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04화 (104/221)

〈 104화 〉 (54) 포스트 천명을 향한 노력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전하, 전신과 철도를 아 조선의 도성인 한성과 제물포 개방장이 있는 곳을 연결해야 하온데 역시 아리수라고도 불리는 한수(漢水), 한강이 난관이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생각을 하니 노량진까지만 제물포 개방장과 인천부를 연결하는 철도와 전신로를 만들자는 의견이 좋다는 견해가 나왔지 않았소?”

“영길리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철로를 저 한성까지 연결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길리 고문들도 바다와 같이 넓은 저 한수가 꽤 난감한 것으로 봅니다.”

“더욱이 철교를 더하면 공임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 것이 고공에 대한 돈이던 자재에 대한 돈이던 말이지요.”

조선 조정은 전신과 철도의 필요성이 아직 끝났다고 보기 애매한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그 중요성을 알고 건의하는 일이 많아지자 이를 만들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역시 있었다. 아리수라고도 불리는 한수는 당장 극복하기에는 너무 난적이었다.

“배다리 위를 철로의 기관거가 다닐 수가 없습니다.”

“또 한수의 가장 큰 문제는 장마가 있을 때에 나오는 범람과 수류가 거칠어집니다.”

“이로 인해서 들어갈 돈이 얼마나 될 지가 알 수가 없습니다.”

주상인 이영은 신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장 철교 영조는 하지 말 것을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공임비가 철교를 포함하면 훨씬 더 들어갈 것이라고 이영도 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상상 이상이라고 말하는 호조의 관원들, 영길리 고문 중 토목고문의 단순 계산으로도 표정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적게 잡아도 수백만 냥이었다.

“은전으로 수백만 냥이라니...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군.”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말이 수백만 냥이지, 그 이상의 돈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전쟁에 많은 돈을 소모하고 있는 조선에서 철도의 개통을 위해서 기획하는데 무리한 한강 철교까지의 개통은 속된 말로 영혼까지 끌어 모으고 영길리의 기술력으로도 막대한 돈을 부은 이후에 파산할 수가 있었다.

“역시 철교의 영조는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낫다고 보옵니다.”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일세.”

“예, 전하.”

대체로 신료들도 철교를 지금 무리하게 지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혹시나 다른 것도 추가의 검토가 필요했었다. 그리고 영길리인 격물학(과학) 고문들도 토목에 대한 조언을 하는 쪽들이 더 있다면 당장 쉬운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 조국의 기술이 좋다고 해도 힘들 수가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자재의 조달, 철근과 석회석 등 시멘트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들이 조선에서도 있겠지만 운송하기가 힘들 것이지요. 특히나 철은 영국에서 들여온다고 해도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공사비가 매우 늘어날 것이지요.”

“역시 그러한 일인가?”

고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상인 이영과 조선 조정은 철교를 영조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어서 철저한 검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당장은 얇은 하천은 적은 돈으로 철교와 다리를 깔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것도 하천의 장마 시에 얼마나 범람을 하는가도 계산을 해야 함이 당연하지만 한수, 아리수라고도 불리는 저 넓어서 바다인 줄 알았다고 소리를 듣는 한강에 비하면 매우 쉬운 것이었다.

물론 이전에 검토를 했던 굴포천을 준설하고 이를 바탕으로 운하를 만드는 것보다는 철교가 오히려 더 이익이 될 것이라고 신료들과 이영은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은 조선은 철도를 개통해도 일정시기, 아니 나중에도 꽤 오래도록 하천 등의 수운을 의지해야만 했었다. 이것도 유럽의 양상을 서유시찰단이 들은 것을 고려해서 한동안은 병행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귀결이 되었다.

“지금 당장은 인천 제물포 개방장을 시작으로 노량진 근방까지 연결이 되는 철로와 전신로를 부설하는데 확정하는 것이 좋겠지. 경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철교의 완성과 전신로의 확장은 나중에 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전하.”

“신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경인 철로와 서부 전신로를 확정한 조선 조정이었다. 그리고 다음 안건으로 들어가는  조선 조정은 그 안건은 자못 심각할 일이 있었다. 조선군이 풀어주기로 해서 풀어준 포로, 황제와 청나라 고관들에 경사 팔기 중급 지휘관 외에 한동안 억류하기로 한 포로들의 식량 문제가 점점 심각하였다. 그래도 요양과 성경의 창고를 털어서 포로들을 먹이고 백성들을 먹이고 있기는 했었다.

“포로들이 북벌군보다는 많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경 등 점령지역이며 우리가 봉천조규에 의거해서 할양을 받은 영토에서 이를 관리하는 중에 포로들을 어떻게 처우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 우려가 있습니다. 또 우리의 통치에 순응할 자들을 구분하고 그렇지 않을 자들을 미리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전하.”

물론 아직 식량 문제가 더 생기지 않게 최대한 해상 보급로를 유지하고 있는 조선군이었다. 현재 조선 본토에 억류가 된 청나라 포로는 2천 명이 넘었다. 그리고 요동 등에서 붙잡은 포로들도 제법 많은 수였다. 다 합치면 포로가 2만 명 내외였다.

이들을 어떻게 처우를 할지를 생각했는데 이는 봉천조규에서도 명확하게 잡지 않았다. 다만 조선에서는 이들을 몸값을 받고 풀어줄 생각도 했었다. 주방팔기 출신이면 더 몸값을 받아서 풀어주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전쟁포로를 노비로 만들었던 전조의 전례들도 검토하기로 하였다.

다만 공노비를 폐지한 조선에서는 공노비를 부활시키지 않는 이상, 그들을 공노비로 만들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포로들을 공신으로 봉할 이들의 사노비로 분배할 생각이 없는 이영이었다. 그래서 다른 대안들에 귀를 기울이는 그였는데 혹하는 것이 나왔다. 그 것은 전쟁포로를 조선에 죄를 지은 죄수로 간주해서 포로이자 죄수로 역류해 노역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우리를 침노하고 우리의 북벌군과 싸운 자들을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일부면 족하다고 봅니다.”

“노비로 삼으면 사노비들이 되는데 이는 도리가 맞지가 않습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인데 공신들을 벌써 만들고 그들에게 벌써 노비를 나누는 것이니까요. 그럴 것이면 노비 대신에 저들에게 노역형을 부과하고 10년 넘게 일하면 그 유무에 따라서 풀어준다면 된다고 봅니다.”

“형옥을 응용해서 포로들을 그렇게 다루자는 것인가? 몸값을 받아내지 못하면 말인가?”

“그렇습니다. 물론 몸값을 내면 풀어주고요.”

조선 조정을 위해서 일하는 서역인 고문들은 전쟁포로들을 노예(서역인들은 노비를 보고 노예라고 그냥 단순하게 생각했다. 다만 특수성도 있는 예속적 왕민이라는 사실도 인정했다.)로 부리는 것이 아니라 포로들에게 노역형을 지시하는 것으로 자국에 범죄를 저지른 외인 죄수로 취급하는 것을 합당하다고 찬성을 하였다.

그리고 몸값을 내면 석방하는 것도 마냥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였다. 이영도 이를 들으면서 굳이 몸값을 못 낸 청나라 포로들을 굳이 노비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여기었다. 게다가 몸값을 내게 하는 것은 과거의 병자호란 등에서 포로로 잡혔던 조선인들을 생각해서 갚아주는 것도 있었지만 말이었다. 그 사이에 노역을 시키는 것은 같았고 그들이 몸값을 내던 안내던 큰 상관은 없었다.

“그나저나 성경을 약탈해서 보낸 물자들이 꽤 된다고?”

이제 조정의 논의는 청나라 포로들에 대한 처우를 대체로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다른 논의는 북벌군이 조정에게 바친 성경에 대한 약탈 물자에 대한 것이었다. 성경 봉천부 중 궁성인 성경 고궁을 털지 않고 내성 중 만주인 구역 등을 약탈해서 얻은 것은 은자만 10만 냥은 그냥 넘는 것이 나왔다. 이를 전비로 그들이 바쳤다.

“그렇습니다. 꽤나 많은 돈이 쌓여있었다고 합니다. 거의 대부분 만주인들 구역들만을 주로 약탈했습니다. 고궁 밖의 봉천부 관아에 속하는 창고에서도 은자 등을 털었습니다. 다만 식량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들었지요.”

정확히는 장계로는 추정하기에 수십만 냥 이상은 약탈했는데 장졸들에게 포상으로 나누어 주고 남은 30만 내외를 이렇게 조정에 그들이 바친 것이었다. 그들에게 다른 포상을 내려줄 생각인 이영이었다.

‘청나라와 사대를 청산하고 교린이라는 것은 조공책봉에서 독립을 했다는 것이다. 서역을 모방한 훈장 외에도 봉군제를 대신해서 이 조선이 세워질 때의 봉작제도를 참조해야겠지. 이 또한 군국기무아문에서도 논의를 해보라고 지시를 해야겠군.’

“그 외에도 보고가 또 있었는가?”

“그 외에도 군기시와 병조에서 천축산 초석에 서역 방식 제법으로 만든 화약을 더 비축하고 들여와야 한다고 아룁니다. 보리가 수확이 되면 그 보리들을 사들여서 건양병을 만들기 위해서 호조에서 협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러한가? 병조의 참판과 호조의 참판이 더 협의하고 나와 의정부에 그 문서를 올리라.”

“예, 전하!”

“알겠사옵니다. 전하!”

그들은 정무를 꽤나 많이 신경을 쓰고 있었다. 병조에서는 건양병과 화약의 비축과 수급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호조와의 실무 협의로 넘기고 그 안을 보고 재가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다른 결정들도 하고 있었는데 은항의 개설은 거의 끝나는 상황으로 늦어도 내년에는 조선국 관립은항이 세워질 것이었고 중추원의 개조는 빠르다면 내년, 늦어도 3년 뒤에는 재편을 끝낼 생각이었다.

또 신지라고 임시로 명명한 광대한 땅들을 관리하고 다스리기 위해서 조선의 원래 땅에서 조선인들을 사민을 하는 일도 검토를 하고 있었다. 주로 검토가 된 이들은... 사노비의 주인들이, 수가 원래도 줄고 있던 사노비들을 점점 해방하는 조건으로 대가를 크게 받는 식으로 갔었다. 그들이 해방한 사노비들이 개척하는 땅을 그들을 소작농으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우선으로 매입할 수가 있는 권리 등을 말이었다. 다른 것은 화전민들에게 대한 것이었다.

“화전민들은 국법을 명백히 어기었습니다. 하오나 그들은 유민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떠도는 이들을 더욱 정착하기 쉽고 새로이 시작을 할 수가 있게 지원을 하면서 아국 조선인들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화전민들의 수가 많기는 해도 이들을 한 번에 다 보낼 수가 없기에 죄를 회유하는 대가를 가지고 이주시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화전민들, 최대한 100만이 넘을 수가 있을 이들을 생각하면 조선의 통치에 따르지 않을 이들을 추방하면서 조선의 백성들을 이주하는 방식이었다. 사노비들을 그 방식으로 해방해서 보내는 방식도 추가를 했었다. 다만 화전민 외에도 이주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으로 고심하였다.

“관에서 주도를 한 가아가사 나무(가짜 아카시아 나무, 아카시 나무)를 멋대로 벌목한 자들도 적발해서 그 죄로 북방으로 이주시키실 생각입니까?”

“화전민들과 달리 이들은 용서하시지요. 전가사변 외의 사민이 지나치게 강제라면 세종대왕 시절의 4군 6진 개척도 실패할 뻔 했습니다. 이를 생각하자면 도리어 효용이 적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이 신지에 이주하면 이를 장려하게 토지 등에 대한 것을 주시지요. 추워서 수년간 개간을 해야 하니까 그동안 소출도 적을 곳들입니다.”

그 의견에 매우 일리가 있다고 여기는 주상인 이영이었다, 다른 신료들도 사민을 지나치게 강압으로 한다면 효과가 적을 것이라고 여기었다. 화전민과 해방이 된 사노비 일부, 땅을 미끼로 이주할 이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화전민 외의 벌목을 제한하는 등의 법령을 어긴 자들은 대신에 다른 벌을 받기로 하였다.

“대신에 벌목을 제한하던 법령을 어긴 이들 중 심각한 이들은 전가사변을 하시지요. 가볍게 어긴 자들은 대체로 가아가사 나무의 묘목들을 두당 10개는 넘게 심어서 관의 식목에 도우라고 하시지요.”

“심각한 이들만 전가사변을 하고 다른 이들은 그런 식으로 한다면 전하의 자비에 감사를 할 것입니다.”

사민을 해도 어디 지방을 주로 뽑아서 보내야 할지에 대한 논의로도 이어진다, 그들은 주로 인구가 많은 곳인 경상도 등지에서 주로 뽑자고 이야기를 하였다. 북도를 중심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꽤나 많은 말이 나왔다. 나중에 입을 여는 것은 역시 주상인 이영이었다,

군국기무아문의 보고를 통해서 생각을 미리 정리하고 있던 일이라서 최대한 많이 알고 이를 절충하고 결정할 수가 있는 역시 임금이었기에 그렇다. 이영의 결정은 다음과 같았다. 물론 주장들을 절충하고 이를 조정하는 것이었지만 말이었다.

“북삼도, 평안도와 함경도에 황해도의 인구들이 너무 지나치게 빠져나가면 좋지 않겠지. 하지만 삼남의 백성들은 더욱 적응하기 힘들 것이오. 그래서 북도 주민들을 붙이고 현지의 한족 등을 이용해서 아국 국인들 더 적응시켜야 한다. 삼남과 중간의 경기와 강원도 이주할 의향의 사람들을 모아서 보내는 것이 옳다. 다만 이는 전쟁이 완연히 끝나면 행하야 한다.”

“전쟁이 끝나면 빨리 실행을 할 수가 있게 처리를 하겠습니다.”

“의정부의 관원들이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전하.”

“군국기문아문도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임금인 이영의 하문에 역시 신료들은 그렇게 하는 절충이 최선이라고 여기었다. 게다가 인원을 옮기는데 육지가 가까운 곳들이 비용도 덜 들었다. 선박이 있지만 전쟁이 끝나고 운송을 할 때에도 가까운 육지만큼의 비용 감축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 좋소. 헌데 내가 경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있다오.”

“무엇입니까? 전하?”

“하명하시지요.”

“저희들은 그저 들을 것이니까 말입니다.”

조선의 왕인 이영이 신료들에게 입을 열었다. 평시는 사람이 좋고 인간적인 면모도 가진, 그러나 공사를 구분하는 왕의 얼굴은 제일 진지한 모습이었다. 청나라에 대한 선전포고를 선언할 때의 모습보다 더 그렇다. 그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담기었다. 신료들은 용언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지금까지 여러 번 생각을 하였소, 조선은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해서 말이오. 우리는 조선에 가장 큰 명분과 이익을 위하여 움직일 것이오. 그 명분으로 타국에 해가 가더라고 우리가 명분을 지키고 이익을 얻었다면 족한 것이라고 보고 있소.

나의 안에서 우리는 오직 조선과 조선에 매우 우호적인 외방의 사람들만을 말하오. 비록 명분과 도덕을 따진다고 하여도 이익은 챙길 것이라네. 원래도 나라의 운영은 그럴 수가 있었지만 이 시대에서는 더욱 그런 것을 요구하는구려.”

그 말에 조선이라는 나라의 제일의 유자가 되어야 할 자, 주상인 그가 하는 말이라도 시대의 변화를 감안하니 복잡하였다. 다만 성리학으로 입각해서 통치해도 세상은 단순히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괜히 국조보감이 있는가? 전례를 알고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서 명분과 도덕을 이영은 그런 전례를 보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말할 뿐이었다.

기실 조선은 언제나 명분을 방패로 이익을 챙겨왔다. 여러 선대의 임금들도 같았다. 다만 지금 시대로는 그 것이 더욱 필요하였다. 아마도 계한의 소열제 같은 이가 지금의 주상이 가지고 생각하는 이상적 군주일 수가 있었다. 더 유자에 가까운 소열제, 이것이 바로 상이 생각하는 모습일 것이었다.

‘우리는 주상을 위해서, 조선을 위해서 일한다!’

‘이런 임금과 대립할 수 있는 나도 대단하였다. 그리고 무모하였지. 더 큰 분이 되셨군요... 전하! 전하의 외숙인 이 좌근은 문중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발버둥을 치겠소!’

‘주상 전하는 마음이 복잡하신가? 당신의 사람이 되려고 보다 더 발버둥을 치겠습니다.’

총신이던 대립하는 신하이던 모두 가리지 않고 주상을 높이 평가한다. 그들의 속을 주상은 그저 짐작하면서 그들을 옥좌에서 내려다본다. 저마다의 표정은 결의가 가득차거나 왕을 다시 재보려는 모습 등 다양하다. 왕의 굳은 표정 속의 마음은 이영, 그 자신의 위선을 씁쓸해하고 있었다.

***

정무 회의를 한 이후에 정말 오랜만에 총신들과의 면담을 가지고 있는 주상, 이영이었다. 그와 만나는 총신들이 네 명이었는데 환재 박규수, 추사 김정희에 김병학과 김병국 형제가 말이었다. 주상인 이영을 향해서 박규수가 물었다.

“주상 전하, 앞으로 우리 조선은 어떻게 될 거라고 보십니까?”

“모르겠습니까? 환재?”

이영은 총명하고 동년배로 배동 이상의 연을 이어온 환재 박규수를 보면서 웃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환재 박규수는 그 자신도 함부로 예단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였다. 그가 답을 못하는 사이에 김병학과 김병국 형제 모두가 이야기를 하였다.

“전하, 중화가 사라지고 저 중화를 자칭하였고 실질로 중화에 가까웠던 청이 쓰러질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청을 쓰러뜨리는데 일조하고 있지요. 앞으로 조선은 어떤 길을 걸을 겁니까?”

“신도 미욱하여 앞날이 보이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우리가 걸어야할 길은 오롯한 독립된 나라로서 서역의 만국공법에 의거한다면 주권을 오롯이 행사하는 그런 나라가 되었다. 그러면 그 조선은 그런 미래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청나라 아래에서 제한이 된 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조선은 나아갈 수가 없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이영은 그런 신하들을 보면서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중화지만 중화가 아니고 소중화를 넘어서 조선만의 중화, 해동 중화를 이루면서 조선만의 천명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 답에 총신들은 놀랄 표정을 지었다.

“영초(김병학의 호), 영어(김병국의 호) 그리고 환재와 추사 그대들에게 나는 말하겠소. 조선은 이제 우리만의 천명을 걸을 거라고 보오. 사대를 끝나는 것으로 우리는 이 중화에 속하지만 중원의 중화와는 분리가 된 중화를 이루는데 이 것이 우리만의 천명 아니겠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