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아티팩트
#1
루페른 왕국 중북부에 위치한 왕도 레니비아.
왕국 중부의 왕실 직할령 하이데른시에서 그곳까지 가는 데에는, 대략 2주(상단 기준)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불편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마차가 훌륭하군.”
“다행입니다. 마침 ‘아르마델 공방’에서 제작된 마차가 딱 한 대 남아있더군요.”
“음식도 나쁘지 않다.”
“하하, 감사합니다.”
레니비아를 향한 여정의 첫날.
마차 안에서 식사 중인 스노우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 사람은 데본 화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귀족이었다.
그는 왕국 최남단에 위치한 화이트 자작가의 둘째 아들이었고.
영지와 작위가 자신의 몫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는 일찌감치 상계에 몸을 던진 인물이었다.
데본 화이트는 아버지와 형의 도움을 받아 상단을 창업한 뒤, 화이트 영지의 수산물을 내륙 지방으로 유통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취급하는 상품의 특성상 마법사를 상시 고용해야만 했고.
2써클(1써클로는 제대로 된 보존 마법을 구사할 수 없다)에 불과한 하급 마법사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일꾼에 비해 몇 배는 비싼 급여를 지급해야만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화이트 상단은 작년, 그러니까 창업 7년째에 접어들어서야 처음으로 적자를 면하는 수준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데본 화이트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좀 더 정확하게는 화이트 자작가에 찾아온 행운이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자작가의 영지에 포함되어있는 남부 해안가에서 부상 당한 인어족 3마리가 발견되었고.
영지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자작가의 기사들이 그들을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인어족은 희귀도 최상의 이종족이었던데다, 숙련된 전사의 경우 상급 엑스퍼트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종족이었기에.
살아있는 인어족을 확보하는 일은, 대륙 전체를 돌아봐도 일 년에 한두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사건이었다.
화이트 자작은 상인인 자신의 둘째 아들에게 사로잡은 인어족의 판매를 위임했고.
데본 화이트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왕도 레니비아행을 결정한 것이었다.
루페른 왕국은 인간과 엘프, 드워프, 판(대륙 남부 마그누트 왕국) 등 대륙 17개 왕국의 지배종족을 노예로 부리거나 거래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하고 있었지만(물론 금한다고 해도 저지르는 인간들은 존재했다), 그 외 이종족의 경우에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인어족은 수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 있는 상품이었는데.
남성은 대략 3000 골드, 여성은 무려 10000 골드 이상의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니 왕도의 경매에 출품할 수만 있다면, 예상되는 수입은 대략 3만 골드전후.
이는 그리 부유한 편이 아닌 화이트 영지의 두 달 치 수입에 맞먹는 금액이었고, 거래를 성사시킬 시 데본 화이트 본인에게 떨어지는 수수료만 3000골드정도가 될 터였다.
지난해 화이트 상단의 영업 이익은 고작 113골드에 불과했던데다, 3000골드라면 상단 인원(59명) 전부의 1년 치 급여를 해결할 수 있는 거금이었다.
하지만 인어족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갔는지, 상단은 화이트 영지를 출발해 하이데른시에 이를 때까지 수시로 습격에 시달려야만 했고.
최초 35명의 사병(엑스퍼트 4, 마법사 1, 병사 30)과 50명의 용병으로 구성되었던 호위단은, 하이데른시까지 이르는 20여일 간의 여정 동안 사망과 부상으로 인해 절반 이상의 병력이 이탈한 상태였다.
수만 골드 가치의 상품 운송이라면 자작가의 기간트 오너를 지원해줄 만도 했으나.
재정 형편이 좋지 않은데다 남부 해군사령부가 멀지 않은 탓에, (기간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화이트 자작가는 단 1대의 기간트(크로스보우)만을 보유하고 있었고.
유일한 기간트가 그토록 오래 영지를 비울 수는 없었다.
상단주가 호위대의 구성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
용병 길드를 중심으로 엄청난 실력의 ‘다이아몬드 등급 용병’에 대한 소문이 도시를 휩쓸었다.
이에 데본 화이트 상단주는 결단을 내렸다.
‘그자를 고용한다.’
골드 등급과 실버 등급 용병 수십 명을 고용할 돈으로, 그 다이아몬드 등급 용병을 고용하겠노라고.
하지만 다이아몬드 등급 용병은 가격도 비쌌거니와, 마음에 들지 않는 의뢰는 받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협상 자리에 나간 데본 화이트 역시, 제의를 받아들일 확률은 높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이 저희 상단이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입니다.’
게다가 상인 된 도리로, 상한선의 80% 수준으로 협상을 시작했는데.
‘금액은 그만하면 됐고. 대신 조건이 있다.’
스노우라는 이름의 용병은 의뢰금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했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을 덧붙였는데.
그 조건이라는 것은...
왕도까지 혼자만 타고 갈 최고급 마차를 준비할 것과.
매끼 하이데른의 명물 레스토랑인 ‘황금빛 새벽’ 수준의 식사 제공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데본 하이트는 생각할 것도 없이 답하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마차야 왕도에서 되팔면 그만이었고. 수준 높은 요리사를 고용하는 정도는, 협상에서 아끼게 된 의뢰 대금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뿐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리하여...
고용주와 고용인이 모두 만족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용병 계약이 성사되었다.
#2
콰아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아악
파츠츠츠츠츠츠츠츠
끄어어어어어어억
지면에서 솟구쳐 오른 불길에 타오르고, 내리치는 벼락에 감전된 인간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곳에 불시착한 이후 지난 몇 달간 쉴 새 없이 달려왔으니, 조금은 쉬어가자는 심정으로 합류한 상행이었다.
왕도에 도착한 이후의 일정은 예측할 수 없었고, 원하는 기간트를 손에 넣은 이후에는 곧바로 루페른 왕국을 떠날 생각이었으니까.
치안이 좋기로 유명하다는 루페른 왕국인데다, 왕실 직할령에서 왕도로 향하는 여정이니 내가 나설 일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예상했었는데...
“젠장, 습격이 잦을 수도 있다더니...”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며 머쓱하게 웃던 상단주 놈의 얼굴이 생각나 주위를 둘러보니.
“물러서지 마라! 마차를 지켜라! 거기 네놈, 엉덩이에 바람구멍을 내버리기 전에 물러서지 말고 버텨!”
그는 활로 습격자들을 저격하며 연신 호위대를 독려하고 있었는데.
활 솜씨는 물론 전장을 지휘하는 능력 역시 썩 나쁘지 않았다.
‘초급 엑스퍼트라고 했던가?’
일반적인 31세의 귀족 남성이라면 제법 뛰어난 성취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을 수준이었지만.
20대 초중반에 상인의 길을 선택한 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검의 길을 걸어 기사가 되거나, 영주에 도전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뭐, 그거야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 아니겠는가.
아무튼 레니비아를 향한 여정의 이튿날 처음으로 시작된 습격은, 7일 차인 오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기간트를 이용한 습격은 없었다는 사실인데.
왕실이 영주들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영지전을 제외한 사사로운 기간트 운용만큼은 철저히 감독하려 했기에.
어지간한 결심이 아니고서는, 기간트를 범죄에 이용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로메인 백작령에도 왕실조사단이 파견되었었지.’
주동자인 그리핀 자작이 모든 것을 토설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나 역시 꽤 귀찮은 일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앙
화르르르르르륵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상념을 이어가는 중에도 기계적인 스킬 난사는 계속되었고.
200여 명에 가까웠던 습격자들은 어느새 70여 명 정도로 줄어든 상태였다.
“젠장! 마법사부터 죽여!”
“화살을 쏴라!”
“마법 때문에 화살이 닿지 않습니다!”
“맞출 때까지 계속 쏴!”
“그전에 다 죽을... 끄아아아아악!”
“해리!”
나는 시끄럽게 굴고 있는 적 지휘관을 향해 불의 창을 날렸다.
하지만 머릿속을 떠다니는 상념들 탓인지, 조금 빗나가는 바람에 옆에 있던 부하를 맞추고 말았다.
몸에 불이 붙은 녀석은 미친 듯이 땅바닥을 뒹굴었으나.
불이 사그라들었을 때는, 이미 새카만 숯덩어리로 변해 움직임이 멎어버린 상태였다.
“아이스 스피어.”
퍼어어어어억
부하의 죽음에 분노를 불태우던 지휘관 역시, 뒤이어 날아간 얼음의 창에 적중되어 삽시간에 얼어붙고 말았다.
“로저님이 당했다!”
“젠장, 우린 다 죽을 거야!”
상단을 습격하는 무리의 규모는 대체로 100~200명 정도였고.
엑스퍼트와 마법사 몇몇이 끼어있었다.
습격자들의 수준은 대부분 실버 등급 용병 수준이었는데, 지휘자들의 수준 역시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고작 이종족 노예 때문에 이런 짓거리를 벌인다고?”
물론 그 노예들의 값어치가 상당하다는 사실은 나 역시 인정하는 바였지만.
‘엘프나 드워프만큼은 아니지만, 인어족 역시 장생종에 속하죠.’
‘그게 무슨 상관이지?’
‘인어족과 밤을 보내면 수명이 늘어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런 미신을 믿는다고?’
‘돈이 썩어나는 귀족들이 혹할 만한 이야기죠.’
데본 화이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수백의 병력을 갈아 넣어서라도 그들을 차지하려는 귀족들의 욕망은... 아마도 돈이 아닌 다른 것을 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스타니 상단주에 비하면 그닥...”
데본 화이트 상단주의 배려로, 창 하나 없는 마차 안에 마력 구속구를 찬 채 감금되어있는 인어족을 볼 수 있었는데.
확실히 매력적인 외모이기는 했지만, 엘프 왕국의 공주이자 비밀 상단의 주인인 스타니슬라 르 바라탄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뭐, 다리가 물고기 꼬리로 변하는 건 좀 신기하긴 하네.’
물론 뭍으로 나온 상태라 변신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40여 명의 호위대가 견고하게 수비를 펼치는 동안, 습격자들은 내 마법에 의해 대부분 정리가 되었다.
제우스를 타고 있을 때나 본신인 상태나, 내 능력은 ‘양학’에 특화되어 있었고(물론 기간트에 탑승했을 경우에는 달랐지만).
고만고만한 병력들을 처리하는 데는, 전체 마력의 1/5 정도면 충분했다.
카아아아아아앙
타아아앗
그나마 눈여겨 볼 만 했던 건.
습격자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엑스퍼트였는데.
그는 호위대장을 비롯한 3명의 엑스퍼트를 상대로 시종일관 우위를 점하며, 그중 한 명에게 큰 부상까지 안겨준 상태였다.
“상급 엑스퍼트와 중급 엑스퍼트 둘을 상대로 저 정도라면... 적어도 상급 엑스퍼트 최상위권 수준은 되겠군.”
나는 아공간에 들어있던 작달막한 막대기를 꺼낸 뒤.
타앗
전장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비켜라.”
내가 지면에 내려섬과 동시에, 자작가의 두 기사는 부상 당한 기사를 부축하며 뒤로 물러섰다.
핏
습격자들의 대장은 검날에 맺힌 피를 가볍게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뭐지? 마법사가 자진해서 거리를 좁힌다고?”
“이상하군. 굳이 비밀로 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게 무슨 말이냐?”
“소문이 늦다는 뜻이다.”
“뭐?”
나는 더이상 녀석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생각이 없었기에, 곧바로 손에 들린 30cm가량의 은색 막대기에 마력을 주입했다.
츠츠츠츠츠...
그러자 눈 깜짝할 새 180cm가량으로 늘어나는 막대기.
봉이라는 무기를 잡아본 지 4년이 넘었음에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스피어마스터리(C) : 창을 이용한 공격을 강화한다. 숙련도에 따라 기본 창술(베기, 찌르기, 막기)을 보정 받는다. 창, 봉류 무기 착용 시 적용. 숙련도(MAX) ? 공격력 200% 상승.]
어디까지나 스킬의 힘이 작용한 덕분이었다.
“호오...”
무기가 늘어나는 광경을 목격한 습격자 대장의 눈이 조금 커졌다.
“신기한 걸 가지고 있군.”
“꽤 좋은 물건이지.”
“큭, 그걸로 날 상대해 보겠다고?”
붕붕붕붕붕붕......
나는 대답 대신 한 손으로 잡은 봉을 고속으로 회전시키며 몇 차례 좌우로 휘저었고.
‘매 토템, 곰 토템, 바람의 인도, 강철피부......’
속으로 온갖 버프를 발동시킨 뒤.
처억
이내 회전을 멈추며 습격자들의 대장을 겨누었다.
“입 닥치고 자세나 잡아.”
빙글거리던 녀석의 얼굴이 일순간 차갑게 굳었고.
타아아앗
마법을 경계해서인지.
검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쇄도해 들어왔다.
카아아아아아아앙
서로를 코앞에 둔 채, 검과 봉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습격자 대장의 눈이 다시 한번 크게 떠졌다.
“막아? 이건 마법도 아닌...”
나는 녀석의 말을 끊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닥치고...”
그리고는 선명한 검기를 내뿜고 있는 검을 천천히 밀어내며 말을 이었다.
“제대로 하라고, 너무 일찍 끝나면 곤란하니까.”
봉을 쓰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실전 훈련이 좀 필요할 것 같거든.
이 아티팩트의 진짜 주인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