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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16화 (116/221)

〈 116화 〉 (58) 산해관으로 가는 길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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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상하이 등의 유럽인들이 많은 청나라의 조계 혹은 서역 국가의 땅이 된 곳들 외에도 조선의 개방장으로 서역의 학문을 알고 견문을 더 넓히려고 유학을 가는 이들은 분명하게 있었다. 이는 그런 이들 중 일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네도 여기 개방장에서 수학한지 꽤 되었군. 면암!”

“스승님과 사형의 제안으로 제가 이 인천 제물포 개방장으로 유학을 온 것입니다. 수년이 지났지요. 관리가 되었어도 여기서의 생활은 유학이지요.”

“참 의외였다오. 재편 중이라도 아직 과도의 상태로 기존 과거를 둔 이후에도 식년시 외의 알성시 등을 폐지함으로 경쟁이 늘어난 과거에 붙고도 휴직하여서 이렇게 유학을 온 것이 말일세.”

1857년에 20대의 나이인 면암, 최익현은 2년 전에 과거, 식년시에 다 붙고도 관료로서의 연수를 받은 이후에 관직 생활을 지속하는 대신에 휴직하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의 유학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런 것을 알자 주상인 이영은 통서관 통사와 그 종사관 아래의 관리로 그를 보내는 배려를 하였다.

그 이전부터도 면암 최익현은 제물포 개방장에서 서역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학문, 서역의 석학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그 명석한 머리는 세상의 변화를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믿는 정학과 서역의 석학을 다 접목시키고 조선도 더 발전하기 위해서 서역의 기물과 서역의 도를 담은 학문 중에서 일리가 있는 것은 수용해야 한다고 여기었다. 서역의 제도 중 몇 개는 확실히 젊은 유생, 꼬장꼬장한 면이 있는 면암 최익현이 보기에도 조선에 들여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 많았다.

‘사부와 사형은 내가 서역에 가보는 것도 좋다고 여기었지.’

면암 최익현은 개방장에서 서역의 모든 것을 다 본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많은 생각을 다르게 할 수가 있었다. 특히나 그의 시야는 더 넓어졌는데 그 외에도 최익현은 사형과 스승보다 더 영길리의 말에 능통하였다. 영길리어를 할 줄 아는 역관에게 이를 배우면서도 배움을 위해서 영길리 석학 원서를 읽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하는 등의 일을 했기에 그렇다.

“그리고 듣자 하니까 유생들에게도 2차 서유시찰단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들었는데 이 통서관의 하급 관료로 임용이 된 면암, 그대도 도전하는 것은 어떤가?”

“제가 될 수가 있으면 영광입니다. 물론 쟁쟁한 선비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허! 자네의 사형이 북벌에서 큰 공로가 인정이 되었고 자네의 스승인 화서 선생은 주상 전하께서도 중히 쓰시는 사람이라네. 그리고 자네도 꽤 조정에서 물망이 오르고 있다네.”

이전부터 이 제물포 개방장에서의 유학에 관리로서 업무를 보면서도 주로 서역인들과 서역에 대한 정보를 더 알고 서역 문물을 접하기 좋은 위치에 있는 면암 최익현은 그래도 그가 믿는 정학과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스승님께서는 서역의 문물과 학문을 인정하였지만 그들의 일부 행태를 우려하셨지. 우리 조선도 그들의 행태를 따라 배워서 혹여 필요 이상으로 금수의 행태를 보이는 것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말이었다.

애란(아일랜드)에 대한 기근을 영길리 조정이 나서려고 했어도 수습이 되지 않았던 것을 나중에 알고는 스승님께선 영길리 공사에게 이를 따지는 등 심기가 불편하셨지. 그들을 배우면서도 그들의 잘못된 행태마저도 닮아서는 안 된다.

이게 스승님의 가르침이다. 나는 그 것이 옳다고 여기고! 우리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 서역의 문물과 학문도 받아들이고 제도를 받아들여도 정학에 기초한 자기수양과 윤리의 수호는 여전히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서역을 놀라워하면서도 그들의 일부 행태는 타산지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사실 화서 이항로며 면암 최익현에 최익현의 사형인 양헌수도 비슷하였다. 적이라고 여기지 않고 배울만한 이라고 여기지만 그 것을 배우는데 좋지 않은 면도 배우는 것이었다.

“제가 서역에 간다면 서역의 문물에 더 경도가 될지, 아니면 중용일지, 그도 아니면 더욱 강경한 위정척사가 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좋은 기회가 되겠지요. 그런 기회를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지요.”

젊은 최익현의 그런 말에 통서관 통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를 향해서 말해주었다. 이미 추천서를 써놨다고 말이었다. 게다가 이미 화서 선생이 썼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는 통서관 통사로 그런 상관에 모습에 꼬장꼬장한 최익현은 선비답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이 친구 같은 상관을 미워하지 않았다.

면암 최익현은 제 2차 서유시찰단에서 인연이지만 애증의 인연을 만날 것이었다. 종친 같지 않은 종친, 왕자인 그 자를 말이었다. 그리고 최익현 말고도 이 제물포 개방장에서는 많은 반가의 자식들이 유학을 하고 있었다.

“사부님의 추천으로 환재 대감과 중무 선생 밑에서 수학하다가 중무 선생의 제물포 개방장 통서관 통사로 부임함으로 나도 이렇게 따라왔지.”

젊은 선비로 면암 최익현과는 연배가 비슷한 운양 김윤식이 대표적이었다. 통서관의 관아에서 통서관 통사인 중무, 강위를 따라서 유학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다.

위정척사가 아닌 혁신유림이라고 선언한 김윤식의 첫 스승인 유신환은 자신이 기초 한학에 일부 서역 석학 등 학문을 조금 가르쳤으나 그 이상은 환재 박규수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중무 강위에게 편지를 써서 그를 문인으로 삼아달라고 한 것이었다.

“내가 다른 두 분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그 분들이 한 이야기 등으로 세상이 넓은 것을 깨달았지. 그리고 나의 동무가 된 면암 같은 유능한 젊은 관리가 가주었으면 하는데. 나도 2차 서유시찰단에 가보고 싶다.”

그런 말을 하면서 제 품에 있는 법국의 말을 한문으로 뜻을 적어 놓은 법어한문옥편을 펴서 보고 있었다. 통서관 관아 내의 마당을 돌아다니면서 말이었다.

운양 김윤식은 스승인 제물포 개방장의 통서관 통사 중무 강위가 그냥 법국과 영길리의 공사관을 자주 방문해서 반대로 두 공사관의 일원들이 이를 방문할 일이 드물었다. 그렇기에 통서관 관아는 주로 서역인들의 방문은 이전보다는 좀 더 뜸해진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여유롭게 사전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있지.’

“물론 지금은 스승님과 면암이 대화 중이지. 나중에 할 공무 일정에 맞추어서 이번에는 저지국 공사관으로 갈 것이겠지. 나도 같이 가고!”

저지국 공사관의 관원들에게 전해진 호탄만 행장록의 필사에 공무로 바쁜 강무 외에 종사관이 아닌 하급 관리인 면암 최익현과 강무의 제자인 김윤식이 이를 필사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저지국 관원들과 역관들과 함께 필사에 번역에 대한 것으로 머리를 맞대는 일도 있었다. 이는 지금도 진행 중인 일이라서 운양 김윤식도 이 일에 낀 상황이기에 그도 따라가는 것이었다.

‘호탄만 행장록을 보니까 옛날의 저지국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가 있었지. 그리고 박윤이라는 호탄만 박연의 후손을 만났지. 그런 일들이 있으니까 내가 서역에 직접 가고 싶다니까?’

호탄만 행장록의 필사본을 읽었던 그는 저지국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고향을 그리던 박연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조선이 되었던 홍이, 아니 서역인이었던 자의 일생을 흥미롭게 봤었다. 그 외에도 다른 요인이 있었다.

또 김윤식은 스승인 강위가 박연 등을 보면서 앞으로의 조선은 다른 이들과 부대끼며 살 것은 당연한데 조선은 그런 이들을 동화하려고 했다. 말과 문물을 조선의 것을 수용하고 이를 향유하고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얼굴과 용모가 달라도 조선인이라고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였다. 그런 스승의 주장에 흥미를 가지기도 했지만 김윤식은 호탄만 행장록으로 서역에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운양 나리!”

“어 무슨 일이니? 막동아?”

“통사 나리께서 운양 나리를 찾으십니다요.”

“스승님께서?”

통서관 관아에서 일하는 고공 일가 중 어린 고공인 막동이가 자신을 불렀다. 그래서 이유를 물으니 스승인 강위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에 무슨 일인가 하고 스승이 있는 통서관의 사랑채로 걸어갔다.

김윤식이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호탄만 행장록의 필사가 어디까지 되었는가 물어보려고 하는 것인가 여겼다. 아무래도 그런 것이라고 여기고 필사한 부분과 어디가 남았는지를 대답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관아의 중심 건축물에 들어가서 문을 두드리고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운양 김윤식이었다.

“스승님, 저 윤식입니다.”

“그래 운양! 어서 들어오너라. 공무로 저지국 공사관에 가기 전에 너와 이야기를 할 것이 있다. 안에 면암도 있는데 면암과도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예, 알겠습니다.”

운양 김윤식은 자신의 스승인 중무 강위가 동무가 된 면암 최익현과 대화를 하고 있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나가는 모습이 없었기에 방에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은 하였다. 다만 면암 최익현도 관련이 이야기라면 역시 그 필사본이라고 확신을 하게 되었다.

김윤식이 의관을 이미 정제한 다음에 들어가서 스승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신이 면암과는 동무라도 자신이 제일 낮은 사람이라서 면암의 측면에서 전면으로 앉았다. 그렇게 자리에 앉은 김윤식을 두 사람은 그저 웃으면서 봤다. 그런 웃음에 영문을 잘 모르겠는 그였다.

“운양, 내 제자야. 너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 것을 놓치지 않을 것이냐? 그 것이 무엇이던지?”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좋지 않은 기회라도 다 경험이 될 수가 있고 죽는 일이 아니면 다 도움이 됩니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그 기회에 대해서 말해주마. 너는 서유시찰단에 참예할 인재로 합류하기를 원하느냐?”

스승인 중무 강위의 그 말에 김윤식은 순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서유시찰단에 참예할 인재로 라는 말에 놀랐다. 서역에 가고 싶었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스승인 강위가 김윤식에게 딱 맞게 제안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김윤식은 자신에게 찾아온 가히 천금과도 같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가 않아서 가슴이 쿵덕쿵덕거리고 있었다. 그는 너무 대놓고 이를 원하면서도 과하게 욕심이 있어 보이는 모습은 지양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김윤식의 스승인 중무 강위와 동무인 면암 최익현은 그런 그를 보면서 웃음이 나오지만 참았다. 진심으로 바라는 모습이 드러나서 말이었다.

“예! 제가 어찌 주상 전하와 이 나라와 저 자신한테 도움이 될 기회를 어찌 마다를 하겠습니까? 뽑아주신다면 당연히 그래야지요. 스승님께서 추천하시는 것입니까?”

그런 솔직한 운양 김윤식의 모습, 그리고 남들도 포용을 하는 이 사내는 스승인 강위가, 동무인 최익현이 봐도 유용하였다. 게다가 운양 김윤식의 머리는 상당히 좋은 편으로 또 어학에 대한 능력도 좋았다. 제물포 통서관 통사인 강위가 그런 그를 추천하는 것은 그 이유가 제자라는 연줄만이 아니라 그럴만한 능력이 있기에 그렇다.

물론 역관보다 잘하는 수준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의 이런 적극인 모습은 잘 이야기를 한다면 조정에서도 좋게 볼 여지가 매우 많았다. 그런 점도 염두를 두면서 저 재능이 있는 인재가 더 세상을 잘 알고 재능을 더 발휘하게 추천하려는 강위였다.

“물론 내가 추천하여도 너와 면암이 뽑힐 수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그대들이라면 제 2차 서유시찰단에 뽑힐 수가 있겠지.”

강위가 미소를 지으면서 두 사람을 보고 말하였다. 그런 말에 우쭐하지는 않지만 내심 기쁜 두 사람, 최익현과 김윤식이었다. 김윤식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서역의 나라들을 견문하는 것을 더욱 바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질 수가 있기를 소망하였다.

그 두 사람 외에도 어린 유생이라도 개방장 견문을 시키게 1년 정도는 유학을 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 중에서는 올해 말에 15살이 되는 도련님도 있었다. 그는 집안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인천 제물포 개방장에 체류하는데 서역의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영길리와 법국의 율령격식에 대해서 말이었다.

“도련님, 오늘의 찬은 무엇을 할까요?”

“무엇이던 좋습니다. 내가 지금 법국의 나파륜 대헌률의 한역본을 읽고 있는데 이를 골몰하니 까 밥 생각이 별로 안 드는데 말이오.”

“그래도 도련님, 끼니를 거르시면 안 됩니다. 주인 어르신이 저를 나중에 혼낼 겁니다.”

하인인 석구 아재의 말에 나파륜 대헌률을 내려놓고 총명한 눈을 자신을 모시는 하인에게 보이면서 말을 하였다. 그 말이 이어지면서 내리는 말에 석구 아재는 자신들의 배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이면 먹고 싶은 것이면 서역의 쇠고기로 만든 진한 탕국과 비슷한 것이 있는데 저들의 객잔에 가기는 그러하니 여성 하인인 ‘양주댁’에게 쇠고기 탕국을 만들어 달라고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석구 아재가 나가자 대헌률을 다시 잡으면서 소년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서역의 형률, 법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다. 정학을 바탕으로 법가의 도를 시행하는 것은 유가의 오랜 전통이었고 정학의 정신으로 서역의 법과 형률에 대한 제도를 더 잘 다루면 조선에게 도움일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총명한 눈의 소년은 환재 박규수의 제자로 들어갔다가 그의 추천으로 강위의 문하로 배우려고 마침 이렇게 제물포 통서관 통사로 부임한 그를 따라서 이렇게 온 것이었다. 이 소년의 이름은 김홍집이었다.

‘나는 조선에 도움이 되고 싶다. 게다가 입신양명을 하는 중에 나는 더욱 알려질 것이다. 나날이 강해질 조선에 내 이름도 알리겠다. 내가 생각하는, 그리고 지금 조선의 길이 걷는 길은 옳다고 증명하는데 도울 것이다.’

조선이 청과 맺은 봉천조규로 김굉집으로 바꾸었던 이름을 다시 김홍집이 되돌린 소년으로 부모의 기대와 주변에서도 총명하다고 소문이 난 자로 한성부에서도 꽤 소문이 있던 재능이 있는 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년의 앞날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

***

“그 수백 명 이상의 청나라 만주인 민병대들을 다 토벌한 이후에 싸움이 없으니 평화롭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얕은 잔꾀를 부렸던 수백 명 이상의 만주인 민병대를 쉽게 짓누르고 진격하고 있었다. 그들 중 지군이라는 자를 비롯한 지휘자들은 죽어나갔고 대부분은 도주하였다. 싸우다가 죽은 이들은 적었다. 항복하였지만 요서로 향하라고 풀어주었다.

“그들에게 공포의 여지를 담은 허튼 소문을 담게 하였으니 만족을 합니다.”

“그래도 계책대로 잘 되어야 할 텐데 말이지요.”

훈련도감의 중군인 양헌수 정령과 경군 도통부의 막료사마인 어재연 부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군, 그 중에서도 경군과 조선 북부의 지방군을 막론하고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둘은 며칠 전에 있던 그 전쟁 재개 이후의 싱거운 첫 전투를 이야기를 하였다.

다만 그 둘은 방심하지 않았다. 산해관을 직통으로 돌파하는 중에서 적의 병력을 집결시켜서 이를 무너뜨리면 청나라의 도성에 있을 청주, 청나라 황제에게도 상당한 충격을 더 줄 수가 있을 것이 분명하였다.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지.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인생은 이상하고 오묘하지요. 또한 흥미가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아마도 길어지는 전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전쟁이 어쩔 수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전쟁이 더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 서벌로 한 동안은 전쟁이 없기를 바라오.”

“동감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불과하지만 그 대화에 담긴 바람은 서벌을 하게 된 조선 서진군의 대부분 장졸들은 누구나 하고 있는 생각에 가까웠다. 그들도 다시 일어난 전쟁을 막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전쟁으로 청나라와 조선이 한 동안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일치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전쟁을 끝을 내려면 청나라가 완전히 패배에 승복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산해관을 넘어서 청나라의 도성인 경사, 연경을 향하려는 의지로 산해관을 넘으려고 조선의 서진군은 열심히 진군하고 있었다.

“천하제일관.... 그 눌합적도 함부로 넘지 못했던 산해관을 우리가 전면으로 뚫어야 하죠.”

“해내야지요. 청주와 그 무리에 대항한 봉기로 청의 도읍인 연경이 뒤집어지는 기적이 있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동감입니다.”

그 산해관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무기로 인식되는 것들도 인식하였다. 산해관의 성벽들을 날려버릴 공성용 화포들이 무거움에도 당연히 들고 갔다. 게다가 청나라의 팔기들을 죽이면서 노획한 청나라의 중마들 몽고마들을 짐마로 쓰면서 수레도 더 보충해서 나르고 있었다. 그 대가로 잡곡의 소모는 늘었지만 말이었다.

“산해관에 도달하기 전에 아 조선수군이 먼저 선점해서 있을 포구로 도착하는 것 등이 필요하겠지만요.”

“맞습니다...”

물론 잡곡의 소모량이 늘기는 했어도 조선군은 그동안 쌓아놨던 물자 등으로 버틸 수는 있었다. 게다가 말들이 많아서 도보로 옮기는 양은 비교하자면 줄었기에 마냥 단점은 아니었다. 또 생각보다 옮기는 식량의 양은 생각보다 엄청 많지 않았다.

이 대규모 군세는 느릿하지는 않아도 최대한 빨리 1차 보급 장소를 선점해서 수군과 선단이 보내온 물자들을 수령하고 그들의 지원으로 치중로를 보강할 생각이었으며 안 그래도 근방에서는 더 빈약한 청나라 수군이 조선 수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방해가 없었기에 순조로워보였다.

그래도 산해관 공방전 외에 자잘한 전투들은 있을 것이었다. 언제나 천하의 일은 현인이라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법이었다. 며칠이 지나서 조선군은 정체불명의 집단과 싸우게 되었다.

***

“저들은 무엇인가?”

“민병집단이라고 하기에는 좀 다릅니다. 만주인들이 주로 구성이 된 것 같은데....”

“말을 타는 솜씨가 만주인 애송이들보다는 달자들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일부는 팔기 출신들도 보입니다.”

조선군이 예상치 못하게 싸우게 된 이 집단은 바로.... 마적이었다. 청나라의 통치가 문란해지면서 몽골인들을 중심으로 알게 모르게 자신들 상전인 왕공족과는 별개로 자신들의 비밀 무리를 만들어서 움직이기도 했었다. 조선군에 대해서 그들이 싸움을 건 것은 청나라에 대한 충성 때문은 아니었다.

“조선군은 은자가 많다지? 조선군의 마차들만 노린다. 한탕 크게 벌어보자!”

“마차만 털면 우리는 도망친다!”

이런 어이가 없는 이유였다. 그래도 조선군의 마차 대열을 노리는 나름의 일리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 마적들은 약점을 최대한 잘 파고들려고 하였다. 게다가 세력을 불린 마적들 중에서는 만주 팔기 패잔병들도 있었다.

그들은 패배에 책임을 물을 조정이 두려워서 복귀하지 않고 마적으로 전락했었다. 요동에서의 마적으로 전락하려다가 조선군에게 밀렸던 이들 외에도 요서에서 어떻게 도망쳐서 마적으로 전락한 이들도 생각하면 꽤 있어보였다. 그들은 조선군에게 전면으로 덤비지는 않았다. 조선군의 치중부대를 노리려고 하였다.

“우리 군의 물자를 노리는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은자에 대한 것을 듣고 저 것이 다 은자라고 여기나 봅니다.”

“공성 화포와 포탄 등이며 식량과 탄약, 화포 등을 담은 수레 무리를 은자를 싣고 왔다니 웃기는군.”

대청 통치를 위해서 조선이 인삼을 가지고 벌은 막대한 은자로 이를 통치하기 위해서 은자들을 실은 수레 무리도 동행한다는 허황된 소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조선군의 공포를 이용해서 적을 결집시키는 책략이 다른 의미로 조선군에게 치중물자들을 노리고 덤비는 무리들을 불러 모은 셈이었다.

“끙, 서진군이 이러다가 지치고 치중대의 물자들이 손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지. 마적들이 덤비는 것이 있지만 떼로 수천 명 이상이 달려드는 것은 아니니 말일세.”

“그런 일이 발생하면 더 큰 일이지요. 저들이 끈질기게 우리를 계획을 가지고 공격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말을 내리지 않은 임시 군의에서는 이렇게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습격이 있고 며칠 뒤에 다른 무리의 공격이 이어지는 것이 있었다. 마적들은 팔기 출신이 섞여있어도 병법을 체계로 익힌 자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조선군이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고 치중대를 지키는 호위 병력인 보군과 마병의 요격과 화망에 밀려났다. 그렇지만 치중부대들과 그 호위부대들은 공격을 받아서 극심한 피로 등을 겪을 상황이 생길 판이었다.

“치중대와 치중 수레 행렬을 지킬 병력들을 더 일찍 교대하지요.”

“그 수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임시로 열렸던 군의의 결정으로 평안병영과 교대해서 다른 경군 부대가 이를 맡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적들과 청나라 군대의 접근을 위해서 정찰과 척후를 하던 마병대는 더욱 적극으로 움직여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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