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79화 (179/221)

〈 179화 〉 (83) 한편, 다른 곳들에서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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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역의 조선 서유시찰단이 여러 공무를 수행하는 사이에 조선 조정은 서유시찰단이 미리견에 체류 중 일 때에 급히 보낸 서신 등을 수령하고 이를 검토한다고 열심이었다. 다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당연하게도 왈가왈부가 심했다.

“흠, 반도필도라는 미리견의 거상이 아국에 대금을 투자한다고 하지만 쉽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서역의 상인들이 모두가 신의가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장계에서도 호평과 악명이 나뉘는 존재라고 합니다. 자기 나라 밖이라고 더 안하무인이라면 걱정을 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하오나, 우리가 차관을 빌려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돈을 내어서 이를 짓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사옵니다. 아국은 민이 돈이 많다고 하여도 그 반도필도라는 사내만큼의 부자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도필도, 밴더빌트 등의 미리견 도금귀족이라고도 불리는 미리견의 대상인들의 투자를 과연 신뢰할 수가 있는가에 대해서 회의어린 시선을 가진 중신들도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그들의 투자를 받아서 발전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이들도 꽤 많았다.

“우리 아국 사람들만의 돈으로 조선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할 수가 없습니다. 저들이 가지 고 있는 기교와 공장(工匠), 기기 등을 우리가 자체로 다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들에게 이런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익을 낼 수가 있다면 그들은 아국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돈을 내서 득을 보려고 하겠지요. 그 틈에서 우리도 득을 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빌려서 나라를 더 일으키는 것도 하면서 동시에 저들이 자신들이 돈을 직접 내서 우리에게 투자시키는 것도 방법이라고 봅니다.

어차피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부분은 이 동방에서도 있던 일입니다. 서역에서도 더 많을 뿐이지요. 서로가 득이 되게 이용한다면 득을 위해서 나에게 무조건 실을 강제하는 일보다는 더 나을 것으로 사료가 됩니다.”

서역을 돌았던 조선의 1차 서유시찰단 출신인 군국기무처 제조인 금성백 환재 박규수가 이런 말을 시작으로 서역을 더 잘 아는 이들을 중심으로 찬동하였다. 서역의 이익을 더 탐하는 생리를 이용하자는 부분으로 말이었다.

회의어린 시선의 이들도 조선의 한계, 부족한 자금 총량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또 서역보다 확실하게도 기교, 장인 등이며 격물(과학)에 대한 이해와 인재의 격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른 쪽의 설득에 심각한 투전판 속의 도박이 아닌 이상에야 조선도 이익을 얻는 구조 간다면 둘 다 이익을 얻는 방식이 될 경우에 손해가 아니라고 믿어보려고 하였다.

‘환재의 말이 일리가 있다. 우리가 저들에게 차관, 돈을 빌려서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가치를 보이고 이익을 보려는 이들에게서 투자를 받아내는 부분도 충분히 필요하다. 둘 다를 병행해야 함이 옳다.

그리고 미리견의 대상인인 반도필도의 후계자일 장자가 조선에 와서 그런 투자 등을 총괄할 상황이 될 것이라고 했는가? 나와 아국 조정이 이를 승낙하면 된다고 했던가?

상황 상 영길리에 있다면 영길리와 미리견 모두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이 좋을 부분이다. 두 곳에 모두 보내서 승낙에 대한 답을 하면 되겠지.’

태왕 이영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 이런 왈가왈부와 세밀한 검토를 하는 며칠이 지나고 중추원과 의정부에 군국기무처를 모두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에 소집한 태왕 이영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면서 말하였다.

모든 신료들은 그 결정을 들으면서 이미 중추원의 통과를 거친 사안에 세부적인 투자를 해봄이 어떠하냐고 말한 부분들도 정리한 것은 의정부와 군국기무처의 제안을 따라서 나온 것을 태왕 이영이 최종 결정해서 발표하는 부분이었다.

“하여, 전신과 철도, 해운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투자할 부분이 많다. 또 공방 혹은 공창을 지어서 아국의 식산흥업을 위하여 협조할 것이다. 광물이 많은 광산 같은 곳들에 대해서도 이 수식에 대한 분배 등을 바탕으로 더 많은 광물을 조심히 생각해야 하는데 서역의 기교와 자금을 지원받고 아울러 투자받아서 시행한다.

다른 세부의 사항들은 미리견에서 오거나 아국이 보낸 서유시찰단을 따라온 이들과 더 협의한다. 즉 아국은 미리견 대상인 반도필도 등의 무리가 제시한 제안을 상당 부분 수용한다는 결론이다.”

잠시 이영은 자신이 직접 칙서의 내용을 읊는 것을 멈추었다. 목이 조금 아파서 쉬었다. 정전에서 준비한 물이 담긴 그릇으로 목을 잠시 축이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이영의 목소리에 집중하던 신료들도 기다린다. 이미 결정이 된 부분이라도 조선에게 득이 되고 일정하게는 문중과 개인의 이익도 고려해서 그렇다. 특히나 복주후 김좌근이 제일 열심히 경청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왕인 이영이 말을 이어가자 다시 그들은 귀를 쫑긋 세운다. 당연하게도 신지인 요동보다는 조선에서 그런 설비들을 세우는 것이 먼저였다.

“당장은 철광 등에 대한 부분은 평안도와 경기, 황해도 등을 중심으로 할 부분이다. 또 개방장이 있는 근방 고을들도 이를 시행할 예정이다.

아국의 면화가 많이 나는 지역들을 주축으로 그들에게서 원료를 공급받고 또 서역의 면화로 만든 면 옷감 등을 수입하고 개방장 근방의 공창 등에서 이미 이를 다시 가공하고 있다고는 들었다.

그런 과정이 있는데 평안도와 황해도 등은 그나마 많은 철광 등을 축으로 이를 가공할 부분을 더 업으로 시킬 수가 있다. 아까 말한 대로 광업 등의 개발을 위해서 서역과 협조하고 움직인다. 아국의 식산흥업을 위해서 힘내고 요동의 땅에 잠든 물자를 더 확인하는데도 서역의 협조를 받고 더 움직인다.”

“예, 폐하!”

“속히 시행하겠습니다!”

“명을 받잡아 행하겠습니다.”

그런 답으로 이 중요한 사항의 결정에 조선 조정의 인사들은 수긍하였다. 그리고 다른 안건은 외교에 대한 부분으로 왜국에서 일어난 참변, 또 하관이란 왜국의 땅에서 조선인들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 논하였다.

조선 조정은 사쿠라다 문 밖의 변이라고 왜국, 일본에서 통칭하는 그 사건을 강호성문참화라고 칭했다. 신료들은 왜국 내부의 질서가 전혀 잡히지 않은 부분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에 그도 모자라서 이를 전해들은 2달 안팎으로 사고가 일어났는데 조선인들이 당한 사건이라서 태왕 이영도 신료들도 화가 났다.

“하관의 조선통관을 관할하는 통사의 보고입니다. 아국의 민선을 습격한 자들 중 주동자 1명을 벌써 잡았는데 그 며칠 후에 다른 주동자들이 고용한 검계 같은 왜국의 건달들을 이끌고 조선통관을 습격하였습니다.

다행히도 피해를 입었던 상선의 수부들 도움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추적해서 다른 주동자 3명 중에서 2명을 붙잡아서 감시 아래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 자들에 대한 처결로 강호의 대군부와 강호 근방의 아국 견외통사가 협의를 볼 수가 있는데 조정에서는 현명한 처결을 해주소서. 라고 장계에 적혀 있습니다.”

“장계를 아까 전에 읽었지만 참으로 화가 나는 일이요. 아국의 민선, 상인들이 운영하는 배에 그런 짓을 하고! 또 아국의 현지에 주재하는 관원 등이 있는 관아를 공격한 자들이 있다는 것이오.

왜국의 대군부와 조정에게 이를 따져야하는데 이미 왜국에 있을 아국의 견외통사가 따졌을 것이오. 다만 조정에서는 이를 항의하기 위한 사절도 생각 중이오.”

“...”

“....”

조정을 이끄는 세 기관의 인사들이 다 모인 창덕궁 인정전은 침묵이 되었다. 사실 그들은 왜국에서 벌인 행위가 당연하게도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견외통사, 조선을 대표하는 타국 주재외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더 높은 이들로 특별하게 사절을 보내서 항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료들이 많았다. 다만 자국의 관원들이 있는 관아를 습격하는 미친 자들이 있는 나라에게 항의 사절로 자처할 수가 있을까 고심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급이 높은 사람이 가서 항의를 해야 했기에 고관이나 종친이 가야할 여지가 생겨버렸다. 다만 자처할 이들이 나오기를 눈치를 보이기도 하지만 인물 추천도 할 수가 있기에 입을 열어야 했다.

“저들의 고위층에게 당연히 항의를 하려면 아국도 고관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정부의 참찬, 혹은 찬성 이상을 지낸 이를 보내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다만 종친을 보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태왕 폐하. 그들의 신의 없음과 무도함은 근래 참화 등으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또 혹시나 모를 참변을 우려해서 호위부대로 경군의 일부를 보내는 것도 생각하여주시옵소서. 저들의 무도함에 아국의 항의사절이 다칠 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종친을 보내기에는 위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일치단결해서 종친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반대하는 신료들이었다. 태왕인 이영도 당연하게도 종친을 굳이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반전되었다. 바로 궐에 입궐한 두 종친 때문이었다. 그 두 사람은 모두 계보로는 왕으로 추숭한 장종의 후손이었다.

장종, 본디 시호가 사도세자였다가 정종 치세에 장헌세자로 시호가 바뀌었던 그 세자가 이영의 치세에 대조선국이 되면서 자신의 4대조를 추숭할 때에 정종의 계보에 따른 아버지와 생부를 모두 추숭하는 선택으로 진종은 진조로, 장헌세자는 장종으로 추숭되었다. 그런 세자가 왕으로 추숭되었기에 그 계보에 있는 종친들의 직급도 올랐고 봉작제도의 변경으로 각각 후작과 백작으로 올라간 두 종친이 입궐해서 다음과 같이 말해서 신료들이 당혹스럽다.

“신 양평후! 태왕 폐하께 청합니다. 제가 왜국에 가서 그들에게 아국의 분노를 전하는 항의사의 정사로 보내주시옵소서. 그 무도한 자들에게 아국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의 급을 종친으로서 보이소서.”

“아니옵니다. 더 가까운 종친을 변을 당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것이면 더 먼 종친, 그러면서 종친으로서 백작의 위에 있는 자면 저들의 왜황과 저들의 대군에게도 조선이 이 사안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왜국과도 관계를 신경 쓰고 있음을 보일 수가 있습니다.”

바로 양평후 이명(이원경)와 흥인백 이최응이 어떻게 소식을 알고 각자 자신을 정사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사실 신료들과 태왕 이영은 이들이 이러는 진심을 알아보려고 노력하였다.

태왕 이영이 조심스럽게 두 종친에게 입을 열었다. 의구심을 좀 가지면서 이런 청을 하는 진의가 무엇인지 머리를 굴리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태왕의 시선에 두 종친 중에서 흥인백 이최응이 먼저 입을 열어서 답한다.

“신이 아국과 폐하를 위해서 살아가고 소일거리를 하고 있는데 좀 더 큰일을 위해서 목숨을 감수하고 일을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양평후는 장종대왕의 핏줄로서 가장 직계에 가깝습니다. 장종대왕의 서장남이던 은언백의 피를 이었기에 말입니다.

태왕 폐하와 좀 더 거리가 있는 핏줄로 도정궁도 있습니다만 도정궁의 대원공(대원군을 격상한 봉작) 사손인 이하전은 서유시찰단에 속하지 않았습니까? 또 무엇보다 아국에 남았어도 어립니다. 그래서 현재 아국에 남은 종친 중에서 신이 가는 것이 옳다고 보옵니다.”

양평후 이명이 왜국을 갔다 오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하면서 자신이 가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열심히 태왕인 이영에게 강조하는 흥인백 이최응이었다. 그런 이최응의 모습에 이명이 반박을 하여서 입을 열었다.

“태왕 폐하! 신의 조부인 은언군의 직계로 복권된 신의 백부 상계백의 양자인 익평후 외에도 익평후 이전에 은언궁의 제사를 맡았던 신의 중부인 완계백의 가계도 있습니다. 허나! 그들 외에 보낼 수 있는 종친으로 흥인군 외에는 더 있습니다.

어찌 위험하다고 아국의 종친으로서 죽음을 각오해야 하지만 해야 할 일을 막으시려고 합니까? 신도 이 나라의 종친으로서 아국에 남은 사람입니다. 향향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신의 아우 영평백은 몸이 약하기에 신이 가겠나이다.”

“하오나, 양평후 대감!”

흥인백 이최응은 놀라서 그를 말리고 자신이 여전히 가려고 하지만 양평후 이명이 그 입을 빠르게 닫게 말을 이어간다. 흥인백에게는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말이었다.

“아울러서 흥인백은 누에를 기르고 이를 보급하는 소임도 맡고 있습니다. 그가 자처하였고 태왕 폐하께서도 조선국 일적에 이를 힘쓰라고 보태셔서 말씀하셨지요. 그렇기에 그를 보내는 것은 적절하지가 않습니다. 종친 중에 아무런 소임이 없는 신이 가야 함이 마땅하옵니다.”

신료들은 종친들이 이렇게 항의사의 정사 자리를 얻으려고 하는가에 대해서 이해가 조금 가지를 않았다가 이내에 깨달았다. 종친들에게도 종친부 등의 일 외에도 조금씩 일부 실직을 얻게 허락하는 상황에서 외교 부분에서 서역처럼 종친이 활용될 수가 있기에 나서는 부분이었다.

서유시찰단에서도 한산공 이성과 방계인 이원범, 도정궁의 사손 이하전이 참여한 것도 더 큰 동기였다. 물론 유구에 종친으로 처음 외교 부분의 실직을 받고 공무 중인 흥선백 이하응도 그런 동기를 주었다. 종친들 중 일부는 여러 임무를 받는 중에서 소임을 얻지 못한 이들도 이런 것을 얻으려고 함을 짐작하였다.

물론 이미 소임을 받아서 수행 중이던 이최응이 더 적극으로 보이는 이유는 조선의 국격이 무시당한 것을 직접 서유시찰단에서 활동할 때에 서역에서 봤기에 그런 부분에서는 적극으로 항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또 태왕인 이영을 위해서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종친으로 살겠다고 맹세한 이 남자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함을 서유시찰단에서 함께했던 신료들도 눈치 챈다.

‘그가 들여온 법국의 서역 누에 등은 잘 정비가 되고 있지. 조선의 누에와 섞이면서 특이한 잡종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게 장차 도움이 될 부분이다. 양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열성을 보이고 열의를 보이는 그를 과연 주상 폐하께서 보내려고 하실까?’

‘비단은 아국이 청나라보다 분명 못한데도 청나라의 상황을 본다면 또 서역은 그런 비단의 수요가 늘 수가 있음을 서역 상인들이 말하는데 흥인백 이최응의 그런 시도는 아국에 국익을 더해줄 부분이다. 그가 그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함이 옳다고 태왕께서도 여기실 터이다.’

위는 동래백 정원용이, 아래는 금성백 박규수의 생각이었다. 이 두 사람은 이최응과도 지난 1차 서유시찰단을 함께하였고 이최응의 변화를 지켜본 사람이었다. 긍정으로 생각하지만 지금 맡은 소임에 집중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또 복주후 김좌근도 이최응이 그 고집 대신에 양잠의 뿌리가 되는 서역 누에의 보급과 그 누에와 재래 누에의 교잡 등을 맡는 그 소임에 더 집중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실무야 다른 관료들이 열심이지만 그 소임을 위해서 돈을 벌어도 그 돈을 생활을 위한 돈을 제외하고는 누에의 품중 발전과 양잠 사업에 투자하고 있었다.

비단의 옷감 수량이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은 그 일에 톰 리들과 손잡고 꽤 큰돈을 투자한 김좌근의 바램이었다. 마음과 같아서는 민간의 투자도 더하고 흥인백이 이에 손을 놓으면 후임으로 자기 집안의 사람을 추천할까 했지만 태왕의 견제 등을 생각하여 그만두었다. 그냥 흥인백 이최응이 계속 그 소임을 맡기를 바라게 되었다.

‘흥인백을 굳이 왜국에 보낼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양평후를 보낼 필요는 없지. 다만 저 둘로 의도하지 않게도 이번 항의사절에 정사로 종친을 보내야 된다는 여론이 궐 밖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태왕 이영도 사실 일이 이렇게 된 상황이 골치가 아팠다. 어떻게 수습할지 지천명을 넘기고 혜안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태왕 이영도 고심할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심사숙고를 한 이영이 조정의 신료들이 모두 들을 수가 있게 입을 열었다.

“아국의 항의사절 정사를 정하는 것은 더 고심을 하겠다. 다만 흥인백 이최응은 들으라. 과인이 경에게 맡긴 소임을 더 중시하기를 원한다. 항의사절 정사로 귀공에게 그 소임을 맡기지 않는 것은 경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이 지금 하는 소임에 더 큰 기대를 하고 있기에 그렇다.

또 양평후 이명은 들으라! 흥인백을 시키지 않는다고 하여 귀공에게 항의사절 정사를 맡길 일이 확정이 아니다. 기다리라.”

태왕인 이영의 말에 두 종친은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다. 흥인백 이최응은 태왕이 말한, 자신에게 맡긴 소임에 더 큰 기대를 한다는 말로 항의사절의 정사가 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덮을 수가 있었다.

“예, 폐하.”

“알겠사옵니다.”

양평후 이명은 속으로 꼭 자신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양평후 이명은 과거 상계군 이담 이후로 조선의 불만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추대될 예정이었던 왕족이었다. 당시는 태왕이 아니었던 조선 국왕 이영의 배려로 이명과 그 일족은 해를 입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조선 조정과 태왕에게 큰 빚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명은 어떤 식으로든 그 빚을 갚으려고 했다. 설령 그 것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일이라도 말이었다. 그래서 종친의 실직 진출 위한 추측과 별개로 둘 다 순수한 충성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명의 바램, 항의사절에 정사로 왜국에 파견되는 것은 없었다. 양평후 이명 대신에 정사로 파견되는 종친이 있어서 그렇다. 그 사람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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