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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43화 (143/221)

〈 143화 〉 (67) 전쟁 이후의 동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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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이 더 지났다. 조선 조정은 자국의 확실한 승리를 확인하고 봉천조규와 앞의 조규를 계승하는 연경조규를 승인하였다.

이제 조선은 전쟁에서의 문제점과 전쟁 중에서도 내부의 행정 및 경장을 위한 절차는 여전히 지속되었다. 전쟁이 끝났기에 그 일에 오롯이 더욱 박차를 가할 수가 있었다.

그런 회의를 주재하면서 다른 생각을 잠깐 하는 조선의 군주인 이영이었다. 승전에 대한 장계를 받았을 때에 이를 읽은 다음에 이영은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받았노라, 읽었노라, 이겼노라”

고대 대진국의 가이사 라고 불리던 자가 한 말을 인용하여 비틀어서 답하였다. 왕을 쫓아낸 이후에 집정을 선출하던 시기의 대진국에서 집정 이후에 종신으로 독재관이 되었던 가이사의 최후는 비참했지만 이영과는 큰 상관은 없었다.

그 말에 신료들이 이해를 못하다고 나중에 알고 박수를 쳤었다는 과거도 기억에 남았다. 이런 과거를 생각하다가 다시 회의에 집중하는 이영이었다. 신지에 대한 회의가 더욱 열심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지, 새로운 영토들에 대한 아 조선이 이들을 더욱 확실하게 잡아야 합니다. 더욱이 성경이었던 곳도 편입하여서 신지는 더 넓어졌습니다.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까 슬슬 전에 논의했었던 사민을 시행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전에 논의했던 사민은 큰 틀을 정하고 시행에 대한 실무를 호조가 이조와 함께 하지 않았습니까?

더 조정을 한다면 빠른 시행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를 지적하는 것은 유산 정학연이었다. 주상인 이영의 총신으로서 그는 군국기무아문의 제조 중 하나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이야기에 주무 부처인 이조와 호조의 판서들도 동의하고 있었다. 그들도 시행을 해야 한다고 주청을 하였다.

“전하! 그 것도 있지만 이제 우리는 더 중한 것을 해야 하옵니다.”

그런 말을 꺼내는 이는 김좌근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가는 이들도 있었다.

이제 조선은 오롯이 청나라를 섬기던 사대를 끊었고 독립국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제 조선에 필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연호를 정하는 것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이제 자주한 아국! 대조선의 군주이십니다. 그런 분께서 연호가 없다는 것은 더욱 말이 되지 않사옵니다!”

“그러한가? 그렇게 생각하였지... 또 임금의 호칭, ‘왕’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였다.”

연호와 군주의 칭호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전자를 이영이 긍정하였다. 또 후자는 조정에서도 알음알음 있었던 소문을 고려해서 이를 공론화하기로 하였다.

원래 연호는 시호처럼 신하들이 바치고 올리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이영은 신료들에게 좋은 연호를 올려달라고 말하였다.

“경들이 나에게 좋은 연호를 올려주게나. 아 조선의 자주국으로서 있을 첫 연호라네...”

“예, 전.... 아니 폐하!”

“허허! 그러고 보니까 예법도 이 때를 계기로 바꾸기는 해야겠구나.”

“전쟁이 끝났다고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일이 더욱 늘어납니다. 당연하지만 주상 전하와 신들은 이를 처리해야 합지요.”

“너무 성급히 처리하기 보다는 순차에 맞추시지요. 예법은 연호를 시작으로 수정을 하기 시작하고! 다른 일들은 내부의 경장을 위해서 먼저 진행하고 집행하던 것을 행해야 하옵니다.”

이영의 총신 중 하나인 군국기무아문의 제조인 환재 박규수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 말에 주상인 이영은 물론이고 많은 신하들이 공감하였다.

일은 줄지 않고 늘어나고 있기는 하였다. 또 박규수의 말을 받아서 김병학도 동조하였다.

“그렇다. 모든 일은 순차를 따라야지. 일에 경중을 정해서 말일세. 아! 그러고 보니까 평양을 부도로 지정하기로 했는데 지금의 전쟁이 끝난 이후에 상황을 봐서 부도로 세워야할 곳이 더 생겼다고 본다네.”

“어디를 말입니까?”

그리고 아까의 두 총신이 하는 말을 긍정하면서 이영의 다른 화두에 조정 신료들도 이를 들었다. 다른 부도? 다경제를 생각해서 양경 이상, 삼경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평양을 서경으로 올리기로 한 이후에 다른 곳을 부도로 올릴 마음을 밝힌 이영의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전에 이야기를 했었지만 벌써 밝히는 것이었다.

“전에 평양을 언급했는데 갑자기 다른 작은 도읍을 운운하는 것이 당연히 당황스러울 것이오. 그렇지만 이를 미리 밝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봤기에 이리 말하오.”

“전하의 의중을 알 수가 없사옵니다.”

“그럴 수 있다오. 염두를 한 다른 곳은 우리의 땅이 아직 아니었기에 그랬지.”

이영의 이런 말에 일부 신료들은 그 말을 무슨 의미로 했는지 알아차렸다. 작은 도읍, 보조하는 도읍을 세울 다른 곳이 이 전쟁이 완연하게 끝나면서 편입했기에 말이었다. 신료 중 하나인 귤산 이유원이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전하, 혹시 성경이옵니까?”

귤산 이유원의 말에 빙그레 말이 없이 웃었다가 입을 다시 여는 이영이었다. 이영의 말에서는 어떤 부정도 없었다. 그저 그 말이 옳다는 긍정으로 가득한 답이었다.

“그렇소. 성경, 아니 본래의 명칭일 심양으로 복명할 그 고을을 언젠가 북경으로 지정할 생각이 나에게는 있다오. 경들은 어떠한 의견인가?”

이영은 성경 혹은 봉천으로 불리던 그 고을을 심양으로 복명하고 이후에 북경으로 다경제에 입각한 부수도 중 하나로 지정하고 싶은 의향을 드러내었다. 많은 신료들은 그 의향을 듣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성경, 아니 심양을 부수도로 한다고?’

‘그 곳은 요동에서는 요양과 더불어서 중요한 곳이다.’

‘평양도 요동과 이 조선의 본토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을이라서 그런데 요동 현지의 심양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신료들은 대체로 일리가 있다고 여기었다. 그래도 당장은 아니라고 한다면 신지에 대한 것은 이전에 결정을 한 것을 토대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 중에 한 신료가 조심히 입을 열어서 물었다.

“전하! 그럼 신지의 관할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본디라면 도를 설치해야 하지만 도보다 훨씬 넓은 땅들이기에 4~5개의 주로 하며 주백 혹은 관찰사를 보내겠다. 그리고 부와 군을 설치할 것이다.

성경에서 얻은 문서들을 바탕으로 부와 군을 세우고 그 경계도 명확하게 할 것이오. 그 외의 정해진 것도 있었지. 말해보시오.”

주, 부와 군을 세우고 관리들을 세우며 이를 관리할 생각이었다. 백성들이 본격 이주하기 전에 해놓는 사전 조치였다.

여기에 북방의 지방군들을 중심으로 신지에 주둔할 이들을 뽑으라고 서진군 중 요동에 주둔한 이들을 바탕으로 전하였다. 또 서진군 본대도 귀환하는 중에 요동에서 이를 들을 것이었다.

아울러서 북진군도 마찬가지였다. 서진군과 북진군을 주로 구성하는 북방의 지방군과 경군, 경기의 일부 지방군에서 원하는 자에 한해서 땅을 주고 그 가족을 요동으로 이주하는 일을 지원하는 것도 더하였다.

다른 신료들도 이야기를 보태었다. 이전 논의로 이미 정해놓았던 것의 확인도 있었고 사민의 인원 외에 사민을 할 장소들을 먼저 논하였다. 이 부분은 정확하게 정하지 않았기에 그랬다.

“서역 고문들도 보내어 신지의 상황을 더욱 확인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백성들을 사민(徙民)하는 것은 역시 근래에 단속을 강화해서 화전민이던 이들과 노비들을 주축으로 하실 것입니까?”

“다만 그들이 먼저 이주를 할 곳은 압록강 너머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거기가 우리 조선의 입김이 바로 형성되기 좋으니까요.

그리고 듣자하니 원래 조선인으로 북방에 살다가 멋대로 양 강인, 압록강과 두만강을 들락날락하였던 이들은 신지에 이주를 정식으로 허가하심이 옳다고 봅니다.”

“두만강 너머보다는 역시 압록강 너머가 비교적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까?”

두만강 너머보다는 압록강 너머를 주로 신료들이 주장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평안도 너머면 이주민들의 통제와 확장에 대해서 더 유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일부 신료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게 되었다.

“심양으로 복명할 고을을 중심으로 그 곳에 기름진 땅들 다수를 조선인들이 받아서 이주하면서 온전히 우리의 땅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나 그 것은 너무 급진이지 않겠습니까?”

특히나 김좌근은 심양을 중심으로 요동에서 기름진 땅을 이주하는 아 조선의 국인들에게 넘기자는 말을 하였다. 그런 의견에 이를 급진이라고 우려하는 신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주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음을 말하는 신료가 있었다. 신지에 아직 남아있는 자들 중에서 통치에 순응할 자들과 아닌 자들을 나누어야 하였다.

“또 신지가 된 곳들에 대해서도 조치가 더 들어가야 합니다. 아국의 통치에 순응할 이들은 남고 아닌 자들은 떠나게 해야 합니다.”

“그것도 달자와 만주인들은 특히 추방해야 하옵니다.”

“헌데 우리에게 귀순을 청한 만주인들도 있는데 어찌 해야 할지 모릅니다. 특히나 전부터 우리를 놀라게 했던 조선인 조상을 둔 박씨라는 만주인 일가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만주인들 중 가장 논란이 있는 이들은 당연히 이들 박씨라는 만주인 일가들이었다. 이들을 조선인으로 쳐야할지 만주인으로 쳐야 할지에 대해서 매우 논란이 강렬하기에 그렇다.

“만주인들 중 박씨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 팔기인 자들은 추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야만 후환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충성하는 이들만을 그렇게 빨리 걸러낼 수가 있을까 걱정입니다. 아마 우리에게 충성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나가라고 해도 군대를 꽤 올려 보내야 할 것입니다.”

사실 가장 큰 논의는 조선에 충성을 할 이들과 아닌 이들의 구분과 아닌 자들을 어떻게 추방을 할지가 격렬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신료들이 신중하였고 이영도 마찬가지였다.

“한족이라고 하여서 우리의 통치에 순응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군대와 개척하는 이들에게 포군 같은 편조를 하고 둔전병 등을 두어서 아국의 원래 백성을 지켜야 합니다. 순응하는 자들에게는 이 곳에 남게 하여도 일일이 순한과 생한 등으로 나누고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순만과 생만이며 순달자와 생달자 등도 생각하면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순과 생의 말을 꺼내면서 구분을 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신지의 원주민들인 청나라의 백성인 그들이 조선의 천하 등에 속하여 교화하기를 원하면 순이고 아니면 생이었다.

그리고 이런 두 개의 기준에 의한 구분이 위험한 것을 순을 가장하는 생의 존재도 있을 것을 감안해야만 하였다. 그런 우려를 표하는 신료들도 당연히 나왔다.

“순인 척하는 생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 것도 고려를 해야 합니다.”

“요동의 원주민들이 다 우리를 따를 여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북벌과 다시 한 북벌, 서벌로 인해서 도주한 청나라 백성들의 수며 문서에 기입된 것이 현실과 차이가 있을 여지가 높습니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더 고심을 해봐야겠소.”

“통치에 순응하지 않으면 몰아내는 것도 병행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경한 의견을 내는 신하들도 많았다. 온건한 신하들도 그런 강경한 의견에는 나중에 필요하면 써야 한다는 의견을 내었다. 몽골족과 만주인들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굴 것이었다.

만주인들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팔기 이상은 추방할 예정이었다. 이는 조선인들이 달자라고 부르는 몽골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만주팔기의 일원이지만 조상이 조선인인 박씨 일가에 대한 처우는 조정에서도 놀라올 정도로 논란이었다.

일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자 슬슬 끊어야만 하였다. 주상인 이영은 과열이 된 논의를 잠재우고 다음에 다시 논의를 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주상인 이영도 단번에 결정하기에는 민감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맞았다. 다음 안건은 조선 조정에서 이 조선 땅의 철도와 전신망을 놓는 일에서 그동안의 검토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 정도의 예산이면 충분한가?”

“예, 전하! 철도는 평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2리 하고도 반리를 은자 최소 2만 냥에서 평균 2만 5천 냥으로 부설을 할 수가 있다고 하옵니다. 하지만 아국은 산지가 많기에 그 가격이 배로 뛰어서 4~5만 냥으로 올라가옵니다.

그래서 이를 고려하면 2리 하고도 반리의 철도를 산지 기준으로 책정하여 그 값이 4~5만 냥입니다. 다행히 투입하는 돈의 액수를 본다면 완공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노동을 하는 것은 아 조선의 국인들 말고도 사로잡은 청나라의 장졸들을 데려와서 행하는 것도 더하면 얼마나 절감이 되는가?”

“그 또한 영길리의 고문과도 논의하고 영길리 공사관이 주선해서 데려온 철도고문 등도 이야기를 해보니까 적국의 사로잡은 포로들을 노역으로 형벌을 부여해서 먹고 재우는 식이면 나름 줄어들 수가 있다고 봤습니다.”

포로들을 노역을 시키고 조선에 필요한 영조물 혹은 조영물 등을 만들어야 했기에 큰 거리낌은 없었다. 조선의 조정 신료들도 조선의 임금인 이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조선의 침공하고 조선군에 맞서 싸우다가 사로잡힌 그 대가를 치르게 이용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포로에 대한 석방금은 받겠지만 그래도 꽤 비싼 몸값을 과연 청나라 조정이 치르려고 할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몸으로 일해서 몸값에 상응하는 노동력, 그리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식으로 나중에 돌려보내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그런 생각으로 청나라 포로들의 노동력 동원을 당연하게 여긴다.

“지난 전쟁에서 사로잡았던 청나라 포로들 중 1만을 철도 공사에 투입하라.”

“예, 전하!”

그렇기에 이영과 신료들은 그렇게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았다. 이영은 청나라 포로들에게 나름의 자비로 조선의 노비로 삼지 않고 포로로 노역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보낼 요량으로 그렇게 명령하였다.

그래도 조선인들의 노동력을 투입하게 임노동자들을 고용할 경우에 들어가는 돈도 모두 계산하였다. 전신과 철로를 만드는데 200만 냥 이상이 들 것으로 봤는데 좀 더 절감을 할 수 있다고 결론이 나왔다.

사실 조선에서 우려하던 전비는 청나라와 맺은 연경조규로 나올 배상금 2천만 냥 등으로 갚을 수가 있었다. 여기에 영길리 쪽에서 제공하는 차관 중에서 철도 관련 차관도 제공을 받았기에 부담은 줄어있었다.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보는가?”

“영길리에서는 협궤로 깔면 더 빨리 비용이 적을 수가 있지만 그들은 표준궤라고 하는 규격으로 까는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큰 비용 차이는 없다고 하니까 후자로 하시어도 될 것 같습니다.”

“흠...”

협궤로 깔아서 비용을 아끼어도 나중에 협궤에서 표준궤로 바꾸어서 공사를 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었다. 그 때에 들어가는 비용도 있을 것으로 짐작하는 이영이었다.

그래서 표준궤도 까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였다. 이영은 나중에 돈이 훨씬 들어가는 것보다는 당장에 돈이 들어도 나중에 덜 들어가면 이득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표준궤라고 하는 규격으로 깔라고 하여라. 영길리 공사관을 통해서 영길리 철도공장(工匠)과 그 아래의 사람들도 주선 받았다면 이를 행하라. 전신도 법국의 관련 공장에게 도움을 받기로 하였으니 그 또한 시행하라.”

“예! 전하!”

“삼가 받들겠사옵니다.”

이제 다른 안건으로 넘어갔다. 조만간에 개교를 할 한성대학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를 위해서 조선인 관원이며 가르침을 위한 서학훈도 등을 양성하려고 노력했었다.

훈도학당을 세우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자들로 만들었다. 서역인 교육자와 학자들도 그 사이에 더 고용해서 데려오고 심혈을 기울였다.

“조선인 관원과 서학훈도에 가르침을 위한 고문들도 더 데려와서 기존의 교육 고문들 중 우수한 이들을 빼내어 한성대학은 문을 열 것입니다.”

이 한성대학에 대한 기대는 주상인 이영은 매우 남달랐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한성대학에서 훈도과 교수 등을 하려고 하는 유학을 하고 돌아온 관원과 유생 등이 많다는 사실에 감탄하면서도 우려를 하였다.

“지난 서유시찰단에서 배우게 유학을 하게 한 이들도 그런 일에 지원한 사람이 꽤 많다고 들었고 그리 장계를 받았다오. 아무래도 더 많은 인재들을 서역으로 보내야 할 듯하오.”

그런 이영의 의견에 가장 먼저 동조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환재 박규수다. 그는 교육의 가르침을 다른 신료들 이상으로 더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찬동하였고 지금 여기에 있는 조정 신료들 중 가장 굳건한 신식 교육의 지지자였다. 박규수 외에도 그런 주장을 동조하는 이는 주로 서유시찰단이었던 이들이 많다.

유림들을 설득하라고 고을 수령 등으로 임명받아서 호서와 영남으로 부임하던지 아니면 유구 등의 외국에 조선관 통사로 가서 이 자리에는 없는 흥선군 이하응과 본디 위정척사를 주창하던 유림이었던 이항로, 기정진도 동조할 말이었다. 여기에 서진군 도체찰사 등으로 있고 곧 조선으로 복귀할 전 정승 정원용도 동조해서 그런 말을 자주 꺼냈었다.

“아 조선에 돈이 허락이 된다면 응당 그래야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조선인들이 조선인을 가르치는 서학식 학당들이 더 늘어야 하옵니다.

그렇기에 서학훈도를 기르는 학당들은 당연히 더욱 늘어야 하옵니다. 그렇기에 서학훈도들 중 가장 우수한 이들을 기르기 위한 다른 학당도 언제가 개설을 해야 마땅하옵니다.”

“환재의 말이 마땅하옵니다. 노구의 신도 가르침을 얻으려고 열심인데 그 돈이 무어가 아깝습니까? 다 조선을 위해서 쓰일 것입니다.”

“서역을 돌아보니까 확실히 그런 것들도 익혀서 천하를 보는 눈이 넓어지고 사유가 깊어집니다. 사역원도 확장한 것을 봤다시피 그리고 서역인들에게 서역 의술을 배우라고 만든 양의학당도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성대학이 세워진 이후로 성균관도 재편을 하기로 했잖습니까? 저 법국의 골래주, 황립 골래주가 된 그 곳 같이 말이지요.”

이영이 중용하는 총신들은 물론이고 일부 국내에 있었지만 서역과의 교류로 많은 서적을 읽은 다른 신료들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이 안건은 그들은 건전하고 생산성이 있는 논의로 이어졌다.

이제 다음 안건은 중추부 개편에 대한 것이 다 수렴이 되었기에 중추부를 지난 도당 등에 가깝게 만들고 그 설립만이 남았다. 늦어도 1860년에 시행하는데 빠르다면 내년이라도 바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하오면 인선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30명 중에서 유림이 중복이 되지 않게 천거하여 인선할 선비들 20명과 조정에서 주상 전하의 간택이 있을 10명이옵니다.

아직 유림은 확립이 되지 않았는데 조정의 천거는 10명 중 슬슬 공개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조정의 천거는 임금의 임명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조정에서는 이미 주상인 이영에게 조정 관원 중 누구를 천거하는지에 대한 것이 올라왔다. 이영은 이미 10명을 선발하였지만 아직 공개하지를 않았다.

“그 것은 서진군의 수뇌부와 경군 등이 무사히 돌아온다면 충분한 일일세. 나는 다 염두를 하였어!”

“아쉽게도 지방관으로 지방에 부임을 한 이들은 조정의 인선에서는 제외가 되었지요.”

“종친을 천거하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열 명이 대체 누구일지 궁금합니다.”

“전하! 알려주시옵소서.”

그렇기 때문에 신료들은 알아보려고 추측을 하였다. 신료들의 그런 궁금함이 편전에 가득하여서 이영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 조선의 군주는 아직 이를 명확하게 밝힐 마음이 당장은 없었다. 그래서 뜸을 들이면서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고 넘기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인선도 준비해야 함을 잊지 마시오. 새로운 서유시찰단에 대한 것이지...”

“아....”

조정의 신료들은 은연중에 잊고 있던 일을 언급하는 이영이었다. 신료들은 누가 그 고생길에 끌려가게 될지 매우 우려가 되었다.

제발 자신들은 아니라고 바라는 이들도 있었다, 또는 그 고생길이라도 매우 값질 것이라고 여기어서 자기가 되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었다.

꽤나 상반이 된 것도 보여서 그 모습이 생각보다 웃긴 이영이었다. 그는 좋게 웃으면서 잠시 쉬었다가 이에 대한 인선을 추가로 논의하였음을 밝혔다. 서진군 소속의 인재들도 그 길에 보낼 것이라서 일부만 공개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중에 전체의 윤곽이 드러나겠지요.”

“제발 좋은 인선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만 아니면 되!’

이런 말들을 하면서 속으로 걱정하는 이가 여전하였다. 이래나 저래나 조선 조정은 여러 안건들로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조정의 궐외각사와 정무의 공간들이 바쁜 것과 비슷하게도 궐내각사의 중궁전에서도 꽤 바쁜 움직임이 있었다. 중궁전의 주인인 왕비 조씨와 왕비의 친척들로 인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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