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5화 (15/169)

15화 기간트 '대거'

#1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훈련장을 비추는 거대한 마법등 4개가 일제히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캘빈 앤더슨은 내가 기간트 대련을 수락하자 희희낙락한 표정을 한 채 훈련장중앙으로 걸어갔다.

표정이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대거’에 탈 수 있게 해준 기특한 녀석이니 너무 심하게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4.5미터에 이르는 대거의 전신을 한차례 눈에 담은 뒤, 녀석의 다리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동기화를 하지 않은 기체도 얼마든지 운용할 수 있었지만.

‘파일럿(S)’ 특성의 고유스킬들을 사용할 수 없는 데다, 동화율을 올릴 때도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기에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동기화를 끝낸 기체는 단순히 오래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기체의 성능과 내 능력치가 동반 상승한다.

물론 그렇게 상승한 능력치는 오로지 동기화를 끝낸 기체와 함께 할 때만 적용된다.

‘제우스’와의 동기화로 인한 3년간의 보너스 능력치들은 ‘대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뭐, 굳이 그런 거 없어도 상관없지만.’

동기화 중...... 47%

동기화 중...... 54%

동기화 중...... 69%

.

.

.

동기화 중...... 100%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기체명 ‘대거(C)’의 소유권을 획득하셨습니다.]

대략 3분 30초 남짓.

같은 C급 기체인 제우스의 동기화에 5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이세계 불시착 이후 꽤 많은 성장을 이룬 것 같았다.

나는 조나단 니엘스가 알려준 기간트의 ‘탑승’ 주문을 외웠다.

“테리마.”

지이이이이이이이잉

순간 귓가로 작은 이명이 들려왔고.

세상과 잠시간 분리되는 듯한 신비한 감각을 느꼈다.

잠시 뒤 모든 감각이 돌아온 이후 느낀 것은.

‘어둡다. 그리고... 꽤 갑갑하군.’

나는 본능적으로 이곳이 기간트의 내부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마력을 발현했다.

파아아아앗

마력에 반응하듯 내가 있었던 공간에 빛이 들어왔다.

주위는 미세한 알갱이(화이트스펀)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고.

내 전신을 감싼 그 알갱이들은 마치 마력에 의해 녹아버리듯, 빠르게 점성을 지닌 어떤 물질로 변화했다.

이윽고 모든 알갱이들이 슬라임처럼 변해버렸고.

‘......!’

나는 ‘기간트와 ‘연결’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연결’로 인해 내가 얻게 된 것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압도적인 해방감이었다.

“하, 하, 아하하하하하하! 이건... 진짜 대박이잖아.”

일단 시야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내 눈높이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이내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츠르르르르...

옅은 마찰음과 함께, 천천히 상승한 강철 거인의 거대한 손바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큭...”

피식 미소 지은 나는 오른쪽 시야 한 편에 나타난 새로운 메시지창을 바라보았다.

마력엔진 : 57rp

동화율 : 36%

“이건 기간트가 자체적으로 보내오는 정보로군.”

나는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리며 동화율을 높였고.

기간트 ‘대거’는 C급 탑승물에 불과했기에, 동화율은 순식간에 치솟았다.

동화율 : 36%

동화율 : 58%

동화율 : 69%

.

.

.

동화율 : 100%

동화율 100%에 이르는 데에는 고작 7초면 충분했다.

동화율을 높일수록 소모되는 마력의 양은 급격하게 늘어나지만.

‘파일럿(S)’ 특성의 보정을 받고있는 데다, 가진 마력의 양이 무지막지한 내게 부담 될 정도는 아니었다.

“B급 기간트 정도 되면 좀 다르려나...”

예를 들면 훈련장 한가운데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캘빈 앤더슨의 폴암(B-)이라던가.

나는 ‘대거’와 완벽하게 동화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몸이 조금 무겁게 느껴지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불편한 건 없었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높이 뛰어오른 다음 착지.

타악... 탁...

4.5.미터의 신장과 5톤에 가까운 무게라곤 믿어지지 않는 작은 소리.

이는 내가 ‘대거’의 몸체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같은 C급이었던 ‘제우스’와는 차원이 다른 일체감.

“물론 스피드나 순간 화력은 제우스쪽이 압도하겠지만...”

내가 기를 쓰고 인간형 전투 유닛을 제작하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내가 가진 고유스킬들을 더 잘 활용해 더욱 강해지기 위함이었다.

물론 기간트의 조종 메커니즘이 이런 방식일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는 기분 좋은 ‘빗나감’이었다.

“제우스로는 한계가 뚜렷했지만, 기간트라면...”

게다가 현재 내가 탑승해 있는 ‘대거’는 고작 하급 기간트에 불과했다.

콜튼 프리먼 사령관의 기간트인 ‘코페시’ 쯤 되는 기체에 타게 된다면, 아마 지금에 비해 몇 배는 더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으리라.

나는 본격적으로 기간트라는 새로운 타입의 기체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마침 적당한 스파링 상대도 준비되어 있으니까.”

캘빈 앤더슨 역시 기간트를 소환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과연 기간트에 탑승한 상태에서 공용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

나는 캘빈 앤더슨의 ‘폴암’을 향해 달리며 나지막하게 외쳤다,

“가속.”

[가속(C) : 최대 300%까지 속도가 증가한다. 증가치가 높을수록 마력 소모량이 늘어난다. 스킬 지속시간은 10초이며, 이후 3분간 사용할 수 없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

“된다! 이 정도면 체감상 맨몸으로 전개할 때랑 별 차이 없어.”

그 말인즉, 신장 4.5미터의 기간트로 스킬을 사용하는 지금은 맨몸으로 펼칠 때보다 적어도 2,3배는 더 빠르다는 뜻이었다.

폴암의 거체가 순식간에 확대되기 시작한다.

기간트에는 표정이 없지만(폴암의 경우 애초에 눈,코,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왠지 저 거대한 녀석이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뭐, 실제로 당황한 건 저 안에 있는 녀석일 테지만.”

나는 엄청난 고양감에 허공으로 몸을 날렸고.

대략 20여 미터를 날아간 다음 두 다리를 쭉 뻗어 폴암의 가슴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10여 미터를 허공에 뜬 채 날아가 지면에 처박히는 강철 괴물.

그 꼴을 보고 있자,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아, 적당히 하려고 했었는데... 깜빡했네.”

너무 신을 내다보니 그만...

#2

조나단 니엘스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도무지 하급 기간트 ‘대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강력한 일격으로 대련의 시작을 알린 스노우.

“움직이는 것 정도는 해낼 줄 알았지만, 이건...”

6서클 전투마법사이니 마력이 부족할 일은 당연히 없을 테고.

거기에 엑스퍼트 최상급이라면, 오러로 인한 근력 강화야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애초에 마력 사용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탑승은 가능한 것이 비각인 기간트다.

물론 재수 없이 가동 주문이라도 외웠다간, 마력을 쪽쪽 빨려 순식간에 폐인 이 되어 버릴 테지만.

어쨌든 적어도 스노우라는 인물 정도의 강자라면, 기간트를 움직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저건 대체...”

출력이 300rp나 차이 나는 기간트에게 얻어맞은 일격으로, 상부 장갑이 눈에 띄게 우그러져 버린 캘빈 앤더슨의 기간트 폴암.

“폴암이라면 동급 기간트 중에선 단단하기로 유명한데... 대체 어떻게?”

확실히 단단하기는 한 건지, 그리 오래지 않아 몸을 벌떡 일으킨 폴암.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망신을 당한 캘빈 앤더슨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듯했고.

이내 대거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리곤 허공에서 3m가 넘어 보이는 대검을 소환하더니.

브라이드 가문의 비전 검술 중 하나인 ‘백사자의 발톱’을 연달아 펼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초라한 덩치의 대거는 별다른 무기조차 없는 상황.

하지만 상대의 위협적인 공세(攻勢)를 꽤 여유롭게 피해 낸 대거는, 마치 춤을 추듯 요상한 스텝을 밟으며 자신보다 훨씬 큰 폴암의 상체에 주먹을 꽂아넣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앙

콰아아아앙

콰아앙

주먹이 가슴과 복부에 적중할 때마다 마치 정말로 숨이 막힌 듯 흠칫 몸이 굳는 폴암.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단순한 주먹질에 의해, 단단한 기간트의 몸 곳곳에 상처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주먹... 그것도 고작 대거의 맨주먹으론 폴암에게 흠집조차 낼수 없는 게 정상이라고!”

애초에 출력이 300rp나 낮은 기간트로 상위 기간트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출력이 1500rp를 넘어가는 중상급 이상의 기간트라면 또 모르겠지만.

고작 800rp와 500rp에 불과한 하급 기간트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

“기간트 오너 간의 실력 차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다면 모를까...”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당하고 있는 쪽의 오너가 기사 왕국 루페른 내에서도 손꼽히는 기간트 전력인, ‘금십자 기사단’ 소속이라는 걸 감안하면.

눈으로 보면서도 쉽사리 믿기 힘든 조나단 니엘스였다.

“캘빈이 성격은 별로여도... 실력 하나는 확실한 놈인데.”

그때.

쉬이이이이이이이익

쉬이이이이이이이익

폴암의 대검이 2개로 분열되며, 각각 상체와 하체를 노리는 회심의 일격이 날아들었고.

타앗

엄청난 반응속도로 몸을 공중에 뛰우며 동그랗게 웅크린 대거가 이를 완벽하게 피해냈다.

대거의 아래와 위를 지나쳐 가는 검격.

이후 잔뜩 웅크린 몸을 공중에서 뒤집은 대거가 다리를 풍차처럼 회전시켰고.

콰아아아아아앙

오른쪽 발에 얻어맞은 폴암이 또 한 번 지면에 처박히고 말았다.

조나단 니엘스의 눈이 경악으로 치떠졌다.

“기, 기간트의 움직임이 저렇게까지 가볍고 유연할 수가 있나?”

저건 영지 최고의 기간트 오너인 금십자 기사단장조차 불가능할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근위기사단에는 본신의 움직임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내는 괴물들이 존재한다고 들은 적이 있어. 그런데...”

조나단 니엘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들의 기간트는 죄다 출력이 2200rp 이상이잖아.”

왕국의 기간트 제작 역량이 집중된 근위 기체.

이는 당연히 모든 면에서 대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괴물 같은 성능의 기간트들이었다.

조나단 니엘스가 떨리는 시선으로 훈련장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운 폴암과, 여전히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는 중인 대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아아아... 그러니까 저건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괴물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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