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2화 (2/169)

2화 인비저블 던전 브레이크

#1

신장 70여 미터, 어깨너비 대략 50미터 이상의 거체를 자랑하는 고릴라를 닮은 괴수.

녀석의 양쪽 관자놀이에서부터 돋아나 있는 두 개의 커다란 뿔과 전신을 뒤덮은 은회색 비늘이 한낮의 태양빛을 받아 불길하게 번뜩거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앙

괴수가 터뜨린 엄청난 굉음으로 인해 주위를 맴돌던 탱커 및 근접 딜러들, 거기에 꽤 떨어진 위치에서 공격을 퍼부어대던 원거리 딜러들까지 흠칫 몸이 굳어 버린다.

“크윽...”

“젠장!”

“다,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

혼란에 빠진 헌터들을 바라보는 괴수의 눈동자에 스산한 붉은빛이 맴돌았다.

좌중의 인물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그 순간.

스아아아아아아아......

하늘 저편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괴수의 로어에 잠식된 헌터들은 잘 움직여지지 않는 고개를 가까스로 돌려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의 어느 한 지점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크기를 키우는 은색 점 하나.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동체 길이만 30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전투기였고,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전장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지상의 인물 중 유일하게 로어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이며 힘겹게 괴물의 어그로를 끌고 있던 한 남자.

러시아의 S급 헌터 안드레이 볼코프가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방패를 소환해 괴물의 일격을 받아냈다.

땅속에 몸의 절반이 파묻힌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무어라 외쳤고.

그 소리는 마하 3.8의 속도로 날아들던 전투기 내부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크윽... 빌어먹을 로어(roar)! 한! 어떻게 좀 해봐! 이러다 맨틀까지 처박히게 생겼다고!]

콕피트 안에 울려 퍼지는 다급한 음성에도 조종간을 잡은 파일럿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시끄러워, 안드레이. 네가 떠들어 대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제대로 한 방 먹일 준비나 해두라고.”

[뭐? 이 빌어먹을 기계광 새ㄲ......]

띠릭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어버린 전투기 파일럿.

그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지상의 거대한 목표물에게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2

갑작스럽게 터진 블라디보스토크의 S급 던전 브레이크.

통상 S급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소 2명의 S급 헌터와 50인 이상의 A급 헌터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나 역시 S급 특성을 각성한 헌터였지만, S급 보스 몬스터의 레이드를 위해 필요한 2인의 S급 헌터에 포함되는 일은 없었다.

이는 내가 각성한 S급 특성 ‘파일럿’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파일럿(S) : 탑승물을 통제, 조작하는 모든 행위에 보정을 받는다. 동기화 완료 시 시야, 반응속도, 집중력이 상승한다. 탑승물은 무생물에 한정되며 동력원(動力源)이 존재해야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능력이 ‘탑승물’의 성능에 엄청나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현재 내가 탑승해 있는 전투기는 과학과 던전연구학의 콜라보로 개발해낸 현대기술의 총아 ‘제우스’.

던전 시대의 개막 이후로도 최강국의 지위를 놓지 않는 미국과 내 조국인 대한민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현존하는 모든 기술과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오버테크놀로지의 산물이었다.

뭐, 나름 대단한 녀석인 건 분명하지만...

[제우스(C) : D+등급 합금으로 제작된 본체와 C-등급 마석엔진을 장착한 전투 유닛. 뛰어난 기동력으로 인해 등급이 1단계 상승했다.]

고작 C등급 기체.

어지간한 국가의 1년 치 예산에 맞먹는 재원을 투입하고, 세계적인 석학과 기술자들을 무자비하게 갈아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C등급이라니.

뭐, 던전 부산물이 적용된 미군의 대해양몬스터용 최신 항공모함이 D+등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조차도 엄청난 것이긴 했다.

하지만 탑승물의 등급 간 차이가 몬스터나 헌터의 그것과 엇비슷한 수준이라고 가정한다면.

S급과 C급의 차이는 코끼리와 길고양이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현재 제우스에 장착된 무기체계로는 ‘S급 파일럿’ 특성으로 가능한 온갖 버프를 때려박더라도 S급 몬스터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뭐, 단순한 저지력(沮止力)을 발휘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긴 했지만.

S급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쏟아져나온 몬스터들의 절반 가량을 소멸시켜 버린 뒤, 긴급 요청으로 합류한 보스 레이드.

나는 마력과 버프로 인해 강화된 온갖 미사일을 퍼부으며 러시아의 S급 헌터이자 근접 계열 최강의 헌터 중 하나인 안드레이 볼코프가 딜을 넣을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었고.

쿠우우우우우우우웅

무려 5시간에 이르는 사투 끝에 S등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중간에 마석엔진의 연료인 마석과 미사일을 보충하기 위해 세 번이나 전장을 이탈해야만 했고, 그때마다 안드레이 볼코프와 80여 명의 A급 헌터들은 목숨을 걸고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버텨내야만 했다.

비록 러시아의 A급 헌터 24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실질적인 S급 헌터 1인으로 S등급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냈다는 점에서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는 안드레이 볼코프가 S등급 헌터 중에서는 단 4명에 불과한 트리플각성자 인데다, 세계 최강의 헌터 7인을 일컫는 ‘세븐스타’의 일원이기에 가능했던 일.

아무튼...

S급 몬스터인 던전 보스는 쓰러졌고, 살아남은 헌터들과 방송으로 이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수천만 러시아인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지이이이이잉

희미해져가던 S급 던전이 기이한 소리를 내뱉으며.

번쩍

불길한 빛을 토해내기 전까지는.

#3

“제길, 정말 개 같이 재수 없는 날이로군...”

나는 빠르게 고도를 높이며 갑작스럽게 등장한 또 다른 S급 몬스터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곤 올라올 때보다 더욱 빠르게 내려꽂히며 남은 미사일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남아있는 마력의 절반을 퍼부어 미사일을 극한까지 강화한 상태.

하지만 두꺼비의 얼굴에 거북이 같은 등껍질을 두른 길이 100여 미터, 높이 60여 미터의 거대한 몬스터는 잠시 움찔하는 모습을 보일 뿐, 이내 무수한 돌기가 돋아나 있는 기다란 혓바닥을 채찍처럼 휘둘러 ‘제우스’를 향한 공격을 이어갔다.

“젠장, S급 두 마리는 반칙이잖아...”

1년에 하나 발견될까 말까 한 인비저블(invisible) 던전이 하필 S등급이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던전 감지기에 포착되지도 않는 인비저블 던전이 발견되었다는 건.

대부분의 경우 이미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던전 시대 국가 최대 전력인 S급 헌터가 일없이 놀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S급 인비저블 던전’의 브레이크에 대응하는 데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가장 재수 없는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던전 보스의 중복 출현.

게다가 두 번째 보스 몬스터는 등장하자마자 한계까지 몸과 마력을 혹사시킨 안드레이 볼코프를 공격해 치명상을 가해버렸다.

“빌어먹을 안드레이... 빌어먹을 블라디보스토크...”

부상당한 안드레이 볼코프를 빼내느라 10여명이 넘는 러시아의 A급 헌터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단 10여분 만에 남은 인원의 1/3이 또다시 쓰러졌다.

원래대로라면 수십만의 저등급 몬스터들을 ‘양학’한 다음 러시아 정부로부터 약속된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받는 것으로 끝났을 상황.

평소보다 3배의 보상을 제시하며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 힘을 보태 달라는 말을 수락하는 게 아니었다.

홀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 S급 헌터가 나름 친분이 있는 안드레이 볼코프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저놈을 막지 못하면...”

최소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는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수백만의 생명과 함께.

“젠장, 이 값은 러시아 정부한테 톡톡히 받아내고 말 테다.”

다섯 명의 A급 힐러로부터 어마어마한 힐 세례를 받은 안드레이 볼코프가 전장으로 복귀했지만, 위태위태한 움직임으로 봤을 때 아직까지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였다.

1분? 30초?

A급 헌터들의 도움이 있다한들 그 이상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제우스를 수직 상승시키며 탈출 시스템을 점검했다.

제우스에 적용된 파일럿의 탈출 시스템은 500미터 후방으로 자체 비행 기능이 탑재된 콕피트만을 공간이동 시키는 것.

마석엔진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재원이 투입된 부분이었다.

나는 목표 고도까지 계속해서 치솟으며 ‘파일럿’ 특성의 고유스킬 중 세 가지를 개방했다.

[위대한 결속(S) : 동화율에 비례해 탑승물의 성능이 상승한다.]

[마력기체(S) : 동기화 완료 시 탑승물에 마력을 부여할 수 있다.(S급 파일럿특성 보유자인 한설에게만 존재하는 스킬)]

[한계돌파(S) : 동화율에 따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움직임을 가능케 한다. S급 한계돌파 ? 기적의 기동(A급 ? 괴랄한 기동, B급 ? 기묘한 기동, C급 ? 신기한 기동)]

심장과 뇌에 마력을 집중시키자 동화율이 치솟기 시작했다.

동화울 88%

동화율 89%

동화율 91%

.

.

.

동화율 100%

동화율이 100%에 달한 순간 남은 마력의 절반을 ‘제우스’ 전체로 퍼뜨렸다.

여태껏 미사일을 강화하는 형태로만 사용했었지, 제우스의 몸통 전체를 강화시킨 건 이번이 최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마력을 고유스킬 ‘한계돌파’에 모조리 투입했다.

나는 통신 채널을 열어 안드레이를 불렀다.

“안드레이, 지금 즉시 모든 인원에게 몬스터로부터 최대한 떨어지라고 전해.”

[헉, 헉...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너도 마찬가지야, 안드레이. 최대한 멀어지는 게 좋을 거다.”

[뭐...]

띠릭

매몰차게 통신 채널을 닫았다.

그리고 이내 제우스는 목표 고도에 이르렀고.

나는 서서히 기수를 지상으로 돌렸다.

전신에서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한 제우스가 지상의 괴수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순식간에 지상과의 간격이 좁혀진다.

안드레이를 제외한 헌터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헌터들의 퇴각을 돕기 위함인지, 안드레이는 날이 초승달처럼 휘어진 거대한 곡도를 소환해 보스 몬스터를 공격하는 중이었다.

“말을 안 들어 처먹는 건 여전하군.”

뭐, 워낙 단단한 녀석이니 최소한 죽지는 않겠지.

나는 녀석에 대해 머릿속에서 지웠다.

조금만 타이밍이 어긋나도 보스몬스터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가하지 못하거나... 탈출하지 못해 죽는다.

보스 몬스터와의 거리는 대략 800미터.

제우스는 내 마력의 영향으로 인해 마치 새파란 불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계돌파(S) - 기적의 기동’으로 인해.

“헉!”

남은 800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삭제되어버렸다.

기체가 순간이동을?

이는 내가 미쳐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였고.

충돌 300~400미터 전으로 잡은 탈출 타이밍을 완전히 어긋나게 만들어버렸다.

“빌어먹으으으으으으을!”

두꺼비를 닮은 보스 몬스터의 거대하고 못생긴 얼굴이 코앞에 나타났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전송(탈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악

보스 몬스터의 몸에서 불길한 붉은빛이 터져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윽고 고막을 강타한 엄청난 굉음에 정신이 혼미해졌고.

푸른빛, 붉은빛이 마구 뒤섞인 눈부신 섬광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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