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3화 (3/169)

3화 달달달

#1

얼마나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해두자면.

나는 눈을 뜬 직후 마주한 이 말도 안 되는 현실 앞에서도.

결코 호들갑 떨거나 두려움에 잠식되는 따위의 추태는 부리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당혹스러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지만.

푸드드득

5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거대한 나무 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기묘한 생김새의 커다란 새가 어지간한 성인 남자의 허리통만큼이나 굵은 나뭇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하...”

나는 다시 한번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체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채 지면에 처박힌 전용기 ‘제우스’의 콕피트를 벗어난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지구가 아님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둘레가 50미터는 넘음직한 비정상적인 크기의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셀수도 없이 늘어선 가운데.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 위에 떠 있는 달, 달, 달.

그렇다.

말 그대로 달달달이다.

“미친...”

달이 세 개라니?

이래서야 이곳이 지구 아닌 엉뚱한 어딘가는 아니리라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가 있겠는가?

“절대로 지구일 리가 없지...”

인비저블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고, 난데없이 S급 보스 몬스터 두 마리가 연이어 등장했다.

두 번째 S급 몬스터를 막기 위해 각성 이후 처음으로 고유스킬인 ‘한계 돌파’를 극한까지 사용해 제우스를 자폭시킨 후 탈출하려 했었는데.

스킬의 성능이 예상을 뛰어넘어버려(단지 극한의 속도를 원했을 뿐인데 공간이동이라니...) 탈출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마지막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알 수 없는 빛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것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었다.

그리고 현재.

정신을 차리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기체의 3분의 1 정도만 남아있는 제 우스와 하늘에 떠 있는 3개의 달이었다.

“하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시야 오른쪽에 떠 있는 글자들로 시선을 옮겼다.

[파일럿(S) 상세▶]

[서리바람(B) 상세▶]

[육체강화(C) 상세▶]

[공용스킬(172) 상세▶]

그중 가장 윗줄에 정신을 집중하자 수십 줄의 상세정보가 촤라락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중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기체명 : 제우스(C등급) - 파손율 76.92%(수복 불가)]

“젠장...”

기체가 3분의 1가량밖에 남지 않았기에 예상은 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낭패한 감정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수복(S) - 마력을 이용해 기체를 원상태로 되돌린다. 파손율 50% 미만의 기체에만 적용 가능.]

고유스킬 ‘마력기체’와 함께 세계 유일의 S급 파일럿 특성 보유자인 내게만 존재하는 고유스킬 ‘수복’.

말 그대로 시전자의 마나를 이용해 기체의 상태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스킬이었다.

A급 이하 파일럿 특성의 고유스킬인 ‘수리’가 기체 수리에 관한 지식 습득과 숙련도를 가파르게 올려주는 ‘기술’의 영역이라면.

‘수복’은 마법 혹은 기적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

“쩝... 반파 판정이 뜨면 무용지물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파손율 77%?

한때 지구에서 하늘의 제왕이라 불렸던 저것은, 이제는 매우 비싼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2

아무튼, 지금부터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내가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게 답을 알려 줄 이는 없을 듯 했으니까.

상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거대한 나무들이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빽빽이 들어서 있는 숲속에서, 제우스가 불시착한 영향 때문인지 내가 서 있는 곳의 반경 50여 미터만 나무들이 모두 날아가 버려 위쪽이 뻥 뚫려 있는 상태였고.

그곳을 통해 바라본 하늘 위에는 세 개의 달이 얄밉게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만약 비정상적인 달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나는 적어도 이곳이 전혀 다른 차원? 세계? 아무튼 지구가 아닌 어딘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던전의 시대가 열린 이후 대양 한복판에 새로운 섬이 솟아오른다던가, 대륙한가운데 원래는 없었던 산이나 밀림이 생성되는 건 드물지만 분명 현실에서 발생하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그 대부분은 던전 브레이크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해 강력한 보스 몬스터가 영역을 차지한 탓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태양이 두 개가 된다거나 달이 세 개로 늘어났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지.’

덜그럭

너덜너덜해진 해치를 들어 올려 콕피트 내부를 다시 한번 살폈다.

평소 기체 내부에 무언갈 두는 걸 병적으로 싫어했기에, 그곳에는 그나마 온전한 형태의 조종석과 처참하게 망가진 통제 장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 공군 놈들처럼 에너지바라도 넣어 다닐 걸 그랬나?”

후회해 봤자 이미 늦은일.

나는 미련 없이 해치를 놓아버린 후 콕피트를 내려왔다.

몹시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대체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걸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유추해 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했다.

조금 전과 달리 시야 왼쪽에 정신을 집중했고.

이내 점처럼 줄어들어 있던 몇 가지 항목들이 순식간에 크기를 키우며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중 한 가지 항목을 주목했다.

[마력 : 3467/27399]

내가 지닌 마력의 총량은 27399.

한때 탑승물의 성능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파일럿(S)’ 특성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온갖 방법을 동원했었고.

그중에는 몬스터의 사체에서 드문 확률로 획득할 수 있는 ‘스킬석’을 흡수하는 것도 있었다.

스킬석에서 얻을 수 있는 스킬은 공용스킬 뿐이었고, 그마저도 C등급이 한계.

게다가 가격은 또 더럽게 비쌌다.

하지만 지난 3년간 헌터 수입 랭킹 1위와 세계 부자 순위 10위권에서 단 한번도 벗어난 적 없었던 내게 돈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킬석은 중복 흡수 시 아무런 효과가 없었지만, 몇몇 스킬석은 무한대로 성능이 중첩되었는데.

[마력강화(C) : 1회성 스킬, 사용자의 마력을 소폭 증가시킨다. 일정량 이상 흡수 시 효율이 하락한다.]

나는 하나에 2억원에 달하는 마력강화 스킬석 수만 개를 흡수했고, 마력 1을 올리기 위해 1017개의 스킬석을 필요로 했을 때 이 미련한 짓을 그만두었다.

사실 고등급 헌터들의 역량을 판가름하는데 마력의 양은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니까.

물론 ‘양학(물량전)’ 전문에 마력을 미친듯이 빨아먹는 고속비행을 즐기는 내게는 엄청난 도움이 되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내 마력량은 마법 계열에서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S등급 헌터에 비해서도 무려 5000 이상 높았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최후의 순간 한계돌파를 극한까지 사용하며 내 마력량은 거의 ‘0’에 근접했었다.

그리고 스킬이나 아티펙트의 도움 없이 마력 1000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대략 2시간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대충 일곱 시간 정도...”

어딘지도 모를 장소에서 무려 7시간이나 정신을 놓고 있었다니.

그럼에도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은 건...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나자 허기와 갈증이 좀 더 심해진다.

그럴 수밖에.

기절하기 직전까지 무려 6~7시간 동안 쉬지 않고 극렬한 전투를 수행했었으니까.

당장에 허기를 해결한 방법은 없지만, 갈증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공용스킬(172) 상세▶]

나는 새로운 스킬석이 시장에 풀리는 데로 족족 사들였었고.

그 결과 무려 172개(C등급 163개 D등급 9개)의 공용스킬을 익힌 상태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운디네.”

[운디네 소환(C) : 물의 하급정령 운디네를 소환한다. 정령이 일정량 이상의 피해를 받거나 소환사의 마력이 다 할 경우 정령계로 강제 송환된다. 피해를 받아 강제 송환되었을 경우 일정 시간 동안 소환이 불가능하다.]

포로롱

허공에 새끼손가락만 한 물방울이 맺힌다.

조금씩 몸집을 불린 물방울은 이내 손바닥 크기의 불투명한 여성체로 변했다.

“그나마 다행이로군. 스킬 사용에는 별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혹시나 지구가 아니라 하여 스킬 사용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건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었을 테지.

나는 옅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내 주위를 맴도는 운디네에게 명령해 물을 생성하게 한 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그것을 공기를 흡입하듯 들이마셨다.

쭈우우웁

“하,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럼 슬슬...”

갈증을 해결한 나는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장난을 걸어오는 운디네를 소환해제했다.

그리곤 제우스의 머리 부분 기준 오른쪽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군.”

조금 전부터 거대한 나무들 틈에서 느껴지는 기척.

나름대로 존재감을 지우려 노력한 것 같긴 하지만, 마력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감각을 속일 정도는 아니었다.

크르르르르르르...

50여 미터 전방의 어둠 속.

샛노란 한 쌍의 눈동자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것도 동시에 수십 군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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