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40화 (40/169)

40화 껍데기

#1

화아아아아앗

흉부를 관통당한 테페리와 제페토는 옅은 빛을 발산하더니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깔끔한 퇴장이 아닐 수 없었다.

“진짜로 사라져 버리는군.”

기간트가 귀환 포인트로 돌아가는 장면은 처음 본다.

역시나 희박한 확률을 뚫고 기간트가 전장에 남겨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두 거체가 사라진 자리.

그곳에 남아있는 두 구의 시체만이, 조금 전의 전투가 허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상반신이 완전히 짓뭉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테페리 오너의 시체와, 허리 부분이 사라진 채 반으로 잘린 제페토 오너의 시체.

3미터가량의 길이에 두께만 7cm가 넘어가는 기간트의 검에 당했으니 시체가 온전하길 바라는 건 사치였다.

‘한 놈이라도 얼굴이 멀쩡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차피 뒤처리는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기에, 나는 흉물스러운 시체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아아아아앗

한동안 안티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크로스보우가 옅은 빛을 발하더니 모습을 감추었고.

기간트가 사라진 자리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클레이튼 우드가 나타났다.

그는 오른손으로 왼팔을 부여잡은 채 다리를 쩔뚝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스노우님. 오늘의 일은 백작님께 있었던 그대로 보고드릴 겁니다. 아마 적지 않은 보상을 받으실 수.....”

클레이튼 우드의 태도는 습격이 있기 전과 비교하면 한층 더 조심스러웠다.

내가 아니었더라면, 나를 제외한 일행 모두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테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백작의 보상 따위는 이미 관심 밖.

그보다는...

“그건 알아서 하도록 하고. 마리에스타 아카데미로 가는 건 어떻게 되는 거지?”

“네?”

클레이튼 우드는 잠시 눈을 끔뻑거리더니,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다, 당연히 로메인 영지로 복귀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님을 아카데미에 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고작 이 정도 일을 가지고 아카데미 입학을 포기한다고? 아카데미에 들어갈 기회는 1년에 한 번 아니었나?”

“...기간트의 습격을 받았는데 고작이라니요?”

“결국 둘 다 해치웠잖아. 저 용병들에게 자작가의 계집을 영지로 압송하도록 하고, 로메인 공자는 예정대로 아카데미에...”

“죄,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뭐, 사실 나도 상식이란 게 있는 인간인 만큼.

이게 억지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백작과 자작 형제가 치고받고 싸우던.

그곳에 어떤 세력들이 연관되어 있던.

내 관심은 오직 마리에스타 아카데미의 정문을 24시간 지키고 있다는 기간트에 쏠려 있었다.

애초에 이 의뢰를 받아들인 건.

물어물어 길을 찾는 일이 귀찮기도 했거니와, 편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겠다는 이유가 전부였으니까.

“그럼 너는 일행을 이끌고 돌아가라. 나는 따로 움직일 테니.”

“네? 하지만...”

“내가 받은 의뢰는 ‘마리에스타 아카데미까지’의 호위였다. 의뢰의 내용을 변경한 건 너희 쪽이니... 날 귀찮게 하지는 않으리라 믿겠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영지까지 함께해 주신다면 최대한의 보상을......”

“필요 없다.”

나는 곧바로 이곳을 떠나 마리에스타 아카데미가 있다는 시몬스 공작령으로 향하려 했지만.

“스노우님! 그렇다면 날이 밝을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물론 백작님께도 스노우님의 공을 최대한......”

처참한 몰골, 울 듯한 얼굴로 매달리는 기간트 오너의 하소연에.

결국 날이 밝은 후 떠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2

전장의 정리를 마친 뒤, 소수의 경계 병력을 제외한 용병들과 귀족 자제들이 잠에 빠져든 늦은 밤.

모닥불을 사이에 둔 채 클레이튼 우드와 스노우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클레이튼 우드는 혹시 모를 또 다른 습격자들을 대비하기 위해 잠을 마다한 상태였고, 스노우의 경우에는 한 가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노련한 기간트 오너인 그와 자리를 함께한 터였다.

그리고 스노우의 질문은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간트 오너로 살아온 클레이튼 우드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지? 기간트가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목숨보다는 아닐 텐데?”

태연한 얼굴로 되물어오는 스노우를 바라보던 클레이튼 우드.

그가 생각이 많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스노우님은 정말 알 수 없는 분이시군요. 마법과 오러 모두 그토록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계시면서... 기간트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무지하시니.”

“무지?”

스노우가 미간을 찡그리자, 클레이튼 우드는 작게 손사래 치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물론 기간트 오너가 아니시니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설명해 봐. 내가 모르는 게 뭐지?”

“오너를 죽이는 것보다는 생포한 뒤 기간트 계약을 해지 시킨다라... 물론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보다 큰 이득은 없을 겁니다.”

“정말 불가능한가?”

클레이튼 우드가 모닥불에 마른 가지를 던져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팔이나 다리 한쪽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잘리거나 심장이 파괴되면 그대로 죽어버리죠.”

“......”

“오너에게 계약한 기간트란 머리나 심장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음...”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스스로 계약을 파기하는 오너는 없습니다. 아, 지독한 약물에 당하면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숙한 오너들에 한해서죠. 2년 이상 기간트와 함께한 오너에게는 거의 통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죽여버린 거로군.”

클레이튼 우드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아, 그건... 포로로 사로잡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마력이 바닥나기 직전이었으니까요.”

기간트와 상관없이 죽은 두 오너가 지닌 증인으로서의 가치가 상당했던 만큼, 생포할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그 당시 클레이튼 우드에게는 그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았었다.

“어떻게... 궁금한 건 좀 풀리셨습니까?”

“대충은.”

“그럼 저희와 함께 로메인 백작령으로 돌아가는 건...”

타오르는 불길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스노우.

그의 입에서 단호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불가.”

#3

왕국 북부의 위어 공작령과 대비되어 남부 공작령이라고도 불리는 시몬스 공작령.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인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관광객의 대부분은 루페른 왕국과 타국의 귀족들이었기에, 그들이 소모하는 엄청난 재화는 시몬스 공작가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다.

광활한 공작령의 영토 안에는 산맥과 바다, 심지어 극히 일부지만 사막지대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대륙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숲과 협곡까지 존재했다.

나는 격납고에서 대기 중이던 바이크를 꺼내 산맥과 협곡을 넘었고.

일반적인 상행으로 4~5일이 걸릴 거리를 불과 12시간 만에 주파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길을 찾는 데 허비한 시간이 아니었더라면, 그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을 테지만.

공작령의 관문 영지인 ‘펠턴’에 도달한 이후로는 더이상 바이크를 타고 다닐 수 없었기에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리에스타 아카데미는 펠턴의 이웃 영지인 노스럽 영지에 자리하고 있었고.

두 시간여를 두 발로 달린 끝에...

태양이 마지막 힘을 발휘해 하늘을 붉게 물들일 무렵.

나는 아카데미가 내려다보이는 노스럽 영지의 이름 모를 언덕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었군. 진짜 기간트야.”

거대한 아카데미 정문의 양 끝에 당당하게 서 있는 두 기의 기간트였다.

정말로 24시간 아카데미의 정문 앞을 지키는 게 사실이라면, 저 두 대의 기간트를 손에 넣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계약자가 있을까? 없다면 10분도 걸리지 않겠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뿐 어려울 건 없지.’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아카데미... 아니, 두 기의 기간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건 크로스보우로군... 음, 다른 건 처음 보는 녀석인데. 덩치를 감안하면 분명 크로스보우보다 상위 기체야.’

아카데미의 정문으로부터 30여 미터 떨어진 곳까지 접근한 나는, 곧이어 떠오를 메시지창을 기다렸다.

‘.........................’

하지만 아무리 기간트들을 바라보아도 메시지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뭐지?’

여태껏 단 한 번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

여전히 메시지창은 묵묵부답이었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관찰(C)’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자...

파아아아앗

[크로스보우의 껍데기(D) : 마력엔진, 콕피트, 마력회로가 제거된 기간트로 거대한 피규어 이상의 가치는 없다. 무수한 잔 흠집으로 인해 장식품으로서의 가치가 하락......]

[글라디우스의 껍데기(D+) : 마력엔진, 콕피트, 마력회로가 제거된 기간트로 거대한 피규어 이상의 가치는 없다. 오랜 세월 잘 관리되어 장식품으로서는 상당한 가치를......]

“......”

‘글라디우스’라면 현 금십자기사단의 단장 전용기로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투박한 생김새로 유명한 루페른제 기간트 중에서는 외형에 가장 공을 들인 기간트라고 하더니... 과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단 여태 보아온 루페른제 기간트에는 없는 눈, 코, 입이 붙어 있었고.

색상 역시 단색에 가까운 다른 기간트들에 비해, 순백의 바탕에 금색과 청색 무늬가 멋들어지게 수놓아져 있어 훨씬 더 우아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들은 바에 따르면, 루페른 왕국 최초의 근위기간트라 왕실에서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 정말 멋지기는 했다.

문제는 저것이 기간트가 아닌 기간트‘였던’ 것이라는 사실이다.

‘파일럿(S)’ 특성에 의해 탑승물로 인정을 받으려면 최소한 ‘동력원’만큼은 존재해야 하는데.

마력엔진이 거세된 저것은 더 이상 탑승물로 인정 받지 못했다.

게다가 콕피트와 연결회로 마저 몽땅 들어냈다면.

정말로 남은 건 껍데기 이외에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저딴 걸 구경하자고, 그 고생(?)을 해가며 여기까지 달려왔다는 건가?”

나는 결심했다.

지금 당장 펠리체 영지로 달려가.

거짓 정보(?)를 살포한 용병 지부 직원 제프 롭슨을.

제프 롭슨‘이었던’ 인간으로 만들어 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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