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68) 개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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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개선의 꿈을 꾸면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 전쟁에서 승전한 조선군은 위풍당당하였다. 돌아가기 전의 연경에서 조선군은 영길리 군대와 법국의 군대와 함께 연경의 외성과 내성의 대로를 점령군으로서 행진하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그 광경을 우리가 어떻게 잊겠습니까?”
“연경에서 전쟁의 승리를 했다고 행진을 한 아 조선군의 그 것을 장계로 보내었는데 주상 전하께서는 얼마나 기뻐할까요?”
“게다가 우리가 승전비의 비문에 새기려고 추사 대감의 인연을 데려온 것도 알면 놀라겠지요.”
그들이 말하는 추사 김정희의 인연은 누구일까? 바로 추사 김정희가 청나라에서 인연을 맺었던 자 중에서 하나였다. 청나라에서 김정희에게 자신의 글씨체를 가르쳐준 스승 옹강방의 제자 중 하나였다.
그는 바로 옹강방의 제자 중 뛰어난 문인으로 청나라에서도 그 이름이 유명한 엽지선이었다.
지친 얼굴로 같이 조선행을 나선 이, 엽지선이 말하였다. 그가 사용하는 당연히 한족의 언어, 관화인데 이를 역관이 통역하여 전했다.
“그대들의 요구를 들어주겠으나 반드시 약조를 지키시오.”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니까 반드시 약조를 지키라고 합니다.”
역관이 전한 그 말에 체찰사 김영근이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물론 그런 김근영의 태도를 혼내지는 않고 대신 달래는 사람은 서진군의 체찰사인 정원용이었다.
“대신에 우리보고 천축으로 끌려간 양광총독이던 자신의 아들을 석방해 달라니요.”
“노력을 하겠다고 하니까 그리 전해주게. 신의를 보여서 승전비를 멋들어지게 새길 사람도 데려오지 않았나?”
고령의 노인인 정원용도 귀환에 꽤 지쳤어도 도체찰사 정원용 못지않게 늙은 이 손님을 잘 예우하였다. 이 조선으로의 귀환길에 동행하는 청나라 문인 엽지선은 곧 여든이 코앞인 노인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삼전도비 옆에 세울 비문을 쓸 사람으로 저 노인을 점찍은 이유가 있었다.
“청나라의 그 옹강방의 직계 제자에게 그 명필에게 글을 새기는 것이 영광이라는 것입니까? 아국의 승전비에 새길 문장을 쓸 이로 말이니까?”
“그래서 저 자금성으로 향하는 천안문의 현판을 요구하지 않는 조건으로 엽지선을 빌리겠다고 한 것이지.”
조규 중의 다른 대면, 뒷거래는 아니고 다른 것을 논하기 위한 회담이 있었다. 그 회담에서 이전의 조선이면 하지를 못했을, 혁저와 혁흔의 뒷목을 잡게 할 요구를 정원용이 했었다.
자금성의 천안문 현판 혹은 자금성의 태화궁 현판을 요구하고 싶은데 그 것은 매우 무례하기에 하지 않는 조건으로 연경에 살고 있는 엽지선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런 요구도 아주 무례하여서 매우 격분해서 거부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자이유완은 대한인 혁저가 아직 풀려나지 못했고 현판을 뜯기는 것 보다 글 잘 쓰는 문인을 빌려주는 행위면 싸게 먹힌다고 생각하고 의견을 전하기로 했었다. 다행히도 혁흔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보고 허락했었다.
“그래도 저 문인이 제 처지도 모르고 제 아들인 양광총독이던 엽명침을 우리가 영길리를 설득해서 석방하게 해달라니요.”
그리고 엽지선은 자신을 빌려간다는 것에 순순히 따라가지 못하고 조선에게 거래를 요청하였다. 그 거래를 들어주지 않으면 추사의 나라라도 흔쾌히 갈 마음이 없다고 통보하는 엽지선의 모습에 반응이 갈렸다.
김근영은 청나라의 사람들은 만주인이던 달자이던 심지어 한족이던 주제 파악을 매우 못한다고 속으로 비웃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이렇게 불평으로 엽지선을 좋지 않게 보고 있었다.
반면에 정원용 등의 일부 문무관들은 그 당돌함을 가진 저 늙은 문인을 어처구니가 없이 봤다가 우선은 데려가야 하니까 수락도 하였다. 최대한 시도를 해보면서 나중에 비문을 제대로 만들면 극진하게 대접하고 풀어줄 예정이었다. 헌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갔다.
“무리한 것 같았는데 일이 잘 풀렸지. 어차피 영길리의 전권대관 제임수 부루수 백작도 우리의 이런 제의에 살려서 조선으로 보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마도 저들도 그가 혹시 죽어서 충신이 되면 청나라 내의 자국에 대한 험담을 덜 듣고 싶을 테니까 말일세.”
바로 엽명침을 영길리, 영국의 전권대표인 엘긴 백작인 제임스 브루스가 그런 사연을 전해 듣자 꽤나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엽명침은 변수가 없으면 조선 땅에서 아버지인 엽지선과 재회할 것으로 보였다.
정원용과 김영근은 왜 영길 리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인가 사실 일정 부분은 의심을 하고 바라 봤다. 다른 이유가 짐작이 되는데 또 다른 이유는 추측이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조선에게 많은 은혜를 주고 뭔가를 받아내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행동에 장차 조선에 독이 될지, 이익이 될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만 하였다. 그러다가 젊은 문관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떻게 되었던 우리에게는 행운이 따른 것 아닙니까? 그래도 아쉽지 않습니까? 청나라의 군주 중 하나 친필로 만든 현판을 가져가면 그만큼 우리가 얻을 자부심이 있겠습니까?”
“도리어 그 것이 저들에게는 더 큰 굴욕으로 남아서 후에 우리를 더 해코지 하려고 할 것이네.”
“예, 그래서 그런 말을 듣고는 그만두었지요.”
조선은 청나라의 혼란이 지속이 되고 그 사이에 자국을 안정화하고 경장의 성과를 더 낼 생각이었다. 또 청나라가 자국을 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의 안전장치와 함정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적정한 선만을 건드리는 것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었다. 물론 알게 모르게 조선이 청나라의 그 드높았던 자존심을 철저하게 밟아놨지만 더는 밟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 것은 조선에 귀국하면 논해야할 것이었다. 물론 이미 상층부에서는 그런 대비들을 더 하면서 움직이지 않을까 여기는 서진군의 도체찰사 정원용과 김영근이었다. 다른 이들도 생각은 비슷할 것이었다.
“조선에 도착하면 얼마나 환영을 받을 것 같습니까?”
“개선 행렬을 한성에서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까? 연경에서 했던 것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지요.”
“물론 일이 끝난 이후에 조선은 더 경장하는데 우리는 일을 기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진군의 무관들과 문관들은 꽤 시간이지만 고국으로의 귀환은 매우 좋았다. 북진군도 일부 병력을 제외하고 고국으로의 귀환을 하고 있을 것으로 서진군 수뇌부는 추측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정원용이 자신의 앞으로 예정을 밝혔다.
“나는 이번의 일을 끝으로 사직을 청할 것이요.”
“네? 도체찰사?”
“역시입니까?”
“이건 예상하지 못했군요.”
예상한 이들도 있었고 아닌 이들도 있었다. 물론 정원용, 그 자신은 은퇴를 원하지만 이영은 그를 당장 놓아주지 않고 재편 중인 중추원의 의관을 맡길 생각이었다. 이를 꿈에도 모를 그는 조선과 한성에 도착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알 수는 없었다.
“나 같은 늙은이는 이제 일선에서 물러날 필요가 있다고 보오.”
“그래도 도체찰사 같은 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정승에서 물러나고 특별사의 일을 하면 조정에서 완전히 물러날 생각이었네.”
은퇴를 확고하게 생각을 하는 정원용의 모습에 다른 이들은 만류를 하지 않았다. 그런 도체찰사를 보면서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도원수 임태영이었다. 그는 잠시 후에 농담에 가깝지만 뼈가 있는 말을 하였다.
“우리 조선의 군대도 세대교체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허,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지 않소? 승리를 이끈 자들인데 벌써 은퇴를 운운하다니!”
“우리만의 공은 아니지요. 젊은 신예들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임태영의 말은 점점 자신들은 퇴물이 되고 뒤의 세대가 주류가 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신관호 등이며 그 더 아래의 막료로 복무한 이들을 중심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이제 전쟁이 완전히 종식이 되었고 조선에서도 전투 중의 전훈을 반영할 것이었다. 그러면 그들이 아는 조선군은 더 달라질 여지가 높았다. 아니 높은 것이 아니라 확실하였다.
“그 또한 사실이요. 그래도 그대들이 변화에 적응하면서도 중심을 좀 더 잡아야 하지 않겠소?”
“그 또한 옳습니다.”
“도원수와 소신은 슬슬 은퇴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군도통부의 사실상 2인자인 경군도통부의 중군장이며 훈련도감의 수장인 훈련도감사 심능우 대장도 곁들였다. 그 두 사람 외의 다른 장군들, 고위 무관들은 더 자리를 유지할 자격이 있었다. 물론 정기원은 이를 들으면서 그 자신도 좀 더 있다가 물러나야 하지 않나 생각하였다.
정기원은 자신의 의견을 조심히 꺼내놓았다. 정기원도 60대의 늙은 무신이 맞았다. 그래서 은퇴를 해야 하나 그도 조심히 생각하여서 그에 맞게 약간 눈치를 보면서 논하는 것이었다.
“당장은 물러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다네. 앞으로 수년 뒤에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싶었소.”
“그렇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정기원을 비롯한 3명의 늙은 무신들은 당장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개편되는 조선군의 조직을 좀 더 지켜본 다음에 후임들에게 길을 터줄 마음이 강했다. 앞으로의 조선군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그들은 알지 못했다.
“아 조선군은 어떻게 바뀔 것 같습니까?”
“그저 좋게 바뀌기를 바랄 뿐이오.”
“조정에서 잘 상의하고 우리도 의견을 낼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수군도 바뀔 예정이니까 뭍의 조선군도 당연하게도 그럴 것이었다. 그저 좋게 바뀌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방관의 군대 지휘권도 조금씩 독립을 하는데 앞으로 군대가 서역의 영향을 받아서 조선에서는 어떻게 바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조선은 더 좋게 바뀌겠지요?”
“그 또한 알 수가 없소. 우리가 바꾸어도 후세가 잘 이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그들은 조선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신지를 거쳐서 조선 본토로 말이었다. 성경을 지나는 중에 요동에 주둔하던 병력 중 일부가 잔류하는 것을 알았다.
경군 중의 일부 전력도 잔류를 하겠다는 이들이 있음을 말하자 그들을 남겨두고 가장 최선임 지휘관으로 있을 이들을 놓아두고 말이었다. 지휘관으로 황해병사가 남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신지 중 요동과 더 북쪽의 주둔군대도 재편이 될 것이었다.
“신지의 지방군은 어찌 재편이 될까요? 지방민들을 이주시켜도 한동안은 남은 저들이 주력이 될 것입니다.”
“빨리 준비를 해야 할 듯합니다.”
“사실 조정도 경군과 북부의 지방군 등을 계속 신지에 주둔시킬 수가 없으니까 저런 생각을 했겠지요.”
“그래도...”
그들은 북방에서의 분쟁에 조선군이 적어서 생길 문제를 우려하였다. 청나라, 아라사 등이 언급이 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큰 위협은 마적이었다. 그렇기에 일부는 신지의 무관으로 부임하기를 원하였다.
“부임을 자청할까도 합니다.”
“평안병사? 경군에 올라가도 될 귀관이 말이요?”
특히나 평안병사 정기원이 그러하였다. 그래도 늙은 편에 속하는 평안병사가 무리하지 않게 한성에 있는 주상 전하가 인선을 꽤 했을 것이라고 다른 이들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정기원 말고도 북방에 부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기원과 달리 당장 표명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성경에 도착한 이들 말고도 북진군 병력들이 청나라 포로들 중 1만 명을 인솔해서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부담이 줄었다고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그래도 지체가 되지 않게 나름 신속하게 내려갔다.
아직 신지까지는 요동에 주둔하는 일부 조선군과 조선에 붙을 마음이 있는 이들의 환영 말고는 승전이 연경에서의 기억과 달리 확실하지가 않았던 이들이었다. 물론 의주를 건너고서는 상황이 당연하지만 놀랍게도 바뀌었다.
“대조선국 만세!”
“주상 전하 만세!”
“욕봤다! 그리고 힘냈다! 조선군!”
“우리는 조선군이 사랑스럽다!”
“와아아아!”
많은 민중들은 힘들었을 부담에서도 이기고 돌아온, 북벌을 이룬 조선의 서진군을 정말로 축하를 하였다. 북진군 중 경군인 수어청과 함경도 군영들의 수장 급인 인사들은 이미 의주를 지나서 내려갔다고 하였다.
“저들이 북벌을 이룬 용사들이다!”
“명의 복수를 해낸 자들은 군자의 복수를 수백 년 만에 하였다.
저들이 진실로 명과 의리를 지킨 자들이 아니요? 숭정제께서 웃으실 것이다.
내가 아는 일 중에서! 가장 자랑스럽구나. 위대한 조선의 용사들아!
의리와 명예를 아는 그 엄정함이 있기에 북벌로 불의하고 불예한 청을 평정하였도다!”
그들의 행렬을 보면서 매우 기쁜 듯이 산문시를 짓는 평안도의 선비도 있었다. 또 평안도 아낙들 중에서는 자신의 낭군이 있는지를 인산인해 속의 군세에서 찾고 있었다.
북벌을 수행한 조선군의 주력인 서진군은 이런 환영이 기쁠 따름이었다. 경군은 평양의 밖인 삼화 진남포 개방장을 통해서 배를 통해서 이동할 이들도 고려하였다. 평안도의 중요 지방군 지휘관들도 상경할 따름이었다.
“의주와 평안도 등지에서의 환영이 이리 뜨거울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그렇소.”
“육로로 내려갈지, 수로를 탈지는 더 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삼화에서 배를 타고 가는 것도 편할 것이오. 겨울도 아니라서 더욱 그렇겠지.
허나 서해 바다가 그렇게 잔잔한 곳도 아니지 않소? 또 이리 많은 인원을 생각하면...”
수로로 간다면 북방의 지방군이 원대로 돌아가면서 행렬의 수가 줄어들어도 그래도 여전히 수만이 넘었기에 배를 많이 징발해야 하는데 민선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지휘관들은 그저 육로로 이동하자는 것으로 갔다.
육로로 이동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무리하지는 않아도 행군에 익숙해진 병력들이었다. 그 와중에 평양에서 서진군을 기다리던 북진군의 경군 군영인 수어청과 합류하였다.
포로 1만과 경군 수만의 군세는 당당하게 한성부도 귀환하였다. 그렇게 시일이 대략 연경에서 출발한지 2달 정도가 걸려서 서진군의 수뇌부와 경군 병력은 조선의 한성부에 도달하였다.
그들이 한성부 근방에서 먼저 본 것은 훼철당한 영은문이었다. 오직 영은문의 기둥만이 남아있었다. 이를 보는 조선군 장졸들은 감회가 놀라우면서도 복잡하였다.
“저 영은문이 조선의 손으로 훼철을 당했네.”
“우리가 이김으로서 조정이 훼철한 저 영은문...”
그들이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받은 환영에 익숙해졌다. 자신들이 큰일을 했다는 것을 더욱 알았다. 기쁘면서도 그런 축하가 익숙해져서는 덤덤해졌다.
그런데 영은문이 저렇게 나무로 된 문의 돌기둥만 남고 훼철을 당한 것으로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사대의 상징을 저렇게 날려버린 것이었다. 적어도 명나라에 대한 충의로 영은문은 남을 줄 알았기에 그렇다.
“우리가 명을 잇는 중화인지 아니면 조선만의 중화인지 궁금하였는데 주상 전하께서는 후자로 잡으셨나 보오.”
“물론 영은문은 대명의 기억보다는 대청에 대한 기억이 더 클 것이니 이리 한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승리를 했다는 징표로 저 대진 시절부터 유래가 되는 서역의 개선문 같은 것을 세우면 되겠지요.”
사실 무관들이며 문관들 모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이 영은문 훼철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랬다. 그렇기에 그들은 놀라면서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생각하였다.
이런 와중에 북벌군의 체찰사이기도 하고 북진군의 문관 수장인 조두순이 서유시찰단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그런 농담을 하였다. 정원용이며 일부는 서역의 개선문 같이 세워지면 그 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하였지만 설마라고 넘기었다.
“주상 전하께서 결단하시면 그럴 터인데 영은문 훼철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본다네.”
“모르지요. 전하께서 어떤 결단을 하실지 말입니다. 지금 성공한 이런 것만으로 아 조선을 황제의 나라로 선포해도 되겠지”
“주상 전하의 의향에 달렸지요. 어떤 것이던 타당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 있다가 파발이 통했는지 조정에서 보낸 사절을 만났다. 사절, 당연히 선전관이 그들에게 어명을 전하였다. 조선의 주상인 이영은 그들의 개선을 허락하였다.
‘돈의문을 통해서 흥인지문으로 통과하는 개선행렬을 나는 찬성하겠다.’ 라는 이 말을 전하였으며 개선행렬 이후에 창덕궁에서 연회가 있다고도 전하였다. 특히나 북벌군의 중군 이상의 무관들과 도체찰부와 체찰부 소속의 중급 문관은 무조건 참예할 것을 명하였다.
“수군도 참여하는가?”
“그렇습니다. 삼도수군통어사인 이규철과 삼도수군통어영 소속의 절도사와 민선들의 선장들을 모두 초청하셨습니다.”
“수군은 마땅히 참여해야지요.”
“수군과 민선의 선단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굶주려서 전투도 쉽지 않았을 것을! 우리가 어찌 잊겠소!”
개선행렬을 허락하는 파격은 사실 무관들이 제일 놀랐다. 무관들에게 베푸는 은혜들이 크다고 감탄하였다. 그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절들은 하얀 말을 준비했다고 하였다. 백마 5필인데 바로 북벌군의 도체찰사인 정원용, 체찰사 조두순과 김근영에 도원수 임태영 대장과 중군장인 심능우 대장을 태울 말이었다.
“세 분 말고 우리도?”
“이렇게 환대하는 것입니까?”
그저 속으로 주상인 이영에게 감사할 그들이었다. 잠시 후에 병졸들과 자신들의 군복을 점검하고 한양도성을 돌아서 돈의문으로 조선군의 군세가 입성하였다. 그 많은 경군의 군세며 북방 지방군 등의 지휘관 대부분들이 북벌군의 도체찰부 소속 고위 문관들과 당당하게 입성하였다.
백성들은 경군 등 북벌군의 입성에 매우 놀랐다. 돌아온 이들을 반기는 환호도 있었다. 죽은 임에 대한 소식을 전쟁의 일정시기에 이미 들었던 이들을 빼고 자신의 가족이 안녕한지를 확인하려는 부모와 자식 등이 있었다.
“어이구 우리 일동이 아부지가 저기 있소.”
“참으로 다행이구려!”
“아범! 살았구나! 다행이다!”
각자의 가족들이 저를 부르는 소리에 행렬에서 조심히 고개를 돌리면서도 환호에 취하는 조선군 경군이었다. 대부분 고향인 한성부와 그 근방에 돌아온 것이 매우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는 살았다. 우리는 다행히도 다음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아이고 우리 처와 자식들을 오랜만에 본다!’
‘우리는 이제 잠시 쉴 수가 있겠지?’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도 환호를 받으면서 기쁜 그들이었다. 반면에 기분이 좋지 못하고 두려운 것이 청나라 포로들이었다. 청나라 포로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잘 몰랐기에 더욱 그렇다.
‘참으로 얄궂은 천하이다. 조선이 이렇게 떠오르고 있을 줄이야. 나는 이제 이 조선의 승리했다는 상징으로 비문을 원형을 써야 하는데 참으로 복잡하다.
추사의 나라지만 청나라를 이기면서 청나라 사람인 나는 마음이 복잡하다. 추사를 보고 나는 어떤 모습일까?’
청나라의 이름 높은 고명한 문인 엽지선은 청나라 포로들보다는 나을지언정 조선의 땅이 된 요동 등지와 조선 본토로 거쳐서 한성부에 오면서 점점 조선군이 받는 환호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하였다. 물론 엽지선은 조선을 엄청 책망할 수가 없음을 잘 알았다.
청나라가 저지르고 청나라가 벌인 오판 등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명분으로도 뭐라 할 말이 없기에 더욱 복잡한 심정인 엽지선이었다. 다만 자신의 행위로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조선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모르겠소이다.’
이런 엽지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선의 한성부 백성들은 환호하고 청나라 포로들을 보고는 야유하였다. 한편, 개선 행렬의 최선두에 있는 백마에 탄 5명의 사람들은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이 다 있습니다.’
‘그렇소.’
‘허허! 이런 영예가...’
‘서역의 개선을 모방해서 우리에 맞게 한 것인가?’
다양한 생각을 하는 도체찰사와 체찰사 2명, 도원수와 중군장이었다. 행렬이 인원이 많기에 매우 길게 끝났지만 점심을 조금 넘기었을 따름이었다. 예정대로 고위급들은 입궐하였다.
삼군문 소속의 병력들은 임시로 퇴영하였다. 다른 경군 병력들과 경기도 출신 지방군 보충병들도 한성 밖에서 포로들을 감시하면서 야영을 하기로 하였다. 포로들의 노동력이 동원되는 좀 더 나중이라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