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7화 (7/169)

7화 동기화

#1

[탐색(C) : 500미터 이내의 생명체(마력)를 감지할 수 있다.]

C등급 공용스킬 탐색.

동급 이상의 은신 스킬을 사용하거나, 스스로 마력을 감출 수 있는 고위 헌터혹은 몬스터를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스킬이다.

하지만 베헤르디아 대수림의 상위권 포식자이자 일대의 지배자인 사르가스는 마력을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줄기줄기 뿜어내며 돌아다니는 타입의 몬스터.

나는 시야 왼편의 조악한 미니맵 상에 표시된 거대한 붉은 점들이 모두 사라진 이후로도, 여전히 벌벌 떨고 있는 레비의 머리를 누른 채로 꽤 오랜 시간 숨죽이며 상황을 살폈다.

‘모두 다 떠나버리다니. 이렇게까지 운이 좋을 수도 있나?’

어쩌면 전투가 일어났던 곳 주변을 영역으로 하던 사르가스가 죽어버린 탓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아무래도 기간트의 공격을 제일 먼저 그것도 홀로 받아내야 했을 테니 살아남긴 힘들었을 테지.

이곳까지 오면서 확인한 바로는 사르가스는 본인의 영역에 대한 집착이 엄청난 몬스터였다.

하지만 상당한 지능을 가진 만큼 비어있는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녀석이 존재할 확률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너무 늦장을 부리는 건 좋지 않다.

나는 레비의 머리를 누르고 있던 손을 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떨리는 가슴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200여 미터 전방에 쓰러져 있는 기간트 ‘폴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B-급, 그것도 인간형 기체라니...”

기간트의 조종 메커니즘을 확인해야만 정확하게 알 수 있을 테지만.

동급이라고 가정할 경우, 속도를 제외하면 전투기와 인간형 기체의 전투력은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

지구의 석학들 역시 제우스와 동일한 등급의 인간형 전투유닛 제작에 성공한다면...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전력이 최소 3배 정도는 상승할 것이라 단언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몬스터 브레이크 한 건을 처리할 때마다 매번 조 단위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음에도, 그중 대부분을 인간형 전투유닛 개발에 투입해 왔기에 내 통장의 잔고는 언제나 수십, 수백억 정도에서 멈춰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주제에 결과물은 언제나 엉망진창이었지만.”

제우스를 개발하며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마력엔진(C)의 성능은 매우 훌륭했다.

실제로 불과 한 시간 전 엄청난 움직임으로 최소 A-급 괴수들을 도륙해 낸 바 있었던 폴암의 마력엔진이 C+급 아니었던가.

하지만 마력엔진을 제외한 기체의 성능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는데.

D+급(제우스와 동일) 합금을 사용한 외부 장갑이야 소재의 한계상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인간의 움직임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 낸 듯한 폴암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다른 차원’의 그것이었다.

폴암에 비하면 지구의 과학자들이 최근 완성한 인간형 전투유닛의 프로토타입은...

[헤라클레스(E) : D+등급 합금으로 제작된 본체와 C등급 마력엔진을 장착한 이족보행 전투유닛. 엔진의 등급에 비해 장갑의 견고함이 부족하며 엔진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내부기관의 완성도가 매우 조악한 수준. 극도로 비효율적인 마력 전달 방식으로 인해 등급이 대폭 하락하였다.]

세계에서 난다긴다하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에게 수백억의 연봉을 줘가며 개발해낸 결과물이 고작 저것이었다.

뭐, 겉보기에는 꽤나 그럴싸했다.

크기가 무려 18미터로 기간트 ‘폴암’의 3배에 달했고, 외형 역시 소위 ‘기갑물 매니아’들에게 극찬을 받았을 정도로 멋들어지게 뽑혔으니까.

하지만 조종석에 앉아 시험 기동을 시작한 직후.

나는 그것이 수십 톤짜리 거대한 고철 덩어리라는 걸 단밖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겨우 아홉 걸음 떼는 걸로 마력의 1/10이 날아가 버리다니.”

게다가 관절의 움직임은 어찌나 부자연스러운지.

그로 인해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끼익끼익 소리에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나는 당장에 헤라클레스의 개발에 관련된 이들을 모조리 해고해 버리려고 했지만, 고작 프로토타입일 뿐이라는 그들의 읍소에 설득되어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었다.

하지만 폴암이 보여주었던 움직임을 떠올리자, 그때 모조리 해고해 버리는 게 맞았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뭐, 어차피 지금은 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 데다.

무엇보다...

“이런 멋진 녀석을 봤는데, 그따위 고철 덩어리에 신경 쓸 이유가 없지.”

나는 폴암의 거체(巨體)에서 한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에 멈춘 뒤 서서히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2

[다른 사용자와 계약된 기체입니다. 동기화 가능 여부 판단 중......]

다른 사용자? 계약?

처음 보는 종류의 메시지였다.

적어도 지구에선, 그 어떤 기체도 내게 동기화 가능 여부 따위는 묻지 않았으니까.

“뭐, 사실 동기화를 시도해 볼 만한 기체 자체가 별로 없긴 했지만.”

아무튼 저런 메시지가 뜬 이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기다릴 뿐.

그리고 대략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동기화 가능. ‘폴암’과의 동기화를 시도하시겠습니까? 동기화 완료 시까지 3시간 27분 36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미친!”

“크앙!”

“헙!”

저도 모르게 큰 소리가 터져 나왔고, 깜짝 놀란 레비가 덩달아 울음을 토해냈다.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막으며 황급히 시야 왼편을 살폈다.

몇몇 작은 생명체들의 움직임 이외에는 변화가 없는 미니맵.

다행히 5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의 몬스터들이 몰려들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크흠...”

나를 향해 힐난의 눈길을 보내는 레비를 애써 무시하며, 다시금 시선을 눈앞의 거대한 기간트에게 돌렸다.

“3시간 26분? 그러니까 200분이 넘는단 말이지?”

말도 안 되게 긴 시간이다.

아무리 2등급 더 높은 기체라고는 하지만, 제우스와의 동기화에 필요한 시간은 고작 5분 정도에 불과했었는데.

당시보다 훨씬 더 상승했을 내 능력치를 감안하면, 그보다 40배나 더 오래 걸린다는 건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수치였다.

“그럼 뭐, S급 기체는 동기화하는 데만 반년 정도는 필요하다는 건가... 아!”

문득 머릿속을 스쳐 가는 두 가지 단어.

“사용자. 그리고 계약...”

어쩌면 ‘계약된 사용자’가 있다는 것이 동기화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E+급 바이크에는 2분, C급 전투기에는 5분이 걸렸던 동기화 시간이 갑자기 200분으로 폭증할 이유가 없었다.

맞겠지? 아마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폴암과 계약된 사용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야 당연히 99% 확률로 내부에 탑승해 있는 누군가일 확률이 높았다.

그럼 죽은 듯 누워있는 기간트 내부의 탑승자는 과연 살아있을까?

탐색 스킬에 잡히지 않는 걸로 봐서는 죽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B-급 기체인 기간트 내부에 있기에 탐색이 되지 않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었다.

여기서는 관찰(C) 스킬 역시 무용지물이었는데.

이건 눈으로 확인한 대상에게만 적용이 가능한데다, 애초에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는 스킬이었다.

물론 이 안에 있는 존재가 인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내부를 확인할 수 없는 이유가 스킬에 대한 저항력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 저항력을 뛰어넘는 스킬을 사용하면 그만이다.

나는 파일럿(S)의 고유스킬인 ‘호랑이 교관(S)’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훈련병 지정.”

‘호랑이 교관’은 내가 지정한 대상의 조종 숙련도를 가파르게 상승시키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이것에는 스킬의 원래 목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한 가지 부가효과가 존재했는데...

그건 바로 S급 탐색 스킬에 비견되는 ‘색적 능력’.

‘훈련병 지정’을 사용할 시.

일정 범위 내에서 훈련병으로 지정 가능한 후보들에 대한 메시지창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는 무려 S급 은신 스킬을 지닌 헌터조차 피해갈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물론 그 범위가 고작 반경 5미터에 불과했기에, 정말로 S급 탐색 스킬에 비할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곧이어 기간트의 가슴 부위에 한 인물에 대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테리 헤링스(B) : 26세, 루페른 왕국 브라이드 백작가 소속 기사 192cm, 94kg 파일럿 재능 ? 54/72(현재/최대치)

훈련 가능 기체

제우스(C) - 숙련도 0/94

토마호크 SS7 스피릿(E+) - 숙련도 0/100]

메시지창이 나타났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살아있군.”

이렇게 되면 ‘사용자와의 계약’으로 인해 동기화가 늦어진다는 가설에 한층 힘이 실린다.

그리고 이 가설이 맞다면 사용자가 사망할 경우에는...

“높은 확률로 동기화에 필요한 시간이 대폭 줄어들겠지.”

나는 서늘한 눈길로 폴암의 동체를 한 차례 쓸어내리며 깊은 고민에 잠겼다.

“끼이이이잉...”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레비가 몸을 부르르 떨며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생각을 정리한 나는 길쭉한 귀가 축 처진 채 내 곁에 엎드려있는 레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레비. 다 잘 풀릴 테니까... 음,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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