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29화 (29/169)

29화 동류

#1

[안티가(B-)를 입고합니다.]

‘변형(S)’ 스킬을 한계까지 모두 사용한 뒤 안티가를 격납고로 돌려보냈다.

화아아아아앗

옅은 빛무리와 함께 안티가가 모습을 감췄다.

생각 이상의 성과를 얻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

얼굴 형태가 완전히 바뀌었다곤 해도, 그 외의 부분은 여전히 이전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긴고아까지 만든 뒤 눈곱만큼 남은 퍼센티지로는, 고작 양팔의 색을 조금 진하게 만드는 것 정도가 한계였으니까.

‘뭐, 어쩔 수 없이 꺼내야 할 상황이 오면... 동대륙 타이탄이라고 우기는 수밖에.’

간밤의 성능 테스트로 인해 주변의 상급 몬스터들은 씨가 말라버렸다.

물론 상급 몬스터라고 해봐야 대부분 B급 상위권 수준이었고, A급에 발이라도 걸칠 만한 놈들은 고작 둘뿐이었다.

아무래도 그 두 녀석이 이 산의 최상위 포식자였던 모양.

나는 격납고에서 바이크를 꺼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브라이드 영지까지 이걸 타고 갈 순 없는데.’

현재 어느 정도 우호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곤 하지만, 백작을 만난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미지수였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가진 패 중 하나를 굳이 내보일 필요는 없었다.

제우스야 뭐... 죄다 부서진 탓에 형태조차 온전하지 못하니 그렇다고 쳐도.

어지간한 기간트보다도 빠른 바이크에는, 이곳 기준 오버테크놀로지라 할만한 기술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

그래서 바이크 대용으로 선택한 녀석이...

무우우우우...

“시끄러, 엄살 부리지 말고 좀 더 빨리 달려 봐. 리프레쉬!”

무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이름 모를 산에서 가장 먼저 테스트 대상이 되어 주었던, 로젠틴을 닮은 바로 그 몬스터였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이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타고 다닐만한 몬스터가 딱히 없었던데다, 다소 혹독하게 다루더라도 쉽게 죽을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속도야 뭐, 이미 확인한 상황이었고.’

이놈들은 첫 번째 화살 공격에 무리의 절반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운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너무 약해서 테스트를 하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스킬이 인첸트 된 화살이 제법 강력하긴 했지만, 지구의 기술로 개발된 폭약과 스킬 버프가 결합 된 헬파이어 미사일의 위력에 비하면 고작 1/10 수준.

만약 화살이 아닌 헬파이어 미사일이었다면, 70여 마리중 절반이 증발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B+ 등급 몬스터라면, 500여 마리를 한 방에 소멸시켜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었으니까.

“뭐, 위력을 파악한 것만으로도... 조금은 도움이 됐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밤을 새워 헤집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산에는 이놈들보다 강한 몬스터가 극히 드물었다.

어쨌든, 혼비백산 도망친 3,40마리 정도가 살아남았고.

그중 한 녀석이 내 손에 붙들려 럼프킨 대로 위를 신나게 질주하는 중이었다.

빠아아아악

달리는 내내 느려질 기미가 보이면 가차 없이 머리통을 후려갈겼고.

무우우우우우우우우...

그때마다 녀석의 입에서는 구슬픈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달려. 달려서 네 가치를 증명하라고. 브라이드 영지에 도착하기 전에 쓰러지면 죽는다. 리프레쉬!”

무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이름 모를 몬스터가 힘을 내준 덕분에.

멀리 브라이드 영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야 한눈에 보기에도 영지의 규모가 브롤리 영지의 다섯 배는 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다른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좋아, 다 왔어. 이제 조금만 가면 돼. 그럼 죽이지 않는다고 약속하마.”

그렇게 럼프킨 대로 위를 달리길 3분여, 드디어 영지의 경계를 통과하게 되었다.

거대한 몬스터의 등장에 놀라는 사람들.

몇몇은 제자리에 주저앉았고, 다른 몇몇은 농기구나 조악한 무기를 들고 황급히 누군가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외성까지 대략 700여 미터 정도를 남겨뒀을 때.

[격납고 내 기체의 출격을 방해하는 특수한 파장을 감지했습니다.]

“응? 뭘 감지해?”

[파장의 레벨을 분석합니다.]

[분석을 완료했습니다.]

[기술 레벨 B+등급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레벨 차이로 인해 격납고 내 기체의 출격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아마도 기간트의 소환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뭐,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만약 그런 제약이 없었다면, 전쟁은 기간트를 동원한 게릴라전이나 암살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나 버릴 테니까.

“효율적인 방법을 놔두고, 뭐하러 전면전 같은 걸 하겠어?”

만약 브라이드 영지를 공격해야 한다면, 적은 외성 700미터 전방에서 기간트를 소환해야만 했다.

아마 저기 성벽 위에 달린 대기간트용 마법병기의 사거리가 그쯤 되지 않을까?

어쨌든...

“내겐 통하지 않는 것 같군”

역시 ‘탑승물’과 관련된 일에 관해서라면, 파일럿(S) 특성의 적수는 없었다.

어느새 브라이드 영지 외성의 성문은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다다... 닥

임시로 만든 고삐를 당기자 점차 속도가 줄어들었고, 이내 완전히 멈추어 섰다.

음, 그나저나 이 녀석...

도저히 타고 다닐 게 못 된다.

안장이라도 만들었으면 좀 나았으려나?

아오, 엉덩이야...

#2

성문 앞에는 커다란 눈을 휘둥그레 뜬 스타니 상단주가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친 그녀가 곧장 내 쪽으로 다가오려 했지만,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달려온 베른 요새 마법병단장 제이미 그레고리에 의해 저지당했다.

“상단주, 백작님이 기다리고 계시네.”

“......”

스타니 상단주의 얼굴에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상단의 최대 거래처 중 한 곳의 주인이자, 백작령의 지배자를 들먹이는 데에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제이미 그레고리의 말로는 ‘숲의 여명’은 영지를 떠날 채비를 모두 마친 것으로 보인다고 하니, 아마 당분간 그녀를 볼 일은 없을 듯했다.

‘기간트를 실제로 보지 못한 건 아쉽군.’

그녀의 기간트에 탑재된 ‘정령력 증폭 마법진’이 무척이나 궁금하기는 했지만, 일단은 백작과의 만남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제이미 그레고리의 안내로 도착한 백작의 집무실은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귀족의 그것이라기엔 지나치게 소탈했다.

꽤 넓은 공간 안에 있는 것이라곤 책상과 소파, 테이블 그리고 검 두 자루가 놓인 진열대가 전부였으니까.

집무실 안에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두 사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석에 앉은 검붉은 머리카락의 사내 쪽이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아무래도 이쪽이 이 집무실의 주인인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반갑소. 브라이드 백작령을 책임지는 길리엄 브라이드라 하오.”

그가 바로 루페른 왕국의 변경백이자, 브라이드 백작가의 당대 가주인 길리엄브라이드 백작이었다.

하지만 그런 거대한 권력을 앞에 두고서도, 나는 도무지 그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최초로 A등급 이상의 기체를 발견했습니다. 분석 완료까지 8분 28초. 기체에서 시선이 떨어질 시 분석이 초기화됩니다.]

백작의 손목, 그곳에 존재하는 ‘네스트’ 아래로 나타난 메시지창 때문이었다.

‘침착해. 이미 알고 있었잖아. 백작이 강력한 기간트를 가지고 있다는 건.’

나는 자꾸만 손목으로 향하려는 시선을 힘겹게 들어 올려 백작과 시선을 마주쳤다.

“...스노우입니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베른 요새에서의 일은 모두 전해 들었소. 프람엘베르를 찾는 일에 도움을 준 것은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백작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하하하! ...듣던 대로 기간트에 관심이 많은가 보오?”

아, 너무 노골적으로 바라봤나?

그런데 뭐... 이제와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곳까지 온 가장 큰 이유는 기간트를 획득할 수 있는 루트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함이었으니까.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내 대답에, 백작은 웃음기를 지우며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실력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생각 이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정말 이상하다고 해야 할까?”

“......”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딱히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지, 백작은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백발의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칼?

나는 백작의 손목에서 완전히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맞은편의 사내를 곁눈질했다.

이자가 칼 알버트 자작인 모양이군.

백작의 수호 기사이자 백작령 최강자라는 최상급 엑스퍼트.

자작은 한동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모르겠군요. 분명 마스터는 아닌 것 같은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말 단 한 톨의 오러도, 마력도 느껴지지 않아요. 프리먼 사령관이 최상급 엑스퍼트라 판단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내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그와는 달리.

나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느껴진다. 엄청난 강자야. S급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굳이 마력이나 오러를 감지하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그런 능력은 있지도 않았고.

하지만 무수히 많은 강자들을 겪어온 내겐, 그들이 발산하는 아우라를 알아볼수 있는 예민한 감각이 있었다.

백작 역시 최상급 엑스퍼트의 경지에 이른 강자이긴 했지만, 칼 알버트 자작에 비해서는 분명 손색이 있었다.

그런데 자작 역시, 정말로 내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닌 듯했다.

시종일관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군요. 이자... 강합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제 감이...”

도중에 말을 끊은 칼 알버트 자작은 테이블 위로 오른손을 내밀어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펼쳤다.

“그렇게 말하고 있군요.”

“......”

활짝 펼쳐진 손바닥은 땀으로 인해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칼 알버트 자작은 땀으로 범벅된 손바닥을 백작의 앞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마스터인 레이몬드 후작과 처음 대면했을 때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또 한 번 말을 끊은 그가 시선을 내 쪽으로 돌렸다.

나 역시 더이상 백작의 손목에 정신을 분산시킬 수 없었다.

[분석이 취소되었습니다.]

눈을 마주치자 자작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그의 입이 열렸다.

“그쪽, 나와 한판 붙... 대련 한번 어때?”

상관이 반존대하는 이에게 바로 반말을 박아 버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칼 알버트 자작.

그가 여러모로 나와 동류(同類)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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