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3화 (13/169)

13화 가늠할 수 없는 존재

#1

대담을 마친 스노우가 떠나간 사령관실.

똑똑

“들어오게.”

스노우에게 양해를 구한 뒤, 대기하고 있던 참모에게 그를 인계한 밀라 테네 시가 사령관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사령관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확인하곤 잠시 흠칫하는 듯했지만, 이내 자세를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충! 스노우는 조나단 니엘스 작전관에게 인계했습니다.”

“주의 사항은 잘 전달했겠지?”

“네!”

“수고했군, 자네도 자리에 앉게.”

그가 눈으로 비어있는 자리 중 한 곳을 가리키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그곳에 앉았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사령관의 뒤쪽에 주욱 늘어서 있었던, 나머지 네 사람은 이미 자리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

“......”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콜튼 프리먼은 누가 봐도 ‘나 마법사요’라고 외치는 듯한 복장의 사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땠나, 제이미?”

다소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요새의 마법병단장인 제이미 그레고리를 비롯해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요새 사령관의 물음에 제이미 그레고리는 깊게 눌러 쓴 로브를 뒤로 당겨 벗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아아... 이거 참, 믿을 수가 없군요.”

“그말은?”

제이미 그레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밀라, 저자가 마법을 사용 했다는 게 사실인가?”

제이미 그레고리의 말에 밀라 테네시는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네, 제가 두 눈으로 확인한 사실입니다. 최소한 4써클 이상으로 보이는 화염마법을, 딜레이 없이 연달아 4번이나 사용하더군요.”

“그런...”

“게다가 화염 마법을 피해 달아나는 아투비 일곱 마리를 처리한... 아마도 ‘윈드 커터’로 추정되는 바람 마법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눈에는 거의 동시에 썰려 나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음...”

제이미 그레고리의 미간에 새겨진 주름이 한층 깊어졌다.

‘윈드 커터’라면 2써클의 경지에만 올라도 구사가 가능한 초급 마법.

하지만 그 마법을 이용해 중급 몬스터인 아투비 다수를 단번에 썰어버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중급 몬스터치고는 방어력이 낮은 아투비의 몸통을 썰어버리는 것쯤은, 5써클마스터인 자신 역시 식은 죽 먹기였지만.

문제는 녀석들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는 비행형 몬스터라는 것.

어떤 방법을 썼던... 그런 녀석들 일곱 마리를 거의 동시에 명중시키는 신기를 발휘한 데다.

최소 4써클 이상의 중급 마법을 캐스팅조차 없이 몇 번이나 시전했고.

결정적으로 5써클 마법사인 제이미 그레고리 본인이 ‘마력’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존재라면...

“엄청난 실전 경험을 지닌... 6써클 전투마법사.”

제이미 그레고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콜튼 프리먼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이 일제히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하, 미친...”

“6써클 전투마법사는 본 적이 없는데.”

“난 있어. 왕립 아카데미에 다닐 때 학장이, 바로 그 ‘브라이언트 후작님’이었거든.”

“애초에 그분을 포함해도... 6써클 전투마법사는 우리 왕국에 둘밖에 없잖아요.”

“방금 하나 추가됐잖아, 밀라.”

“6써클 전투마법사는 기간트도 잡을 수 있다던데?”

“그거 사실이긴 한데, 상대가 250rp짜리 ‘트루바’였어.”

“아, 그... 리플리 왕국에서 만든 소형 기간트?”

“그래도 250rp면 우리 ‘대거’의 절반 정도 수준은 된다는 거잖아.”

“어, 우리 같은 놈들은 때려죽여도 못 잡지.”

“아무튼, 그 ‘트루바’를 완전히 고철덩이로......”

사실, 본래 베른 요새에서 열리는 회의의 분위기는 언제나 이랬다.

사안의 심각성 탓에 다들 자중하는 분위기였지만.

말도 안 되는 ‘이레귤러’의 등장으로 인해 흥분했고.

그로 인해... 그만 본성이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들은 대륙 5대 마경인 베헤르디아 대수림의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금십자 기사단원들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었고.

때문에 다른 귀족 가문 소속 기사들에 비해, 기사단의 규율 자체는 상당히 느슨한 편이었다.

어쩌면 이들의 정체성은, 기사보다는 오히려 몬스터 헌터나 용병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물론 단원들 간의 유대감만큼은.

대륙의 그 어느 기사단보다 끈끈하다 자부하고 있었지만.

탁탁탁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콜튼 프리먼이 소파 팔걸이를 몇 차례 내려치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되었다.

그는 여전히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좌중의 시선은 자신들의 상관을 향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그... 스노우란 자, 단순한 6써클 전투마법사가 아니야.”

그제야 모두의 머릿속에 ‘맨손’으로 ‘사르가스’를 잡았다는 말도 안 되는 보고가 스쳐갔다.

콜튼 프리먼 기준, 오른쪽 첫 번째 자리에 앉은 기사가 말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마법을 사용한 게 아닐까요? 6써클 전투마법사라면 근접전도 어느 정도는...”

그의 의견은 일견 타당했지만, 콜튼 프리먼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좌중의 인물들은 다시 한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자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

“분명 검을 기가 막히게 썼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는 건 오러를 수련했다는 거잖아.”

“그런데도 사령관님이 그를 가늠할 수 없었다는 건...”

콜튼 프리먼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는 백작님... 그리고 알버트 경과 비슷한 경지에 오른 전사다.”

6서클 전투마법사이자,

엑스퍼트 최상급.

베른 요새 최고 실세들이 내린 스노우에 대한 판단은 그랬다.

#2

사령관실을 나오자 조나단 니엘스라는 이름의 군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밀라 테네시는 ‘회의’를 핑계로 나를 그에게 맡긴 채 돌아가 버렸고.

난 그의 안내를 받아 사령부가 있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기간트 격납고를 제외하면, 요새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셔도 괜찮다는 사령관님의 허락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첫 마디부터 기분이 나빠진 나는, 이후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요새 내부를 둘러보았다.

‘젠장, 유일하게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을 못 들어가게 막는군.’

기간트가 아니라면, 이 요새에 내 관심을 끌만 한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보다는 사령관실을 나오기 전 확인한 다섯 사람의 프로필이 내 흥미를 끌었는데.

[콜튼 프리먼 (B-) : 45세, 루페른 왕국 브라이드 백작가 소속 기사 186cm, 83kg 파일럿 재능 ? 70/70(현재/최대치)

훈련 가능 기체

제우스(C) - 숙련도 0/90

토마호크 SS7 스피릿(E+) - 숙련도 0/100]

[마거스 어번 (C+) : 39세, 루페른 왕국 브라이드 백작가 소속 기사 파일럿 재능 ? 62/64(현재/최대치)

189cm, 87kg

훈련 가능 기체

제우스(C) - 숙련도 0/84

토마호크 SS7 스피릿(E+) - 숙련도 0/100]

[조시 맥너만 (B-) : 34세, 루페른 왕국 브라이드 백작가 소속 기사 194cm, 97kg 파일럿 재능 ? 61/69(현재/최대치)

훈련 가능 기체

제우스(C) - 숙련도 0/89

토마호크 SS7 스피릿(E+) - 숙련도 0/100]

[아론 베리어스 (C+) : 32세, 루페른 왕국 브라이드 백작가 소속 기사 176cm, 72kg 파일럿 재능 ? 58/63(현재/최대치)

훈련 가능 기체

제우스(C) - 숙련도 0/84

토마호크 SS7 스피릿(E+) - 숙련도 0/100]

[제이미 그레고리 (B+) : 44세, 루페른 왕국 브라이드 백작가 소속 마법사 188cm, 74kg 파일럿 재능 ? 23/79(현재/최대치)

훈련 가능 기체

제우스(C) - 숙련도 0/99

토마호크 SS7 스피릿(E+) - 숙련도 0/100]

테리 헤링스의 말에 따르면 ‘근위기사단을 제외하면 루페른 왕국 최강의 기간 트 전력’이라는 금십자기사단 소속 오너들의 재능이 썩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단장보다 테리 녀석의 재능이 한 수 위로군.’

물론 현재의 기량은 콜튼 프리먼 쪽이 압도적이겠지만, 그는 이미 전성기의 정점에 이른 상태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외였던 건...

‘마법사 쪽의 재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잖아? 게다가 매우 허접하지만 이미 숙련도가 올라 있다고? 기간트는 기사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곁에서 걷고 있던 조나단 니엘스에게 물었다.

“혹시 마법사도 기간트를 몰 수 있나?”

“네에? 아...”

내 물음에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던 조나단 니엘스는 곧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마법사용 기간트를 만들려는 시도는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성공한 곳은 없습니다. 애초에 엑스퍼트급 근력이 없다면 기간트를 움직이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다만 마력엔진을 이용해 마법의 위력을 부풀리는 병기가 개발되어 있기는 합니다. 저기 보이는 게 바로 그것이죠.”

조나단 니엘스는 오른손 검지를 펴 요새 방벽의 꼭대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마치 심해잠수정처럼 생긴 길쭉한 장치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고정되어 있군.”

“상하좌우 최대 75도까지 회전할 수는 있습니다. 유사시에 마법사들이 탑승해 운영하게 되는데. 가장 강력한 것은 최대 3배까지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켜 주죠.”

“그래, 바로 저것 때문이었어.”

“네?”

제이미 그레고리가 지닌 허접한 경험치의 비밀은 풀렸다.

동력원(動力源)이 있는 탑승물이니 ‘기체’로 인정이 된 것이리라.

하지만 운용 방법이 극도로 한정되어있는 만큼, 아무리 숙련도를 올려봤자 실력이 오를 리 없었다.

나는 조나단 니엘스의 물음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요새 곳곳에 존재하는 훈련장 중 한 곳.

그리고 그곳에는...

4.5미터짜리 기간트 한 대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나는 조나단 니엘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거, 내가 한 번 타 볼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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