준사(準士)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

이에 대한 건의를 생각하다가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인 경기수영 및 삼도수군통어영 아래로 들어온 관선들과 징발한 민간 선박, 그 것이 양선들인지 조선 재래의 선박들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소임을 부여하는 일을 맡은 그였다. 이규철은 이 북벌에 동원되는 조선의 관선과 민간 선박을 보면서 정말로 심혈을 다해서 북벌을 위해서 국운을 걸었다고 생각하였다.

“경기수영에서 관리하는 서역 양선도 꽤 많은 편인데 경강상인이며 그 외의 민간이 양선들을 꽤 징발하였군. 그리고 다른 곳, 저지국령 남만열도(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와 여송(필리핀)에서 수입한 나무들로 배를 만들기 시작하였어도 길어야 10년을 쓰면 다행이다. 그래도 양선 중에 동판을 박아 넣은 것들은 길면 10년 하고도 5년까지 쓸 수가 있지.”

조선에서는 자체적으로 배를 만들 나무들이 아직은 부족하면 부족했기에 이를 고려해서 양선의 수입이 많았었다. 그리고 나무를 수입하면서 전통선박 그도 아님 양자의 영향을 다 받은 혼종 선박의 출현도 이규철은 알고 있었다.

“관선들이 대규모 동원이 되어도 쌀의 물류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를 고려하였지. 북벌이 급조된 경향의 작계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도의 정비를 했음에도 말로만 들은 서역식 가도들을 조선에서는 깔기가 애매했기에 치중과 병참은 이규철이 생각하기에는 안 그래도 아직도 충분히 많다고 보기 애매한 마소들을 최대한 끌어 써도 부족하고 효율이 적을 것이라고 파악을 했기에 북벌군의 병참, 특히 북벌군 중 서진군의 병참을 위해서는 관선과 선박이 매우 필요하였다.

그리고 북진군도 덕원을 통해서 두만강 하구에 병참 물자를 내려놓는 방식으로 운송하는 방법도 고려가 되고 있었다. 함경도는 험한 산세 치고는 수레를 잘 쓰고 가도가 잘 정비가 된 곳이었다. 그래서 덕원의 원산포까지 선박이 이동하여 물자를 전달하고 함경도의 도로를 통해서 이동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덕원까지 물자를 많이, 빨리 제공할 수가 있는 것은 배이다. 아마 조정에서 듣자하니 영길리와 법국의 상선 외에도 필요하면 다른 나라들의 상선들도 고용할 수가 있다고 했던가?”

혹시나 몰라서 이를 대비해서 조선 조정은 삼도수군통어사 이규철이 이야기를 한대로 할 생각이었다, 이런 저런 것을 고려하고 유사시를 감안해서 조선의 서역식 관선들은 자위 무장 정도에서 그에 조금 더 더해서 무장하고 있었다. 이를 감안해서 과거 유주 국가들의 상선을 징발해서 임시편성했다는 과거의 수군을 모방해서 잠시지만 조선의 해역을 지키고 보급로를 보강할 작정이었다.

‘서역의 영길리와 법국 수군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줄 방법은 별로 없다. 그리고 두 나라의 손 아래로 떨어진 청나라 강남과 여송-남만열도를 거쳐서 비축한 화약 외의 여분의 초석들을 들여올 배들을 할당하고 고용한 배들에 쌀을 평시에 운송할 선단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보급을 위해서 돌려야 한다.’

이 전쟁은 이전과 비교하자면 세수 등이 꽤 커진 조선이라도 국운을 건 전쟁이었다. 그렇기에 뭍의 군대, 육군만이 아니라 수군의 역할도 중요한 상황이었다. 수군의 병참 수송이 원활하고 육군의 치중에 의병과 포군 등의 민병대가 경비하고 육상의 운송로를 지키는 병참이 잘 조합되어야만 전쟁에서 이길 수가 있었다.

‘이 충무공께서도 왜적의 바닷길을 통한 병참을 끊으셨다. 우리는 역으로 이 바닷길을 통한 병참이 차단당해서는 아니 된다.’

이규철이 이런 고민을 할 동안에 한편, 조정에서도 당연히 큰 고심이 있었다. 드디어 공채를 발행한다고 선언했으며 이를 관보에 보도하고 조정의 결정을 전하였다. 이 공채의 발행처는 오직 중앙의 호조 명의로 하였으며 조선의 지방관들도 호조의 명의로 발행한다고 명시해서 시행한 것이었다.

공채를 사들이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는데 양상은 꽤 다양하였다. 지방의 향반들 중 여유가 되는 이들, 한성과 평양에 개방장이 되어서 부가 좀 더 늘어난 곳들에서도 있었다. 그리고 공채를 사들이는 이 중에서는 대리인 1명, 혹은 여러 명의 대리인을 내세워서 공채를 사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부 외국인 고문과 외국의 상인이 조선인을 내세워서 대리로 구매하는 쪽도 있었고 다른 양상은 조정의 일부 대신들이 대리인을 내세워서 공채를 사들이는 것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공식적으로 가산을 팔아서 공채를 많이 사들인 이들 중 양반으로서 모범을 보인다는 명분으로 행한 이도 있었지만 의를 내세우면서 속으론 이를 탐하는 이가 대표적으로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공채는 얼마나 사들였느냐?”

“예, 대감. 꽤 사들였습니다. 이미 대감께오선 전비에 쓸 돈을 모으려고 파는 공채를 은자 수십만은 넘게 내셨잖습니까? 근데 그러고도 저희 같이 가난한 분가 혹은 있는 친척들에게 돈을 주어서 공채를 사들이시게 하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안동 김문의 좌장인 김좌근에게 김좌근의 머나먼 인척 동생인 자가 물었다. 그런 인척 동생의 물음에 빙그레 웃으면서 논하는 김좌근이었는데 그 모습은 인자한 부처 혹은 인자한 선비 같았으나 단아하고 우아하며 절개가 깊은 선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가 입을 열어서 논하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 것은 말일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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