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6화 (16/169)

16화 전율의 하이브리드 기간트

#1

금십자 기사단 소속 기간트 오너인 캘빈 앤더슨.

그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작달막한 기간트의 주먹질에 혼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상대의 움직임은, 이제까지 그가 알고 있던 기간트의 기동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마치 뜀뛰기를 하듯 두 발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빠르게 앞뒤좌우로 이동했고. 때로는 흡사 연체동물인양, 상체만 90도에 가깝게 꺾어 공격을 피해버리는 등.

온갖 희귀 금속의 합금으로 이루어져, 강철의 몇십 배에 달하는 경도를 지닌 기간트의 움직임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기동을 선보였다.

“으아아아악! 대체 뭐냐고! 저 지랄 맞은 움직임은!”

후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전력을 다해 휘두른 대검의 횡베기에.

츠르륵

상체를 재빠르게 웅크리는 것으로 대응하는 대거.

콰아아아아앙

그 직후 곧바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 친 주먹질에, 또다시 턱에 일격을 허용하고 마는 폴암이었다.

쿵쿵쿵쿵쿵쿵쿠웅...

고개가 뒤로 크게 젖혀진 탓에, 뒤로 예닐곱 걸음이나 물러서고 나서야 간신히 중심을 잡는 데 성공한 덩치 큰 기간트.

머리통을 울리는 충격에 정신이 어질어질해진 폴암의 오너 캘빈 앤더슨은 고개를 두어 차례 털어내며 이를 악물었다.

“아드득... 젠장! 이게 진짜 대거로 낼 수 있는 파워라고?”

현재 그의 시야 한편에 위치한 메시지창의 변화는, 그가 얼마나 흥분한 상태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마나엔진 : 489rp

마나엔진 : 508rp

마나엔진 : 512rp

.

.

.

마나엔진 : 539rp

동화율 : 85%

동화율 : 87%

동화율 : 86%

.

.

.

동화율 : 88%

현재 폴암은 출력 한계점인 550rp에 근접한 상태였고, 캘빈 앤더슨 역시 자신의 동화율 최고치인 89%를 넘어서기 일보직전이었다.

후자의 경우 오너가 벽을 한 단계 넘어서는 것이니, 실전도 아닌 바에야 매우 반길 만한 일이었지만.

기간트인 폴암의 경우는 달랐다.

기간트가 출력 한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거의 100% 확률로 마나엔진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이는 최소 수십만, 최대 수백만 골드의 손해가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젠장, 그냥 간이나 좀 보려고 한 것뿐인데...”

요새에 복귀한 직후, 씩씩거리며 테리 헤링스를 찾아가려던 캘빈 앤더슨에게, ‘스노우’라는 인물에 대해 알려준 건 기사단 선배인 아론 베리어스였다.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겁니까? 6서클 전투마법사에... 뭐? 최상급 엑스퍼트?

꿈이라도 꾸다 온 거 아니에요, 아론?’

건방지게 말을 한다는 이유로 한 대 얻어맞기는 했지만, 쉽사리 믿기 힘든 일임에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요새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두 공인을 했다는데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그는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호오, 기억을 잃었다고? 그렇다면야... 어느 정도 기를 눌러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물론 그런 무시무시한 자와 진심으로 충돌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기간트 대련으로 적당히 만져준 다음, 술이라도 한잔 사주면 내게 호감을 품을 수밖에 없을걸? 기간트 운용법을 알려주면서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고.’

만약 스노우가 브라이드 영지에 눌러앉게 된다면, 높은 확률로 자신의 상관이 될 게 뻔했다.

‘어쩌면 알버트 남작님보다 더 높은 자리를 꿰찰지도 모르지.’

칼 알버트 남작은 마스터를 목전에 둔 오러 엑스퍼트 최상급의 강자로, 명실 상부한 브라이드 영지의 최강자였다.

‘6서클 전투마법사에 엑스퍼트 최상급이라는 게 사실이라면... 아무리 알버트남작님이라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테니까.’

확실한 계획하에 이루어진 기간트 대련.

하지만 대련의 양상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타아앙

오러로 강화된 기간트의 대검을 맨손으로 쳐내는 신기를 선보인 대거가 폴암의 품안으로 파고들었고.

상체의 정중앙 깊숙이 팔꿈치를 찔러넣었다.

콰아아아아앙

“크허어어어억!”

잔뜩 올려놓은 동화율 탓에, 기간트에 가해지는 충격의 80~90%를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었던 캘빈 앤더슨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엄청난 충격에 아득해지는 정신.

그로 인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하는 동화율.

동화율 : 79%

동화율 : 75%

동화율 : 72%

.

.

.

동화율 : 69%

이게 끝이 아니었다.

“헉, 헉... 빌어먹을! 저건 또 뭐야?”

간신히 쓰러지는 것만은 면한 그의 시야에, 멀찌감치 거리를 벌린 대거의 모습이 들어왔다.

기간트의 머리 위.

갑작스럽게 나타난 직경 1.5미터가량의 불덩어리와 함께.

#2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겨우 몸을 일으킨 폴암의 상체에 연달아 적중하며 폭발하는 불덩어리.

내부장갑에 새겨진 강력한 마법진으로 인해, 기간트의 마법저항력은 엄청나게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대기간트용 마법병기’의 포격에 기간트를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마도과학의 산물이었다.

중급 이상의 기간트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폴암의 마법저항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아마 일반적인 2서클 파이어볼 마법이었다면, 상처는커녕 간지럽지도 않았을 테지만.

마력 엔진에 의해 증폭된 파이어볼(스킬)의 위력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마법에 직격당한 상체 외부장갑이 절반 가까이 날아가 버린 폴암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비해 내부(2차)장갑의 손상은 거의 전무(全無)했기에, 기동을 이어가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지만.

기간트 내부의 오너는 사정이 달랐다.

“빌어먹을, 대체 마력을 얼마나 잡아먹은 거야? 고작(이라기엔 크기부터가 너무 컸지만) 파이어볼 세 방을 막기 위해 마력의 1/5이 날아갔다고? 이게 말이 돼?”

이 정도면 어지간한 대기간트용 마도병기에 못지않았다.

‘델피니아급(출력 2500rp 이상)’ 기간트에게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드레곤 슬레이어’ 같은 마도병기의 끝판왕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어차피 그런 괴물은 왕국의 왕성이나 제국 대공령의 수도 정도는 되어야 구경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약삭빠른 대거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 고출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터라, 남은 마력량은 고작 1/3 정도.

“젠장, 저건 그냥 괴물이잖아. 몇 번을 덤벼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이기기는커녕, 자그마한 생채기라도 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금십자 기사단의 기간트 오너.

캘빈 앤더슨의 투지는 완전히 꺾여버렸다.

그는 천천히 양팔을 들어올리며 항복의 뜻을 전했다.

대거의 눈치를 보며 동화율과 출력을 낮추는 그의 입에서 허탈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설마 이번 일로 날 고깝게 보는 건 아니겠지? 그럼 안 되는데...”

#3

콜튼 프리먼 베른 요새 사령관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입을 쩍 벌린 채,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대고 있었다.

이는 다른 6인의 금십자 기사단원들(1명은 임무로 인해 부재) 역시 마찬가지였고.

한밤중의 소란에 몰려나온 수천의 병사와 상인, 몬스터 헌터, 용병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캘빈 앨더슨과 함께 대수림에 다녀오는 바람에 ‘스노우’를 직접 볼 기회가 없었던 제이콥 마이어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뭐지?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지금 대거가 마법을 사용한 것 같은데?”

병실에서 한 여군(간호병)에게 추파를 던지다 뛰쳐나온 테리 헤링스가 그의 말을 받았다.

“꿈이 아니야. 너도 들었잖아. 저 안에 타고 있는 인간이 어떤 괴물인지?”

“듣긴 했지. 그런데 본신의 무력이 강한 거랑 기간트의 전투력은 별개라고.”

“맞아, 내 생각엔 기억을 잃었다곤 하지만... 분명 동대륙의 어느 나라에서 손꼽히는 기간트 오너였을 거야.”

“손꼽히는? 고작 그 정도일 리가... 왕실 근위기사가 와도 저런 퍼포먼스는 불가능할걸?”

“루돌프 백작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배틀엑스를 타고 있다면. 대거로는... 아마 힘들걸? 게다가 그분은 마법 같은 건 할 줄 모른다고.”

“그거야 왕국의 기간트 오너 중 누구도 불가능하지.”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루페른 왕국의 근위기사단 단장인 메이 슨 루돌프 백작과 무명의 스노우를 비슷한 선상에 놓고 비교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루돌프 백작이라면 무려 출력 2500rp의 근위기간트 ‘배틀엑스’의 주인이자, 최상급 오러 엑스퍼트에도 불구하고.

베른 요새의 사령관 콜튼 프리먼과 마법병단장인 제이미 그레고리 역시 서로 다른 이유로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콜튼 프리먼이었다.

“믿을 수가 없군. 고작 대거로 저런 위력이라니. 만약 그가 코페시나 글라디우스 같은 상위 기간트를 탄다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제이미?”

“여전히 딜레이가 없어요! 캐스팅 없이 마법을 사용하고 있단 말입니다. 무려 기간트를 타고! 엄청난 위력의 파이어볼을! 이, 이런 건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고요!”

“흠, 기간트 마법을 사용하는 마검사라면 다른 왕국과 제국에 몇 명 정도는...”

“있죠! 분명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 저렇게 빠르게 마법을 쓸 수 있는 이는 없어요. 그리고 파이어볼을 저리 손쉽게 시전하는 걸 보면, 분명 보다 상위마법도 얼마든지 가능할 거란 말입니다!”

“상위마법이라...”

만약 고출력 기간트를 타고 전장을 누비며, 5써클 공격마법을 마구잡이로 퍼부어 댄다면?

“허어...”

상상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진 콜튼 프리먼이 다짐하듯 말했다.

“백작님께 올릴 보고서를 좀 더 보강해야겠군. 스노우 저자는 절대로 놓쳐선 안 돼. 반드시... 백작가의 가신으로 끌어들여야만 한다.”

그는 여전히 흥분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제이미 그레고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이미 자네가 직접 다녀오게. 테리와 함께 말이야. 반드시 스노우를 우리 영지에 눌러 앉혀야만 해.”

마법사로서, 최소 ‘6서클’의 경지라 확신하는 스노우에게 경외심을 품고 있던 제이미 그레고리.

그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맡겨만 주십시오. 반드시 브라이드 영지에 뼈를 묻도록 만들겠습니다.”

작가의말

정확하게는 오너가 하이브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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