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0화 (10/169)

10화 또 다른 기간트

#1

테리 헤링스는 베헤르디아 대수림을 거침없이 헤쳐나가는 한 사내의 등을 바라보았다.

저 사내를 만난 이후로는 온통 놀라움과 경악의 연속이었다.

일단 동대륙인인 그가 서대륙의 끝인 이곳 베헤르디아 대수림 깊숙한 곳에, 그것도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린 채 홀로 생존하고 있었다는 것부터가 놀라운 일.

뿐만 아니라, 그는 엑스퍼트 최상급 기사나 6써클 마법사 정도는 되어야만 단신으로 상대가 가능한 ‘사르가스’를 맨손으로 사냥할 수 있는 강자였다.

거기에 무리의 결속력이 워낙 강해 길들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중급 몬스터 바르카를 마치 애완견 다루듯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었고.

결정적으로 회복마법 정도는 몇 번이나 연속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숙련된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체 뭘 하던 인간일까?’

그는 몬스터의 흔적이나 길을 찾는 일에도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함께 있던 바르카를 무리의 영역 근처까지 데려다준 이후.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사르가스의 영역으로 돌아온 사내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는 듯하더니, 이내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테리 헤링스로서는 그 ‘거침없는 발걸음’의 근거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는 묵묵히 달리고 있는 사내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었다.

‘저... 스노우님.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브라이드 백작가라고 하지 않았나?’

‘네? 스노우님은 브라이드 백작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시잖아요.’

‘모른다.’

‘......’

테리 헤링스의 어이없는 표정을 일별한 사내, 스노우는 여전히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몬스터의 세력이 약해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뿐이다.’

‘네?’

‘인간의 영역에 가까워질수록, 몬스터들의 세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

스노우의 말이 맞았다.

대수림은 중심부로 갈수록 점점 더 강력한 몬스터가 등장한다.

그렇다는 건, 인간의 영역에 가까워질수록 몬스터들의 등급은 점점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이후 대략 다섯 시간을 이동하는 동안, 정말로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은 점점 더 약해졌고.

스노우는 그런 몬스터들을 별 어려움 없이 모조리 해치워버렸다.

그중 압권은 베헤르디아 대수림의 암살자라 불리는 ‘안티가’ 무리와 조우했을 때였는데.

이놈들 개개인의 무력은 바르카보다 조금 강한 정도였지만.

50~100마리가 무리를 이루는 데다, 뛰어난 은신 능력을 지니고 있어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로 악명이 자자했다.

1.5~2미터 크기의 몸에는 갈색 털이 수북했고, 얼굴은 사자와 호랑이를 섞어 놓은 듯 사납게 생겼다.

5,60cm 정도로 짧은 다리에 비해 팔은 자신의 키보다도 더 길었고.

그 긴 팔로 베헤르디아 대수림의 거대한 나무에 매달려 있다 먹잇감을 공격하는 것이 그들의 사냥 수법이었다.

빠르게 이동하던 중 갑작스레 수십마리의 안티가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스노우는 곧장 반격을 가했는데, 그때 그가 선보인 마법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첫 번째 공격이 그에게 닿기도 전.

차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엄청난 속도로 세력을 불려간 얼음의 대지로 인해, 안티가들의 움직임이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느려졌고.

투둑

투두두두두두두두두두...

곧이어 대지 위로 미세한 결정의 얼음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자, 녀석들은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몸이 굳어버렸다.

짧은 시간 시야를 확보하기 힘들 정도로 쏟아지던 얼음비가 그치고.

대지 위에 쌓인 얼음 결정들 사이에서 세 번째 이적(異蹟)이 일어났다.

드르륵

드륵

드르르륵

수북이 쌓인 얼음 결정들 곳곳에서 들썩임이 일었고.

그 사이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불쑥불쑥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태를 갖춘 1.5미터가량의 눈뭉치 20개체.

이들은 완전한 형태를 갖추자마자 일제히 굳어있는 안티가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스걱

스걱

스걱

칼날처럼 날카롭게 변형된 손으로 녀석들의 머리를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50마리가 넘는 안티가들의 머리가 모두 날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여 초.

테리 헤링스는 경악하며 눈을 치뜰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봤던 그 마법! 그리고 브, 블리자드? 게다가 소환마법까지?’

냉기 마법 계열의 끝판왕인 블리자드라고 하기에는 위력이 좀 초라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가 직접 그 마법을 목격한 적은 없으니 진실을 알 방도는 없었다.

게다가 중급 몬스터인 안티가의 방어력을 뚫고 목을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한 소환수를 무려 20여 마리나 부릴 수 있다니...

“그 정도면... 로드먼드님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인 거 아냐?”

어느새 어둠에 잠긴 대수림.

테리 헤링스가 회상에 잠겨있는 동안.

스노우는 마법을 이용해 거대한 나무의 옆에 구덩이를 파, 그들의 몸을 숨겨 줄 은신처를 만들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테리 헤링스가 두 손을 비비며 살갑게 말했다.

“앗! 수고하셨습니다, 스노우님. 조금만 쉬고 계세요. 나뭇잎으로 푹신한 잠자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식사도 제가 준비할게요. 오늘 저녁은 리벨토(거대토끼의 일종) 요리가 어떨까요? 하하하......”

#2

인간의 영역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 뒤 두 번째 맞는 아침.

우리는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한 후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대하는 테리 헤링스의 태도가 극도로 조심스러워졌는데.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안티가 무리와의 전투가 꽤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뭐, 그놈들이라면... 조금 위협적이긴 했지.’

관찰(C) 스킬로 파악되지 않을 만큼 꽤 높은 등급이었던 데다, 탐지(C) 스킬의 미니맵에도 전혀 감지되지 않는 높은 수준의 은신을 구사하는 녀석들이었다.

안티가 무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가진 최강의 스킬들을 연달아 전개했는데.

광역 CC기인 ‘프랙탈 필드(B)’에 이어...

[프리징 레인(B) : 얼음비를 생성한다. 고유스킬 ‘프랙탈 필드(B)’와 ‘글레이 즈 아이스(B)’, ‘눈사람 소환(B)’을 포함한 모든 냉기 계열 스킬을 강화시킨다. 다만 공용스킬의 경우 강화 효과가 50% 감소한다.]

[눈사람 소환(B) : 얼음 결정으로 이루어진 서번트를 소환한다. 서번트의 형태와 크기, 숫자는 소환사의 역량에 따라 좌우된다.]

두 가지 스킬을 연달아 시전했다.

이는 모두 B급 특성인 ‘서리바람’에 속한 고유스킬이었고,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특히 뛰어난 위력을 발휘했다.

‘눈사람 소환’의 경우 S급 서리바람 특성을 각성한 영국의 헌터 ‘코트니 블레인’의 주력스킬이었는데.

그녀는 무려 1000여 개체의 서번트를 동시에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B급인 나는 최대 20개체가 한계였다.

하지만 마력이 허용하는 한 계속해서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은 여타 소환수들에 비해 엄청난 강점이었고.

압도적인 마력을 지닌 내 서번트들은 불사의 군대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버프를 받지 않은 상태의 각 개체는 고작 D급 몬스터 정도나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허약했지만.

온갖 버프를 퍼부을 경우, B급 중위권 수준인 안티가의 목조차 단번에 날려 버릴 정도로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물론 고유스킬과 공용스킬(서번트 버프) 십수 가지를 연달아 시전하는 바람에 고작 30여 초 만에 전체 마력양의 5%가 날아가 버리긴 했지만.

애초에 고작 5%의 마력만으로 이 정도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는 헌터는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출발 직후 대략 3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잠깐...”

탐색(C) 스킬에 의해 발동되는 미니맵.

왼쪽 시야 가장자리에 위치한 그곳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한 나는 급격히 속도를 줄이며 자세를 낮췄다.

테리 헤링스 역시 덩달아 긴장감을 높이며 천천히 내쪽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입 다물고... 잘 들어봐.”

나는 일반인이 속보로 걷는 정도의 속도로 전진하며 손가락으로 전방의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앙

........에에엑

“엇!”

테리 헤링스의 귀에도 미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는지, 화들짝 놀라며 짧은 탄성을 토해냈다.

미니맵 상으로는 대략 380여 미터 전방.

거대한 나무들로 인해 아직 모습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테리, 분명 대수림에 함께 들어온 동료들이 있다고 했었지?”

“네, 두 사람이 같이 들어왔습니다.”

“저 앞쪽에... 뭔가 거대한 게 움직이고 있다.”

“......?”

“네 동료들도 너와 같은 기간트 오너라고 하지 않았었나?”

“아!”

테리 헤링스의 눈이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두 배쯤 확장되었다.

“빠, 빨리 가보죠. 스노우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흥분한 그가 앞장서서 몸을 날렸다.

이윽고 도착한 전장.

전투는 그새 끝나버린 듯했다.

몸통의 길이만 대략 6~7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체구의 사족보행 몬스터 세 마리는 이미 목숨이 끊긴 상태.

하긴, 사르가스의 영역으로부터 한참이나 인간의 영역에 가까워진 이곳에...

‘저 6미터짜리 강철 괴수를 감당할 만한 몬스터가 있을 리 없지.’

가슴엔 교차 된 검 두 자루를 품고 있는 백사자.

왼쪽 어깨엔 아래쪽이 뾰족한 금빛 십자가.

각각 브라이드 백작가와 금십자 기사단을 상징하는 문양을 새긴 채 당당하게 서 있는 거대한 존재.

테리 헤링스의 그것과 똑같은 생김새의 기간트.

‘폴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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