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30화 (30/169)

30화 S급 헌터 vs 최상급 엑스퍼트

#1

처음부터 ‘탑승물’의 개발에만 모든 것을 걸었던 건 아니었다.

사실 내가 가장 먼저 각성한 특성은 ‘육체 강화(C)’.

헌터 랭킹 10위 안에 이 특성을 S급으로 각성한 헌터만 세 명일 정도로 실링이 높은데다, 탱커와 딜러 어느 쪽으로도 성장이 가능한 만큼 하급 헌터들의 세계에서도 그 범용성을 인정받는 특성이었다.

게다가 C급이면 나름 나쁘지 않은 등급이었는데, 그쯤 되면 한 달에 던전 사냥을 1,2회(C등급 던전 클리어에 3,4일가량 소요) 정도만 참여하더라도 억 단위 돈을 벌 수 있었다.

더 높은 등급을 각성하지 못한 게 아쉽긴 했지만. 사실 C등급은 전 세계 인구중 2%에 불과하다는 헌터 중에서도, 최소 상위 30% 해당하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게다가 B등급 이상의 헌터가 10%도 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C등급 중 선두권에 위치한 헌터들은 사실상 상위 10%라고 봐도 무방했다.

‘차라리 C급 헌터였을 때가 좋았었지...’

나는 은퇴한 헌터(C급)인 아버지의 인맥으로 좋은 길드에 들어갈 수 있었고, 재능을 인정받아 나름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파일럿(S)’ 특성을 각성하기 전까지 다섯 달 동안, 던전 내부에서 살다시피 하며 성장을 도모했었다.

C급 헌터면 이곳 오르비스 대륙 기준 초급 엑스퍼트 정도의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같은 초급 엑스퍼트라 할지라도 막 엑스퍼트가 된 기사와 중급으로 승급하기 직전인 기사의 수준 차이가 작지 않은 것처럼, C급 헌터 역시 같은 등급 안에서도 능력의 편차가 확연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초급을 넘어 중급, 상급, 최상급 심지어 마스터까지 성장할 여지가 있는 엑스퍼트와는 달리.

헌터의 경우 성장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이었다.

더 높은 특성을 각성하지 않는 이상, 헌터가 등급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었으니까.

첫 번째 특성을 각성한 지 불과 다섯 달 만에 두 번째 특성을, 그것도 무려 S급으로 각성하자 나라 전체가 들썩거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의 S급 헌터는 단 한 명뿐이었고.

특성 하나만을 각성한 그는 S급 중에선 그리 특출난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무지막지하게 강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하지만 새롭게 각성한 ‘S급’ 특성이 문제였다.

육체 계열이든 마법 계열이든, 기본 스텟부터가 어마어마한 다른 S급 헌터들과는 달리.

내겐 S급 특성의 각성으로 인한 스텟 증가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던전 내부 몬스터들의 씨를 말려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C등급 수준의 스텟만 상승).

‘이땐 진짜 x되는 줄 알았었지.’

던전 안에서는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파일럿(S)’ 특성으로 인해, 내게는 ‘반쪽짜리 S급’이라는 멸칭이 붙었다.

물론 제우스의 개발이 완료되고 그 어떤 S급 헌터보다 월등한 사냥 효율을 발휘, 어지간한 던전 브레이크는 홀로 처리해 버리는 수준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지껄일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이르러서도, S급 몬스터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주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나는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마법 계열 최상위 특성인 ‘서리바람(B)’까지 각성한 이후에는 미친 듯이 성장에 열을 올려보기도 했지만.

결국 답은 파일럿(S) 특성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탑승물의 개발 이외에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었다.

그리고 이곳 오르비스 대륙에 떨어진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론’의 실체인 기간트라는 존재를 마주 할 수 있었고.

기간트의 운용 방식으로 인해.

오래전에 식어버렸던 ‘본신’의 성장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왜냐하면 기간트 오너로서, ‘본신’의 성장은 곧... ‘기간트’의 성장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이유로 지구의 헌터와는 다른, 이곳의 강자들이 강해지는 방식이 궁금했다.

더군다나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상대는 강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이곳에서도 정점에 근접해 있는 존재였다.

‘최상급 엑스퍼트라... 과연 얼마나 강할까?’

칼 알버트 자작은 검 한 자루만을 착용한 채, 백작 전용 연무장의 중앙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연무장 가장자리의 거치대에 준비된 무기 중, 적당한 길이의 검과 80cm 가량의 소형 방패 하나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연무장 중앙, 칼 알버트 자작과 50여 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백작과 마법사 제이미 그레고리의 참관 아래.

최상급 엑스퍼트와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2

칼 알버트는 스노우가 평범한 장검과 소형 방패를 선택하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검은 그렇다쳐도... 방패? 뭔가 특별한 검술이라도 익힌 건가?’

300여 년 전과 비교해, 방패술을 연마하는 전사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건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기간트 간의 전투에서, 방패의 유용성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검술과 조종술 모두 최상위권 능력을 갖춘 오너가 아닌 바에야, 대부분 오너들의 기본 무장은 기간트용 롱소드와 방패였다. 그리고 그 두 분야에서 모두 출중한 실력을 갖춘 오너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기간트가 아닌 본신의 대련에서, 방패를 사용하는 엑스퍼트는 여전히 드문 편이었는데.

방패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것 자체가, 이후의 움직임에 크나큰 제약을 가하기 때문이다.

고작 초급 엑스퍼트들조차 그럴 진데,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최상급 엑스퍼트와의 대결에서 방패?

‘게다가 저자는 어쨌든 6써클 전투마법사가 아닌가?’

스노우의 전투스타일에 대한 보고서를 읽었을 때. 칼 알버트는 그가 최상급 엑스퍼트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최소한 6써클 마법사인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대련을 시작한 이후 점차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칼 알버트의 단전에서 시작해 온몸을 순회하던 오러가 일순간 하체 쪽으로 집중되며, 근력을 수십 배로 증폭시켰다.

그의 발이 지면을 박차자 단단한 연무장 바닥에서 돌 부스러기가 튀어올랐다.

파치이이이이이잉!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나는 엄청난 속도.

50미터라는 거리는 1초를 몇 번이나 쪼갠 극히 짧은 순간 좁혀졌고, 어마어마한 돌진 속도에 검집의 마찰력까지 더해진 알버트 가문 특유의 발도술이 펼쳐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가장 먼저 칼 알버트의 검을 막아선 것은 갑작스럽게 솟아오른 석벽.

하지만 석벽은 극히 짧은 시간 검의 진격을 늦춘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고.

파앗

석벽이 파되되자마자 즉시 생성된 2미터가량의 투명한 막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

.

.

콰아아앙

연달아 아홉 개의 투명한 막을 박살 낸 그의 검이, 드디어 스노우가 들고 있는 방패에 닿았다.

콰아아아앙

석벽 포함 열 개의 실드를 제거했음에도 상당한 여력이 남아있었던 검격.

하지만 온갖 버프를 퍼부어 강화한 방패는 검에 남아있던 힘을 온전히 감당했음에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뒤로 다섯 걸음 물러나는 것으로 검격에 실려 있던 모든 힘을 해소시킨 스노우.

그의 손에는 잘 정련된 검이 들려있었지만, 공격을 하는 데 있어 반드시 검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록 스피어.”

푸슉

연무장 바닥에서 2미터 길이의 뾰족한 바위덩어리가 솟아올랐다.

칼 알버트가 검을 휘둘러 암석을 손쉽게 박살 냈지만, 공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

.

.

바위덩어리 하나가 박살나자마자 새로운 바위덩어리가 곧장 지면을 뚫고 나와 그를 공격했고, 눈 깜짝할 새 무려 스무 개의 바위덩어리가 솟아오르고 박살나기를 반복했다.

더이상 바위덩어리가 솟아오르지 않았을 때, 스노우는 이미 칼 알버트와의 거리를 어느 정도 벌려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는 바람의 칼날을 이용한 공격으로 그의 접근을 견재했다.

하지만 칼 알버트는 그 공격을 너무나 손쉽게 피해내며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고 스노우의 입이 재차 열렸다.

“프랙탈 필드.”

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

그를 중심으로 투명한 얼음의 대지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동시에 하늘에서 얼음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혹한의 대지에 발을 들인 칼 알버트는 자신의 움직임에 제약이 생겼음을 느꼈다.

‘뭐, 이 정도 추위라면 영향을 받지 않는 게 이상하지.’

최상급 엑스퍼트인 그는 오러를 돌려 내부로 침범하려는 한기를 몰아냈고, 스노우의 위치를 확보한 즉시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검신에 응축시킨 오러를 날려 보냈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익...

오러를 외부로 발출해 떨어진 위치의 적을 공격하는 것은 본래 마스터만의 전유물이었지만. 그 경지에 발을 들이밀기 직전인 칼 알버트 역시, 조금만 무리한다면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기예(技藝)였다.

자신을 덮쳐오는 오러덩어리에 경악한 스노우가 황급히 얼음벽을 일으켜 세웠고.

일곱 개의 얼음벽을 박살 내는 동안 시간을 버는 데 성공한 그는, 조금 전 칼알버트의 그것에 근접하는 움직임으로 오러덩어리를 피해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연무장 바닥에 직격한 오러덩어리는 엄청난 먼지구름과 함께 직경 8미터가량의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실로 경이로운 위력.

하지만 그 누구도 오러가 만들어낸 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허공에서 막 내려앉은 칼 알버트를 향해 스노우가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앙

두 사람의 검이 최초로 부딪쳤다.

오러로 강화된 칼 알버트의 검이 상대의 검에 흠집을 만들어냈지만.

스킬로 강화된 스노우의 검 역시 단번에 부러지지는 않았다.

카앙

카아앙

이후 50여 초의 합을 나누는 두 사람.

사실 이것은 스노우의 실력을 확인하고픈 칼 알버트가 어느 정도 사정을 봐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확실히 상급 엑스퍼트를 넘어서는 움직임이야. 하지만 검술은 이상할 정도로 기본에 충실하군. 마치 고급 검술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만약 스노우가 마법을 혼용해 덤벼들었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무슨 생각인지, 어느 순간부터 그 역시 오직 검과 방패만을 이용해 자신과 맞서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움직임을 보여준다 한들, 최상급 엑스퍼트 중에서도 극에 달해 있다는 이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서걱

“크윽! 아이스 월! 아이스 월! 아이스 월! 슬로우! 에어 쉴드! 디그! 아이스스피어......”

방패를 들고 있지 않은 오른쪽 팔을 크게 베인 스노우.

그가 침음을 삼키며 연달아 마법(칼 알버트 입장에서는)을 시전했다.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온갖 마법들을 파훼하는 데 성공한 칼 알버트.

하지만 그조차도 스노우의 말도 안 되는 캐스팅 속도만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왕국 최강의 마법사인 루스타인님도 저런 식으로 마법을 쓰지는 못한다고.’

칼 알버트는 6써클 마법사를 몇 명이나 알고 있었지만, 눈앞의 존재처럼 아무런 캐스팅조차 없이 마치 숨 쉬듯 마법을 사용하는 이는 본 적이 없었다.

‘1,2서클 마법이라면 몰라도...’

스노우가 사용하는 마법은 대부분 3,4서클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드래곤의 언령... 큭,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칼 알버트는 자신과 거리를 벌린 뒤, 마법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스노우를 바라보았다.

스르릉

그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상대의 능력은 충분히 확인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뭔가가 더 있다 해도 자신의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군, 그렇다면 왜 그런 느낌이...’

스노우라는 인간을 처음 목격했을 때, 그는 정말로 쩍 벌린 드래곤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었다.

그리고 그건, 여태껏 그가 상대해 본 가장 강한 존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섬뜩한 감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기간트를 기가 막히게 다룬다고 했던가?’

사실 기간트는 칼 알버트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백작이 주겠다고 한 기간트를 마다했을 정도로.

‘큭, 어디 얼마나 대단한 지... 한 번 확인해 봐야겠군.’

그의 입가에 조금 전과는 다른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3

콰아아아아아아앙

“크어어어억!”

“칼!”

“알버트경!”

자신의 제자이자 상급 엑스퍼트인 아론 베리어스가 탑승한 대거를 상대로, 무려 10여 분을 버틴 기록을 지니고 있었던 칼 알버트.

그런 전적이 있었기에 대거에 탑승한 스노우에게 기세 좋게 도전했던 것이었지만.

대련을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50여 미터의 거리를 삭제하고 나타난 기간트의 주먹에 일격을 허용했고.

터어어어어엉!

단 한방에 피분수를 뿜으며 날아가 지면에 처박혀버리고 말았다.

기절하기 직전, 그의 뇌리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젠장, 역시 이것 때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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