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97) 천하 정세 변화와 조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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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861년 9월 중순으로 파리에서 한산공의 부인, 한산공비 혹은 삼한국대부인 류희지가 아이를 출산한지 100일 가까이가 되었다. 산후조리를 하면서 아이를 잘 돌봤다. 딸이었다.
오랜만에 태어난 왕자의 딸이었다. 물론 더 정확히는 세자 외의 왕자에게서 딸이었다. 원래 대군의 딸에 대한 별도의 봉작은 있었다가 없어졌다.
대조선국이 되면서 아마도 이 또한 변화하는 전례와 예법 등이 한산공 이성 부부의 딸에게도 적용이 될 것이다. 귀국해서 아이가 무사히 돌 등을 거치면 그들의 사랑스러운 딸인 아기씨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법국의 황조와 종실이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었지요.”
“그래서 부인이 무사히 아이를 순산하지 않았습니까?”
“저들이 무슨 요구를 할지 모르지만 선의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만 법국의 선의가 대가를 바란 선의가 아닌지에 대해서 의심하는 조선의 서유시찰단 일원도 있기는 했었다. 그래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사실 요구가 있기는 했었다.
법국의 황제로 즉위한 누이 나파륜, 루이 나폴레옹의 요구는 의외였지만 단출하였다. 한 벌레를 원하는 것이다. 사소할 수가 있지만 아주 중요한 요구기는 했다.
“흠, 그러니까 비단을 만드는 누에를 보내달라는 것입니까?”
“그렇소. 게다가 듣자하니 귀국에서는 우리 유럽의 누에도 가져간 적이 있다고 압니다.”
“그렇다고 압니다. 그러면 유주의 누에와 아국의 누에에 그 둘 사이의 교잡해서 나왔다는 것도 일부를 넘기겠습니다.”
“고맙소. 사실 공작부인의 순산에 많은 공을 들여서 이를 받아간다는 과한 요구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약조대로 이를 보내준다면 내가 개인의 이름과 선물을 준비해서 보내겠습니다.”
법국의 황제인 루이 나폴레옹이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누에가 걸리는 역병이 원인이었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 비단의 수요 등이 늘어난 서역 유주, 유럽에 조선의 생사를 수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부사 귤산 이유원이 생각한다.
사실 이미 영길리 상인이던 톰 리들에게 얼핏 들었기에 저걸로 다시 수요만큼 누에를 양식하려면 시간이 걸리기에 조선이 그 누에들을 보내고 유주의 물가에 비해서 조선이 만든 비교하자면 저렴한 생사는 승산이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청나라는 지금 내전 등으로 생사를 수출하는 양이 줄었다. 왜국, 일본도 생사를 생산하지만 조선에서 물량이 있다면 이를 먼저 사갈 여지는 높았다. 즉 이익을 나눌 수가 있지만 이를 알고 선점하고 호의를 가진 조선이 더 장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팽팽하게 귤산 이유원의 뇌리를 스친다.
‘한산공 대감에게도 이를 말하지.’
그리고 다른 부사들도 귤산 이유원의 말에 모두가 일리가 꽤 높다고 여기었다. 한산공 이성도 이를 듣고 이익이 될 수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류희지 등 부인들에게는 비밀에 해당한다.
또 사실 야심에 자국의 이익에 철저한 법국의 황제가 그렇게 다른 대가도 말한 부분은 꽤 의아했다. 이에 대해서는 노사 기정진은 이렇게 평가를 했다. 그 말에 많은 이들이 납득한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그 이상의 개인이 주는 식으로 반대급부를 주어서 비겁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네. 누이 나파륜이 그런 사람인 것이지.
게다가 타국의 종친 아이를 해산하는데 도움을 주는 대가로 이를 싸게 요구한 것이라면 매정한 사람이라고 듣기는 싫을 것이오. 그 법국 황제 개인의 성의는 뭐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값이 진 뭔가가 될 수가 있다고 보고 있소.”
“아국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사치재 같은 것이 아니라 말이지요.”
“기왕이면 좋은 말이 필요하지.”
“법국에게 소와 말의 일부 품종을 수입한다고 약조한 것도 있는데 법국의 이웃나라 중 서사라고도 부르는 수위수란 지역의 소, 일부 말이 좋은 놈이 오기를 바란다오.”
“그냥 귀한 말 열댓 마리를 대가로 받아도 나쁘지 않을 수 있지요.”
조선인들은 짐승을 주어도 조선에는 아직도 부족한 가축들을 받아와도 큰 상관은 없었다. 그것도 귀한 전마를 누에들을 좀 나누어 주는 것으로 받아와도 남는 장사로 여긴다.
“주는 사람 마음일세. 그나저나 흥인백이 이에 협조를 할지는 모르겠군. 누에를 데려와서 이에 재미를 한창 보고 이에 열중하는 종친이니 말일세.”
“여차하면 제가 설득해야지요.”
“그 전에 태왕 폐하와 조정 등에게 세게 혼이 나겠지요.”
“아...”
물론 잊고 있던 일에 대해서 다시 떠올라서 슬프다. 하지만 한산공 이성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당연하게도 대가를 치룰 생각이야 있기에 넘어간다. 100일 가까이, 해산 이후에 산후 조리를 하면서 쉬었기에 슬슬 이 법국에서 출항할 예정이었다.
아부리가, 아프리카 연안을 따라서 항해하여 희망봉을 거쳐서 인도양을 횡단할 예정이었다. 이후에 천축에서 청나라의 서역 제국과 조선의 조계지가 있는 곳들을 거쳐서 인천의 제물포 개방장 혹은 유구를 거쳐서 인천의 제물포 개방장에 도착할 예정으로 잡았다.
이미 유구가 조선에 명목상 신속을 한 나라인 것은 서역의 신문을 통해서 조선의 서유시찰단도 늦게나마 소식을 접했다. 그러는 사이에 한산공 이성 부부의 두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고 있다. 보통 느릿하게 항해를 해서 반년이 걸리는 상황이다. 물론 더 숙련이 된 수부들을 통해서 중간 중간 다른 나라들의 포구에 입항해도 반년보다는 더 압축할 것이다.
어쩌면 오래 걸리지 않을 상황이다. 게다가 어차피 기범선 혹은 범선으로 구성된 조선의 서유시찰단 상황에서 보급이 없이 본국으로 도착하는 항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조선의 서유시찰단은 조선으로 귀국 할 때에 유학생들을 제외하고 더 많은 이들에 물자를 가지고 돌아오는 상황이 되었다.
“아국에 새로이 합류할 고문들도 꽤 많지요. 게다가 아라사에서 새로이 아국의 주재하는 아라사 외관이 되는 친구도 있지요.”
“유주의 과실주들이 그리워질 듯합니다. 유학생들은 이 풍토에서 음식이 잘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농을 하지만 유주, 유럽의 과실주인 와인은 조선의 머루주와도 확실히 다르기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법국의 과실주도 좋았는데 아라사의 구루지야라는 지방의 과실주도 훌륭했다.
그 고장의 과실주를 상피득보에 납품하려던 바누 마차벨리 백작을 조선의 서유시찰단은 만난 적이 있었다. 바누 마차벨리 백작을 수행하는 종,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소작을 하는 농민이라고 정정을 들었다. 그리고 이름이 ‘바소’라는 농민이 고개를 푹 숙이며 들고 있던 과실주의 병, 와인병에서 따라지는 포도주를 밀류틴 형제와 밀류틴 형제의 부친인 귀족의 권유로 마시게 된 조선의 서유시찰단은 그 맛에 감탄했었다.
“서역의 과실주는 확실하게 사치한다고 소리를 듣겠지요. 아울러서 듣자고 하니까 조선으로 들어오는 과실주는 주정이라는 것을 넣어서 발효 등의 변질을 방지하니까 우리가 마신 것과 는 다르지요.”
“우리와 동행한 아국의 무관들도 각자 유학할 나라에서 열심히 수학하고 돌아오겠지요.”
태왕인 이영에게 바칠 와인도 주정강화와인이라는 것은 개인상으로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는 한산공 이성이었다. 그 때에 왜인지 한산공 이성은 ‘바소’라는 이름의 백작 아래의 소작농이 범상치 않아 보이고 쉽게 잊어버리기가 않았다.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또 누군가가 떠오른다. 도이칠란트 권역의 모젤 와인과 오지리 제국의 명물, 훈가리(헝가리)의 토카이 등을 매우 칭찬하며 강조하던 오지리의 어떤 고을에서 만난 세관도 떠오른다. 그래서 어쩌다보니까 술의 이야기에서 주제가 그 세관으로 넘어갔다.
“아주 특이한 사람이지 않았습니까?”
“자기 본래 성을 대신해서 비슷한 성씨, 보통은 쓰지 않는 것을 내세우는 사람이었죠.”
“서당에 다닌, 무학 가까운 이치고는 자국에 지극히 충성이 어렸습니다.”
“부하가 원래 성으로 부르면 이를 막고는 자신이 내세우는 성을 부르게 하는 것은 역시 특이했다오.”
조선의 서유시찰단 고위층들에 그들의 종사관들도 낀 대화에서는 ‘그 세관’이 매우 잘 떠오른다. ‘벨즈’라는 오지리 소속 고을의 조선으로 치면 호방 아래의 서리 같은 이였다.
사실 서유시찰단은 유주 등은 징세 등을 하는 이들도 순환 이동을 하며 부패를 방지한다고 들었고 이미 조선에서도 이를 장차 모방하자고 이야기를 했었다. 이런 세관 인사 중 하급자는 많이 본 것인데 그는 기억에 꽤 남았다. 다른 지방 출신의 그 세관은 그들의 정체를 몰랐다가 알고 좀 굽신굽신을 거리면서 오지리의 고관 눈에 들면서 자신을 돋보이려 노력하고는 했다.
“그 세관의 이름은 알겠는데 성이 뭐였지요? 본래 성도 특이하기도 했지요.”
“히틀러라고 했었지요. 부계의 히들러도 마음에 안 들었다고 했지요. 근데 호적인지 아니, 천주신교의 교당에 기록하는 것에서는 달리 기록했다지요. 그게 모계의 성인가로 압니다.”
히들러, 하지만 스스로는 히틀러라고 자청한 한 세관을 그들이 계속 말한다. 왜인지 몰라도 특이한 사연 등으로 인상이 짙었다. 또 무학에 가까우면서도 관리를 지낸다는 것도 기억에 오래 남게 했었다.
“시굴구루파, 시클구르버인가라고 했었지요. 알로이수 시굴구루파.”
스스로를 히틀러라고 주장하는 남자, 그 세관원은 현재 법률상 이름은 알로이스 시클그루버였다. 부친은 히들러라는 성을 쓰지만 이를 정정하지 않아서 여전히 시클그루버로 히들러, 시클그루버를 모두 싫어해서 히틀러라고 특이하게 자칭했다.
“가죽신을 만드는 갖바치가 되려고 했던 남자가 세관, 이서층에 가까운 관리라도 된 것은 놀랍지요. 아국도 그런 일들이 없지는 않지만 더 이런 일이 빈번하고 유동성이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서당,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곳만 졸업해서 제화공이 되려고 도제 방식을 받다가 뛰쳐나와서 세관이 된 이 남자는 확실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당연히 지금의 서역 유주, 유럽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저런 사례가 나오고 나라 안이 더 유동성이 있는 것은 여러 의미로도 좋던지, 나쁜지를 초월해서 괜찮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한산공 이성의 생각에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입을 여는 사람이 있었다. 1차 서유시찰단 이전에 위정척사를 추구하던 노사 기정진이었다.
“아국은 더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최소한 기회를 더 줄 수가 있는 나라로 더 변모함이 옳을 수가 있지요.
과거도 재편되는 판에서 이미 아국은 이전과 달리 변모하고 있습니다. 모든 변화에는 양면이 있는데 최대한 좋은 면을 가지고 변화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갖바치도 관리가 될 수가 있고 차별 당하지 않는 대동의 세상, 대동천하를 우리 조선이 이룩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대화를 하면서 며칠 뒤에 파리에서 더 친해진 명사들에게 많은 환영과 전송, 이별을 기념하고 재회를 바래서 주는 선물들도 많이 받은 조선의 서유시찰단 사절이었다. 파리에서 법국의 갈래, 칼레로 이동해서 영법해협을 통과해서 조선으로 돌아가는 항해의 시작을 위해서 철도를 타고 칼레 향했다.
여러 위험과 걱정 속에서도 한산공 이성 부부의 두 아이는 서유시찰단의 많은 어른들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수개월, 대략 3~4개월이 걸린 조선으로의 귀국 항해에 별 탈 없이 조선에 도착했다. 인천 제물포 개방장 등에서 그 사이에 벌써 설치가 된 전신에 열차 평상선, 열차 바지선과 그 포구도 완성 중인 경인선이 존재했다.
서유시찰단은 전신으로 시찰단귀국이라는 전보를 전하고 경인선을 타고 한성으로 향한다. 유구인들도 한성으로 모신 이 철도는 유구의 사절단이 도착할 즈음에서는 노량진까지만 개통하고 한수 이북의 한성까지 연결하는 열차 평상선과 그게 정박할 포구 등은 정비가 덜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1861년 11월 초에서 12월 초에 조선의 2차 서유시찰단이 조선 근방에 도착할 시점에서는 거의 완료가 된 상황으로 개통식을 열었다. 물론 이것도 한성의 성내에 아직 열차 기지가 없기에 미완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도 서유시찰단은 서역의 미리견과 유주에서 익숙해진 철도의 열차를 조선에서 탈 수가 있다는 사실이 감회가 새로웠다.
“수년 만의 한성이요. 부인.”
“네, 대감... 우리 두 아이들도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한산공 이성 부부의 첫째는 갓난아기일 때에 있던 조선이 익숙하지 않았다. 확실하게 수년, 거의 3년에서 그 이상을 서역에서 보냈기에 조선은 낯설 수가 있었다. 그래도 부모의, 자신의 고향을 잘 담으려고 노력하는 첫째다.
그리고 창덕궁에서 그들을 인도하려고 태왕 이영이 보낸 상선이 합류한다. 그의 안내를 따라서 조선의 사실상 법궁인 창덕궁에 들어왔다. 태왕 이영이며 태자 이환에 중추원의 수장단인 영중추원사와 판중추원사는 되는 인사들은 물론이고 의정부와 군국기무처의 고위급도 모여 있었다.
물론 그들만이 아니라 선임 서역 고문들도 꽤 있었다. 조선의 2차 서유시찰단이 이룬 성과들을 확인하고 싶기에 모였다. 조촐한 귀환연도 열었다.
“귀국을 귀한 선물로 한산공이 나에게 왕손을 더 안겨주었구나, 그리고 우려와 달리 다른 왕손도 장성하게 돌아왔다. 물론 어색한 것이 느껴지는 도다.”
이런 말을 하면서 새로이 생긴 손녀와 잘 자란 손자, 둘째인 한산공 이성과 한산공비/삼한국대부인의 품에 있는 두 아이를 사랑스럽게 지켜본다. 인지 능력이 생기고 만난 할아버지는 한산공의 첫째는 아버지와 큰아버지, 둘 다 닮았다. 그렇기에 신기하게 바라본다.
조촐한 귀환 기념 연회를 파하고, 왕후와 왕태자비를 제외한 여성들과 아이들은 전각 혹은 퇴궐시킨다. 이제 남은 것은 정치에 유력한 연관이 있는 자들뿐이었다.
“내일 더 시간을 들여서 자세하게 들을 것이나 그 전에 간략하게 듣고 싶은 것이 있단다.”
“네, 아바마마...”
“서역의 공사들을 통해서 이미 들은 것이 있단다. 사실이냐?”
“함부루구에서의 일입니까? 그것은 사실이 맞습니다...”
“내가 서유시찰단에서 제일 책망할 것은 그 것뿐이다. 나머지들은 오해와 잘못을 한 쪽이 네가 아니기에 넘어갈 뿐이다.”
그런 말에 한산공 이성은 자신을 보는 본토 신료들의 시선이 복잡하다던가. 아니면 뜨뜨 미지근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당연히 변명의 여지가 없이 자진납세를 하였다. 이성은 이실직고를 하면서 죄송하다고 말한다.
“제가 서역의 투전판에서 큰돈을 잃을 뻔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말렸지만 제가 듣지 않아서 생긴 일입니다. 5만 냥을 잃을 뻔했습니다. 이를 받지 않고 처리한 그 함부루구의 박수무당이라고 불리는 투전판의 주인인 불랑 공에게 약조를 했습니다.
훗날, 그 투전판의 주인인 불랑 공이 이 동방에 투전판을 세우는데 아국에서 세울 경우 아국의 왕자인 제가 이를 돕겠다고 했습니다. 아국 조정과 아바마마를 설득하면서요. 그에 대한 벌이 무엇이든 받겠습니다...”
진상을 알자 당연하게도 분위기는 차가워진다. 다만 이영와 이환, 한산공 이성의 아버지와 형은 그를 책망하지만 실망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리고 밴더빌트 형제가 한산공 이성을 도우려고 입을 여는 순간에 다른 이가 나섰다.
“폐하! 그 일은 한산공 대감의 잘못이지만 책임을 진다고 분명히 했기에 나서서 약조문을 쓴 것입니다. 여기에 불랑이라는 사내의 그 것은 기한이 당장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또 그 사내는 당장 자기가 있는 유주 땅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투전판의 세를 불리기 위해서 열중하고 있기에 나중입니다.
아울러서 신이 따로 조사를 해보니까 그 사내는 투전판을 세워도 그 투전판이 세워지는 고을에 많은 재산을 내고 경치 등을 정비하는데 돕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루구란 고장이 화재로 크게 타버린 것이 당시 시찰단이 방문하기 몇 달 전이었는데 큰 돈을 쾌척했습니다.
즉 단순한 장사치는 아니옵니다. 더 큰 것을 위해서 인내하고 도리를 아는 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자라면 조정이 더 엄선해서 협력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서유시찰단의 부사이던 귤산 이유원이 그 약조문을 유용하게 쓸 수가 있음을 말한다. 그래도 한산공 이성의 잘못이라고는 인정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이유원의 말에 많은 신료들이 놀라워 한다.
여기에 다른 신료도 나선다. 한산공 이성의 약조문을 마냥 독이라고 여기지 않는 남자는 금성백 환재 박규수였다. 그도 이야기를 꺼낸다.
“게다가 그 자가 하는 투전판은 나중에 아국에 문을 열어도 상대하는 대상을 서역 사람들로 주로 한정시키면서 세금을 받게 된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불랑이라는 사내가 운영하는 서역 투전판은 서역에서는 나라가 이를 승인하고 약조한 비율의 세금 등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경마처럼 잘 활용하면 도박일지언정 유용할 수가 있습니다.
한산공 대감이 책임을 져야할 부분은 있지만 막대한 손해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 신경을 쓴 셈입니다. 하마터먼 아국에서도 귀한 신형 서방식 연안포전선 1척을 살 돈을 날릴 뻔 했습니다. 이를 나중에 손해가 될 수도 있지만 교섭해서 나중으로 미루고 여러 가지로 조사해본 결과 조선에게 마냥 손해는 아니게 만들었습니다.
벌을 설령 내리어도 금상께서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부당할 수준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조선에 주재하는 서역의 외관들이 알려준 바로는 서역의 일국 종친 등과도 우호를 다지고 조선을 더 알리는데도 기여했기에 너무 큰 벌은 내리지 말아주소서.”
물론 이런 말에 반발해서 이게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더 따지어도 벌은 엄한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주로 호부 쪽 인사들이 그랬다. 아니면 중추원의 일부 의관들이 말이었다.
“흠...”
태왕인 이영은 좀 고뇌하였다. 그런 부왕을 보면서, 또 동생을 보면서 태자 이환은 너무 큰 벌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는 한산공의 모후인 황후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에 태왕 이영은 눈을 떴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러고는 제 둘째 아들을 지긋이 보면서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귀를 기울인다.
“네가 책망당해도 할 말이 없는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해서 대견하다. 그렇지만 네가 이 대조선국 태왕의 차자란 이유로 벌이 없다면 새로이 정립할 법도가 어긋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너에게 내릴 벌은! 다음과 같다.”
태왕이 뜸을 들이기 시작하다. 많은 신료들은 긴장 반, 불안 반의 마음 속 두근거림을 가진다. 그들 중에서 한산공 이성이 제일 긴장한다.
책임을 지고 벌은 각오했지만 안 두려울 리가 없기에 그렇다. 대조선국의 ‘광명’태왕이자 한산공 이성의 부친인 이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