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27화 (27/169)

27화 기간트 '안티가'

#1

브롤리 영지와 브라이드 영지 사이에는 다섯 개의 마을이 있었다.

럼프킨 대로의 어느 구간 오른편에는 이 다섯 마을 사람들에 의해 ‘안개숲’이라 불리는 숲이 존재했는데.

안개가 완전히 사라지는 정오 이후 4시간가량을 제외하고는, 숲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 4시간 동안에도 마을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숲의 초입 정도.

왜냐하면 알마뉴 산맥과 연결된 안개숲에는, 종종 길을 잃거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델피뉴(쌍뿔토끼)’나 ‘트란(검은갈기멧돼지)’ 같은 하급 몬스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조차도 크나큰 위험이었기에.

숲으로 들어갈 때는 최소 5명 이상의 성인 남성이 무리에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숲에 들어가지 않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냐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숲에는 질 좋은 목재와 약초, 과일 등, 사람들에게 유용한 자원이 널려있었고.

무엇보다 안개숲은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는 이유로 꽤나 비싼 값에 팔리는 ‘타르가’란 식물의 자생지였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이 식물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평민들의 경우 서너 달은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초입에서는 눈에 불을 켜도 잘 보이지 않던 타르가는, 숲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자주 눈에 띄었고 어느 지점을 지나자 아예 군집을 이루어 자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주식으로 삼는 ‘발로란’이란 이름의 몬스터들 역시, 타르가의 군집 주변에 수십씩 무리를 이뤄 영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몸길이만 6미터가량에 무게는 3톤에 이르는 중급 몬스터 발로란.

이들은 타르가 이외의 먹이는 취급하지 않았고.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타르가의 군집이 존재하는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더군다나 풀을 뜯으며 살아가는 몬스터답지 않게, 기본 성향 자체가 무척이나 난폭했기에.

멋모르고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다면... 어지간한 상급 몬스터라 할지라도 거대한 두 갈래 뿔을 앞세운 수십 마리 발로란의 몸통 박치기에 피떡 신세를 면하지 못할 터였다.

덕분에 천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발로란은, 일대의 패권을 장악한 채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

작지만 무척이나 거슬리는 소음을 발생시키는 무언가가.

맹렬한 기세로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해 오기 전까지는...

#2

숲의 초입을 지나친 이후 5분 정도를 달리자 시야를 방해하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5분이라고는 하지만 시속 300~400km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으니, 이동한 거리는 짧지 않을 터였다.

나무와 바위들로 빼곡한 숲속을 그런 속도로 달리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지만, ‘파일럿(S)’ 특성을 각성한 내겐 네 발 자전거를 타고 시속 3~4km로 나들이하는 것과 그닥 다를 바가 없었다.

어차피 이 근방의 숲이나 산은 모두 알마뉴 산맥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바이크에 시동을 건 이후 20여 분이 지난 현재, 나는 럼프킨 대로에서부터 시작된 숲을 지나 한 이름 모를 산에 진입한 상태였다.

간혹 바이크의 등장을 알아차린 동물이나 몬스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너무 빠른 속도 탓에 실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지나쳐 버렸고. 실체를 확인한 몬스터들 역시 똑같은 이유로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정도면 꺼내도 상관없겠지?’

숲과 산의 구불구불한 길을 달린 것을 감안해도, 럼프킨 대로와는 이미 수십 km 떨어진 위치였다.

‘이왕이면 제대로 된 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바이크의 속도를 조금(100km가량) 낮추며 ‘탐색(C)’ 스킬을 사용했다.

‘없어... 아, 네 마리로는 조금 부족한데... 오, 30? 40마리? 근데 저 크기면 C급 정도밖엔 안 되겠어, 패스.’

간간이 몬스터들의 존재가 미니맵에 잡혔지만, 기간트 없이도 순식간에 처리 할 수 있는 녀석들이라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시간 낭비일 뿐이지. 응?’

갑자기 미니맵에 나타난 수십 개의 점.

게다가 여지껏 만난 녀석들에 비해 크기도 월등했다.

‘이 정도면 최소 B급 최상위권 정도는 되겠는데?’

바이크의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미니맵에 마력 반응(생명체의 마력에만 반응한다)이 포착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몬스터들의 존재가 시야에 들어왔다.

새로운 몬스터 무리는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몸을 숨길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몸길이가 6미터 정도는 되어 보였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의 길이도 거의 2미터에 가까웠다.

놈들은 보라색 꽃이 핀 식물의 군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코앞까지 당도하고 나서야 바이크의 존재를 눈치챈 듯 일제히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로젠틴? 아니야, 덩치가 좀 더 커. 뿔 모양도 다르고. 게다가 색깔도 달라.’

몸은 물론 뿔까지 검은색이었던 로젠틴과는 달리, 눈앞의 몬스터는 짙은 갈색에 가까운데다 뿔 역시 눈처럼 새하얀 색이었다.

‘입고.’

나는 순식간에 300km에서 ‘0’에 가깝게 속도를 줄인 바이크에서 뛰어오르며 격납고를 열었고.

[토마호크 SS7 스피릿(E+)를 격납고에 입고합니다.]

화아아아아아앗

그와 동시에 옅은 빛을 발산한 바이크가 모습을 감추었다.

타앗

나는 보라색 식물의 군집 위로 착지하며 몬스터 무리를 자세히 살폈다.

‘덩치가 거의 기간트만 한데? 한 놈씩이라면 10초 컷일 것 같긴 하지만... 저런 덩치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맨몸으로는 좀 위험할지도 모르겠군. 근데 저놈들... 눈깔이 왜 저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처럼 큰 눈을 끔벅거리며 풀을 뜯고 있던 몬스터 무리가.

지금은 눈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엄청난 콧김을 내뿜으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놈들의 시선이 내 발밑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 밥상 엎어서 열받은 거냐?”

정확하게는 밥상에 발을 올린 건가?

내가 잠시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

거대한 덩치들의 돌진이 시작되었다.

#3

“안티가.”

[안티가(B-)가 출격합니다.]

주로 팔찌나 펜던트, 반지 등의 소형 액세서리(가끔 검이나 방패, 갑옷의 형태를 원하는 괴짜들도 있다고 한다)의 형태로 만들어지는 아공간 아티팩트 ‘네스트’.

그곳에 계약자의 마력을 불어넣는 것이 일반적인 기간트 소환 방법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파일럿(S) 특성의 고유스킬인 ‘격납고(S)’가 존재했기에.

굳이 오너인 티를 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기간트를 소유할 수 있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앗

옅은 빛과 함께 나타난 6.5미터 크기의 기간트.

“테리마.”

탑승 주문을 외우자 시야가 흔들리며 순식간에 기간트 내부로 이동했다.

‘역시... 대거와 같은 화이트스펀이군.’

대거를 제외한 루페른제 기간트에는 왕국의 비전인 블루스펀과 레드스펀, 그리고 최상급 스펀인 퍼플스펀이 탑재되어 있었는데.

블루스펀은 3~5%, 레드스펀은 6~8%, 마지막으로 퍼플스펀의 경우엔 무려 9~11%까지 동화율을 보정해준다고 했다.

이건 정말 대단한 기술이었다.

가장 낮은 블루스펀의 효과마저도, 동화율 80%의 기사에게 적용될 경우 최대 84%까지 동화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단 1%의 동화율에 목숨을 거는 오너들에게, 루페른제 기간트가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외국으로 수출되는 기간트에는 일괄적으로 블루스펀이 탑재되어 있었다.

‘안티가’는 루페른에서 만들어진 기간트가 아니었기에 화이트스펀을 사용하고 있었고, 당연히 동화율 보정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마력을 발산하자 마력엔진이 가동되었고, 나는 또다시 거인의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탑승하는 기체였지만 동화율은 눈 깜짝할 새 80%를 돌파했다.

‘어차피 동화율 보정 따위, 내겐 필요 없는 기능이지. 그리고 이 녀석은...’

제작소 고유의 비전이 적용되어.

‘예상대로 무기 슬롯이 3개다. 검, 방패 그리고 역시... 활이로군’

나는 마력을 조금 소모해 두 번째 슬롯에 들어있는 방패를 소환했다.

그러자 안티가의 왼손에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방패가 나타났다.

폴암의 경우 2미터 남짓한 둥그런 방패를 사용했던 반면, 안티가의 것은 몸을 웅크리면 전신이 모두 가려질 정도로 커다란 사각형 방패였다.

“이거... 한 손으로 쓰라고 만든 방패가 아닌데?”

방패가 소환되자마자 자세를 낮추며 마력을 주입했고.

몸을 완전히 숨긴 채 어깨와 팔, 무릎으로 뒤를 받쳤다.

이때쯤 동화율은 이미 100%를 달성한 상태.

안티가의 성능을 알아보려는 것이니만큼, 아무런 스킬도 사용하지 않은 채 거대한 몬스터 무리의 돌격을 마력에 의해 강화된 방패만으로 받아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력으로 극한까지 강화한 방패였기에, 내구력에는 조금도 타격이 가지 않았지만, 엄청난 중량 차이 탓에 몸이 뒤로 밀리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나는 방패를 든 채로 붕 떠올랐고.

콰직

콰지직

콰직

경로에 있던 나무들을 부수며 50여 미터를 튕겨 나갔다.

나는 세 개의 나무를 부수고 나서야 방패를 소환 해제한 뒤, 곧바로 몸을 뒤집으며 지면에 착지했다.

타앗

몸을 바로 세운 나는 전면의 몬스터들을 시야에 담았다.

“이거... 좀 이상한데?”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돌진해 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방패와 충돌할 수 있는 몬스터는 단 한 마리뿐이었다.

안티가가 벨런스형 기간트라고 한들, 저 녀석들보다 최소 두 배는 무거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50여 미터를 밀려나다니.

“저런 걸 맨몸으로 맞았다간, 목숨이 위태로웠겠군.”

뒤에서 밀어준 탓이라고 하기엔,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한 힘이었다.

게다가 거대한 뿔을 가진 녀석들의 특성상, 앞쪽으로 제대로 된 힘을 전달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종족 특성 같은 건가?”

지구에서도 간혹 그런 몬스터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개 그런 녀석들은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들었다.

맞다, 들어보기만 했다.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이유는... 종족 특성 같은 게 있건 없건 A급 최상위 수준의 몬스터가 아니라면, 제우스의 미사일은 모두에게 공평했기 때문이다.

몬스터 무리는 충돌 위치에 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다.

선두에 섰던 녀석은 방패에 서린 마력의 반발력에 의해 목이 부러져 즉사한 모양이었고, 나머지는 죽어 버린 몬스터의 사체를 둘러싼 채 가만히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무우우우우우우우우우...

갑작스레 긴 울음을 토해내는 몬스터 무리.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기라도 하는 걸까?

“뭐,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공격 수단이 저돌적인 돌진인 주제에 발을 멈췄다면...

“대가를 치러야지.”

나는 즉시 세 번째 무기 슬롯을 열었다.

파앗

이번에도 역시 기간트의 왼손에 나타난 거대한 물체.

그것의 정체는 순백의 활대에 불타는 몸을 지닌 새가 수놓아진 4미터 크기의 대궁이었다.

“뭐야, 안티가랑은 너무 안 어울리잖아.”

사자를 닮은 갈기 탓에 엄청난 대두로 보이는 데다, 팔이 무릎까지 닿을 정도로 길어 꽤 우스꽝스런 생김새인 안티가에 비해.

너무나 유려한 외양의 활이었다.

“이것도... 적당히 바꾸지 않으면 못 써먹겠군.”

조금 전보다 더한 분노를 드러내며 달려들기 시작하는 몬스터 무리.

나는 녀석들을 향해 활을 겨눈 채 시위를 당기며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활대에 난 구멍 사이에 마력이 뭉치더니.

순식간에 대략 2.5미터 길이의 화살로 변했다.

“멋지군.”

나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에 스킬을 걸었고.

하얗게 빛나던 화살이 붉게 물들었다.

목표는 막 돌진을 시작한 몬스터들의 선두.

시위를 놓았다.

피유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화살이 가장 앞서 달려오던 몬스터를 직격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선두에 있던 몬스터의 몸이 폭발했고.

그 여파로 70여 마리의 몬스터 중 절반이 제대로 된 형체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와우...”

스킬 본래의 위력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강한 위력.

기간트의 마력 엔진으로 인해 증폭되는 스킬의 위력은...

그토록 엄청났다.

#4

[익스플로전(C) : 지정한 위치에 폭발을 일으킨다. 폭발 범위가 넓을수록 소모 마력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최대 사정 거리 : 30미터]

[인첸트(C) : 대상에 스킬을 부여할 수 있다. 동일 등급 이하의 스킬만 인첸

트가 가능하다. 소모 마력 : 500]

[보우마스터리(C) : 활을 이용한 공격을 강화한다. 활 장착 시 적용. 숙련도(MAX) ? 공격력 200%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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