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51화 (51/169)

51화 왕실 의뢰(3)

#1

“하하하하!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길 찾는 일엔 영 젬병이라서 말이죠. 대신 바이런으로 넘어가선, 이 한 몸 아끼지 않고 열심히 구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함께 의뢰를 수행할 인원들과의 접선 지점에 도착한 뒤, 10여 분이 더 지나서야 마지막 멤버가 도착했다.

기껏해야 20대 중반 정도의 청년으로 보였으나, 그는 무려 상급 엑스퍼트이자 기간트 오너였고.

실제 나이는 32살이라고 했다.

왕국 북부 로테르 자작가의 삼남으로, 그의 가문이 왕실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의뢰를 수행하는 중이라고 ‘본인의 입으로’ 주절주절 잘도 떠들어 댔다.

먼저 도착해 있던 스티브와 티나라는 이름의 플레티넘급 용병들은 그가 약속 시간에 늦었다는 사실보다는, 무난한 성격의 오너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 같았다.

사실 성격 더러운 오너 만큼 지독한 진상이 없다는 사실은, 나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사정이었고.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작전이 시작된 이후엔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짓 따윈 용납하지 않겠다.”

나는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였다.

린턴 로테르라는 이름의 오너는 머쓱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고.

플래티넘 용병 콤비는 요상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흠칫.

나는 용병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는 린턴 로테르를 불러세웠고,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잠깐.”

“네?”

“기간트가... 제블린이라고 했나?”

“네,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타시던 걸 물려받았죠. 안타깝게도 코페시는 큰형이 물려받았거든요.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재능은 제가 좀 더 뛰어난데 말이죠. 큰형이 영지를 물려받고 나면 한 번 졸라볼 생각......”

나는 녀석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몸을 돌렸고.

앞서가는 두 용병의 뒤를 따랐다.

‘짜증 날 정도로 말이 많은 녀석이로군. 그나저나...’

흘깃 눈동자를 굴려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린턴 로테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분명 제블린이라고 했겠다?’

녀석의 기간트가 등장할 순간이 진심으로 기대되었다.

#2

의뢰의 내용은 바이런 왕국으로 넘어가 지정해준 장소에 숨어있는 6써클 마법사와 접선한 후, 그를 무사히 루페른 왕국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현재 목표의 위치는 바이런 북부의 아시스 숲입니다. 연락은 오직 ‘아헨달의 그림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샌포드의 특무부대가 근방에서 목격되었다는 정보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바이런 왕국이 적성 국가인 만큼......”

전체적인 브리핑과 리딩은 노련한 용병인 스티브가 맡았다.

기간트 오너인 린턴 로테일은 추적과 탐색에는 소질이 없다며, 그가 리더를 맡는 것에 찬성표를 던졌고. 루페른 왕국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처음인 나 역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첫 번째 브리핑을 마친 이후, 우리는 지체없이 산의 정상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야 할지도 모르는 만큼, 인간을 위한 길로는 이동할 수 없었고.

상급 엑스퍼트인 세 사람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험난한 마링가산을 넘어서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산의 정상을 넘어 바이런 왕국의 국경선이 가까워질 무렵, 옆으로 다가온 린턴 로테일이 말을 걸었다.

“휘유! 정말 마법도 쓸 수 있습니까? 마검사라는 말은 들었지만... 신체 능력도 저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같은데요.”

“기회가 되면 확인해보던지.”

“사양하겠습니다. 저 같은 게 상대가 될 리가 없죠. 상급 엑스퍼트 이상의 신체 능력을 지닌 6써클 마법사라니...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과연 그럴까?”

“네?”

“입 다물어. 바이런의 병력이다.”

“헙!”

앞서 달리던 스티브와 티나 역시 초소와 병력을 발견한 듯 자세를 낮추며 걸음을 멈추었다.

나와 린턴 로테르가 다가가자, 몸을 돌린 스티브가 입을 열었다.

“6개월 전에 이곳을 이용해 국경을 넘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없었던 초소입니다.”

“이곳이 병력을 배치할 만한 곳인가?”

내 물음에 스티브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제 생각에는... 아닙니다. 최소한 엑스퍼트는 되어야 넘어 올 수 있는 곳이라 군사 목적으론 실효성이 낮은데다. 이 루트를 타고 가서 나오는 영지들은 대부분 별 볼 일 없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나?”

“크흠,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저들이 전부라는 보장이 없으니, 어지간하면 조용히 지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쪽으로 20분 정도만 이동하면 300미터쯤 되는 절벽이 나오니 그쪽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우리는 스티브의 의견을 따라 절벽을 탔고, 무사히 바이런 왕국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이런의 북쪽에 위치한 샌포드에서 넘어온 마법사는, 국경을 넘은 뒤로 얼마 이동하지 못한 듯했고. 우리가 있는 남부에서 북부까지는 또다시 엄청난 거리를 이동해야만 했다.

“그나마 바이런의 영토가 가로로 길어서 다행이군요.”

이게 뭔 헛소린가 싶겠지만... 린턴 로테일의 말대로 바이런은 남북에 비해 동서 간의 거리가 두 배 이상 긴 나라였다.

만약 남에서 북이 아닌, 동에서 서로 이동해야 했다면 이동 거리가 두 배는 길어졌으리란 뜻이기도 했다.

다행히 스티브는 굉장히 노련한데다 영리하기까지 한 용병이었고.

그의 인도 아래, 꼬박 5일간의 강행군을 펼친 결과.

우리는 무사히 바이런 왕국의 북부에 위치한.

‘아시스 숲’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3

“이게 어떻게 된 거지?”

“......”

내 물음에 명확한 답을 내려줄 만한 이는 없었다.

엄청난 강행군 끝에 바이런 왕국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질러 아시스 숲에 도착한 우리는.

대륙 3대 정보 길드 중 하나인 ‘아헨달의 그림자’로부터 전해 받은 조악한 지도에 의존해 목표가 숨어있는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숲에 진입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콰아아아아아아앙

카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폭발음과 금속과 금속의 충돌로 인한 마찰음으로 인해, 더이상 탐색을 진행할 수 없었다.

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그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4대의 기간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금속 덩어리들의 싸움판과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들만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십수 명에 이르는 인간들의 모습도 확인했다.

“이게 대체...”

스티브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이곳은 목표가 숨어있다고 추측되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지만.

이대로는 함부로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다.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4대의 기간트 중 한 대 만이 내가 알고 있는 기간트였는데.

그것은 이펜타르크제 기간트인 테페리였다.

문제는, 기준 출력 이상(1000rp)의 기종인 테페리가 4기의 기간트 중 가장 덩치가 작다는 데에 있었다.

“아트론, 바이샨, 테페리...”

“저 커다란 건 바엘로그잖아. 미친...”

경험이 풍부한 두 용병은 기간트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아본 듯했다.

“저것들은 어디서 만들어진 기간트지?”

내 질문에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스티브.

하지만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더니,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저기 작은 녀석은...”

“테페리라면 알고 있다.”

“아, 네. 맞은편의 두 기간트는 엘가드 왕국에서 만들어진 기간트입니다. 검은색이 아트론, 붉은색이 바이샨이죠.”

“엘가드라면...”

“드워프들의 왕국입니다. 그리고 테페리와 함께 다른 두 기간트를 상대하는 커다란 녀석은 이펜타르크제 기간트인 바엘로그죠.”

“제법... 쓸만해 보이는군.”

“쓸만... 한 정도가 아닙니다. 출력이 1600rp나 되는 데다, 최적화가 끝내주는 놈이거든요. 그리고......”

스티브의 말에 따르면, 드워프제 기간트인 아트론과 바이샨의 출력은 각각 1400rp와 1200rp라고 했다.

‘손기술이 좋기로 유명하다더니...’

과연 전투병기인지 예술품인지 헷갈릴 만큼 엄청나게 멋진 외형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검은색 바탕에 황금빛으로 기하하적인 문양을 멋들어지게 새겨 넣은 데다, 다른 기간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날렵한 체형의 아트론은 완벽하게 내 취향을 저격한 기간트였다.

기간트들의 전투는 백중지세였지만, 인간들의 싸움은 한쪽의 일방적인 우세로 흐르고 있었는데.

마법 도구로 전장을 관찰하던 스티브가 기어이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양쪽을 번갈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검술로 미루어 볼 때, 이쪽은 샌포드 왕국의 특무부대. 그리고 이쪽은... 일부가 바이런 왕국 여명기사단의 검술을 사용하는군요. 양쪽 모두 최대한 검술을 숨기려 하고 있지만, 간혹 묻어나오는 흔적까지 완벽하게 지우진 못했습니다.”

‘뭔가 대단한 걸 들은 것 같은데...’

언뜻언뜻 드러나는 검술의 편린 따위로 그런 걸 알아낼 수 있다니.

이게 사실이라면, 스티브는 내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더 유능한 인간이었다.

아무튼, 인간들 간의 전투는 기사단의 검술을 익힌 것 같다는 바이런 측의 압승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전쟁 혹은 전투에서 인간들 간의 승패는 전세에 별다른 영항을 미치지 못했다.

적어도 기간트가 모습을 드러낸 전장에서는.

스티브의 말이 이어졌다.

“다른 녀석들은 모르겠지만, 아트론은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는 것 같군요... 저건 여명기사단의 검술입니다.”

“그렇다면 아트론과 바이샨이 바이런, 나머지 둘이 샌포드 쪽일 확률이 높겠군.”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샌포드는 기간트 생산 능력을 갖춘 곳 아니었나?”

“그렇긴 한데. 남의 나라에서 분탕질 칠 때, 타국의 기간트를 이용하는 건 꽤 흔한 일이죠.”

뭐, 그것 역시 경험으로 인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긴 했다.

아무튼, 제대로 된 기사단의 검술을 사용하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4기의 기간트 중 가장 좋은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건 날렵한 체형의 아트론이었다.

심지어 체급에서도 밀리고, 출력마저 200rp나 높은 상위 기종 바엘로그를 상대로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을 정도.

반면 그와 한편으로 추측되는 바이샨은, 되려 200rp나 낮은 테페리를 상대로 시종일관 밀리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스티브가 나와 린턴 로테르를 번갈아 바라보며 의견을 물었다.

여태까지는 그가 일행을 리드해 왔지만. 전투 상황에 직면한 이상, 실질적인 전력인 나와 린턴 로테르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발언권을 가진 인물은 단연 기간트 오너인 린턴 로테르였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던 녀석은. 정작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현재, 말없이 전황만을 살피고 있었다.

“저들의 승패가 결정되기 전에 움직이는 건 위험할 것 같군요. 어느 쪽이든, 한쪽이 승리할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그는 자신이 생각한 작전을 설명했고.

기간트가 등장한 이상 별다른 대책이 없었던 두 용병은 린턴 로테르의 의견에 순순히 동의했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좋아, 두 가지만 솔직하게 말해 준다면... 나 역시 네 의견에 따르도록 하지.”

어느새 이전의 생기 넘치는 모습을 회복한 린턴 로테르가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좋습니다. 뭐든 물어보시죠, 솔직하게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와 시선을 맞추며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확보하려는 마법사... 단순히 망명을 희망하는 6서클 마법사가 아니야. 그렇지 않나?”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던 린턴 로테르가 이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워낙 기밀을 요하는 일인지라 루페른의 귀족인 저에게만 진실을 알려준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거 이상하군. 1급 이상의 기밀을 요하는 의뢰는 제외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

이번에는 진심으로 당황한 기색을 드러낸 그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아, 이건 내가 하려던 두 가지 질문에 포함되는 건 아니니...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어. 대신, 두 번째 질문을 하지.”

내가 끝까지 추궁하지 않자, 안도하는 기색을 드러낸 린턴 로테르가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나는 천천히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려 그의 손목에 채워진 네스트를 가리켰다.

“네 기간트... 정말 제블린이 맞나?”

그 순간.

린턴 로테르가 여태껏 볼 수 없었던 흉악한 표정을 드러냈다.

“네놈... 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거냐?”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스티브와 티나가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린턴 로테르의 물음에 답했다.

“어려울 건 없었어. 브로드가 고작 8분 28초였는데, 제블린이라고 우기는 네 것은... 무려 10분을 넘기더군.”

험상궂게 일그러졌던 린턴 로테르의 얼굴에 의문의 빛이 서렸다.

뭐,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그렇다고 이해시켜 줄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이 녀석은...

“이제 말해 봐, 네 진짜 목적을. 팬텀기사단 소속... 로빈슨 슈왈츠.”

내 말이 끝나는 순간 린턴... 아니, 로빈슨 슈왈츠의 눈이 경악으로 치떠졌다.

“대, 대체 어떻게 내 이름을...”

그야...

[로빈슨 슈왈츠(A) : 32세, 루페른 왕국 팬텀기사단(근위기사단) 소속 기사

184cm, 77kg

파일럿 재능 ? 81/90(현재/최대치)

훈련 가능 기체

제우스(C) - 숙련도 0/100

토마호크 SS7 스피릿(E+) - 숙련도 0/100

안티가(C) - 숙련도 0/100]

네 훈련병 프로필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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