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213화 (213/221)

〈 213화 〉 (97) 천하 정세 변화와 조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너의 경험을 군국기무처와 왕실, 조정에 잘 쓸 수가 있게 서역고문들을 도우면서 일하라! 단! 녹봉은 없다.

그리고 품계와 관직이 없이 백의종군에 가깝게 일을 할 것이다. 어차피 한산공은 왕자이기에 자산은 필요가 없다.

시간이 많기에 네가 서역에서 얻은 경험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라. 보수가 없이 일하며 시일을 꽤 들이라. 그게 내가 의젓해진 내 둘째 아들을 믿고 내리는 벌이다.”

오히려 나쁘지 않은 벌이라고 여긴다. 한산공 이성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거의 비슷하게 심할 수도 있지만 마냥 심한 벌이 아니고 재능을 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제일 기쁜 것은 관료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후후후, 우리만 당할 수 없지. 일부 종친들도 일을 시키면서 굴리는데 태왕 폐하의 친왕자라고 못 시킬 리가? 게다가 공식석상으로는 이건 벌이기 때문에 뭔가 파벌이 형성될 수도 없지!’

‘그러니까! 열심히 나라를 위해서 맷돌에 갈리는 곡물 같이 갈! 갈! 갈! 해드리겠습니다.’

‘우리만 당할 수가 없지!’ 이런 기분으로 마치 태왕 이영에게 열심히 굴려지는 일부 신료들은 기뻤다. 굴림의 보복으로 일과 서류를 태왕 이영에게 몰아주다가 만기친람이 어렵다고 분산해서 서류의 파도 같이 쌓이는 서류더미, 이를 회피하는 자신들의 군주 대신 희생양이 나타났다고 여기니까 그렇다.

‘아바마마, 둘째도 일을 그렇게 시키고 싶었습니까?’

태자 이환은 자신의 부왕인 태왕 이영이 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잘 안다. 그래도 둘째인 이성은 왕위 계승권에서 멀어지는 친왕자인 공작이라고 일을 거의 안 시킬 것 같았다. 사고를 거하게 친동생에게는 합당한 벌이지만 자칫하면 격무에게 시달리기 좋았다.

‘아우가 걱정이 됩니다. 두 조카들이 빨리 아버지를 여의는 일이 생길까봐 두렵습니다.’

물론 형인 태자 이환의 이런 생각을 모르고 달게 받겠다고 각오하는 한산공 이성이었다. 다만 나중에 한산공 이성은 곡소리가 나올 정도로 업무 지옥에 시달릴 것은 이 때의 자신은 전혀 몰랐다.

그래도 한산공 이성은 자신의 의견을 조선의 새로운 경장들에 반영할 수가 있게 건의와 발언권을 행사할 수가 있었다. 어쩌면 나중에 ‘대조선국에 도움이 되었다!’ 이런 후세의 평가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후세의 평가는 둘째 치고 잠깐 주어질 휴일 이후에 서유시찰단도 해산하고 그 소속들도 원래 일하던 곳 등으로 복귀해 다시 바빠질 예정은 필연이 확실하다.

***

1862년이 되기 전에 조선 근방의 양상은 다음과 같이 흘러갔다. 대마도, 일본 측의 지명으로는 쓰시마를 놓고 조선과 영길리, 아라사의 신경전은 결국 전자의 두 연합이 이겼다. 길어진 신경전에서 대마도와 일본이 제일 마음고생을 했다.

물론 더 정확히는 대마도 지역이었다. 졸지에 자신들의 땅 일부를 아라사, 러시아에게 조차한다면 지난 국지전이라고 부르는 참혹한 ‘정왜’ 행적에서 조영연합군의 가공할 무력이 자신들에게 향할까 아주 두려웠다. 그렇기에 대마도의 도주, 영주인 소씨 가문은 골머리를 더 앓고 있었다.

‘정말 조선에게 전향할까? 그러니까 저기 유구처럼 조선에 신속하는 식이거나 자치를 약속 받는 아예 신속을...’

하지만 유구와 달리 대마도는 꽤 걸릴 구석이 많았다. 대마도에 토관을 인정해도 소씨를 여전히 이 대마도를 사실상 지배하게 둘 지가 의문이었다. 소씨 가문은 대마도의 영주에서 토호로 격하가 되는 상황이 올 여지가 높았다.

가문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대우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유구처럼 자치를 인정받기 그를 수도 있다. 또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대마도, 쓰시마 일지라도 점점 일본에 대한 충성심 등은 커졌다.

다만 그 일본의 막부와 조정에서는 아라사의 그 문제가 생기자 대마도를 막부의 직할령, 이른바 어령으로 다시 만들자는 말이 나왔다. 그럴 수 있다고는 여긴다.

그래도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 공가의 도련님, 이름이 이와쿠라 도모미도 이전과 달리 반대 등의 의견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막부에서는 아라사. 러시아 해군과 교섭을 해주고 물러나는데 기여를 했었다. 지만 내심 그뿐이라고도 여긴다. 아라사 해군을 직접 무력으로 압박하고 더 적극의 교섭으로 조선과 영길리에게 더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조선이 이전에 했던 제의가 여전히 유효한지 물어보면서 간을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가능하면 거래를 하면야... 유구만큼의 그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개역 혹은 전봉이 되지 않는 선에서의 토호로 남으면 된다. 제발...’

그래서 막부와 조정이 알면 아주 반발할 짓이었다. 양다리를 걸치면서도 일본에 기울었던 대마도가 저들이 살고 이익을 내려고 조선에 붙을지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선의 명목상 신하기도 하고 이중으로 봉신 등의 자리에 있는 대마도라서 이용할 수가 있는 방법이다.

다만 이를 조선이 꺼낸 저의도 사실 소씨 가문과 대마도의 소씨를 섬기던 직신들도 불안하다는 생각이 강했다. 오히려 자신들이 신국, 일본에 이탈하라고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따라서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직신도 나오기 시작한다. 그 직신의 말을 들어본다면 조선이 아라사가 대마도에 들어오게 고의로 유도를 했다는 듯이 주장한다. 당연하게도 그 말이 될 리가 없기에 좀 그렇다고 여긴다.

“아무리 봐도, 우리 대마도에게 해를 끼치려고 조선이 술수를 부렸습니다. 아라사가 이 대마도를 치게 움직이게 유도한 것입니다.

저들을 치는데 우리가 선봉이 되어야지 굴종하면 안 됩니다. 저들이 우리를 믿어서 포섭할리가요? 분명하게 우리를 신국의 방패막이로 쓰려고 할 것입니다. 이는 신국에 대한 배반입니다.

그렇기에 저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말고 충성하면서 저들에게 무기를 겨눌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아라사가 미워도 저 교활한 조선보다는 덜합니다. 아라사도 조선이 유도한 것에 넘어가갔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무사는 이시하라 신타로라는 이름의 하급 무사였다. 물론 그런 말은 대마도주와 그 아래의 상급 직신은 어처구니가 없이 바라봤다. 아예 대마도의 영주인 소씨가 나서서 혼을 내고 말았다.

“그만. 조선이 아라사를 이용했다고? 그러다가 우리와 막부가 덜컥 그 땅을 양도할지도 모르는데 무슨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움직이는가? 또 우리를 저들이 자신들의 종친을 죽는데 제대로 서신 등의 중간 매개를 하지 못했다고 책임을 물어서 토벌하려고 했다면 우리가 이렇게 멀쩡했을까?

도리어 지금까지 우리를 저들은 봐주고 있었어. 분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허튼 소리는 그만하라.”

“네, 도노... 어떻게든 이 대마도를 유지할 수가 있게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다만 이런 저런 논의를 해도 약자에 불과한 대마도는 최대한 막부 직할령, 어령으로 재편을 거부하고 버틸 생각을 한다. 이전에 조선이 제의했던 제안, 조선에 대한 신속은 나중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마도 내부의 이런 논의와 상관이 없이 조선은 2차 서유시찰단의 귀국 이전에 가장 큰 일이야 대마도를 놓고 아라사와 신경전을 한 것도 있지만 그 사이에 미리견의 내전, 함풍제 혁저의 서거가 꽤 큰일이었다. 특히 후자, 그의 죽음을 들은 대조선국 조정은 불쌍하게 여긴다.

“주청 조선관의 견외통사에게 아국 조정도 조의를 표한다고 전하라. 견외통사가 청주 ‘함품’의 빈소로 찾아가는 것도 생각해보라고 전하게.”

“네. 태왕 폐하. 다만 우리가 빈소에 직접 찾아가는 일은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물론 조선은 함풍제 혁저의 심화, 화병의 중요한 원인이었기에 청나라 측이 아주 고깝게 여길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는 ‘광명’태왕 이영도 사실 짐작한 일로 나름 이웃의 일이니까 최소의 성의를 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 ‘성의’에 불쾌함을 당할 청나라 측이지만 예의는 보여야한다고 여기는 정도이다.

당연하게도 청나라 쪽이야 불편함에도 조선 측의 조문을 받아들였다. 상주의 대리이자 보정대신 겸 섭정을 맡은 종실의 친왕들이 최대한 참고 넘겼었다. 주청 조선관 견외통사인 길주백 김영근은 고인이 된 청주 ‘함풍’, 혁저를 좋게 생각하지 않아도 망자를 능멸하지 않고 조의를 간단하게 표하고 물러났었다.

‘어린 청주의 곁을 다른 이들이 보필하는데 잘 되겠는가? 흠... 알 수가 없다.’

조의를 표할 때에도 청나라의 내부 봉기, 즉 반란들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청나라가 그래도 장발적을 조금씩 꺾지만 다른 문제는 화북의 염군이었다. 장발적과 염군이 서로를 돕지는 못해도 그 하부가 연계해 다른 곳들도 반란이 일어나는 판이다.

물론 조선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청의 혼란은 자국의 내부 정비 등에 대해서 시일을 더 벌수가 있기에 유감스럽게도 득이 되었다. 그렇다고 고의로 청의 혼란을 더 길게 늘일 생각일랑은 없다.

다만 근래에 아라사의 주청공사 이구나티예부, 이그나티예프가 지극히도 의심스러워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청나라 황실의 도움으로 건립한 주청 조선관에 돌아온 길부백 김영근은 청나라 내부의 모든 소식을 알지 못한다.

그래도 경사라고도 불렀던 청의 연경에서는 서역의 외교관들과 청나라 조정 하급자들을 매수해서 교류하고 얻는 일종의 정보망이 조선에게도 있었다. 이를 조심히 종합한다면 지금 청나라의 다른 변방들도 조금 심상치 않다는 점과 그 중에서 북쪽의 육지와 관련된 변방들은 아라사와 접하는데 그 곳들에서 소란이 더 생긴다는 점이었다.

‘단순한 도발인가? 뭐지? 아국인 조선보다는 청나라를 더욱 건드려 보겠다는 심보인가? 이 때문에 영길리의 공사와 그 아래의 유력 외관인 위도(웨이드)가 이를 마땅치 않게 봤지.

아국에서도 아라사 백성이나 아라사 군병과의 일부 충돌이 나온다고 들었지만 저기는 더 살벌한 편이라고 봐야 한다. 아라사의 의중은 청주, 혁저가 죽은 상황에서도 확실해지기 까지 더 확인해봐야겠군.’

청나라의 주청 조선관이 이런 생각으로 아라사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의 경계와 보고에서도 조선의 내부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주 드물었다. 그 사이 조선의 변화는 꽤 많았다.

우선 조선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거의 개통이 된 일은 경사였다. 정확히는 강에서 기관차를 뺀 열차, 객차를 운송하는 열차 평상선은 덜 만들어졌고 이들이 대기할 포구도 완공이 아직 덜 끝났다.

또 과거, 궁정과 종실의 사무를 보는 관아들이 여러 관청 아래에 흩어져있던 와중에 이를 하나로 통합해서 관할하는 궁무부, 줄여서 궁부가 출범했다. 다만 아직도 많은 개선이 필요했다. 개선이 되어야 할 부분은 궁녀와 환관에 대한 부분이 대표였고 많았다.

그리고 그런 추가 경장 등의 주마가편은 2차 서유시찰단이 귀국해서 시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사루대나, 사르데냐의 ‘이탈야’ 지방 통일에 의거해서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출범하여 기존 주조선 사루대나 공사관은 주조선 이탈야(이탈리아) 공사관으로 개편되었다.

‘이거 유주의 사정을 본다면 다른 지각 변동도 알 수가 있을 상황이 분명하다. 유주에서도 사루대나와 오지리의 전쟁이 꽤 심상치 않고 이후 이탈야 지방에서의 일통 전쟁이 성공해서 이탈야 왕국을 크게 선전했지.

우리 조선은 오지리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적당하게 축전을 외부 차원에 보냈지. 유주 제국 등에도 반드시 견외통사 등을 보내야 하는데 인물들을 물색해야 좋을 것 같군...’

이런 생각에 잠긴 외부상서 김병국 말고도 ‘정왜’, 일본과의 국지전이 끝난 이후에 조선군은 다시금 한창 재편도 한창이었다. 병무국의 독판으로 정식으로 오른 신헌 부장은 직무를 시작한다.

여기에 망실한 전선 등을 왜국, 살마와 장주에서 노획한 서역 기선 3~4척을 편입하고 다른 전선을 구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해방국도 당연히 바쁜 상황이었다. 해방독판 이규철은 새로운 자신의 종사관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자네는 내 종사관이던 현오, 이면 그 친구처럼 유능하군. 게다가 나는 상관에게 할 말 하는 부하를 아주 좋아하네.”

새로운 종사관은 자신의 부관, 전임 종사관이던 ‘이면’에 못지않았다. 아니 그 이상으로 유능하고 깐깐한 성향을 가졌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해방독판이 새 종사관을 보고 이런 말을 하였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해방독판 이규철의 비서 겸 부관인 종사관, 이규원이 쌀쌀맞은 듯이 말한다. 물론 이는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냥 평범한 일이다. 그저 공무와 사사를 구분하기에 사심을 담지 않을 뿐이다.

“그나저나 신규 전선 수급을 위해서 우리, 해방국이 잘 나서야 하는데 그 일에 이재봉 참장께 맡길 생각은 없으시지요? 없더라도 그래도 이재봉 참장이 어떤 식으로든 그 일에 끼지 않게 잘 조처해야 합니다.”

“태왕 폐하께서도 신경 쓰는 무관이지만 돈 욕심이 너무 많아서 탈이지. 덕흥대원공(덕흥대원군)의 후예라서 그런지 더욱 그렇게 신경을 쓰시지만 돈으로 문제를 일으키면 당연하게 처벌해야지.

아무리 능력이 좋아서 중용될 수가 있어도 그 놈의 돈 때문에 이 해군에서도 쫓겨날 위기가 있지. 적당히 덜 부패해야 좋은 법이 아니겠는가? 적당히 선물을 받는 선에서 말이지.”

이재봉, 원래는 이봉주라는 이름의 무관이 있다. 그는 지금 조선 해군의 참장으로 재직 중인데 수사학당 출신은 당연히 아니고 무과를 거쳐서 항해감에서 양선 운용 등을 배운 경우에 속한다다. 그는 해방독판 이규철의 말대로 덕흥대원군, 이제는 추숭하기를 덕흥대원공의 후예로서 보통 양반보다 더 급이 다른 대우를 받았다.

원래 조선에서도 종친 등이 양자를 받을 때는 덕흥대원공의 가계에서 받는 경우가 잦았다. 그렇기에 덕흥대원공의 계보는 4대가 종친을 지내서 반가로 사회상의 신분이 이미 내려갔음에도 종친으로서 준하는 예우를 알게 모르게 여전히 받고 있었다.

능력도 꽤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그런 이재봉에게는 심각한 결점이 있기는 했었다. 바로 돈을 지나치게 밝힌다는 점이었다.

조선의 부패에 대한 기준은 다른 의미로는 낮았다. 그래서 부패 금액이 조선에 오래 머문 서역 나라들의 고문들은 조선의 부패 인지성에 대해서 이런 것도 부패라고 볼 수가 있는지에 생각을 할 정도였다. 즉 부패에 대한 경계가 매우 높기에 이재봉의 그런 행위를 부패로 인지하는 조선인들을 신참 고문들은 자신들의 부패에 대한 인식과 혼돈이 올 정도였다.

“다른 나라들이라면 적당하다고 넘어갈 정도의 부패인데 조선은 꽤 엄격하군요. 물론 그러면서도 조선도 우리 서역 기준으로도 ‘작은 부패’로 여기는 것들이 있네요.”

조선 병부 소속인 해군을 현재 총괄하는 관아, 해방국을 돕는 서역인 고문으로 영길리 출신이 이렇게 말한다. 이름이 아서 수미수, 아서 스미스의 이런 말에 쓴웃음을 짓는 이규철이었다. 해방독판의 종사관인 이규원이야 말이 없이 그저 경청한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지요. 게다가 원래 나라에 더 돈이 없었고 적은 돈이 빠져나가는 일에도 민감해지는 법이지요.”

“아직 조선은 더 국부가 늘어야지요. 그러면서도 그대들의 그런 부패 인지도 덕에 기득권이 더 부패하는 일을 견제하면서 늘어나는 부가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겠지요.”

아서 스미스는 사실 이런 조선의 지나친 부패에 대한 경계를 처음엔 그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조선인들과 직접 부대끼고 살면서 이런 저런 조선인들의 관점을 보고 이해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이제는 그런 조선인들의 그런 성향은 도리어 강점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에게 신전선 도입에 대해서 일을 맡기지 않은 것도 이런 저런 일이 있기 때문이오. 아예 군선을 사들이고 싶기는 한데, 상해 혹은 향향에서 교섭을 위해서 조정이 사람들을 보냈지만 잘 되려는지 모르겠구먼.”

이런 우려 속에서도 병부 아래의 해방국 소속 관원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또 그들 중에서 해방독판의 집무실에서 그렇게 요주의 인물로 거론이 된 이재봉 참장도 일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남자의 머릿속에서는 신전선 대신에 다른 것으로 부정한 부를 축재하려고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가장 이윤이 확실한 배의 구매에 대한 일에 관여함은 내가 막혔지. 하지만 해군에서 내가 돈을 벌 방법이 아예 없을 리가! 반드시 방법은 나온다! 흐흠, 어떻게 해야 돈을 울어 먹을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부패가 적발되어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종친에 버금가는 반가이기에 아마도 삭탈관직과 수년의 평양 유형소행을 거치고 은거하는 정도로 그칠 수가 있다.

한편, 조선의 민간에서는 상업과 금융과 관련한 여러 가지 변화가 목격되었다. 미리견 쪽은 밴더빌트 가문의 투자는 조선에 밴더빌트 형제가 도착한 다음에 본격으로 시작한다는 개념이라면 다른 쪽들은 이미 투자를 시작했다. 리들&포터 컴퍼니의 톰 리들이란 대리인을 내세운 피바디와 주니어스 모건의 별도 투자금이 조선에 들어왔다.

그리고 영길리는 ‘앨버트공’ 동양인 장학재단 등을 설립하였다. 영길리 조정의 주선 아래에 기존의 동천축 주식회사, 동인도 주식회사를 통해서 조선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본국의 자본가 등이 조선 현지에 있는 고문들과 상인들을 일종의 대리인을 두면서 투자하는 쪽이 되었다. 그래서 톰 리들은 피바디와 주니어스 모건 외에도 여러 영길리 자본가들의 대리인도 겸하는데 이는 두 사람의 주선으로 연결해서 그렇다.

이는 법국도 비슷하였다. 서유시찰단과의 협의를 받았다고 위조가 아닌, 진짜 공증에 조선 측도 세 부사와 정사의 수결을 대조해서 진짜라고 확인한 다음에 시행하였다. 그렇게 서역의 유력국가들은 조선에 대한 본격 투자가 더 시작된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 객주들 중 돈을 중심으로 만지는 이들 보고 저기 나라님이 세웠다는 서역의 은항인지 뭔지 하는 돈 관리하는 곳들처럼 하나 만들어 보자?”

“송상이니 경강상인도 그렇게 관심이 있소?”

한성과 그 근방, 인천 제물포 개방장에서 돈 좀 꽤 가졌다는 소리를 듣는 환전객주들과 환전객주가 아니라도 거금을 가진 객주들에게 개성의 송상들과 경강상인들이 접근했다. 바로 그들이 뭉쳐서 은항, 은행을 세우는 일로 만나서 협의를 하려고 그렇다.

물론 송상과 경강상인, 그들도 당연하지만 돈이야 많았다. 그래도 이를 더욱 효율이 좋게 굴리고 쓰는 법을 제일 아는 것은 서역의 상인들과 그런 이들과 거래해서 귀동냥으로 아는 이들, 즉 서역 고문과 조정의 높으신 분들이었다. 꽤 공을 들여서 그들을 만나고 일종의 비법이랄지 조언이며 의향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공을 들여서 들은 의견들을 송상과 경강상인들이 꽤 돈이 많은, 돈을 전담으로 맡는 객주들에게 공개하면서 참여를 종용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강요가 아니라 강력한 영입 제안에 더 가깝다.

“그렇게 복주후 대감과 담 리달(톰 리들)을 만나서 협의를 했다네. 조정의 의향도 다른 의관 분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었지.

바로 조정 말고도 민간에서도 은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이 강하시더군. 무려 상께서도 그런다고 하네.”

은항을 세우는 일로 모여서 민간의 은항을 세우기를 바라는 것이 상도 바라는 일이라고 넌지시 말해준다. 상, 지금 이 나라인 조선을 다스리는 ‘광명’태왕 이영을 언급하면서 말하는 것에 많은 객주들의 표정은 당연하게도 눈이 동그랗게 떠지면서 놀라기 바쁘다. 그래도 냉정한 이들은 꽤나 침착하게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었다.

“은항이 세워지면 우리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본디 객주들이 겸해서 하는 일이고 이를 전담으로 하는 환전객주들이 하는 일인데 이를 은항으로 한다면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아니요. 우리가 뭉치면 더 많은 환전을 할 수가 있지요. 조선은항만으로 개방장이며 아국의 모든 식산흥업을 하려는 곳에 돈을 빌려주고 관리할 수가 없습니다. 서역도 그렇기에 객주였다가 이후에 이게 은항으로 발전한 곳들이 많지요.”

“흠... 그러니까 우리가 동업을 하고 뭉치면 동원할 수가 있는 자금은 커지고 빌려줄 여유가 넘친다? 그리고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까? 기존의 객주들과 달리 은항을 할 경우에 생기는 것이 말이요.”

“기존의 의무에 더해서 권리들은 더 다양해 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선 나라에서 돈이 필요해지면 징세를 하는 방법 외에 이렇게 생긴 은항들의 잔여자금들을 대출해서 이자를 내고 원금을 상환할 것입니다. 둘째, 아국의 관원들 외에도 백성들이 돈을 맡기는 곳으로 조선은항과 세워질 은항들을 이용하라고 권장할 것이요.

셋째, 기존의 구문세에 대한 것을 더 조정할 수가 있소. 은항들이 더 세워지는 등이 있다면 더 달라질 수가 있을 것이요.”

사실 이런 제안을 객주 둥 여각이라고 불리는 포구들의 객주들에게도 제한을 했었다. 인천부와 한성에 있는 환전객주들, 객주들은 구미가 완전히 썩 당기는 모습은 아니다. 그래도 이게 서역의 그들이 뭘 하는지를 듣고는 생각이 달라진다.

“서역의 자금이 들어오는데 그 자들은 개방장에서 은항들을 세울 것이요. 그들이 은항을 세우고 아국의 조정을 상대로 큰 손의 일을 한다면 우리에게 장차 더 해가 될 일이 아니요? 조정에게 받을 이자 등을 서역 상인들에게 홀랑 넘겨 줄 것이요?”

“아니요. 우리도 이익을 더 벌어야 하는데 적당히 갈라 먹어야 하지 않겠소? 우리의 몫을 최대한 챙기려면 그런 것은 필요하다면 해야지요!”

“김 대방의 말대로 하지요. 만상들은 요동에서 현지 한족 상인들과 결탁하고 요동에 판세를 넓히는 중에서 그들도 끌어들이지요. 우리라고 돈이 그들보다 적어도 이익을 탐하는 의지는 다르지 않소. 아국 상인들의 탐심을 제대로 보여줍시다.”

한성에서 가장 돈이 많은 여각의 대방과 환전객주의 대방이 찬동하고 나서며 이미 그들을 결탁해서 은항을 세울 생각이 강하던 송상과 경강상인들의 존재들은 이를 기뻐한다.

그리고 상인으로 김문의 후원을 받는 이도 기뻐한다. 그렇게 조선에 민간은항이 알아서 서유시찰단 귀국 이전에 등장할 조짐을 더 보인다. 아마도 조선의 서유시찰단과 동행한 반도필도 형제, 밴더빌트 형제 등이 이를 도와서 조선에서는 민간 은항 설립이 더 활기를 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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