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96) 유구 입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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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국의 궁궐, 이궁이었다가 사실상 법궁의 위치에 있는 창덕궁의 정전 내부에서 유구의 사절단을 맞이하는 조선의 조정이었다.
“유구의 사절단 대표인 정사, 쇼히쓰입니다. 한문으로는 상필이라고 합니다.”
“유구의 사절단 부대표인 부사, 쇼신입니다. 한문으로는 상진이라고 합니다.”
“유구의 사절단 서장관인 향덕굉이라고 합니다.”
쇼히츠, 상필은 현 유구의 왕인 상태의 친동생으로 왕제이다. 당연히 나이는 어리고 이 사절단의 명목상 대표였다.
부사인 쇼신, 상진은 오자토 우둔이라고 불리는 유구 왕국의 방계 왕족이다. 그는 쇼코왕, 상호왕의 아들 중 하나인 삼남, 오자토 우둔을 물려받은 쇼톤, 상돈의 아들이었다.
쇼신, 상진은 즉 유구의 왕과는 사촌지간이지만 연배는 더 많았다. 그런 그가 오오기미 우둔의 전재 가주, 오오기미 닌으로도 불리는 쇼닌, 상인을 대신해서 사실상 이번 유구 사절단의 실세이자 실무 총괄자로 왔다.
그 외에도 향덕굉은 중년에 가까운 나이로 정사와 부사를 보필하는 서장관의 자리로 같이 왔다. 중간 위치에 있는 향덕굉은 친조선 파벌로 간주할 수가 있지만 유구에 대한 충성이 지대한 이였다. 이런 구성을 보고 조선 조정은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
‘어차피 정사를 뺀 인물들 중 부사와 서장관이 실권을 가진 책임자일 것은 뻔하다. 저 구상을 봐도 그렇다.’
당연하게도 조선 측은 부사와 서장관인 상진과 향덕굉이 실권이 있다고 이미 간파했다. 사실 조선 측은 오오기미 닌, 쇼닌이 부사 혹은 서장관으로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만 노인이기도 하고 조선에게 유구를 더 불리한 조건에 입조시킬 수 있다는 반대에 직면했다.
‘이는 체찰사, 아니 우참찬과 흥선백이 이미 그 말을 해주었지.’
조정의 신료들도 이런 내막을 이미 보고로 확인받았다. 그래도 조선에게 최소한의 신속을 하고 얻어낼 것은 많았다. 조공에 대한 막대한 보답은 청과 비교하면 기대하기 애매할 수가 있으나 더 실속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게 해야 한다.
유구의 왕제인 상필은 조선이 신기하다고 느낀다. 이리 추운 날씨는 유구에서는 보기 드물다. 그래서 유구의 본래 복식에 더해서 조선의 털, 솜이 들어간 두루마기를 받아서 걸쳤다. 다른 일부 왕족, 아지들과 신하들 중 중진들은 청나라 등을 방문한 적이 있기에 익숙해보였다.
조선의 조정은 따뜻한 남쪽에서 온 그들을 배려하였다. 추운 정전인 인정전 마당이 아니라서 정전의 내부에서 그들을 접대했다. 쇼진, 상진과 향덕굉은 날씨에 익숙하지 않아도 눈썰미를 빛내면서 조선의 도성에 제일 가까운, 어찌 보면 나화의 위치와 비슷한 인천부의 제물포 개방장부터 쉬지 않고 많은 것을 확인한다.
‘확실히 이들은 청나라와 야마투(일본)보다는 작을 수가 있지만 우리보다는 더 크다. 그리고 내가 들은 사쓰마와 청의 일부 뭔가들과도 비교가 될 수가 있다. 저들은 서역과 교류하는 것이 더 진심이다.
서역과 손을 잡은 조선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여기에 조선은 자신들의 문물을 보존하면서도 서역의 문물을 보고 수용하여 변화하고 나아간다. 우리 유구도 저럴 수 있을까?’
‘우리가 열심히 항전한다고 해도 패할 수가 있다. 청나라? 청나라의 실상을 영길리 등 서역 국가가 알려준 것을 다 종합해도 조선에게 신속하는 것이 낫다. 물론! 조선이 우리를 과하게 억압하고 군림할 때에는 최대한 항거하는 것이 유구의 중신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었다. 오오기미 닌, 오오기미의 전대 우둔인 쇼닌(상인)의 말이 더 이해가 되기 시작했었다. 쇼신, 상진은 이 조선에 유학을 오고 싶어 할 생각이 들 정도였다.
향덕굉은 친조선 파벌에 분류가 되어도 조선의 실상을 더 보게 되자 경계심이 더 커진다. 조선에 어쩔 수 없이 신속하면서 운신의 폭을 넓히고 움직여야 함은 옳다고 여기지만 조선의 배반을 꾸준히 우려하고 있다.
물론 둘 다 공무에 집중하려고 이런 속내는 감추고 유구가 조선에게 필요 이상으로 얕보일 필요는 없었다. 유구는 이전에 정학을 중시하는 것에 입각해서 교육에 집중하다가 무리했었다.
그리고 재정에 문제가 생겼다, 그런 조선은 교육의 팽창을 준비하는데 이 때에 조선의 덕을 유구도 보고 싶었다.
“유구가 매우 진심인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이런 종친들을 정사와 부사로 모두 보냈다는 의미가 큽니다.”
“이전에 합의한 대로 준비한 것이며 협의를 보시지요.”
세 정승, 의정부의 세 수장이자 세 명의 재상들이 각자 말을 하였다. 사기 이시원은 영의정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지만 아직 가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좌상인 조두순과 우상인 김정희 모두 후임을 원하고 있었다.
물론 이시원과 달리 두 사람은 승급을 내심 바라기도 하였다. 이런 것도 뒤로 하고 세 명의 태왕을 보좌하는 재상들의 말대로 유구가 이 사절단의 구성으로 이 입조에 꽤 진심이라고 짐작이 가능했다.
인선은 조선 조정도 장계 등으로 어렴풋이 알았지만 세세하게 따지니까 꽤 굉장했다. 유구는 그 동안의 교류에서 아주 오랜만에 조선의 수도를 공식으로 방문하기에 그렇다. 오오기미의 전대 우둔인 오오기미 닌, 쇼닌의 방문은 밀사였으니 넘길 수가 있어도 이번은 공식의 의전이 확실해야 했다.
“그대들은 유구의 국체를 보존하기 위해서 왔을 터이다. 그대들의 입조를 놓고 아국은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예우하고 어떻게 입조에 대한 책봉을 할지에 말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그대들에게 말해주겠다.”
대조선국의 태왕인 이영의 목소리는 이번 때라서 더욱 근엄하고 강렬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옥음은 유구의 사절단은 통역을 통해서 알게 될 부분이었다. 무엇이 확실한지 긴장이 되면서도 알고 싶은 유구의 사절단이었다.
“그대들이 아국을 먼저 등 돌리는 일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대들을 외번이니 하면서도 최대한 지켜주고 함께할 것이다. 중원 역대 왕조처럼 조공책봉을 하면서도 만국 공법에 의거하는 종주와 종속의 관계라고 규정이 되어도 당연히 하나의 국체인 귀국을 정중하게 대할 것이다.”
유구의 사절단 일동은 그 말을 통역으로 전해 듣자 놀라기는 했다. 일방으로 군림하겠다가 아니라 협조하고 존중한다고 했다. 대조선국의 ‘광명’태왕인 이영은 다시 말을 이었다.
“좋다. 유구의 중산왕이 보낸 사절에게 입조를 허한다고 이르라. 협의를 하고 빠른 시일 내로 문서를 그대에게 내리겠다. 아 물론 상세하게 유구의 요구 등을 듣고 처결함이 옳을 것이다.”
그 말에 유구 중산왕이 보낸 사신 중 정사인 상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모습에 속으로 좀 순진하다고 생각하나 굳이 말하지 않는 관료들이다. 정전의 용상에 당당히 앉은 태왕 이영은 그냥 그러니 한다.
“황은이 망극합니다. 대조선국 태왕 폐하!”
“황은이 망극합니다.”
입조에 따라서 가져온 형식상의 조공품들을 올린다. 수우각, 유구의 사탕수수에서 정제한 사탕들이 있다. 다른 것들도 있는데 유구의 말린 이라부, 열대의 조개껍질 등이 있다.
회사품은 청나라가 준비한 것보다는 약소할 수가 있었지만 사실은 더 실속이 있었다. 유구에게 회사품으로 주는 것은 명단 하나인데 대부분이 무기였다. 또 유구의 군대를 형성할 교관들도 딸려보낼 것이었다. 사치재도 있기는 했다.
주로 인삼 등의 종류로 친살마 방계왕족과 지방토호들을 더 추가로 회유하라고 주는 물건을 겸한다. 사실 무기들이 더 요긴할 것으로 봤다. 유구는 지금 무장이 절실한 상황이었는데 이를 공여, 회사품 형식으로 주는 것이었다.
서역의 구형 머스킷이라도 요긴하게 쓰일 수가 있었다. 조선에서 생산되었던 구형 조총에 대해서도 넘겨질 품목은 꽤 많았다. 책봉에 대한 것은 이후에 조선의 의향을 듣자 유구 쪽에서는 꽤 반색하는 측면을 보인다.
‘조선이 중산왕의 왕작을 폐하고 공작의 자리를 주어도 만족할 생각이라고 형님은 밝혔지만 중산왕의 왕작을 유지하고 싶으셨지. 근데 중산왕을 유구의 고유 군주 호칭으로 간주하고 대조선국의 신하로서 주는 봉작은 수리공으로 주어서 둘 다 사용하게 허락하다니...’
‘조선은 생각보다 유연하게 예법 등도 고려해서 움직인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 유구는 고유한 왕국이자 조선의 공작을 받은 보호국으로 있게 된다.’
“아국은 유구의 왕사에 관련한 책봉과 조선과 관련한 일부 일이며 유구가 요청한 일에만 상국으로서 대체로 기능하고 유구의 거의 모든 대권을 유구의 중산왕이자 수리공일 자가 행사함을 지지한다. 만국공법에 의거해서 아국의 보호국으로 신속을 청한 유구일지라도 이 동방의 전례에 근거하여서 이와 같이 판단할 따름이다.”
오오기미의 전대 우둔, 오오기미 닌이라고도 불렸던 쇼닌의 말대로 되었다. 물론 체찰사인 우참찬 김병학과 이미 말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병학의 상신이 있어도 결정은 조선 본국 조정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다만 다른 문제는 중산왕의 복식에 대한 보고를 이미 들었다. 자주한 독립국이라면 모를까 명목상 신속하는 나라이면서 황제와 태왕 이상의 화려한 복식은 문제 제기의 여지가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청처럼 무심하게 굴기는 조선은 좀 달랐다.
“옛 중원 왕조의 군왕, 높으면 친왕의 격식에 맞추면 되겠지요. 유구의 내부 위신을 생각해서 오조룡 등은 용인하시지요. 아국도 일정 부분 그런 식의 편법은 하지 않았습니까?”
“외번을 맹세한 유구에게 너무 유하지 않습니까?”
정작 조선의 신료들이 이에 대해서 유구인들보다 더 날이 선 언쟁을 벌이는 일도 보인다. 유구의 서장관 향덕굉은 기존 복식의 화려함을 제외하더라도 기존 복식의 일부 높인 격식은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 향덕굉의 모습에 지독하다고 여기면서도 기개 등을 높게 샀다.
이후 유구의 사절단을 환영하고 연회도 열었다. 또 서역제국의 공사들도 초청해서 창덕궁에서 다른 연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유구의 국왕에게 수리공 봉작을 내릴 정도며 주권을 최대한 존중하고 유구의 왕을 대조선국의 태왕이 굳이 겸하지 않는다고 공포하면서 혹시나 있을 반발을 최소로 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조선은 생각보다 더 훌륭한 나라입니다. 우리 못지않게 덥고 추우니까 많이 먹을 수가 있다고 봅니다.”
창덕궁의 모처, 정사인 상필과 부사인 상진에 서장관 향덕굉이 자국의 말인 유구어로 대화 중이었다. 조선이 생각보다 잘 예우하고 움직이는 것에 안도한다. 상필은 형인 유구의 중산왕 보다 더 조선에 호감을 보이고 있다. 상진도 호감이야 있지만 상필이 대놓고 라면 상진은 은근하게 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향덕굉은 조선에 대한 부러움과 그 수준 높음 등에 감탄하면서도 조선이 과연 나중에 패도를 펼치지 않을까 복잡한 생각을 하였다. 아마 그래서 가능하면 이 상국에 유구가 파견할 유사의 외관 자리를 자청할까 한다. 그 이유는 조선에 대한 경계로 이를 감시하려는 생각으로 말이었다.
한편, 조선은 이번 ‘정왜’에서 공적을 세운 이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유구의 사절단도 참여한 두 번째 연회에서 열었다. 김병학과 류후조는 각각 고창백과 문회백의 작위를 하사 받았다.
“이 자리에 없는 삼도해군통제사와 경기수사를 제외하고 군공을 세운 이들에게 포상 등을 내리겠다!”
이겸희는 이미 지난 전쟁의 무훈으로 백작으로 작위를 받았기에 이번은 훈장을 더 높이 받았고 어영사로 영전했다. 신헌도 훈장을 더 높이 받으면서 병무국의 독판으로 영전했다.
삼도해군통제사인 이경순과 경기해사 정규응도 작위를 받았고 훈장도 서훈을 받았다. 헌데 당사자들이 없기에 해방국 독판 이규철이 대신 받아서 그들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백의종군을 하던 어영청의 예하 부대 중 중대의 정사인 이승준은 정왜공신 2등 중 수위로 살마와 수호에서 벌인 무공으로 어영청에서 훈국, 훈련도감의 보군대대를 지휘하는 대대장, 참령으로 영전하고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흥선백 이하응은 훈장과 함께 백작의 등급이 승급하고 본국의 관직으로 영전할 예정이 되었다.
“정왜에서 힘을 쓴 공신들! 정왜공신들의 언급을 이로서 마친다. 그대들에게 참으로 감사하도다. 아울러서 이 공신에 들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도 공이 없다가 아니다.
다른 병졸들과 하사관, 사관들에 대해서도 위로와 은급 등을 내릴 터이오. 항상 아국의 일이 있을 때에 아국을 위해서 싸우는 그들이 있기에 이 조선은 대조선국 등이 되면서 더 위신을 높일 수가 있었소.”
이런 저런 모습에서 유구의 사절단은 조선에 신속해서 의탁해서 운신의 폭을 넓히려고 한 것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연회에서 서역제국들의 공사들, 조선과 수교를 한 나라들이야 유구가 조선 아래의 보호국으로 편입한 것에 이들을 병합, 혹은 병탄할 생각이 없다고 보이자 그냥 그러려니 하든가, 아니면 안도하였다. 다만 의심의 눈초리를 불경할 수가 있지만 거두지 않는 이들도 있다.
‘물론 조선의 저런 연극을 얼마나 믿어야할지는 몰라도 아국 해군의 독단에 의한 것도 의미는 없어질 것으로도 보인다. 유구에 대해서는 이미 조선과 조선에 우호의 감정을 가진 유럽 및 아메리카 국가들이 이를 지원할 것은 뻔하다.
조선과 더 이상 충돌을 할 필요가 없다. 이그나티예프 공사도, 나도 동의한 일이지. 그리고 조선과 우리 러시아의 사이가 더 경색되지 않게 유능한 인재를 본국이 보내주기를 바란다.’
아라사, 러시아 쪽은 생각이 다르다. 그렇지만 사쓰마의 부당한 지배를 당하고 간신히 해방이 된 유구의 선택을 마냥 그 자리에서 대놓고 비판할 수가 없었다. 유구의 조선 아래 신속이야 막을 수가 없으니까 넘어가야 했다.
다만 주조선 아라사 공사관의 공사인 그는 자국 해군의 무모한 짓에는 여전히 골치가 아프기는 했다. 불편할 수가 있는 연회를 잠깐 즐기는 것으로 그 복잡한 생각을 잊고 싶었다.
며칠이 지나서 유구의 사절단은 조선 해군의 호위와 조선의 관선, 마침 왜국의 주왜국 조선관으로 보낼 훈령에 지난 강호 대군부의 요청에 따라서 가는 배에 올라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다. 조선은 그렇게 만국공법에 의거하지만 전통의 규례도 적용한 보호국이자 외번국인 유구가 생긴 셈이었다.
‘조선은 넓은 마음인가? 아니면 간교한 것인가?’
향덕굉의 억지일 수도 있지만 사실상 서역국가들이 파견하는 공사와 거의 같은 유구의 주조선 유구관 연통관이라는 이를 신설해도 좋다고 승인했다. 물론 이건 조선의 경험 부족으로도 나온 일이었다. 그렇지만 조선은 자국의 주유구 견외통사를 서역 각국이 속주 혹은 식민한 속지에 보내는 총독이나 도독 같은 것으로 올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조선에 유구의 연통관을 통해서 양국 조정의 견해를 조율하고 주유구 견외통사가 유구 조정의 외부 교섭에 자문을 맡는 최소의 행위를 할 것이었다. 명목상의 종속국으로 유구를 두고 유구의 내정과 일부 사안을 제외한 외부 교섭에 재량권을 보장하는 사실상의 독립국으로 두는 셈이었다.
조선에게 속국이라고 하면 제일 익숙한 조공책봉에 의거한 명목상 신속과 사실상의 자주국이란 것을 서역의 만국공법이 주장되고 더욱 적용되는 시대에 그 틀도 적용해서 해본 것이었다. 사실 이런 점으로 조선에 주재하는 서역 국가들의 외교관은 이상하게 보다가도 그냥 넘어갔었다.
그리고 한편, 시일이 좀 지난 2월 말에서 3월 초 즈음에야 살마, 사쓰마에게도 유구의 조선 입조 소식이 들렸다. 이를 고하는 오쿠보 도시미치도 보고를 듣는 시마즈 히사미츠는 어쩌면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고 봤다. 그래도 이게 생각보다 빠르다고 여긴다.
“뭐? 그것이 무슨 말이냐? 류쿠가 벌써 조선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류큐가 우리 사쓰마의 지배를 이탈하였지요.... 근데 독립을 운운해서 풀어준 뒤로는 조선에... 신속했다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살마, 사쓰마의 지난 국지전에서 살아남은 고위무사들 사이에서도 놀라서 호들갑 등의 작은 말들이 웅성웅성 일어난다. 물론 일부는 예상한 일이었기에 덤덤하다. 다만 그 시기가 빨라서 약간은 놀란다.
“조선에게 신속했다고?!”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줄어든 재정으로 더 우리 지역의 살림이 피폐해질 것은...”
한 직신, 시마즈를 섬기는 고위 무가의 가주 하나가 어두운 얼굴로 말을 하다가 말았다. 이미 설탕판매와 유구를 통한 밀무역은 날아갔다.
막부와 조정에게 조적으로 간주당하고 반역향으로 찍혀서 다이묘인 시미즈 가문은 개역 및 전봉될 위기는 간신히 면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 동안 쌓아올린 많은 무기와 선박에 병력은 날아 가버렸다.
피해를 재건하고 배상금으로 한동안 이 사쓰마는 허리가 휠 것이다. 줄어든 세수로 이를 더 버텨야만 했다.
사실 이것도 에도 근방의 그 미토보다는 그나마 낫은 상황이다. 미토 도쿠가와는 더 감시 아래에 놓였고 안세이 대옥 때보다 더 심각한 타격으로 가신들은 죽어나갔고 영지의 중심지인 미토 성은 초토화가 되었다.
또 자신들보다 더 떨어지는 봉토, 개역까지 당해서 더 줄어든 봉토로 재건해야 하는데 더 비참한 셈이었다. 사쓰마 못지않게 상당히 피해가 컸던 이들을 생각하면 안도할 수가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언젠가 유구를 되찾아야 합니다.”
“미쳤는가? 조선과 또 싸우기도 하자는 것인가?”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조선과의 무역에 우리도 어떻게 끼면 되는 것이다. 그 이상으로 조선과 서역과 관계가 험악해질 필요가 없다.”
사쓰마의 다이묘 대리와 일부 고위 무사들은 옥신각신이다. 다이묘 대리라고 할 수가 있는 시마즈 히사미쓰와 그런 그의 편을 드는 이들과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이들로 갈등하고 있었다.
선대 다이묘인 시마즈 나리아키라에 충성하던 정충조를 사이고 다카나가가 잘 중재하여 시마즈 히사미쓰를 그런대로 따르지만 정충조에 반만 걸친 이들은 다이묘 대리일 뿐이고 오히려 물러나야 한다고 여긴다. 사실, 사고를 친 것은 정충조가, 또 정충조가 아니라도 미토학에 경도가 된 정충조에 가까웠던 무사들이 쳤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 영지를 존속시킨 시마즈 히사미쓰에게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가혹한 일이었다. 이런 뒷말들이 나옴에도 그는 조용히 아들이던 지금의 어린 다이묘를 열심히 보필하는 척, 사쓰마를 여전히 통치하고 있었다. 사쓰마도 아래에서의 피를 동반한 풍운이 다시 일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