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82화 (182/221)

〈 182화 〉 (84) 한성 회담과 조선에 온 청일 유학생(?)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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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사고가 나와? 나가사키라는 곳에서 이 영국의! 여왕 폐하의 신민이 일본의 무사 나부랭이에게 죽어?! 이런 무례한 자들! 또 그게 리들&포터 컴퍼니 직원이었다고?”

주조선 영길리 공사관의 공사인 헨리 로크 남작는 충격적인 소식에 놀랐다가 화가 나서 보고자에게 공격적으로 물어보고 있다. 그런 질문의 공세를 받는, 보고자인 2등 서기관도 땀을 삐질 흘리면서 답변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조선도 지금 저 일본에서 일어나는 자국민 등에 대한 흉측한 문제로 화가 났을 겁니다.”

“흠... 올콕 주일본 대리공사는 즉각 항의를 했겠지? 우리는 그 일에 대해서는 조선과 확실하게 공조를 하자고!”

헨리 로크 남작은 그 보고를 다 듣고 조선과 함께 대일 공조를 위해서 조선에 사람을 보낼 필요가 있었다. 러더포드 올콕도 그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근래 일본의 내부 정세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려왔었다.

“네!”

“공사 각하!”

“자네, 노크도 없이? 이게 무슨 일인가?”

그리고 집무실에 노크도 깜박하고 급히 들어오는 3등 서기관을 문책하려던 헨리 로크 남작이었다. 이를 보고 말릴 생각이 없던 2등 서기관도 3등 서기관이 전한 사실에 굳어버렸다.

“죄송합니다. 아주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고 그렇습니다. 조선 조정의 전갈인데 일본과 조선 아래의 유구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협조가 필요하기에 소집을 요청합니다.”

“소집? 유구의 처우 개선?”

“그렇습니다. 일본의 한 지방정부는 유구를 점거한 상황이라는 것이 확실하고 그 지방정부의 무사가 조선의 외교공관에 속한 인사를 죽였다는 것도 전해졌습니다. 여기에! 유구의 왕이 보낸 밀사가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밀사라고? 그들은 보나마나 해방을 원하겠지. 조선이 이를 주도하는 것은 조선이 유구에 더욱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부분인가? 물론 우리는 큰 상관은 없지. 유구를 우리가 뭐하러 직접 관리하는가?

지금 우리는 저기 인디아 아대륙에서 일어난 진압 등으로도 바쁘지. 홍콩 외의 뭔가를 가지겠다니? 미친 짓이야. 차라리 조선이 그 유구를 통치하게 용인할 수가 있지.”

“조선은 우선은 유구를 일본 사츠마라는 지방 사람들에게 해방하기 위한 공조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명분 등도 충분하니까요.”

‘조선은 무슨 선택을 할까? 요동이라는 우리에게는 관심이 없지만 점점 보면 꽤 자원이 많은 지역에 대한 곳을 가져갔지. 그들은 저 유구라는 제도에 세워진 작은 나라를 해방시킨다고 하고 집어삼킬까?

물론 아닐 수가 있지. 조선은 유구를 자기들의 영향력을 키워서 우호적인 국가로 두어도 남는 장사를 할 수가 있다. 다만 조선을 내가 잘 모르니까 모르겠군.

어떤 선택을 할까? 조선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조선 영길리 공사관의 공사인 헨리 로크 남작은 그 소집이 언제인지 받은 편지와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친필서신으로 그 소집에 응하겠다고 답했다. 물론 조선에 주재하는 모든 서역국가의 공사들을 모으고 논의하는 부분이기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나올 줄은 예상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며칠 뒤에 조선의 법궁인 창덕궁에서 서역 국가의 공사들을 초청한 이영은 역관들을 통해서 이 회의를 주관하였다. 물론 이영의 곁에서는 의정부와 군국기무처 등의 고관들도 함께하였다. 당연하게도 유구의 밀사인 오오기미 닌도 동석했다.

아라사, 러시아에서는 유구 해방에 대한 공조에 대해서 생각보다 의구심을 가득한 시선으로 조선의 태왕과 영의정, 외부상서를 압박하는 말을 내놓기 시작한다. 물론 날이 서기는 했어도 최대한 적의를 사지 않는 의문을 표하는 언동이었다.

“조선은 유구를 해방하고 그들을 속국 혹은 병합할 마음이 있다면 그 저의는 순수하지 않을 겁니다. 조선은 서역 열강들과 연계해서 유구의 주권을 진심으로 지킨다면 절대 유구에 대해서 무력 병합 등의 행위와 속국으로 만든다고 간주할 수가 있는 그 어떤 행위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은 사실 서역의 각국 공사들도 은근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었다. 일본의 지방정부, 사츠마에게서 유구를 해방시킨 다음에 유구에 대해서 조선이 영향력을 매우 행사해 속국 혹은 병합을 할 수도 있었다. 지난 전쟁에서도 조선은 청나라에서 영토를 챙긴 사실을 고려하면 일리가 있었다.

다만 헨리 로크 남작은 조선이 전면전을 바로 벌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조선에 대해서 제일 긴밀하고 확실한 첩보망을 세운 영길리, 영국이 수집한 정보들을 종합하면 그랬다. 이는 영길리보다는 못해도 첩보망을 꽤 세운 법국, 프랑스도 견해는 비슷했다.

아라사, 러시아가 조선을 견제하기 위해서 좀 강하게 외교적인 압박으로서 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두 나라 말고도 다른 나라들도 비슷했다. 다른 나라들은 유구에 대한 깊은 이해관계가 처음 유구와 수교한 서역 국가인 미리견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었다.

‘우리는 유구가 존속하기를 바란다. 일본은 장차 내부를 안정화할 경우, 지금 사고를 치는 무리들이 집권하면 유구에 대한 침탈을 할 여지가 높다.

반면에 조선은 새로 얻은 북쪽 영토에 대한 개척과 아라사와의 신경전 부분으로 신경을 덜 쓰고 유구에 대한 존속을 원할 부분이다. 조선에 협조하는 부분이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주조선 미리견 공사가 하고 있었다. 아라사 쪽의 공격적인 외교 언사에 조선쪽의 외부상서인 김병학이 입을 열어서 이렇게 물었다. 그 발언에 모든 이들이 생각에 잠길 정도의 의견을 내었다.

“그럼 유구가 자발로 아국, 조선의 보호 아래로 들어가는 경우는 어떻겠소?”

“자발로 밑으로 들어가는 부분이요?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간다면 유구의 의향을 들어주어야지요.”

아라사 공사의 말에 다른 서역 국가들도 말은 대체로 안하지만 비슷한 생각을 했다. 영길리, 영국의 공사는 조선의 공식적인 문의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구가 조선의 보호를 요청하고 들어간다면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유구의 안정을 위해서 조선을 더 지원하고 덤으로 유구를 지원하겠습니다.”

아라사 공사는 조선을 사실상 편들겠다는 영길리 공사의 의견에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불편하였다. 물론 아라사와 조선이 조청전쟁 이후로 아무르스키 백작에 봉해진 무라비요프 총독의 의중에 따라서든 아니든 아라사 개척민들과 국토 관련으로 갈등이 발생했다.

그래서 아라사 공사는 조선이 훨씬 빨리 영국에 우호적인, 친영으로 기울은 상황에서도 조선이 친영국가로 완전히 기우는 상황을 늦추면서도 조선 견제를 해야만 했다. 양립하기 힘든 소임임에도 조선의 말이 옳을 수가 있는 부분은 들어주면서 저렇게 말했다.

‘저 능구렁이 같은 영국 놈들! 친영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게 우리가 뭘 해줄 수가 있는지도 고심이 드는 판에 조선의 편을 더 들겠다는 듯이 언사를!’

물론 대놓고 화를 내지 않는다. 그래도 점점 그런 호기로운 문의를 한 이들은 그렇게 되면 조선이 유구를 보호하는 것을 찬성하다고 하였다. 당연하게도 유구 왕국이 자발로 조선에게 보호를 요청한다면 이라는 전제가 붙었다.

오오기미 닌은 유구가 온전히 해방이 된다면 당연하게도 그럴 수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중산왕인 쇼타이도 조선의 은혜가 높으면 할 것이라고 밀서와 밀지를 내리면서 했다고 밝혔다.

“큰 상관은 없지요.”

“흠...”

“유구의 주권이 어느 정도 유지가 되던, 온전하게 유지가 되던 큰 문제는 없겠지요.”

이런저런 의견에서도 유구를 당장 집어삼킬 생각이 서역의 유력한 국가들에게는 크게 없었다. 유구가 그냥 독립국을 원하면 일부 열강과 조선이 함께 유구의 독립을 보장하면 그만이었다. 그게 아니라 유구가 자발로 조선의 보호 아래에 들어가도 조선이 유구를 존중하고 일부 주권을 빼고 유지하는 행위를 지속하면 부당한 병합 등만 아닐 시 내버려둘 생각도 있었다.

‘조선의 해상력이 엄청나게 커지지 않을 상황인데 뭐어.’

‘조선의 협조를 통해서 제주도와 유구의 열도를 통해서 러시아가 내려올 일부 바닷길을 차단하는데 돕게 하면 그만이지.’

여러 가지로 이해관계가 다르기에 신중하지만 조선의 이런 개입에 비판적인 아라사, 러시아는 조선이 유구를 병합만 하지 않으면 그냥 둘 생각이었다. 사실 더 정확히는 자신들의 부동항과 거리도 먼 곳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력도 없기에 그렇다.

오오기미 닌은 유구를 해방하기 위한 공조가 잘 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바로 무력행사가 아니라 여러 가지로 행동한 다음이 최후수단이 무력행사라고 알자 좀 실망했지만 조선 조정의 설득으로 간신히 납득했다.

사쓰마도 일본도 전혀 모르는 사이에 유구 해방에 대한 국제공조가 성사되고 있었다. 애초에 대청관도 없고 동래의 왜관에 있는 대마도주 혹은 그 대마도주의 직신이 보내서 일종의 총영사급 외관에 그 외관을 감독할 막부의 인사로 구성된 신 왜관도 배제당한 상황이었다. 조선이 보낸 항의사절에게서 유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본의 고위층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복잡해질 부분이 확실했다.

***

한편, 조선의 인천부 제물포 개방장에서는 청나라인 소년과 소녀가 보인다. 엽지선의 손자이고 엽명침의 아들 중 어린 축인 소년은 이름이 엽문이었다. 아직 20살이 채 안 된 엽문은 여동생과 청나라의 관직에 들지 않는 일부 형들과 같이 결국은 이 조선의 제물포 개방장으로 이동했다.

‘나는 이런 곳에 있고 싶지 않았어.’

조선에 대한 애꿎은 증오를 보이고 있는 것이 엽문인데 사실 이게 불합리할 수가 있다고 생각은 했다. 호북성의 본가는 조부가 조선으로 가면서 경사로 상경했었다. 아버지도 조선을 통해서 조부와 귀가했을 때는 그저 기뻤다.

하지만 이제야 조정이 왜 자신들을 경사로 상경시켰는지 이해가 갔다. 바로 조부와 아버지가 조선에 투항해서 그 신하가 될 수가 있다고 만주인 대신들이 우기고 일부 신료들도 동조했고 인질에 감시가 더 용이하라고 그랬다.

또 조부와 부친에게 듣기에도 상경한 이후에 교류하는 그런 부분에서 뚝 끊어졌다. 정확히는 조부와 부친이 귀국해서 귀가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랬다. 그 이전까지는 엽문도 조부와 아버지의 지인들이 경사의 엽씨 일가 저택을 잘만 방문했다고 기억한다.

그럼에도 엽문은 조선이 싫었다. 그리고 다른 진상을 들어서 그 이상으로 자신의 나라인 청나라가 싫었다. 싫은 나라를 파멸시키는 일에 끼어들까 싶었지만 아직도 청에 남아있을 제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들을 생각해서 참았다. 이런 나라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 하는 다른 형들의 말에도 엽문은 속으로 냉소한다.

‘저 만주인 대신들이 기를 쓰고 청나라에서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청나라에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은 내버려 둘 것이다. 저런 나라를 바꾸려고 내가 왜 힘을 써야 하는가? 나를 위해서 살겠다.

그리고 두 분이 돌아가시면 그 때에 청나라를 뒤집어엎는 일을 할 것이다. 조선의 도움 따위는 필요가 없다. 이는 오직 한족 등의 청나라 체제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 인식하고 이를 뒤집어야 만이 의미가 있다.’

엽문은 청나라 보다는 청나라를 지배하는 만주인 대신들을 더 혐오했다. 그래도 여전히 조선은 싫었다. 조선과 손을 잡느니 저 더 탐욕스러운 서역에게 지원을 받겠다는 생각이 있을 정도다. 이에 반해서 엽문의 손위 형들은 조선의 제물포 개방장에서 청도 비슷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청을 바꾸면 청은 유지가 될 거야. 청에게 충성하는 우리가 청을 바꾸면서 유지하면 조부와 아버지도 좋아할 거라고.”

“청을 바꾸자. 한족도 더 고관을 배출하는 구조로 앞으로 더 바뀌어야 한다고. 실제로도! 강남의 한인 사족들의 권세는 강화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이면!”

하지만 두 형의 말을 엽문은 아주 신랄하게 반박하였다. 그런 이면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표정은 아주 차갑게 굳어져서 말한다.

“만주인 대신들이 한족들을 과연 동등하게 여길까? 그 자들이? 정신 차려. 그리고 형들이 말한 그 한인 사족들? 그들도 어찌 보면 한인 동포들을 겁박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가 있지.

청조가 자신들의 무력을 두려워함을 아니까 이를 이용해서 관직과 권세를 가지고 그렇게 쌓은 것으로 더 높은 자리를 가지는 거야! 한동안은 그런 것을 이용해서 기존 청조가 가진 무력을 대체할 수가 있을 자들을 중용하겠지. 하지만 그들은 만주인 대신들을 숙청할 수가 있지 않아.

만주인 대신들을 살려놓고 자신들이 가져갈 관직 자리들을 늘리는데 중시할 거야. 멸만흥한이 아니라 청나라라는 체제에서 그런 군벌이 된 자들과 그에 연관한 제 사람들만 감싸지, 우리 같은 꽌시 밖이 된 자들을 중용할까?”

엽문의 신랄하기 짝이 없는 사천의 얼얼한 맛 이상의 독설에 엽문의 두 형인 엽무와 엽선은 매우 굳어진다. 관직 생활 중인 다른 두 형도 엽문의 이런 말을 알면 더욱 노발대발하겠지만 그들은 청나라에 있었다.

그리고 사실 엽문의 말도 일리가 아주 있었다. 증국번 등을 비롯한 상군과 회군에 화북의 다른 한인 사족들이 주도한 민병대에서는 청나라에 대한 충성도 있었지만 자신들이 이왕에 관직들을 대거 차지하자는 생각도 강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학문의 한계 외에도 청나라에 대한 충성으로 한인이 다 차별받지 않는 청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또한 자신들의 자리를 무력을 고려해서 올려준 청나라 종실과 그런 종실을 옹위하기도 하는 만주인 대신들을 숙청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공친왕이라는 남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모를까 지금 대한이라는 함풍황제가 후계자로 제 어린 젖먹이 애송이를 내세우겠지. 물론 공친왕이 섭정이라도 오래하면 모르겠다만 나는 청에 대한 신뢰가 없어. 정확히는 청의 고위층인 자들에게!

나는 엽가와 나를 위해서 살 거야! 청나라 따위가 아니라! 그리고 언제가 올 수가 있을 청의 파멸을 기다리고 그 때를 위해서 대기하고 준비할 거라고!”

두 형에게 여전히 신랄하게 말을 이어가는 엽문은 조선에서 알려주는 신학문을 더 익힐 생각이었다. 조선은 싫어도 서역의 신학문을 알려주기에 우선은 고개를 숙인다. 조선에 복수할지는 상관이 없다. 그저 조선을 죽을 때까지 싫어하면서도 그들이 제공할 것은 이용할 이중적 행태를 엽문은 이어갈 생각이다.

‘나와 엽가를 위해 살겠어.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엽가는 지금의 엽가와 달리 내가 만들 거야. 청나라에 굴종하고 조선에게 필요 이상으로 조아리는 엽가가 아닌 당당한 엽가를!’

엽문은 과연 자신의 이상을 이룰 수가 있을지는 몰라도 노력하겠다고 결의했다. 조선의 제물포 개방장에 온 어린 엽씨 형제들은 여동생과 일부 친척을 빼면 자신들끼리 더 반목으로 금이 갔다. 각자 다른 길의 끝은 어디일지 알 수가 없지만 자신들이 가는 길이 옳다고 하며 서로를 공격하는 중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옳은 생각을 했다고 입증하려고 조선에서도 배우는 신학문을 등한시하지 않고 열심이었다. 제물포에 부임한 새로운 개방장관은 주청국 조선관 견외통사 김영근의 요청과 조정의 결정으로 망명한 그 일족의 젊은이들이 보이는 모습에 경계와 함께 대견함을 느끼었다.

그렇지만 왜 그렇게 열심인지는 개방장관도 몰랐다. 그저 나라를 위해서 라고만 지레짐작을 한다. 그런 학구열이 조선에 큰 피해가 생기지 않게 친조선파로 포섭하려는 공작에 열심이지만 엽문은 선을 적당히 그으면서 이용해 지식을 얻을 생각이었다.

***

“조선의 동래는 많은 사람이 사는 곳 같아 보입니다.”

“그러느냐? 하관보다 더 번성했다는 느낌이기는 하지.”

조선의 동래에 온지 얼마 안 된 이토 슌스케는 조선이란 곳이 생각보다 낙후하지 않았다고 깨닫는다. 밖에서 조선의 강대함을 알면서도 허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조선이 좀 더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기분 탓 일지 아닐지는 모르겠다고 여긴다.

동래와 부산포 개방장을 왜관의 손님인 자의 종자로 신분으로 이토 슌스케는 비교적 쉽게 돌아다닐 수가 있었다. 지난 해 등으로 호열자라고도 부르는 골역이란 질병으로 방역을 보강했던 조선은 올해 초부터는 방역을 하면서도 출입을 더 원활하게를 허락했다.

“여기에 왜 왜인이 있는가?”

“왜관에 있지 않다니?”

이토 슌스케는 아직 조선어를 잘 몰랐다. 다만 이토 슌스케를 보면서 눈을 흘기며 지나가는 조선인들에게서 왜인에 대한 조선인들의 악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이토는 왜 그런가는 잘 몰랐다.

‘그들은 왜 우리를 싫어하는가? 모르겠다. 알아봐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동래부의 제물포 개방장으로 조심히 들어가는 이토 슌스케였는데 동래부의 중심인 동래 읍성 일대보다 더 번화했다는 느낌일 지울 수가 없었다. 조선인들이 지은 가옥 등도 분명하게 있지만 양이들이 지은 집도 많았다.

또 양이들의 배가 시모노세키보다 훨씬 정박을 많이 했다. 아울러서 이토 슌스케의 시선을 제일 사로잡은 것은 미리견 포경선과 그런 포경선을 중고로 사들여서 선주가 조선인인 조선의 포경선이었다. 조선의 연안에서 잡아온 고래, 이토의 고국에서는 ‘쿠지라’라고 하는 고래를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해체하고 있다.

“와아...”

물론 비위가 상할 일이지만 흥미롭게 지켜보는 구경꾼이 1/3, 그냥 보고 익숙하다는 듯이 지나가는 사람이 1/3, 보다가 놀라서 다른 곳으로 가는 이들이 1/3이었다. 이중에서 이토는 가장 처음이었다.

하급무사의 아들이지만 사실상 농민에 가까운 이토 슌스케는 이런 해안의 모습은 시모노세키에서 말고 조선에서는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이 동래부의 부산포 개방장은 시모노세키보다 훨씬 컸다고 느낀다.

아까 생각한 것처럼 상상 이상으로 번화했다고 할 수가 있었다. 또 흥미로운 점은 조선인들은 일본에서 생각한 것보다 양이들에게 굴종적인 태도이지는 않았다. 이토 슌스케는 자신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이 말했던 조선은 양이들에게 굴종하고 그들에게 무기를 얻어서 강해지고 청을 이겼다는 말을 했는데 적어도 굴종했다는 사실이 아니라고 봤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될 수가 있을까?’

도리어 조선인들은 신국인 히노모토인들이 대부분 양이를 두려하고 꺼리는 것과 대조가 되게도 양이들에게 거리감이 없이 같은 사람으로 대했다. 특히 이 개방장에서는 양이들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조선의 상인들은 양이 상인들과 피진을 섞어가면서 아주 열심히 교섭을 하기도 한다.

‘가츠라 코고로 나리도 이런 광경을 얼마 전에 보고 아주 놀라셨지.’

조슈의 모리 가문에 속한 직신에 해당하는 가츠라 코고로는 며칠 전 이토의 회상에서 이런 광경에 아주 놀랐다. 그리고 경계하면서도 유심히 더, 개방장의 광경을 살폈다. 그리고 왜관으로 돌아가서는 이토 슌스케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체 조선인들은 청나라를 그렇게 밟아버렸다는 양이들이 무섭지 않은가? 저 양이들이 말하는 신, 이른바 데우스 라는 존재 등을 가리키는 도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아니... 두려우면서도 다가가며 알았기에 그런 것인가? 저게 어떻게 굴종이지?

저들은 용감한 것이었다. 두려우면서도 문을 열고 알려고 했으며 두려우면서도 받아들이면서 달라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믿는 것과 경쟁시키는 것 같아... 두려워서 거부하는 자들보다는 낫다.’

조선을 보면서 신국인 히노모토가 달라질 구석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했다. 대마도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선에 대한 진상을 알았다.

이토 슌스케는 이제 막 조선을 더 알아가는 중이었다. 조선은 막부 같은 조직이 없다. 오롯이 조정만이 있었다. 어찌 보면 존왕양이들이 가장 동경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왜 조선을 그렇게 멸시할까? 또 서역과 함께 한다고 상국을 배신했다고 말하고?’

기존 자신의 지식과 모순이 된 새로운 지식에 이토는 혼란하면서도 새롭게 얻은 지식을 정리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 이는 가츠라 코고로도 비슷하다. 다만 아직 젊기에 더 유연하게 사고할 여지가 있는 이토는 나날이 더 빠르게 일본 안에서의 정저지와,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던 일본에서의 지식을 빠르게 탈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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