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기간트 크로스보우(3)
#1
스타크 위어 공작 본인을 제외한 위어 공작가 14오너 중 3인.
존 위크스 부단장과 아놀드 드리스켈 그리고 빈센트 테일러에게 한 가지 밀명이 떨어졌다.
그 비밀스러운 명령의 내용이란... 얼마 전부터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다이아몬드 등급 용병 마검사’를 암살하라는 것.
적의 이동 동선은 공작가 소속 정보 요원들에 의해 이미 파악이 끝난 상황이었다.
굳이 동선 파악을 위해 애쓸 필요조차 없었다.
암살 대상은 마치 유람이라도 하듯, 왕도 레니비아에서 북부 국경지대를 향해 매우 천천히 움직이는 중이었고.
자신들의 편의를 봐주기라도 하려는 듯, 공작령에서 인접한 웰론강을 따라 이동 중인 상황이었으니까.
“휘유, 6써클 마법사인 동시에 최상급 엑스퍼트라니... 기간트전이 아니라면, 저희 셋이 한꺼번에 덤벼들어봤자 어림도 없었겠네요.”
12년 차 오너인 아놀드 드리스켈의 말에, 존 위크스 금독수리기사단 부단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듣기로는 엑스퍼트가 다수 포함된 바이런의 기사단을 순식간에 전멸시켜 버렸다더군. 그것도 온전히 마법으로만. 그러니 방심은 금물......”
물론 당시 바이런의 기사단은 샌포드 왕국의 특무부대를 상대하느라 지쳐있었던 데다.
너무나 뜬금없는 타이밍에 이루어진 마법 폭격이었던 탓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전멸당해 버린 것이긴 했지만.
이들 세 사람은 그런 세세한 사실까지 전해 듣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일행의 후미에서 걸음을 옮기던 빈센트 테일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자가 아무리 대단한 마검사라 해도... 기간트 전이라면,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는 앞선 두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어려 보이는 외모였는데.
실제로도 45세인 존 위크스와 39세인 아놀드 드리스켈에 비해 한참이나 어린, 고작 서른 살의 상급 엑스퍼트였다.
28세라는 이른 나이에 상급 엑스퍼트에 오른 빈센트 테일러.
그는 기간트 운용에 탁월한 재능이 있음을 인정받아, 25세의 어린 나이에 금독수리기사단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첫 번째 기체는 폴암(800rp)이었으나. 2년 전 상급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르며 위어 공작으로부터 현 루페른 왕국의 주력 기간트인 1400rp의 코페시를 하사받아, 기체 적응까지 이미 완벽하게 끝마친 상태였는데.
이는 빈센트 테일러가 검술과 기간트 운용 두 분야 모두, 금독수리기사단 내에서도 특출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초고속 ‘기체 승급’이었다.
뚝...
걸음을 멈춘 존 위크스 부단장이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자만하지 마라, 빈센트 테일러. 스노우라는 자 역시 크로스보우를 가진 오너다. 기간트에 탑승한 상태로도 마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는 말을 잊은 건 아니겠지?”
부단장의 말에 수긍하기 힘들다는 듯, 빈센트 테일러의 미간에 몇 가닥의 주름이 잡혔다.
그는 불퉁한 얼굴로 존 위크스의 말을 받았다.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간트에게 마법 같은 건 통하지 않아요. 그자는 고작 크로스보우에 탑승한 최상급 엑스퍼트일 뿐입니다.”
“음...”
이 부분만큼은 존 위크스 역시 빈센트 테일러와 같은 생각이었다.
사실 그 역시, 고작 이 정도 임무에 3명의 오너를 투입한 걸 내심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잠시 빈센트 테일러를 바라보던 그는, 다시금 몸을 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물론, 한 마디 덧붙이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그자의 실력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이상, 방심은 금물이다.”
부단장의 뒷모습을 향해 입술을 비쭉 내미는 빈센트 테일러.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짓는 아놀드 드리스켈이었다.
잠시 뒤.
타앗
공작가 정보 요원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목표가 1km 전방에 나타났습니다.”
요원의 입이 닫힘과 동시에, 다소 느슨하던 공작가 세 오너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존 위크스 부단장이 말했다.
“전투를 준비해라.”
#2
크로스보우에 탑승한 직후 ‘탐색(C)’ 스킬을 펼치자 평소보다 몇 배나 넓은 탐색 범위가 미니맵 위에 표시되었다.
그리고 원래라면 잡아내지 못했을 희미한 기척들이 미니맵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엄청나군... 블루스펀이라는 게, 단순히 수치상의 동화율만 올려주는 게 아니었어.”
동화율 보정을 위해 개발된 루페른 왕국 특유의 기술 ‘블루스펀(블루 < 레드 < 퍼플 순)’.
크로스보우와 결속을 이루는 순간, 나는 안티가에 비해 조금 더 선연하게 느껴지는 일체감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금 더 예민해진 감각과 향상된 스킬 효과에 의하면...
“숨어있는 쥐새끼는 하나, 둘... 모두 세 마리로군.”
나는 적 기간트들이 행동을 취해오기 전.
전장을 지켜보고 있는 쥐새끼들부터 처리해 버리기로 했다.
“아이스 스피어, 아이스 스피어, 아이스 스피어.”
눈 깜짝할 순간, 크로스보우의 머리 위에 7미터에 달하는 얼음 창 3개가 생성되었고.
적 기간트들이 흠칫하는 사이, 각기 세 방향으로 날아간 얼음의 창.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그것들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목표물에 직격하며, 쥐새끼들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파앗
파앗
파앗
그러자 예상외의 위력에 놀란 듯, 일제히 검과 방패를 소환하는 적 기간트들.
3기의 기간트는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흩어진 뒤.
대형을 갖춘 채 3면에서 나를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파앗
크로스보우의 무기 슬롯에 장착된 검과 방패를 소환한 다음.
타아아앗
망설임 없이 가장 어려 보이던 기사가 탑승한 코페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3
[존 위크스(B+) : 45세, 루페른 왕국 위어 공작가 소속 기사
192cm, 94kg
파일럿 재능 ? 77/79(현재/최대치)
훈련 가능 기체
제우스(C) - 숙련도 0/100
토마호크 SS7 스피릿(E+) - 숙련도 0/100
안티가(B-) - 숙련도 0/91]
[아놀드 드리스켈(B+) : 39세, 루페른 왕국 위어 공작가 소속 기사
184cm, 79kg
파일럿 재능 ? 72/77(현재/최대치)
훈련 가능 기체
제우스(C) - 숙련도 0/100
토마호크 SS7 스피릿(E+) - 숙련도 0/100
안티가(B-) - 숙련도 0/87]
[빈센트 테일러(A) : 30세, 루페른 왕국 위어 공작가 소속 기사
181cm, 75kg
파일럿 재능 ? 75/88(현재/최대치)
훈련 가능 기체
제우스(C) - 숙련도 0/100
토마호크 SS7 스피릿(E+) - 숙련도 0/100
안티가(B-) - 숙련도 0/97]
외관상 가장 어려 보이는 위어 공작가의 오너 빈센트 테일러.
하지만 프로필상에 나타난 그의 재능은 다른 두 사람을 압도하고 있었다.
현재 능력치 역시, 이미 9살 위인 아놀드 드리스켈을 능가했으며.
무려 15살이 많은 존 위크스와도 그닥 차이를 보이지 않는 수준.
그러고 보면... 이런 빈센트 테일러마저 가뿐히 능가했었던, A+급 재능의 소유자이자 아리엘의 오너인 로빈슨 슈왈츠를 잃은 위어 공작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날 향해 이빨을 드러낸 놈을 용서해줄 생각은 없지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쿠당탕탕탕
1100rp의 공격을 받아낸 1400rp짜리 기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로스보우의 내려치기를 방패로 받아낸 코페시는 그 충격에 의해 형편없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비록 기준 출력(1000rp)보다 고작 100이 높은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넘긴 기간트와 넘기지 못한 기간트의 차이가 엄청나다는 말은 여러번 들은 바 있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 이상이잖아... 이것도 파일럿 특성의 영향인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고작 300rp 차이인 만큼, 안티가에 비해 30~50%가량 향상된 성능을 기대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건... 체감상 최소 2배는 강해진 것 같군.”
한층 업그레이드된 기체 스펙과 출력, 거기에 블루스펀까지 더해지자.
안티가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파괴력을 보여주는 크로스보우였다.
나는 쓰러진 코페시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든 두 기간트와 검격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카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두 기간트 모두 크로스보우에 비해 월등한 성능을 자랑하는 기체였지만.
빠르고 현란한 크로스보우의 움직임에 비하면,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연극무대에 처음 오른 어린아이의 몸짓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츠각
[.......!]
쓰러졌던 코페시까지 합류해 3대1의 격전을 벌이던 상황.
결국 빈센트 테일러가 탑승한 코페시의 오른쪽 팔이 내가 휘두른 검에 의해 잘려 나갔지만, 다른 두 기간트의 필사적인 방해로 인해, 녀석의 가슴을 꿰뚫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타아아아앗
나는 훌쩍 뛰어 세 기간트에게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착지했다.
그리고 이내 한 가지 스킬명을 내뱉었다.
“운디네.”
파아아아아아앗
허공에 거대한 물방울이 맺히며 투명한 여성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려 1미터에 가까운 여성의 형상을.
#4
[저, 정령? 미친! 정령까지 다룰 수 있다고?]
아군 통신 채널로 들려오는 아놀드 드리스켈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들으며, 존 위크스 금독수리기사단 부단장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마검사라는 적 기간트 오너는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작자인지.
도무지 기간트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움직임을 연달아 선보이더니, 기어이 빈센트 테일러가 운용 중인 코페시의 한쪽 팔을 잘라내 버렸고.
그 직후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정령까지 소환해 내기에 이르렀다.
고오오오오오오오...
소환된 정령으로부터 거대한 마력의 유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웰론강에서 치솟아 오른 엄청난 양의 물이 공작가의 세 기사를 사나운 기세로 덮쳐왔다.
콰과과과과과과과...
그와 동시에, 크로스보우를 중심으로 새하얀 얼음의 대지가 생성되었으며.
하늘에서는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우박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얼음의 대지와 얼음 비가 지닌 냉기의 영향을 받아.
팟
팟
팟
.
.
.
파앗
세 기사를 덮쳐오던 강물이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얼음 창으로 변화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아무리 마력 방어마법진을 갖추고 있다고 한들, 절대적인 물량에는 장사가 없었다.
게다가 얼음의 창은 상당한 수준의 물리공격력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얼음의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시점.
세 기의 기간트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상체 외부 장갑 파손율 : 29%, 하체 외부 장갑 파손율 : 22%]
마법(정령)에 의한 공격이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피해였기에, 존 위크스는 쉽사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두 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장에 강림한 사신은 그들의 사정을 봐줄 생각 따윈 눈곱만큼도 없었다.
촤르르르르륵
서걱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솟아난 거대한 넝쿨.
그 넝쿨에 묶인 아놀드 드리스켈의 코페시가 목이 날아갔고.
[커어어어억!]
연이어 크로스보우의 검에 의해 가슴을 관통당했다.
그리고 한쪽 팔이 잘린 채 대지에 주저앉아 있는 빈센트 테일러의 코페시는.
[.......]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상체가 사선으로 잘려 나갔으며.
마지막으로 사신의 칼날이 향한 대상은...
홀로 얼음의 대지 위에 서 있던 존 위크스 자신의 글라우디스였다.
“괴물...”
그것이 위어 공작가 소속 금십자기사단 부단장 존 위크스가 이승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콰드드득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뻗은 크로스보우의 검날에 몸통의 정중앙이 꿰뚫린 글라우디스의 안광에서 푸른 기운이 사그라들었고.
콕피트 내 생명의 기운 역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파아아아아앗
파아아아아앗
파아아아아앗
이윽고 3기의 기간트가 순차적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파아아아아앗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크로스보우가 소환 해제되자.
‘............’
소란스럽던 웰던 강가에 지독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 누구도 목격할 수 없었던 웰론 강변의 3:1 기간트 전투는.
한쪽이 압도적으로 불행해지는 결과만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