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54) 포스트 천명을 향한 노력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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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천명 말이옵니까?”
“천명.... 천명.... 조선만의 천명... 소중화가 아니라 조선도 중화인 것입니까?”
원래 성리학적 중화, 나아가서 유학적 중화는 하나의 중화를 주창했었다. 이는 힘의 강성함이 아니라 문물의 강성함을 바탕으로 중화를 논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하나의 중화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 그 기준을 다시 세우는, 자신들이 중화라고 칭함은 그만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었다. 옛 중화를 이을 자격을 가진 나라인 것을 말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중화가 아닌 복수의 중화를 주창하는 것은 유학적 중화에 의거한 하나의 중화만을 주장함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금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고 중화에 버금가는 문물을 가진 보편도덕을 향유하는 서역권역도 중화에 버금가는 문명이기에 그들은 유학적 중화가 아니지, 문명, 중화가 맞았다. 이에 대해서 이영은 이에 빗대어서 의도를 함이 여기에 조선은 유학적 중화의 일부이지만 다른 중화를 만드는 것을 조선의 길이라고 주창하였다.
조선의 유림들 일부에서도 소수지만 논했던 것을 주상인 이영이 제시하고 있었다. 서역 문물도 받아서 조선의 문물을 발전시키는 일이 있는 이 때에 조선은 서역의 문명과 이 근방의 중화를 다 교집합을 하여서 중화지만 다른 중화로 거듭나야 하는 일이 조선의 일이요, 조선만의 천명을 세우는 것이었다.
“조선도 중화이지, 다만 더 거듭남이 필요한 중화일세.”
이영의 미혹이 없는 답에 그 결심과 의지를 알았다. 다만 그들은 그 조선, 만국공법에 의거한 자주한 조선, 홀로 서는 조선인지 아닌지를 물었다. 그 질문들에 이영은 그저 웃으면서 그 말이 옳다고 긍정하였다.
“이제 우리만의 천명을 걷는다... 그럼 그 조선만의 천명에서 우리 조선은 오롯이 홀로 설(獨立) 조선입니까?”
“독립하고 자주한 조선의 천명인겁니까?”
“그렇소, 청의 번국에 속하여 저들과 사대관계를 청산한다면 오롯이 홀로 선, 독립한 조선이 그리고 고고히 있을 조선국, 아니! 대조선국이 우리의 천명이자 천하요!”
그 대답에 4명의 총신은 반대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았으나 조공책봉체계를 무너뜨린 것도 조선이 되고 있었다. 게다가 봉천조규로 청나라에 대한 사대를 폐하고 교린은 당연히 독립하고 대등한 이들끼니 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조선은 자주국으로 바뀌었으며 자주국의 조선이 걸어야할 방향을 이영은 꽤나 훌륭하게 제시를 하였다.
그리고 영길리 등 서역의 대국을 인정하지만 교린을 할 뿐이었다. 예로서 대하고 서로를 꽤 동등하게 이용하려고 말이었다. 다만 영길리 등의 서역하고는 동등한 교린이라기는 장애물들이 많았지만 말이었다. 그러다가 추사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임금인 이영에 물었다.
“허면 건원과 칭제를 하시겠습니까?”
“그건 중하지만 아주 급한 건 아니요. 당장의 조선을 더 강하게 할 거에 궁리해야 되지 않겠소? 다만 우리 조선의 격을 조금 올려야겠지! 우선 건원만 합시다. 왕이란 호칭은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정희와 김병학은 청나라와의 충돌도 고려해서 칭제에 신중한 것을 알았다. 그래도 칭제는 왕이라는 명칭이 제후의 봉작 중 일부가 된 이 동양, 동아시아 근방에서는 매우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였다. 이는 주상인 이영도 인지를 하여서 왕이 아닌 새로운 명칭을 정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이유였다.
물론 조선에서는 왕을 대왕으로 불렀고 선왕도 정식명칭에는 대왕이 들어가지만 왕이 조선과 그 근방에서 가지는 위상은 제후 중 가장 높은 봉작이었다. 이는 서역에서도 대공과 제후왕과 비슷한 종속국의 군주 등을 생각한다면 새로운 명칭을 만드는 것이 옳았다. 다만 이 것이 왕의 연장선상에서 왕보다 높은 자리로서 왕이 들어가느냐 아니냐의 과정도 필요하였다.
“뜻을 받잡아 이해합니다. 전하!”
“아니, 곧 폐하가 되시겠지요.”
“하하하! 폐하라니. 확정은 아니지만 예정이라도 그렇게 들으니 기쁘오.”
박규수, 김정희, 김병학, 김병국과 좀 늦게 까지 대화하는 이영이었다. 이영은 새로운 호칭은 생각한 것이 있지만 개인으로는 서역의 국왕이라고도 칭한 것을 대군주(大君主)로 번역하는데 이를 그냥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영 본인도 예상치 못하게도 하나의 발견으로 나온 고전 칭호가 대군주와 경쟁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왕을 올려 칭하던 것이기도 하지만 추론하기론 고대 삼국 시절에 썼던 칭호가 말이었다.
***
관보에서 중추원을 개편하여서 백관회의와 같은 자리, 마치 비변사처럼은 아니라도 안건을 듣고 심의하고 개정하는 권한이 있다. 그리고 백관 중 조정 내부의 인사에 한해서이지만 일부 인사들을 의정부와 임금한테 천거를 할 수가 있는 권한을 가지는 저 영길리국의 의회 같은 것을 만든다고 보도를 한 것은 당연히 유림들에게는 장안의 화제였다.
“이는 기회입니다. 주상 전하께오선 관보 등의 신문 외에도 우리 유림을 중심으로 언로를 더 열겠다는 것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언로를 수렴하는 역할을 중앙 조정의 저 새로이 바꾸는 중추원으로 하시겠다는 것 아닙니까?”
“언로가 막히지 않게 상소문에 대한 비싼 세금을 올리시고는 종이가 흔해진 것을 활용해서 종이로 서역의 신문 등 보도하는 것들이 등장해서 조정이 관보와 신문으로 언로를 파악한다고 하오. 하지만 그래도 언로를 더 확인하시려고...”
“그럼에도 이런 것을 하시었지. 주상 전하는 다른 방식이지만 정학을 준수하고 이를 이끌고 있지 않소.”
유림들 중 산림의 도를 인정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 중에서는 생각이 달랐다. 산림과는 다른, 사실상 조정에 출사할 정도로 학식이 있는 이들을 뽑아야 하는데 그 것이 20명 정도였다. 그 것은 지방에서 어떤 사람들을 뽑을지에 대해서 유림들이 논의를 이미 해야만 하지 않은가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는 산림이 아니요. 도당은 더욱 아니고 말입니다. 영길리국의 의회를 아국의 실정에 맞게 바꾼 것이겠지요. 지방의 향약을 주관하는 향회를 중앙에 두는 것 같습니다.”
“향회를 연상하는 것이 있기는 하다오. 수령을 견제하는 향회와 사간원 등 삼사가 전하와 의정부를 견제하듯이 중추원에게도 언로를 전하고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주신 것 아닙니까? 또한 의정부만으로 합의하기 어려울 나라의 중대사인 사안에는 중추원도 참여해서 심의한다...”
경재소가 아닌 향회의 강화판이 중앙 조정에 나타나는 이례적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다만 지방 향회들을 운영하고 수령과 다시 상호견제를 하면서 향회의 위상이 높고 이에 참여하는 향반들의 문중은 위상을 다시 굳건하게 하였다. 주상인 이영의 경장을 완전히 동조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향회를 굴려본 이들이면 중추원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에 짐작을 하였다.
“주상 전하께 유림의 언로, 백성들의 언로를 전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게다가 관직도 마냥 낮은 것들이 아닙니다. 당상관의 자리에 맞는 이들이 앉아야지요. 전직 관료들 중 청렴하고 좋은 이, 지방의 유림이라도 명망이 높은 거유(巨儒)를 추천해야지요.”
“조정의 명망이 있는 이들도 중추원에 추천이 될 것이 말입니다.”
“주상 전하께서 언로를 막지 않지만 혹여 잘못이 된 길을 가려고 한다면 신하로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해 입만 더 아프지요. 당연한 것을!”
위정척사 성향의 사람들이라도 문물의 유용성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서역 석학의 도를 꽤 인정하지만 정학에서는 인정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기에 그들은 고심했었다. 서역의 여러 도리들 중에 지나친 것은 경계하였다.
무분별한 수용은 막고 조선이 숭상하는 중화의 도를 지키고 조선의 얼 등을 지켜야만 했었다. 이는 혁신유림도 주체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고 동의는 했었다. 그렇지만 위정척사와 혁신유림 등은 이 역치에 대해서 이견은 있었다.
“조선에 도움이 되기 어려운 것은 최대한 배격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중에 상황에 맞으면 도입하면 그만.”
“조선의 상황과 정말 맞지 아니한 제도는 그렇게 해야 하고 조선의 사정에 맞게 반영하려고 잘 검토하고 부담이 적은 것을 되도록 직접 해야 하오나 시대에 맞게 변하는 일도 생각해서 더 열린 마음으로 해야지요.”
“아 조선의 얼을 지켜야 한다. 서역의 도가 좋더라도 우리의 얼을 해치면 반대해야 하는 것!”
“정학도 아국의 얼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정학도 변하고 시대도 변하는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 얼도 변하여도 조선의 얼이 주체가 되어서 유주의 문물도 도도 가져와서 중용을 해야지요.”
여기 있는 유림들도 수년 전의 서유시찰단에 참여하여 서역을 돌아보고 온 화서 이항로와 노사 기정진이 불러온 여파는 지대하였다. 이미 내부의 이견 충돌이 있었다가 삼남의 유림 핵심 중 2명이 이렇게 가면서 여파는 더욱 커졌다. 그리고 상주 출신으로 대과에 나서지 않고 후학을 기르는데 열중하였던 곧 40대가 되는 선비, 한주 이진상은 시대의 변화를 알고 조규로 사대의 예를 폐한 것은 마땅하다고 하였다.
‘(중략) 더 나아가서 조선은 칭제하고 건원함으로서 마땅히 명 이후 사실상 사라진 중화를 조선이 잇는 것이 마땅하기에 칭제를 해야 한다. 여전히 대국인 청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중화가 아니게 영락을 하였다. 조선은 이미 곧 중화이다. 아니 설령 양보를 하여도 조선도 문물이 우수한 중화이니 다양한 중화가 난립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중화는 이제 정학에서 말하는 중화이기도 하고 아니다. 조선만의 중화는 소중화를 넘어서 조선중화로 거듭나자.’
이진상이 상주와는 좀 먼 동래에 있는 동래부민보에 기고한 내용의 일부는 이랬고 그는 이전에 동래에서 지내다가 돌아오고 서역인들을 만나면서 주리론을 여전히 고수하지만 유용한 기물 기들은 선한 이로 활용하면 문제가 없다는 식의 방안을 주창하고 서역의 높은 석학도 필요하면 수용하자고 논했었다.
서역의 기를 다루는 이들도 통하며 서역의 리도 조선의 리를 중심으로 흡수하고 변모하자는 것이었다. 변하여도 본질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으면 화라는 논지로 말이었다. 한주 이진상이 기고한 글은 관보와 위쪽 지방으로도 퍼져갔다. 그리고 상당한 논란이 일어났다.
“한주의 말은 변화한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오. 서역에 견문하지 않고도 시대의 흐름을 알고 그러면서도 정학과 변화를 모두 잡으려는 시도를 함에 동조한 것입니다.”
“이런 간교한 말장난을 한 것이! 중용을 인정하여도 조선만의 중화라니! 조선은 주로부터 비롯된 천과 그 천명이 만든 중화란 문명을 계승한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중화, 문명은 다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중화라는 것은 자부심입니다. 정학으로 우리는 소중화인데 이를 넘어서 조선만의 중화로 본디 정학에서 말하던 중원의 중화를 이으나 조선 근방에서 아국의 문물과 서역의 문물로 오롯한 중원의 중화가 아니니 조선만의 다른 중화가 되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의 중화는! 정학 내의 중화 개념은 한 문명은 정학에 의거한 중화만이 유일한 문명인 것을 포기한 것이지. 하지만 아직 하나의 중화는 유일한 문명에서 분리되었어도 빛나는 문명일세.
우리가 청을 이기고 문물의 강성함으로 갈 여지를 위해서 조선은 곧 중화지만 그 중화는 조선만의 중화가 아닐세. 이 동방을 아우를 하나의 중화를 계승해야 하네. 그래도 우리의 여건 상으로는 그 중화의 땅이던 중원을 지배해서는 아니 되고 또 힘들지만!”
이런 장안의 논란을 알고 대표하듯이 혁신유림과 위정척사파 성향의 두 유생, 성균관에 재학 중인 30대 내외의 젊은 두 유생들이 이렇게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말은 다 일리가 있었다. 다른 성균관 유생들도 이를 흥미가 있게 지켜봤다. 성균관 대사성도 아랫사람들을 말리지 않고 그 토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중화의 천명은 우리가 부수었지요. 중국의 중화를 힘으로 부수었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명의 유민들이었던 대청 아래의 한족 백성들이 우리는 정녕 대명을 승계하는 유일한 중화라고 인정하겠습니까? 저 대청도 도리어 이를 극렬히 거부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사실상의 중화였음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우리는 조선만의 천명을 세워서 다른 중화로 가면 됩니다. 옛 중화 근방에서 중화가 여럿이 될 수도 있지요. 사실상의 중화와 소중화였던 조선과 남월 등을 생각하면야... 사대하지 않고 교린해도 대국이지만 우리가 더 이상 청의 천명을 따르지 않지요. 자주한 독립국이기에 도리어 이럴 때에 조선만의 천명, 중화를 선포하고 내세워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렇소. 하지만 나중에 칭제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천명을 얻었다! 이를 보여야 하는데 그 천명을 우리가 부수었기에 조선에게 천명이 넘어온 것이오. 그런 우리가 유일한 중화를 칭할 자격이 뭐가 없겠습니까?”
“그들의 중화를 우리가 빼앗는다고 해도 도리어 우리가 그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청은 청이고 우리는 우리입니다. 우리가 대명을 이어도 사라진 대명의 외번, 혹은 제후국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칭제요!
저기 서역에서 찬탈자라고 소리를 듣는다지만 나파륜은 법국 백성들의 민심으로 법국만의 천명을 만들고 스스로 제왕이 되었습니다. 서역에서는 우리의 중화와 같은 라마의 황제 자리를 이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데 말입니다. 그는 그럼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조선국인들의 지지로 주상 전하께오선 그깟 칭제?! 황제, 천자를 칭할 수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별로 할 생각이 없어 보이시는 것이지.”
“조선국인만의 지지와 민심으로 천명을 창출한다. 조선만의 천명.... 아아... 그래 민심은 천심이거늘! 조선만의 천심으로 천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조선만의 천명이 이 근방 모두의 천명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런 일이 있기를 나도 바라오나 당장은 그럴 수가 없을 것이라고 여기니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논지를 부분으로 수용하였지만 혁신유림인 유생의 승리라고 여기었다. 이는 위정척사 성향의 유생도 속으로 매우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간과한 것을 알려주어서 고맙소. 맹자를 까먹었고 조선도 능히 그럴 수가 있다. 역성혁명을 생각해서 이 것이 그 동역 천하에서 우리 조선의 국성이 동역 천하의 국성이 마땅히 될 수가 있으니 하나의 중화를 칭하고 이으며 될 수가 있다고 여기었지. 헌데 조선만의 천명 이후에 이를 행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드오.”
“나중이 어떨지 모르나 당장은 그게 옳다고 봅니다. 다만 우리가 유일한 중화를 칭할 자격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 않게 됨이 귀하와의 토론 덕이었습니다.”
격렬한 토론이었지만 그 끝은 매우 깔끔하였다. 그 주변에서 박수와 환호함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야 주변을 확인한 그들은 무안하였다. 그리고 성균관 대사성이 앞으로 나서서 두 유생을 칭찬하였다.
“두 사람은 생각이 다르고 연배도 다르지만 훌륭한 정학과 천하의 이치를 놓고 훌륭한 토론을 벌였다. 정학의 이치는 사람마다 다르나 이와 기가 있다! 이와 기는 떨어질 수가 없고 결국은 이를 중심으로 나아간다.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이라도 본질은 이가 중심인 것과 같이 말이다. 이도 필요하고 기도 다 필요하다. 저들의 토론은 다른 의견도 있고 천하를 조망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보였다. 모두 본을 받고 움직이라!
또 앞으로 바뀔 성균관이다. 그러나 본디 정학을 수학하고 관료들이 되기 위해서 수양하는 곳이었다. 이를 생각한다면 아 조선을 위한 경륜과 이치를 아는 혜안을 가진 인재들이 되어라! 이 것이 대사성인 내가 그대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다!”
갑자기 나타난 성균관 대사성의 연설이 끝나자 성규관 유생들은 얼떨떨하다가 박수를 치면서 다시 그들의 열띠고 멋진 토론을 칭찬하였다. 그들의 토론은 그들이 보기에도 저기 사단칠정에 대한 정립을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서 있었던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열띤 논쟁에 버금갈 정도로 말이었다. 두 사람의 생각이 잘 드러나면서도 열띠고 다 일리가 있었다.
“예 대사성!”
“소인들을 그리 높이보시니 감사를 드릴 따름입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자신들의 토론이 주목을 받게 될 것은 아까부터 속으로 어안이 벙벙하기는 하였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학식과 혜안을 보이는 것이 되어서 이내에 점점 기뻐하였다. 그 박수와 환호에 대해서 말이었다. 그리고 대사성의 칭찬에 더욱 뿌듯하였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대사성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저들을 보면서 성균관에 인재가 있음을 알고 기뻐하였다. 앞으로 성균관은 전조 고려의 국자감 같이는 재편하지 않았다. 국자감 같은 역할을 하게 신식의 대학이라는 것을 세우는데 대신에 성균관은 다르게 재편하였다.
법국의 ‘그 콜레주’, 법국 황립 콜레주가 되었다는 곳을 본 따서 정학과 인문학이라고 정립한 것들을 가르치는 쪽이며 고위 신료들이 될 이들의 정학과 인문학 연수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말이었다.
‘한성대학에 대한 전교가 완성이 된다면 성균관도 재편이 되겠지. 그래도 저들은 이 곳에 남아서 도움이 되었으면 바라지...’
“자네들의 이름과 호가 무엇인가?”
겉으로 보이는 연배 상으로는 30대 이상일 두 유생들은 조심히 자신들의 이름을 꺼냈다. 사실은 한 사람은 곧 서른이 되는, 아직 몇 년은 이른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40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나이가 많은 이가 먼저 밝히었다.
“성재 유중교라고 하옵니다.”
“저는 난포 강문형이라고 합니다.”
“난포? 혹여 젊었을 적 주상 전하께 꽤나 맹랑한 상소를 올렸던 이가 그대로군! 그리고 성재라고? 그럼 그대가 화서 영감 밑에서 수학한? 또 지금 유림에서도 명망이 있는 중암과도 사형제인가?”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스승님께는 부족한 제자입니다. 사형께서도 유림 외에 주상 전하의 충성스런 신료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개를 듣자 대사성은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아쉽다고 생각하였다. 저런 인재들은 의정부 등 조정의 인사로 쓰여야 하는 것이 옳았기에 말이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마음을 말하면서 두 사람을 칭찬하였다.
“허허! 아국에 인재가 많다는 것을 내가 다시금 느낀다오. 그대들은 주상 전하와 아 조선의 유능한 신료들이 되어주게. 이 성균관, 바뀔 성균관에만 두기에는 아까운 사람들이구려.”
“과찬이십니다.”
“더 배워야지요. 더 서역의 석학들도 알아서 조선을 위해 쓸 것입니다.”
“꼭 그래주게나!”
성균관 대사성이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런 태도에 기쁘면서도 어쩔 줄 모르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답을 우렁차게 하는 그 둘이었고 그 태도에 더 웃음이 나는 그, 대사성이었다.
““네, 대사성!””
“그렇다면 이제 다른 수업이 시작이 되니 가보게!”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가는 것을 보다가 성균관 대사성도 자신의 집무를 위해서 대사성이 거처하는 집무용 전각으로 들어갔다. 이 성균관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대사성의 자리가 교체가 될 때 까지, 성균관 대사성인 심승택이 말이었다.
“나도 주상 전하를 더 도와야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성균관에 대한 실무와 책임에 대한 업무를 재개하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