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49화 (49/169)

49화 왕실 의뢰(1)

#1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듯, 습격자들의 대장은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척 보기에도 상당히 비싸 보이는 롱소드에는 선명한 푸른빛 검기가 맺혀있었고.

힘보다는 스피드와 기교를 중시하는 스타일인지, 간격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날카로운 검격을 뿌려댔다.

나 역시 녀석의 템포에 맞춰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느 단계를 지나자 내가 쥐고 있는 봉에도 은은한 붉은빛이 서리기 시작했는데.

비슷하게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음에도 상대의 검기에 비해 봉기(?)가 늦게 발현된 이유는, 그만큼 내 아티팩트의 마력흡수율이 월등했기 때문이다.

만약 마력흡수율이 무한에 가까운 무기가 존재한다면. 아무리 마력을 이용해 강화시킨다 한들, 겉으로 새어 나오는 마력은 전무 할 터였다.

‘그런 게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야말로 최강의 무기라 할 수 있겠지.’

카아아아아앙

터어엉

카아아아앙

“크윽... 젠장, 대체 뭘로 만든 물건이길래...”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이 맞부딪칠 때마다, 푸른 기운은 조금씩 그 빛을 잃어 갔고.

푸른빛이 서린 검날 역시, 마치 고통을 호소하기라도 하는 양 부르르 몸을 떨었다.

상황이 불리하다고 느낀 듯, 습격자들의 대장은 더욱더 치고 빠지는 속도를 높였고.

간간이 타이밍을 노려 허리춤에 장착한 비수를 번개같이 던져대기 시작했다.

그는 왼손을 사용해 비수를 던졌음에도 절대로 빗나가는 법이 없었고, 비수에 실린 마력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초인에게 있어, 장봉류는 투척 공격을 방어하는데 상당한 이점을 지닌 무기였다.

굳이 일일이 쳐내지 않더라도. 초고속 회전을 구사하는 것만으로, 몸 전체를 가리는 거대한 방패 역할을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터엉

터엉

터엉

거의 동시에 목과 심장, 낭심을 노리며 날아든 3개의 비수.

하지만 그 회심의 일격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전면을 막아선 봉에 의해 모조리 막혀버리자, 상대의 인상은 처참할 정도로 구겨져 버렸다.

“빌어먹을...”

그는 처음의 여유 있는 모습과는 달리 살기를 풀풀 풍기며 나를 노려보았다.

사실 저 녀석처럼 속도와 기교 위주의 검사는, 내게는 가장 상대하기 쉬운 타입 중 하나였다.

공격력의 한계가 명확했던 내게, 상대하기 힘겨운 타입은 힘이나 방어력이 월등하게 뛰어나거나 둘 모두에 해당하는 헌터들이었다.

‘뭐 보통은 힘과 방어력은 비례하곤 했으니까... 쩝.’

더군다나 지구의 육체 계열 헌터 중 60% 이상은 눈앞의 상대와 흡사한 전투 스타일을 구사했기에. 대련으로 얻은 경험치 역시, 이 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결국 50합을 넘기는 동안 녀석의 검은 단 한 번도 내 봉이 구축한 방어선을 뚫어내지 못했다.

최고치에 도달한 봉(창)술 마스터리 덕에, 봉을 다루는 것도 어느새 어색함이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였기에.

이만 이 대결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왼발을 뒤로 빼며 상대가 휘둘러오는 검을 아래에서 위로 걷어냈다.

카아아앙

그리고는 몸을 급속도로 회전시키며 상대의 옆구리를 노리고 봉을 휘둘렀다.

카아아아아아앙

“크흑!”

이미 속도에서 제압당한 습격자들의 대장은 간신히 봉을 쳐낸 뒤 인상을 구기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서로 간의 거리는 대략 6미터.

나는 상대가 호흡을 들이마시려는 찰나.

뒤로 한껏 당겼던 봉을 앞으로 쭉 뻗었고.

동시에 마력을 미친 듯이 쏟아부으며 의식을 집중했다.

‘늘어나라.’

츠츠츠츠츠츠츠츠츠...

마치 폭발적인 마력의 침투에 놀라기라도 한 듯.

대략 180cm에 불과했던 봉, ‘알브레하트의 지팡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콰득!

거리를 벌린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습격자들의 대장을 꿰뚫어 버렸다.

“커허어어억!”

가슴의 정중앙을 관통당한 녀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신음을 토해냈고.

잠시 뒤.

털썩

눈에서 생명의 빛이 사라진 습격자들의 대장은 봉에 꿰뚫린 채 대지 위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흐익!”

“바, 바톨론 경이 죽었어!”

“병신아 입 조심해!”

“지금 그게 문제야? 도망쳐, 당장!”

“그, 그래!”

살아남아 있던 50여 명의 떨거지들이 뿔뿔히 흩어져 달아났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상단주인 데본 화이트조차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일행의 시선은 오로지.

최상급 엑스퍼트에 근접한 강자를 봉 하나로 때려잡아 버린.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2

츠츠츠츠츠츠츠츠...

습격자들의 대장을 꿰뚫었던 봉을 회수했다.

인간의 가슴에 주먹만 한 구멍을 만들어놓았음에도, 봉 끝에는 티끌만 한 이물질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고대의 대마법사가 만든 아티팩트라더니... 그런데 고대라면, 대체 몇 년 전을 말하는 거지?’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 작달막한 길이로 줄어든 알브레하트의 지팡이를 던져 넣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홀린 듯 멈춰 선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일행들은,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 나서야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끄, 끝났다!”

“이겼어! 우리가 또 이겼다고!”

“마법사ㄴ... 아니 전사님? 에이 씨... 아무튼 만세!”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실력의 엑스퍼트가 포함된 다섯 배의 병력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막아냈으니.

이는 실로 엄청난 대승이라 할 만했다.

물론 대부분... 아니, 사실상 모든 적을 나 혼자 처리했으니 그들이 한 일이 뭐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100여 명이 넘는 적들을 처리하는 동안, 세 명의 엑스퍼트는 적의 대장이 전장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훌륭하게 마크해냈고.

40여 명의 호위대 및 용병들은 상단주 데본 화이트의 지휘하에 견고한 방어진을 구축한 뒤, 몇 배에 달하는 병력의 공격을 견뎌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 굳이 그들의 노고를 폄하해, 사기를 떨어뜨릴 생각은 없었다.

마차와 짐, 호위대의 상황을 빠르게 체크한 상단주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채 나를 향해 다가왔다.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스노우님. 스노우님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 정도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을 겁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그의 말을 받았다.

“글쎄... 과연 그 정도로 끝이었을까?”

“...네?”

“저기 죽어있는 놈의 실력, 봤잖아? 내가 없었다면, 설령 호위대의 숫자가 두 배였다 한들 죄다 죽었을 것 같은데... 아닌가?”

“......”

물론 노고를 알아준다고 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을 그냥 넘길 이유는 없었다.

내가 의뢰금에 신경 쓰지 않고 이 상단에 합류한 이유는 일종의 휴식기를 가지기 위함이었다.

물론 용병으로 참가한 이상, 필요할 때 힘을 써 줄 용의는 있었지만.

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습격에 시달리며, 홀로 몰려온 적들을 처리해 버리는 건 예상했던 노동의 강도를 한참 벗어나는 일이었다.

데본 화이트 상단주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사실 멍청이가 아닌 이상, 이게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고.

슬슬 내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 역시 모를 수가 없었다.

상단주의 얼굴에 어린 기색이 ‘갈등’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선택 장애에 걸린 그를 구원해 주기 위해, 미간을 찡그리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내 말이 틀렸나... 상.단.주?”

그러자 흠칫 몸을 떤 데본 화이트 상단주가 다시 한번 만면에 웃음을 띠며 오른쪽 안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하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은혜를 모르는 후안무치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새로운 계약서를......”

후안무치한 인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머리가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

그의 오른쪽 안주머니에서 나온 계약서에는 여러 가지 추가 사항이 적혀 있었는데.

자잘한 내용을 제외한 주요 골자는, 왕도에 도착하는 즉시 기존 의뢰금 이외에 500골드를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500골드 정도의 푼돈(?)보다는 상단주의 왼쪽 안주머니에 들어있을 또 다른 계약서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영세한 상단을 이끄는 자로서는 꽤 큰 규모를 배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모른 척 눈감아 주기로 마음먹었다.

‘눈알을 굴리던 걸로 봐선... 아마 500골드보단 못한 조건이 들어있었겠지.’

아무튼, 간단한 부상 치료와 전리품 수거를 끝낸 일행은 다시 왕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후 4일간.

상행을 습격하는 무리는 없었다.

#3

왕도 레니비아에 도착한 뒤, 데본 화이트 상단주는 흔쾌히 추가금 500골드가 포함된 잔금을 지급했다.

그는 왕도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에서 내게 밥을 샀고.

꼭 다시 봤으면 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는, 아쉬움 가득한 눈빛을 남긴 채 떠나갔다.

하루 숙박비가 1골드인 방에서 밤을 보낸 뒤.

아침 식사를 해결한 이후, 곧바로 내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루페른 왕국의 행정기관은 대부분 내성 안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왕실의 의뢰를 받거나 기간트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그곳을 방문해야만 했다.

다이아몬드 용병패, 그리고 브라이드 백작에게 받은 구매권과 추천서를 보여주자 어렵지 않게 내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한 병사의 안내를 받아 왕궁 입구에 도착한 뒤,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급 관리에게 인계되어 어느 방안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담당자분들이 오실 겁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안내한 하급 관리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인 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끼익

방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기간트 관리부의 데이비드 밀스라고 합니다.”

“외무부 소속 개릿 토너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스노우다.”

두 사람의 나이는 30대 후반과 중반 정도로 보였기에 굳이 말을 높이지 않았고.

그들 역시 그 사실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조금 더 소개가 이어졌고.

나는 데이비드 밀스가 왕국 동부에 작은 영지를 가진 남작 작위의 귀족이며, 기간트 관리부의 중간 관료인 3급 서기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양쪽 눈꼬리가 아래로 처져 있어, 자연스럽게 눈웃음을 치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실제로도 얼굴을 마주한 내내 눈과 입가에서 웃음기를 떠나보내지 않고 있었다.

‘마음을 읽기 힘든 타입이로군.’

그리고 준남작인 개릿 토너.

그는 외무부 소속 하급 관료였고, ‘왕실 의뢰 수행의 대가로 기간트 구매가를 낮추길 원한다’는 내용이 담긴 브라이드 백작가의 추천서로 인해 이 자리에 동석한 인물이었다.

제법 후덕한 몸매에 웃는 상인 데이비드 밀스와는 달리, 개릿 토너는 깡마른데다 차가워 보일 정도로 표정이 없는 사내였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기간트 관리부의 데이비드 밀스였다.

“저희가 귀하께 판매해 드릴 수 있는 최상위 기종은 제블린입니다.”

그리고 그의 첫 마디에.

나는 와락,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