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55화 (55/169)

55화 왕실 의뢰(7)

#1

기간트의 마력엔진에 의해 3,4써클 마법에 준하는 스킬들은 그 위력이 몇 배나 증폭되었고.

이는 고등급 기간트에게도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무수한 스킬에 적중당한 아리엘은 땅바닥을 나뒹구는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물론 기간트라는 존재는 내부 장갑에 새겨진 방어마법진으로 인해 뛰어난 마력 저항력을 갖추고 있었던 탓에, 전투 불능에 빠질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달아 수많은 스킬에 적중당했으니, 쉽사리 정신을 차릴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로빈슨 슈왈츠는 어지간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쿠우우우웅

[너 이 새끼! 반드시 죽여주마!]

대지를 박차며 몸을 일으킨 아리엘로부터, 여전히 투지가 꺾이지 않은 로빈슨 슈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절하기까지 한 외침을 토해낸 아리엘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왔고.

나는 마법과 봉술을 적절하게 조합해 거대한 기간트의 파상공세를 받아냈다.

전투 시간이 길어질수록, 뛰어난 오너인 로빈슨 슈왈츠는 스킬을 사용한 변칙 공격이 익숙해졌고.

800rp에 불과한 안티가로는 2300rp의 아리엘을 상대하는 게 점점 더 버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육중한 무게가 실린 아리엘의 공격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쌓인 충격을, 안티가의 몸이 버텨내지 못하는 것이었음으로.

끼익끼익...

안티가의 전신에서 과부하로 인해 관절이 갈려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젠장, 이래서 좋은 기체를 타야 한다니까.”

상위 등급 기간트를 향한 갈망이 더더욱 강해지는 순간이었다.

보는 눈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기에, 바람의 인도 스킬을 제외하고는 ‘서리바람(C)’ 특성의 스킬들을 사용하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그것은 이 세계의 다이아몬드급 용병이자 마검사 ‘스노우’의 시그니처 마법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정체를 발각당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뭐, 들켜도 상관없긴 하지만... 여러 가지로 귀찮아지겠지. 크로스보우를 얻는 것도 힘들어질 테고.’

다른 건 몰라도 기간트를 획득하는 일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

“젠장, 어지간하면 이 스킬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쉰 뒤 하나의 스킬명을 외쳤다.

“후우... 버서커.”

내가 가진 ‘육체 강화(C)’의 세 가지 고유스킬 중 하나인 ‘버서커(C)’ 스킬이었다.

[버서커(C) : 스킬 발동 시 시전자의 신체 능력을 대폭 강화시킨다. 최대 5분 동안 육체 관련 모든 스텟이 2.5배 증가하며, ‘공격본능’이 300% 상승한다. 스킬이 지속되는 동안 통각의 90%가 마비된다. 스킬이 중단되면 반동으로 인해 고통과 탈력감을 겪는다. 5분을 모두 사용할 경우, 높은 확률로 기절할 수 있다. 소모 마력 : 700]

‘육체 강화’ 특성은 기본적으로 각성자의 신체 능력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내 각성 등급은 C에 불과했기에.

최종적으로 증가한 능력이라고 해봐야, 이쪽 세상에서 이제 막 중급에 발을 들인 엑스퍼트 수준에 불과했다.

그 정도 수준으로는 2.5배의 강화 효과를 받아봤자 별다른 위력을 기대할 수 없었기에, ‘버서커’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스킬로 전락했었다.

‘게다가 나중에는 전투기를 타고 돌아다녔으니, 더더욱 쓸 일이 없었지.’

하지만 만약 이 스킬이 기간트에 적용된다면?

스킬을 사용한 순간, 나는 극도의 고양감에 저도 모르게 고함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7미터의 가까운 거인의 몸으로 사용한 ‘버서커’ 스킬은 내게 일시적인 전능감을 만끽하게 해주었고.

그 느낌은 곧바로 사그라들었지만, 전신을 타고 흐르는 폭발적인 힘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였다.

타아아아앙

나는 지면을 박차고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힘과 스피드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일시적으로 깨져버린 벨런스로 인해, 더이상 고양이처럼 가볍고 우아한 움직임을 선보일 수는 없었다.

지금의 나는 오직 파괴만을 위해 전진하는 광전사였기에.

카아아아아아아앙

[크윽!]

전력을 다해 휘두른 봉과 마주친 로빈슨 슈왈츠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이게 무슨...]

단순히 중급 엑스퍼트가 탑승한 800rp의 기간트라면. 설령 2.5배의 능력치 증가가 있었다 한들, 아리엘과 정면에서 치고받는 장면을 연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버서커의 스킬이 적용된 대상은.

온갖 버프를 퍼부은 끝에 신장 6.9미터의 강철 몸뚱어리를 지니게 된.

상급 엑스퍼트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2

로빈슨 슈왈츠는 자신이 직면해 있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콰득

[크억!]

갑작스럽게 최소 두 배는 강력해진 적 기간트.

놈이 내지른 봉에 왼쪽 허벅지를 얻어맞았고.

그 한방에 하체 장갑의 9%가 증발해 버렸다.

조금만 더 깊숙이 들어왔다면 기동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뻔한 끔찍한 공격이었다.

‘대체 뭐야? 엘시드라도 처먹었나? 근데 오너가 그걸 먹는다고 해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건가?’

약물을 복용해 전투력 향상을 꾀하는 오너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기간트 전투에서는 그런 종류의 약물들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짧은 순간 경지가 상승하는 효과를 볼 수는 있었지만.

기간트의 마력엔진과 연결된 탓에 마력이 몇 배는 빠르게 소모되었고.

그로 인해 약물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시간 역시, 기간트를 타지 않았을 때보다 몇 배는 빨리 흘러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 오너는 드래곤하트라도 삶아 먹은 모양인지.

이미 (마법 폭격 등으로)엄청난 마력을 소모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약물이라도 복용한 듯한 스펙업을 선보였고.

그 상태를 말도 안 될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하는 중이었다.

‘젠장, 어지간한 약물이라면 3분은커녕, 1분도 못 버티는 게 정상인데... 대체 뭘 처먹은 거냐?’

후우우우우우우우웅

촤르르르르르륵

방패로 후려치려는 아리엘의 공격을 지면을 타고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으로 피해버리는 적 기간트.

녀석은 곧바로 몸을 뒤집으며 양팔을 지면에 붙인 뒤.

퍼어어어엉

장심에서 마력을 폭사시키는 방법으로 마치 용수철처럼 거꾸로 뒤집힌 몸을 튕겼고.

솟아오르는 반동을 이용해 두 다리를 마치 풍차처럼 회전시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크허어억!]

엄청난 위력이 담긴 공격에 적중당한 아리엘의 상체 장갑 8%가 추가로 손상되었다.

아리엘의 오너가 된 이후로 이토록 수세에 몰린 경험은 처음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으아아아아아!]

결국 견디다 못한 로빈슨 슈왈츠는 마력엔진에 남은 마력을 깡그리 퍼부으며 오버클럭을 일으켰고.

무시무시한 검기를 흩날리는 검을 치켜든 채 상대 기간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검과 봉이 부딪칠 때마다 무시무시한 굉음과 불꽃이 터져 나왔다.

8.7미터의 기간트와 6.9미터의 기간트가 순식간에 30여 합을 교환했고.

콰드드득

[컥! 비, 빌어먹을...]

결국 한발 먼저 오너의 마력이 다해버린 아리엘은, 적 기간트가 내지른 봉에 가슴을 꿰뚫리고 말았다.

아리엘의 안광에 서려 있던 빛이 사라지며 동작을 멈추었고.

그와 동시에 로빈슨 슈왈츠의 눈에서도.

서서히 생명의 빛이 사그라들었다.

#3

스르르르륵

가슴이 꿰뚫린 아리엘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뒤.

안티가의 봉에 의해 곤죽이 되어버린 로빈슨 슈왈츠의 시신만이 조금 전의 전투가 허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네게 유감은 없다. 그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라.”

로빈슨 슈왈츠의 계획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내게 살기를 드러낸 이상 살려둘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녀석도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 것일 뿐일 테니, 그 이상의 마음을 품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아리엘급 기체를 손에 넣은 이후라면, 음모를 주도한 자가 설령 루페른의 국왕이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응징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무리지.”

2300rp급 아리엘을 처리하기 위해 ‘버서커 스킬’을 4분 가까이 유지한 탓에. 지독한 통증이 온몸을 잠식했고, 탈력감이 정신을 지배하려 들었다.

‘일단은 크로스보우를 얻어내는 것에 집중한다.’

나는 로빈슨 슈왈츠의 시신을 일별한 뒤, 스스로에게 ‘리프레쉬(C)’ 스킬을 퍼부었다.

그리고 이내.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빠르게 달려 거대한 나무들의 틈으로 모습을 감췄다.

나는 약 2분여를 최대 속도로 달렸고.

탐색과 천리안 스킬을 사용해 주변을 살핀 후 안티가를 격납고로 돌려보냈다.

“레비테이션, 중력 조절, 실피드.”

그리고는 망토의 옵션과 스킬들을 이용해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리엘을 해치운 뒤, 안티가의 모습을 감추고 다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으로 복귀하기까지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스티브와 티나가 전투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거대한 나무 뒤에서 몸을 감춘 채, 상황을 살피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고도를 낮췄다.

“......!”

스릉!

땅에 내려서기 전, 먼저 나를 감지한 스티브가 빠르게 검을 뽑아 들며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뒤늦게 내 존재를 감지한 티나 역시 시선을 내쪽으로 향했다.

“스, 스노우님?”

“아...”

타앗

나는 가볍게 땅 위로 착지하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검은 집어넣는 게 좋을 것 같군.”

“아... 아, 네!”

순순히 검을 집어넣는 두 사람이었지만, 여전히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두 사람이 전장을 바라보던 위치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두 확인했겠지.”

“네...”

“봤어요.”

나는 두 사람을 한 차례 번갈아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린턴 로테르는 바이런과 샌포드의 기간트들을 맞이해 장렬히 싸우다 전사했다.”

“네? 아까 분명 다른 이ㄹ....헙!”

스티브가 황급히 티나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네, 확실히 목격했습니다. 바이런의 기간트 두 기를 해치웠지만, 갑자기 난입한 샌포드의 기간트에게 당해버렸죠.”

한 녀석이라도 머리가 잘 돌아가니 다행이로군.

이 두 사람의 처리를 잠시 고민했었지만.

아무 죄도 없는 녀석들을 죽여 입을 막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안티가와 나를 연관 지을 만한 확실한 증거도 없지 않은가.

물론 스티브의 경우 의심 정도는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니, 추측만으로 함부로 떠벌리는 짓은 하지 않을 터였다.

“나는 린턴 로테르와 함께 적 기간트와 싸웠지만, 마력 부족으로 전장을 이탈했고, 다시 돌아왔을 땐 상황은 이미 끝나있었다... 질문 있나?”

여전히 티나의 입을 막은 채로 스티브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좋아, 그럼 이제 마법사를 찾는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의 기간트도 그렇고, 바이런이나 샌포드에서 추가 병력을 보낼 수...”

“그러니 최대한 빨리 찾는 게 좋겠지...”

나는 다시 한번 두 사람과 번갈아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두 사람의 고개가 빠르게 아래위를 왕복했다.

그리고 유능한 스티브는 오래 걸리지 않아.

지도에 표시된 위치에 은신하고 있던.

샌포드의 기간트 엔지니어를 찾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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