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86화 (186/221)

〈 186화 〉 (87) 항의사절 파견과 그 중에서도 바쁜 조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

한산공 이성에 대한 좋지 못한 추문, 추측성 보도가 영길리 언론을 통해 뿌려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영길리 내각 등이 조용하게 나서서 수습을 했고 현장에 있던 영길리 귀족과 젠트리 등의 반박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다만 한산공 이성과 류희지 사이의 어색함, 그러니까 패인 골이 완전히 아물지 못하고 서로 떨어져 있었다. 이런 상황을 제공한 영길리 평민 기생, 윌리스 샘슨 때문에 두 사람이 저렇게 되자 이 부부의 수행원들이 제일 답답했다.

‘에휴, 사실 사고인데 한산공이 휘말린 것이지 않은가? 그것도 대놓고 수작을 부린 여자 때문에!’

참봉 정도균은 대화를 좀 길게 진솔하게 하면 풀릴 일인데 막상 둘 다 서로와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서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다만 어설프게 자신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거리를 두면서 조심히 조언을 하는 쪽에만 머물렀다. 이는 한산공 이성의 부인인 류희지 쪽에서는 부인의 최측근 부발이자 아이의 유모인 상궁이 나서서 조언을 하는 부분과 아주 비슷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조선의 서유시찰단은 그 사이에 더 달라진, 서역을 알고 조선에 도움이 될 만한 구석이 있는 정보 등을 더 구하고 수집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영길리의 왕립학회도 선물 등을 준비했다.

“기상이라는 것을 관측하려고 하다니.”

“우리도 했던 일일 수가 있지만 저들은 더 대담합니다.”

“그리고 선물도 받았지요.”

비글 호의 항해를 이끌던 로버트 피츠로이 제독은 기상학의 기초를 정립했는데 일기예보에 대한 설명을 듣자 조선에서도 기후의 기록, 주로 강우를 농본국가로서 하기도 하지만 저렇게 더 체계화가 필요함을 강위 등도 인정했다.

다만 종의 기원은 조선의 서유시찰단과 그들이 체류하던 영길리에서는 사회 등 나라의 조야며 만민이 경천동지하게 지켜볼 정도였다. 서유시찰단 내에서 영어 등을 그나마 잘하는 이들이 그 종의 기원 원서를 읽어보면서 당연히 패설, 소설인 모대 박(모비 딕)보다는 힘들어도 아주 흥미로운 구석들을 알 수가 있었다.

“우리가 잔나비, 원숭이들과는 공통이 되는 조상이 있지만 갈라져 나온 것과 같다는 소리군.

이거 일리가 있는 것 같구먼. 당장에 사람은 사는 환경에 따라서 습성도 외양도 대체로 다른 상황이지.”

“물론 사람은 원숭이 등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들,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제일 반발하겠지요.”

“유주와 미리견에 걸친, 야소를 믿는 신교들이 제일 반발하고 있다고 압니다.”

조선의 서유시찰단은 사실 이 종지기원, 종의 기원이라는 서책에 조선에서도 어떤 여파를 줄지에 대해서는 큰 짐작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상당한 논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일치하였다.

“다른 서적들은 어떻게 보는가?”

“존 스투어토 밀의 자유론 말입니까?”

“그의 저서들은 훌륭하더군요.”

“리보태(리버티), 우리가 번역하기를 자유(自由)가 뭔지를 더 알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한산공 이성 부부에 대한 우려에도 그들은 최대한 열심히 일을 하였다. 장계에 듣고 확인하고 본 것들을 기록했다. 일기 등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들은 법국으로 이동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한산공 이성 부부가 화해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서유시찰단은 영길리에서는 영길리 왕실과 귀족들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면서도 이상하게 일부 하류 계층 등에게는 조선인들은 좋지 않게 보이기는 했다. 이번 윌리스 샘슨 사건은 어떻게 수습이 되었어도 불타오를 견지도 있었다. 왜곡 보도가 된 윌리스 샘슨 사건은 하류 계층에게 조선인들에 대한 이상한 적대심을 불러 일으켰다.

조선의 서유시찰단은 이런 것도 고려해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처신을 조심하는데 그래도 한산공 이성 부부의 화해를 원하고 그들도 적당히 각자와 부인들로 다그치지 않고 분위기를 수습하려고야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저런 서적들은 그리고 이론에 기물들은 여전히 서역이 우리를 놀라게 하지요.”

“우리를 동행한 한산공 대감 부부도 놀라게 하지요. 물론 사고에 휘말린 것이지. 친 것은 아니니 다행입니다.”

“그렇소.”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이후에 한산공 이성 부부는 조심히 서로를 봤다. 서로가 서로에게 모진 말을 할까 봐 두려우면서도 서로의 진심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용기를 냈다. 그러다가 말이 겹치게 된다.

“부인!”

“서방님!”

““아...””

두 사람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잠시 물러나는 두 사람은 누가 먼저 말해야 하나 생각하지만 서로가 먼저 말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또 겹치지만 류희지가 결국 한산공 이성에게 양보한다.

“부인!”

“서방님!”

“앗!”

“아아, 서방님께서 먼저 말씀 올리시지요.”

한산공 이성은 부인의 양보로 자신의 진심, 미안한 감정을 토로한다. 자신의 부인인 류희지에게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말을 이어간다. 류희지는 그런 자신의 부군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었다.

“그, 부인... 내가 그 여자를 바로 떼어나야 했습니다. 당황해서 그랬는데 내 곁에서 이를 지켜본 그대는 내가 그런 천박한 여자에게 혹했다고 오해할 수가 있었는데 말이지요.

허나 내가 너무 늦게 움직였소. 또 그대에게 사과를 하면 될 일인데 이렇게 시간을 끌었소. 부족한 지아비가 이래서 문제요. 그대에게는 미안하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더 단호해지겠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대인데 같이 있는 그대를 두고 어찌 내가 그런 망측한 여자를 같이 있게 두겠소? 이 진심을 빨리 해명하지 않고 계속 오해하게 만든 내가 문제요. 내가...

그러니 부인, 이런 못난 지아비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소? 그대 곁에는 그대가 제일 중요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가 있는 지아비라는 것을 보여주게!”

류희지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면서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 아직 표정이 솔직한 자신의 낭군님에게 가진 오해를 풀었다. 물론 자신도 오해인 것을 알면서 드러내면 그 투기가 심상치 않다고 소리를 들을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서방인 한산공 이성도 해명, 사과의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까 두려웠다. 자신도 같았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에서 그런 노심초사는 같았다.

그렇기에 그녀도 사과를 하면서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류희지는 용기를 가지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런 부인의 말을 아까 부인이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준 것처럼 한산공 이성은 귀를 기울이면서 말을 아끼고 듣는다.

“서방님, 아니 한산공 대감... 소첩은 투기를 보일까봐 참았지만 그 것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대감께서 그런 이상한 여자에게 당황하다가 행동이 과해지자 단호하게 내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토라진 것입니다.

물론 서방님은 그 관련으로 사과를 했지만 안 해도 되었지만 그래도 하셨습니다. 전 오히려 옹졸한 여자입니다. 이런 저를 생각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도리어 대감께 사과를 드려야 하지요.

저도 못난 지어미입니다. 그런 제가 사과를 받는다니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사과를 드립니다. 미안합니다. 대감... 당신은 충분히 좋은 지아비입니다. 제가 좋은 지어미임을 보여줄 기회를 주실 수가 있으신가요? 서방님?”

그런 류희지의 담담하지만 미안함이 담긴 미성을 들으면서 한산공 이성이 도리어 더욱 미안해졌다. 사랑이 없이 만난 정략혼일지언정 이 두 사람 사이에서는 확실하게 사랑이 싹트고 자라고 있었다. 어떤 내외부의 시련에서도 이 둘의 사랑은 더 커져가고 있는 셈이었다.

“당연한 소리 아니요? 아니 그대도 이미 좋은 지어미요. 서로에게 좀 더 솔직해집시다. 그러면 되지 않을까하오. 이런 일의 교훈이 그게 아닐까 싶습니다.”

“네...”

조심히 한산공 이성은 자신의 부인 류희지에게 다가가서 안아주었다. 류희지도 얌전하게 제 부군인 한산공 이성에게 안긴다. 둘은 서로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고 오랜만의 포옹을 만끽한다. 그 둘 사이의 골은 완전히 복구가 된 것은 아니라도 굳어진 사랑이 되었고 더 튼튼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 뒤에 조선의 서유시찰단은 법국, 프랑스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들이 영길리에서 얻은 성과는 꽤 많았다. 투자 지원을 받아낸 것은 물론이고 훨씬 더 짙은 연줄을 만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베세머 공법은 물론이고 영길리 해군이 굴리던 구형 목조 전선, 부리긴(프리깃) 등을 나중에 인도해줄 예정이었다. 연안포함도 몇 척은 중고로 구매하는 식으로 계약하였다.

‘이제 유주 대륙이라는 유주의 뭍에 내려서 유주를 더 둘러보겠군. 보로선의 왕태자를 만나면 그때 못했던 말을 해주어야겠어.’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하는 한산공 이성은 확실하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전의 그 축 처진 큰 고양이 같던 한산공 이성은 확실하게 사라졌다. 부인과의 화해가 심리에 더 큰 안정을 주었다.

법국의 도성인 파리로 향하는 그들은 영길리에도 이곳에 남아서 공부할 유학생들을 남겨두었다. 운양 김윤식과 면암 최익현, 단원 김홍집 등이 남았다. 남은 이들은 유주 대륙을 방문한 나라들 중 조선의 수교국들에 분산되어 공부하고 귀국할 예정이었다.

또 그들은 환송연회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함부루구, 함부르크에 사는 마술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가 운영하는 투전판, 도박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길리 귀족을 보면서 그들은 그런 상술에 휘말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곳의 마술사는 아주 교묘한 사람입니다. 혹시 독일어권의 함부르크에 가면 그 도박장에 휘말리면 좋지 않습니다.

물론 휘말리면 파산하지 않게 조심하고요. 마술사의 덫에 놓이지 말고 미끼를 물려서 더 큰 것을 잃지 않게 주의하기를!”

그런 선의(?)를 가진 영길리 귀족도 사실은 그 함부르크의 카지노에서 꽤 돈을 잃고 돌아온 이었다. 경험자라서 주의를 주지만 사실 그 표정이 마치... ‘나만 당할 수 없지!’ 이런 표정이라서 사실 더 떨떠름한 조선의 서유시찰단이었다.

‘내가 잘 단속해야지. 한산공께서 사고를 칠 수가 있으니...’

여러 부사들과 참봉 정도균도 각오한다. 물론 천하의 일은 사람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를 그들은 나중에 더 체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나중에 그 곳에 생긴 일에 더 골치가 아파질 수가 있음도 전혀 몰랐다.

***

“이 동래에 조선의 항의사절이?”

“네, 왜관에 대한 시선이 더 나빠졌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본국의 히노모토에서 일어난 사고들 때문이지요.”

“정확히는 유구에 있는 사쓰마 하야토들이 거기에서도 사고를 쳐서 더 화가 났을 부분이라고 본다. 헌데, 유구가 이 일에 끼었을까는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선의 동래부 아래에 동래부 관아에서 관할하는 두 개방장 중 하나인 왜관에 주재하는 가츠라 코코로와 이토 슌스케도 조선이 보내는 항의사절에 대한 소식에 사실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이 조선에도 닿은 사건을 알 수가 있었다.

조선 현지에서 기고하는 동래부민보 등의 신문이라는, 서역의 뉴스 페이퍼를 모방한 것에서 왜국에 대한 악감정을 알 수가 있었다. 쓰시마에 속한 이들도 한문, 혹은 조선의 글자와 한문이 같이 적힌 글을 보면서 식겁할 정도면 얼마나 험악한지 짐작할 뿐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내용의 번역을 요청하자 무사인 가츠라 코고로와 이토 슌스케도 놀랄 험악함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 사건의 전말에 특히나 사쓰마 하야토라고 멸칭하면서 사쓰마의 무사들에 대한 욕을 할 정도였다.

‘물론 조슈의 무사들도 남 말을 하기가 어렵지요.’

이토 슌스케는 사실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 게다가 사쓰마도 친 사고가 심각했다.

유구에서는 시모노세키의 조선통관보다 더 높은 외관 관아의 관원을 죽였다. 다른 곳인 나가사키에서는 조선과 거래하는 양인 상단 직원과 그를 돕던 조선 조정에 속하는 통역하는 관리, 역관도 죽여 버렸다.

‘우리 조슈와 사쓰마 모두 잘못하면 조선에게 공격당할 수가 있다. 막부가 이를 말릴 수가 있을까?’

이런 걱정을 할 정도로 왜국 밖인 조선의 실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대마도인 이상인데 이를 공개할 생각 등은 더 강한 이토 슌스케였다. 제 고향에 대한 걱정이 강하다. 그런 이토 슌스케의 표정을 보면서 가츠라 코고로도 평소보다 눈을 더 작게 뜨면서 생각에 잠길 따름이었다.

“동래에 잠시 정박한 이유는 역시? 물자 보급 등 때문이라고 보면 되겠지?”

“수부들을 잠시 휴식시키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것이다. 우리 히노모토에서 그들과 관련이 된 사건이 터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최근에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존왕양이의 기치를 드는 자들이 점점 과격해져가는 모습을 이미 목도한지 오래였다. 또 여러 소식을 듣자 존왕양이를 지지하는 자들은 히노모토의 사람들이 아니면 적대하는 경향이다. 여기에 같은 히노모토 사람이라도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극단으로 행동하여 제거하는 판이었다.

그런 이들이 자신의 사형과 사제 등이라고 할 수가 있는 이들의 행동도 봤기에 분명하게 사고가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조선이 일부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들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가츠라 코고로는 그건 아닐 수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듣자하니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 신국 조정의 반대에도 막부의 찬성을 받아서 호위 명목으로 소규모의 정병을 붙였다고 했다.’

이토 슌스케는 가츠라 코고로의 생각을 모르지만 조선이 항의사를 통해서 철저하게 항의하고 받아낼 것은 받아내면서 큰 전쟁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랬다면 조선 해군의 주력이라고 알려진 함대가 이 동래부 등에 결집을 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식견이 완전히 높은 것은 아니라도 신국이 이런 무모한 행위를 한다면 과연 득이 있을까? 오히려 이웃인 조선마저도 히노모토를 더 적대할 것이다. 우리는 바다 밖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다.’

이런 생각은 불행하게도 아직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이토 슌스케나 가츠라 코고로 모두 저 항의사절이 별 일이 없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그 바람이 무색하게도 결국 일은 일어나고 말 것은 그들도 전혀 알지 못했다. 이틀은 더 지나서 항의사절을 태운 조선의 서양식 관선 2척이 동래의 부산포 개방장을 빠져나갔다. 구경하려고 온 이들 사이에서 가츠라 코고로와 이토 슌스케도 그 광경을 지켜봤다.

“양이의 중고 상선을 사들여서 관선으로 쓰고 있다고 했던가? 이미 조선은 우리보다 양이방식 의 배를 더 잘 쓰고 있는 것 같지.”

“수부들의 수가 훨씬 늘어날 수가 있는데 우리는 지금 조선이 변모하는 그런 분위기를 따라올 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견문 등을 더 넓혀서 그게 우리의 나라인 66주 신토를 가진 히노모토에게 도움이 되기를 노력해야지.”

“네.”

그 두 사람은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되던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장 현실을 살려고 했었다. 그들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견문과 생각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 중이었다. 돌아가는 나라, 자신들의 일본이 부디 멀쩡하기를 바라면서 말이었다.

***

한편, 조선 의정부의 새로운 부처인 농부는 고증학에 능한 이들을 통해서 한 가지 기록을 재현 보려고 연구를 했었다. 서방의 농서들과 비료들을 써보면서 조선의 상황에 맞게 이를 적용하던 농상도감이 농부로 격상된 상황에서도 이 연구는 계속이었다.

그런 중에서 옛 기록 중 하나를 고증학이라는 학문도 능학 정학을 배운 이들의 제안으로 임해보는데 사실 의아하기는 했었다. 씨를 싹 틔운 상태에서 일정기간 서늘하거나 차가운 곳에 두고 봄에 파종하면 가을에 파종해서 거두는 작물처럼 개화할 수가 있었다. 이른바 얼보리라는 방식으로 보리를 봄에도 지어서 보릿고개를 극복하던 과정에서도 등장한 방식이었다.

근데 지금 그들이 해보는 방식은 조선에서도 북부에 토착하는 밀과 벼에 이런 얼보리 방식을 적용한 얼밀과 얼벼 상태로 재배하는 방식을 채택해보는 부분이었다. 벼는 사실 원래 조선의 북부와 신지에서는 잘 자라기가 힘들었다.

지금 해당 연구를 하는 이유는 신지 요동에서 벼를 재배해서 쌀을 현지에서도 먹게 만들려는 생각으로 해보는 것이었다. 우의정 추사 김정희의 제자들 중 일부가 이를 군국기무처와 함께 협업 중이었다.

“도정하지 않은 벼와 밀을 얼보리 방식처럼 절기인 대한이 올 때에 토실에 물에 적셔 넣고 입춘 혹은 추서에 도랑에 파종해서 벼는 천수답 형식으로 농사를 짓는 방식을 해보자고 했지요.”

“이게 성공하면 아국은 신지인 요동에서 개척을 위해서 보내는 자들과 이주자들이 당장 북감저(감자)와 잡곡 등으로 연명하는 것을 방지할 수가 있지.”

“요동 현지의 농부들에게서 밀 종자도 얻고 이를 농사하는 방법도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농사비법도 수집해서 통합하고 있지요.”

그래서 대조선국 농부에서는 아주 큰 계획을 하고 있었다. 농사직설 등 기존 조선의 농서들을 개량하고 서역의 농법과 비료들을 섞어서 작금의 조선 사정에 맞는 신편 농서를 출간하여 보급하는 일에 집중했다.

다른 연구들도 이 신편 농서, 농정신편을 위해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얼벼와 얼밀이라는 것도 그런 이유로 시도하는 편이었다. 물론 얼밀과 얼벼는 생각보다 성과가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는 편이었다.

“내성군수 등 아국의 강역과 가장 가까운 신지 제주들의 주군에서 이를 제공했는데 시범으로 경작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가 아 조선의 북부에 나는 기존 일반 벼들보다 더 효율이 좋은데 천수답이라서 수확을 다해도 회수할 수가 남부에 비하면 적다고 합니다.”

“그래도 마치 양감저역 이전의 애란처럼 북감저 등에만 의존하는 상황을 탈피할 수가 있지요.”

“신지 요동으로 간 개척민들은 농사 외에도 사냥과 목축 등으로 지금 먹고 살 길을 찾고 있기도 합니다. 얼벼, 동화(凍和)와 얼밀, 동소맥(凍小麥)에 한족들이 주로 재배하는 그 밀도 이용하고 잡곡을 기르면서 버티면 덜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신지 요동에서 옥미, 다른 말로는 강냉이라고도 부르는 작물도 기르지만 사실 그렇게 권장은 되지 않았다. 바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지력 문제고 다른 하나는 이를 주식으로 먹을 때에 혹여 나올 수 있는 병 때문이었다.

“옥미 또는 강냉이라고도 부르는 작물은 지력을 흡수함이 저 인삼이 저리 가라할 정도입니다. 또 강냉이만 먹었다가 생기는 병이 있는데 서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것만 먹어서 생기는 병이 있습니다. 기록에서는 이는 저 강냉이가 미리견이 있는, 바다 건너 큰 땅에서 건너왔는데 제대로 먹는 법을 몰라서가 아닌가로 말이 많습니다.”

“강냉이보다는 역시 북감저, 다른 말로는 양감저와 잡곡을 위주로 기르라고 함이 옳겠지. 물론 식량을 아국의 본토에서 쌀을 판매하려고 신지 요동의 강 하구들에서 보내지고 있다지.”

이런 저런 점을 조선 조정과 농부, 그리고 요동 현지의 개척민들이며 지방관들도 알아서 권고 중이었다. 동화와 동소맥이 성공하면 한족 현지 백성들과의 거래 등이 아니면 얻기 힘든 밀을 빼고 가을밀과 보리 등의 잡곡과 북감저 만으로 곡기를 유지하는 조선인 개척민들의 벼 재배 사랑을 이룰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천수답 등의 문제가 있음에도 사실 강가에서 이미 동화로 저수지를 만들어서 보충하려는 이들도 있다고 보고가 올라왔다. 어쩌면 동화를 이용한 신지 요동에서의 쌀 재배를 더 빨리 성공시킬지 모를 일이었다. 조선인들의 쌀 사랑이 지대하기에 이런 연구도 이루어지고 현지에서도 동화의 시범 재배에서 이후 생산량을 개선하려는 의도가 열심임은 현지 지방관들의 장계를 통해서 속속 조선의 중앙에 보고가 되는 중이었다.

‘신지 요동은 조선에 부족한 자원과 식량을 더 보충하고 군사로는 방비를 위한 영토로 다양하게 기능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조선의 고위 관료들은 그 추운 지역임에도 이런 활용으로 여러 조언을 통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 평안도의 모처에서는 소맥을 연구해서 지어보는 특이한 농민이 있었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