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 (96) 유구 입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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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른 곳들에서도 자국을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청나라와 유구였는데 유구는 양력을 기준으로 작년에 결의한 일을 미룰까 고심한다. 올해 유구의 궁정은 이 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지켜본다면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아라사, 러시아의 대마도 일부 지역 강점 소식을 유구의 왕과 그 중신들도 알고 있었다. 조선과 영길리 이 두 나라가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유구의 중산왕인 상태, 쇼타이가 조선의 보호를 받는다가 잘못한 선택인지 돌아보면서 조정에서 다시 의논하였다.
“이제 우리 류추(류큐의 류큐어 발음)는 어찌 하면 좋은가? 사쓰마가 몰락한 것은 좋다. 하지만 나와 그대들이 한 선택이 나중에 가면 옳을지 모르겠소.”
“조선을 못 믿겠다면 다시 청에 신속하심이....”
조선을 여전히 믿지 못하나 아둔한 중신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는 해인 청나라에게 다시 신속해도 이익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위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중산왕 상태, 쇼타이도 ‘그건 좀?’ 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더 말이 이어지려고 하지만 끊긴다.
“어허!”
늙은 한 중신의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우레와 같은 호통이 내전을 흔들어 버린다. 수이성의 중신들이 모이는 곳에서 모두가 그 호통을 한 이, 오오기미 우둔의 전대 가주인 오오기미 닌 혹은 쇼닌에게 시선이 모인다.
“청이라니요! 청 대신에 조선입니다. 야마투(일본)도 청도 못 믿으면 서역이 신뢰하고 강해지는 조선이 낫지요!”
그 말로 언쟁이 과열이 된다. 조선의 선박들이 인삼을 팔아서 번 돈으로 매우 빠르게 늘어나서 이 류추에서도 조선의 배는 매우 흔하다. 또 조선인이 점점 들어와서 설탕수수를 수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는 조선인들이 땅을 사서 유구인들에게 사탕수수를 재배하자고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사쓰마와 달리 수탈하는 모습은 아직 없다. 사쓰마의 지배 아래라도 개항을 한 이래로 사탕수수를 사면 정당하게 팔았다. 만약 자신들이 풍년이라면 조선에서는 넘치는 곡식을 유구에게 팔고 있다. 그게 아니면 인삼, 아님 싼 값으로 도기와 자기를 팔았다. 이런 식으로 이문이 생기면 사쓰마는 그 마저도 수탈했었다.
그래도 이런 은혜와 구해준 것도 가끔 잊고 자신들이 사쓰마에게서 독립을 쟁취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 이들의 언행으로 친조선, 연조선에 의거한 장기 자강파들의 속은 타오른다.
“저 대식국(조선에 대한 멸칭) 놈들이 우리를 지켜준다고요? 도리는 어쩌면 야마투 이상으로 없어 보이는 자들이?”
특히나 그 말에 친조선/연조선 파벌의 대표인 노신 오오기미 닌이 더 폭발하고 말았다. 움찔하면서도 자신들의 허튼 소리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늙은 오오기미 닌의 현명함과 논리에 반박되니까 더 궤변을 늘어놓으려고 하였다.
“조선이 도리가 없다면 청이 더 도리와 신의가 없소! 그 잘난 청의 천하가 어찌 되고 있소?”
“대청은 여전히 대국인데 그 것이 헛되게 보이요?!”
“서역과 조선 앞에서 그 대청이 패했소. 또 그들의 영광이 이제는 빛이 바래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모르는군!!”
“선비인 척 하는 도적들일지 누가 모르오. 저들에게 의지하느니 독립해서 자강함이 옳을...”
“독립해서 자강? 저들이 우리를 지켜주어도 속국으로 있을 때 보다 지원이며 이런 저런 것을 덜 받게 되는 일은 모르오?! 참으로 답답하오.
저들을 경계해야 함도 옳지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도외시해서 무리하는 것이 제일 한심한 일이오. 여기서 나와 조선의 흥선백 대감과 오래 교류한 이들을 제외하고 조선의 진면목 편린을 제대로 본 이들이 얼마나 있소?!
애송이 같은 행동은 멈추고 더 멀리! 더 넓게 보시오! 그렇게 하다가는 우리가 누군가의 더 비참한 속국이 될 수도 모르오! 정신차리오! ”
언성이 점점 높아져서 자칫하면 몸싸움을 하기 직전까지 간다. 그 것을 보는 유구의 왕 쇼타이는 한숨을 쉬다가 모두를 멈추게 한다. 이에 언성이 가라앉는다.
“그만....”
“전하....”
“내가 아무리 사쓰마의 꼭두각시 신세였다지만 너무하는 것 아니요?”
유구의 왕인 중산왕 상태, 쇼타이의 푸념이 어린 씁쓸한 말에 모든 이들이 헉 같은 소리를 내면서 더 분위가 조용해진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하!”
“송구합니다...”
유구의 도성 중 슈리, 수리라고도 하는 수이의 궁성 편전은 완연하게 침묵하였다, 그리고 그저 신하들이 자신들의 왕인 20살이 안 되었으나 이미 15살을 넘어서 성인에 가깝게 된 쇼타이를 주시하게 된다. 생각에 잠겼던 유구의 왕인 쇼타이가 입을 열었다.
“청은 무너지는 하늘이고 지는 해라는 걸을 보인다. 사쓰마는 물론이고 저 사쓰마가 속한 야마투(일본)는 더욱이 믿을 수 없으며 미리견 등 서쪽 홍이 제국도 완전히 믿지 못한다. 그래도... 둘 보다는 낫지.”
“허면....”
“이미 결정한대로 조선에 입조한다. 서쪽 홍이 제국들이 조선을 뺀 둘보다 믿어지기는 해도 제일 열심히 피 흘려서 아국을 해방시킨 조선이 더 신의가 있다. 그들에게 보호 받으면서 아국은 커야 한다.”
그 말에 희비가 교차하고 일각은 자신들의 왕인 유구의 중산왕을 더 지켜본다. 쇼타이는 갈등하면서도 정한 정책이 뒤집어지지 못하게 완연하게 못을 박았다. 어차피 청과 일본도 신뢰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상황이 맞았다.
조선의 어영청 병력과 민선들 중 후자는 소집 해제로 먼저 떠난 배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조선의 관선 및 군선과 함께 움직였다. 물론 소집 해제가 된 배들은 어영청 병력을 차근차근 자신들의 본국인 조선으로 용선하고 생업인 장사로 일을 돌렸다.
유구가 조선으로 보낼 사절단은 그런 조선의 군대와 함께 조선의 군선 및 관선 중에서 관선에 타서 조선에 입국해서 입조, 보호국을 청할 예정이었다. 아마 전통의 입조를 더하고 서역의 만국공법에 의거한 명목상 보호국이 되는 조약을 체결할 것이었다.
조선과 영길리, 아라사가 대마도 근방에서 각자의 해상전력 일부로 대치하는 중에서도 설, 음력으로 치는 설이 되기 전에 유구의 사절단은 이 사절단의 이름을 신조천사라고 칭했다. 조선은 한창 내부 경장을 지속하면서 요동의 개척과 아직 덜 끝난 정왜에 대한 결산 등을 계속 처리한다고 바쁜 와중이었다.
“폐하! 긴급한 전보입니다.”
“무엇인가?”
정무 중인 한성의 중심, 경복궁이 재건되지 않는 이상 이 조선, 대조선국의 사실상 법궁으로서 존재할 창덕궁에서 인천과 연결이 된 전신으로 신속하게 급한 전보가 도착했다. 사실 이 전보로 올 급한 상황은 외교와 국방에 관련된 일인데 전자였다.
“다음과 같이 기입되어있습니다. 유구입조사신단인천당도!”
유구입조사신단인천당도, 당시에도 전보는 정보의 적절한 요약을 해야만 했다. 아마 전보 다음에 파발이 도착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저 요약만으로도 무슨 전보인지는 문맹 등이 아니면 모를 수가 없다.
그렇다. 조선에게 보호를 받는 보호국, 다른 말로는 속국이 되려고 입조를 하러 온 유구의 사절단이 인천의 제물포 개방장에 당도한 것이었다. 자세한 보고, 장계는 파발을 통해서 도착할 것이었다.
그래도 놀라운 소식이었다. 그래서 그 전보가 진짜인지 다시 물어보는 태왕 이영이다. 돌아오는 답은 당연하게도 사실이라고 그렇다.
“사실인가?”
“유구 중산왕이 보낸 입조 사절이 분명합니다.”
“입조라... 정말로 유구가 하다니. 그래도 이리 빨리 한 것은 예상 밖이군.”
태왕인 이영은 그 소식에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근대화가 되어가는 와중이라도 아직은 관복은 전통의 단령을 입은 문무관 관료과 서역의 복색을 입은 서역 출신 고문관들은 모두가 유구의 생각보다 빠른 이런 행동에 놀랐다. 모두가 그렇기에 조정에서 귓속말로 수근을 거린다.
“이게 우리 조선에게 이익인가?”
“하지만 유구는 미국 등과도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나라인데 타국이 가만히 둘까요? 아무리 한성회담으로 동의를 얻었다지만 말입니다.”
관료들이 수근거리는 것을 태왕인 이영도 이미 생각한다. 얼마 전에야 왜국과 국지전이 끝난 상황에서 이리 빠른 유구의 입조는 예상치 못한 것이다. 물론 체찰사인 김병학과 주유구 조선관 견외통사인 흥선백 이하응의 장계를 검토한다면 입조의 가능성은 이미 열어놓기는 했었다.
유구를 사실상 지배한 살마 번이 몰락하고 이후에 유구가 숨통이 트는데 그걸 바탕으로 제 살 길을 모색했다고 본다. 유구가 선택한 최선은 조선에 신속해서 보호를 받는 것으로 갔다. 분명 유구의 입장에서 조선은 그나마 아는 쪽이고 그 청나라도 박살낸 이들이기에 온정에 기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 태왕인 이영은 추론한다.
이는 관료들도 비슷하다. 논의가 이어진다. 물론 이것도 좀 있다가 결론이 떨어질 수가 있지만 말이었다.
“경들은 어찌 보는가?”
“신, 외부판서가 생각하건데 유구의 입조를 받아서 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청 외에도 거칠 수 있는 더욱 안전한 포구를 확보할 수가 있습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외부판서 김병국이었다. 그의 말에 이어서 찬동의 말을 꺼내는 이들이다.
“신도 생각하건데 이들의 사탕수수를 사들이면 조선 내부의 사탕에 대한 수요가 더 높아진 것에 대한 공급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저들을 보호함으로 그 우호가 더 깊어지면 그만한 이득이 어디 있사오며 옛 교린국, 이웃나라를 챙기는 의리도 있으니 다 옳습니다.”
물론 여전히 보호국으로 두어도 어떻게 둘지에 대한 부분과 우려를 표하는 신료들도 당연하게 있었다. 그들의 의견도 일리가 있기에 듣고 있다. 조정 중 백관회의와 중추원의 의관들을 모두 소집해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는 소지의 일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허나, 만국공법에 입각한 보호국으로 둘지는 따로 논의가 필요합니다. 물론 지난 한성회담에서 유구가 자신들의 선택으로 아국의 입조 등을 한다면 그 때에는 보호국을 규정한 것은 만국공법에 의거해서 입니다.”
“또 한성회담에서 그렇게 찬성을 하였어도 정작 행동을 달리할 이들이 있습니다. 아라사라던가, 아라사라던가 말입니다. 영길리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도 행동을 달리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는 아무래도 백관회의 말고도 중추원의 의관들도 불러서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상선. 도승지! 내시들과 승지들 중 일부로 중추원의 소집을 알리라. 의정부와 중추원이 하나가 돼서 회의를 해야 할 안건이 있다고 전하라.”
“예! 태왕 폐하!”
“알겠사옵니다.”
몇 시간 뒤에 인천부의 지방관인 부윤과 인천 제물포의 개방장관이 보낸 두 장계도 당도했다. 그리고 이를 승정원의 승지가 읽었고 이후 요약을 말해주었다. 그 사이에 조선의 의정부 백관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 고관들, 중추원의 의관들 모두가 정전에 소집되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국의 주유구 조선통사인 흥선백 이하응이 그들과 동행했습니다. 또 체찰사인 우참찬도 동행하고 있지요.”
대조선의 임금인 이영은 그런 세부사항은 입조 이후에 나누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중신들의 논의에 귀를 기울이고 나중에 결론을 내려도 되었다. 신료들은 아까와 비슷한 논의를 이어간다.
“아라사는 확실히 이번 일을 일으킨 이유가 유구에 대한 아국의 이른바 ‘접수’ 관련이 문제이고 이를 경고하기 위해서 해군이 독단을 일으키지 않은가 싶습니다. 유구에 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아국과 영길리를 견제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런 견해는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구를 병탄할 마음이 없음을 더 강조해야 합니다. 보호국도 서역의 만국공법에 기준하면서도 이 근방의 전통을 섞어서 유구를 보호국이면서 ‘독립국’으로 대우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들, 유구의 외교권 등에 아국이 큰 영향력을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전통의 조공책봉에 전례로 삼아서 유구에 이를 적용해 대우한다는 사실이 납득이 가게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국을 의심할 나라들은 충분히 많을 것입니다.
그나마 그런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은 유구를 지배하는 상씨 왕조를 존중하고 그들을 여전히 유구의 왕으로 두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외부상서인 김병국의 말에 대체로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입조를 받아도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는 중추원에서도, 의정부의 백관회의에서도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다. 전통의 방식만을 적용하자와 만국공법을 적용하자로 싸웠다.
이에 대해서는 절충안으로 둘을 같이 섞고 적용해서 이익을 보자는 쪽으로 갔었다. 조선은 원래 유구를 왜국, 정확히는 살마에게서 독립시켜서 자국에 우호의 감정을 가진 나라로 만들어도 족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유구가 자국이 위험해지면 신속 혹은 보호를 청할 수가 있다고 봤지만 유구가 자국 밖에 느끼는 위기감은 조선의 생각보다 더 강했다. 그래서 그냥 왕작을 넘어서 황제와 동등한 군주의 직위, 자주한 나라의 대군주도 나름 천자라고 여기던 중에 근래의 서역에서 말하는 보호국이란 말의 조공국이 하나 생겼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유구의 물산이 당장은 수요가 적어도 천축산 사탕과 동천축 열도(동인도 제도)의 수우각 수입 수요를 더 가까운 유구의 물산 일부로 대체할 수가 있다. 운송에 드는 비용은 더 싸다.’
이런 계산을 하는, 문중의 이익을 더 따지는 중추원 의관 복주후 김좌근 같은 이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타산으로 유구가 아 조선에 호감을 가진 독립국이어도 이익이고 보호국이란 이름의 ‘외번국’이 되어도 이익이라고 넘긴다.
이제 다른 문제는 의전에 대한 문제, 즉 조공책봉을 섞고 만국공법상으로 보호국으로 두는데 유구의 중산왕에게 내릴 봉작이 문제였다. 공작이냐, 왕이냐 말이었다. 둘 다 일리는 있었다.
“폐하, 아국의 공작을 내려야 함이 마땅하오나 유구의 국체를 존중하는 의미로 특별히 왕작을 내리소서. 정확히는 유구 중산왕의 자리를 승인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본디 중원의 왕조들이 내리던 유구의 봉작은 중산왕이 최대였습니다.
헌데 우리의 상황을 고려해서 수리의 공작을 내려주고 중산왕의 봉작, 이를 폐한다면 적절하지 않습니다. 조선이 책봉하는 유구의 중산왕 봉작으로 바꾸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옵니다.”
“하오나, 원칙을 생각한다면 공작이 옳습니다. 이등체강의 법도를 생각한다면 왕작을 내리지 않는 아국에서는 태왕 폐하와 폐하가 겸하는 심왕을 제외하고는 공작이 최선이옵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한다면 모를까 조선만의 작위를 내려서 이를 받는다는 사실은 그들이 우리에게 입조하고 조공하여 책봉한다가 됩니다. 그렇다고 태왕 외의 유일한 왕작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심왕과 유구를 동등하게 둘 수가 없습니다.”
외부가 전자, 예부가 후자로 갈등한다. 물론 절충안을 내놓는 이들도 등장한다. 바로 우의정인 추사 김정희가 낸 답안이었다. 우상인 그의 말을 모두가 들어본다.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본래의 중원이 인정하던 봉작인 유구의 중산왕을 인정하면서 여기에 조선만이 주는 봉작, 수리의 공작인 수리공을 내려주어서 둘 다 인정하고 내리면 됩니다. 독립국으로서는 유구의 중산왕을, 조선의 번국으로서는 그들이 우리에게 수리공을 내세우게 하면 됩니다.
저 서역도 다양한 봉작을 겸합니다. 아국이야 이를 응용해서 요동의 한인들을 달래기 위해서 심국을 대조선국의 강역 안에 세워서 태왕께서 겸하고 있지요. 유구에서도 이를 응용하는 방식이 되면 될 것입니다.”
“우상 대감의 견해는 아주 일리가 있습니다. 기존 중원 왕조에서 내리던 유구의 중산왕이라는 왕작을 독립국인 유구의 군주가 가지는 고유한 칭호로 인정하고 그런 이들에게 아국의 명예직 관직에 가까울 공작, 수리공의 작위를 더해서 내려주면 서역이 봐도 딱히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상인 추사 김정희, 그런 김정희의 견해에 금성백이자 군국기무처의 제조인 환재 박규수, 그가 찬동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봐도 태왕 이영도 그러는 것이 마땅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임금을 보던 신하들이었다. 암묵으로 이게 최선이라고 보여주고 있었다. 임금인 이영이 조정의 백관들에게 의견을 말했다.
“그 것이 아주 일리가 있군. 다른 경들은 어떤가? 이게 나는 최선이라고 보고 있소.”
태왕 이영의 의견이 끝나고 다른 수렴 의견을 거쳐서 먼저 중추원의 의관들이 찬반을 나누었다. 약 30명의 의관들은 20명이 찬성, 6명이 반대, 4명이 기권으로 해당 제안이 통과했다. 의정부에서도 이게 최선이라고 여긴다.
그 사이에 다음날이 되었다. 유구의 사절단은 추운 조선의 추위를 견디고 한성에 당도했고 입궐했다. 그들 사이에서는 휴가 겸으로 왔으나 후임을 이미 천거하고 교대를 바라고 온 흥선백 이하응과 정왜군의 체찰사이던 우참찬 김병학, 어영청의 후발대가 동행했다.
태왕 이영이 그들을 도성 안의 임시 연무장에서 맞이하였다. 추운 겨울이라도 상관은 없었다. 어갑을 입고 어도를 패용한 태왕 이영은 어영청의 선발대 등이며 조선 해군의 삼도해군통어영 중 경기수영 지휘부를 환영한다.
또 유구의 사절단도 당연하게 환영한다. 조선의 백성들이야 이미 소문과 관보, 신보로 퍼진 유구의 입조에 놀랐다. 태왕 이영이 옥음으로 친히 연설하는 부분도 듣게 되었다.
“그대들은 아국의 분노와 화를 왜국의 지방 토호들에 잘 보여주었다. 그대의 강건함과 정련된 정군임을 보이는 승전 등에 나는 기쁘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한 병졸들이 해군을 중심으로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런 이들을 위하여 나라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내탕금의 일부를 죽고 다친 자들에게 나눌 것이다. 또!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은 정예한 정병들에게 은급을 내릴 것이다. 그와 별개로도 공이 있는 이들은 상을 내릴 것이다.
그 최소라도 해주어야 이 정왜에 참전한 군병들을 위한 길이며 정왜에 들어갈 돈을 납부한 아국의 백성들 중 죽고 다친 군병의 가족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나는 아국의 군병인 그대들에게! 이 정왜에 참전한 무관과 문관들에게 그저 감사를 표하겠다.
고맙도다. 그대들의 노고를 쉬이 잊지 않겠소. 대조선국 만세! 대조선의 군병들에게 안녕과 광영을 하늘이 내리리라!”
그 옥음에 태왕 이영을 지지하는 백성들이야 당연히 환호한다. 임금의 옥음 속 내용에 복잡한 감정이 들면서 기분이 싱숭생숭한 군병들이야 당연하게 많았다. 그들에게 내려질 은급 등과 상은 나중에 논공행상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부분이었다.
그들을 환영하는 연회도 다른 곳에서 열리고 법궁인 창덕궁에서는 유구의 사절단을 맞이하였다. 유구와 살마 등에서 고생한 문무관들을 따로 크게 더 치하할 생각이 드는 태왕 이영이지만 우선은 유구의 사절단을 접견함이 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