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60화 (60/169)

60화 카보넬 상단(2)

#1

“아무래도 상인이다 보니 소문에 민감한 편이죠. 고위 흑마법사를 단신으로 해치우고, 기간트까지 동원된 음모에서 백작가의 후계자를 구해낸 용병 마검사! 혜성처럼 등장한 이 엄청난 실력자에 대한 이야기는... 적어도 루페른의 대상(大商)들 사이에선 이미 모르는 이가 없더군요.”

로이얀 카보넬은 카보넬 상단의 주인인 블레인 카보넬 후작의 여섯 자식 중 하나이자, 차기 상단주에 가장 근접한 후계란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는데.

대부분 후계자 구도에서 밀려난 자식들이나 서자, 혹은 방계가 상단을 창업하곤 하는 루페른과는 달리, 국가의 아이덴티티가 무역국인 비다드 왕국에서는 귀족가 자체가 ‘그들의 성을 내건 상단’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로이얀 카보넬이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마라몬트와 카이샨의 국경지대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라면 로블 영지로군요. 다행히 저희가 자주 이용하는 기착지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서 출항하면...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대략 9일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죠.”

루페른과 비다드의 국경지대에서 우연히 만난 로이얀 카보넬.

그와 한 마차에 몸을 싣고 도착한 곳은 비다드 왕국 남부의 왕실 직할령 ‘벨라디시’였다.

이곳은 비다드 왕국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가 존재하는 도시였는데, 카보넬 상단의 본단이 바로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외모와 다이아몬드 용병패만으로 단박에 내 정체를 유추해낸 로이얀 카보넬은 마차로 이동하는 내내 지극정성으로 나를 대했다.

그리고 그의 그런 태도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종일관 가볍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던 로이얀 카보넬이 처음으로 상인다운 얼굴을 하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이번 이펜타르크 행에는 상단 역사상 손에 꼽히는 거래가 걸려있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그의 말에 따르면, 카보넬 상단이 이펜타르크 제국과 거래하고자 하는 품목은 바로 ‘소금’이었다.

비다드는 왕국 서부 전역이 해안에 면해있는 데다, 바람이 비교적 약하고 일조량이 풍부해 예로부터 질 좋은 소금이 나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무려 지난 40년간 미트리 후작가가 운영하는 미트리 상단이 이 소금의 전매권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작년을 끝으로 그 40년의 기한은 끝을 고했고.

왕실과 고위 관료들에게 엄청난 로비를 퍼부은 끝에, 생산량의 40%에 대한 판매 권리(미트리 40%, 에머슨 20%)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해상 무역로를 가지고 있지 못한 미트리 상단의 경우, 그동안 루페른과 바이런, 샌포드, 마라몬트 등 육로로 운송이 가능한 국가에만 소금을 수출해 왔지만.

바닷길을 통한 무역에 주력하는 카보넬 상단은 달랐다.

그들은 곧장 이펜타르크 제국과 교섭해 거래를 성사시켰고, 미트리 상단에 비해 무려 1할 가까이 인상된 가격으로 소금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이펜타르크 제국 입장에서도 손해가 아니었는데. 대륙에서 가장 질이 좋다는 ‘비다드제 소금’을 바이런이나 샌포드로부터 2차로 수입해 애용하는 귀족들이 많았고.

그렇게 사들이는 값보다, 카보넬 상단으로부터 직수입하는 가격이 훨씬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로이얀 카보넬의 말을 끝까지 들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딱 한 마디만을 말했다.

“적이 많겠군.”

“많죠. 바올린의 해적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권리를 강탈당했다고 생각하는 미트리 상단이나 그와 연결된 왕도의 관료들... 후우, 생각하자면 끝도 없군요.”

“그래서 나를 고용하고 싶다는 건가?”

“네, 사실 저희가 배를 띄운 이후 가장 위험한 시기는 출항 이후 3일 이내입니다.”

“왜지?”

“3일가량이 지나면 바올린의 세력권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니까요. 보통 습격은 출항 직후 3일 안에 일어날 수밖에 없죠. 그런 의미에서, 이 계약은 로블 영지가 목적지인 스노우님과 저희 상단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럴듯하군.”

“물론 조건은 최상으로 맞춰드리겠습니다.”

“들어보지.”

“하루 60골드. 그리고 교전 상황 발생 시, 전과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추가로 지급하겠습니다. 제 신용을 걸고, 절대로 부족하다 느끼시지 않을 만큼의 금액을......”

60골드면 상당한 금액이다.

이 세계 평민 가정의 한 달 생활비가 5골드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한 가정이 빡빡하게 1년(13달)을 버틸 수 있는 돈을 하루에 벌어들이는 셈이었으니까.

한 달을 기준으로 다이아몬드 등급 용병을 고용하는데 드는 금액은 최소 700골드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인센티브를 제외한 순수 기본급이었다.

보통 1000골드 이상은 알텐시아 개척단이나 전쟁에 참여하는 용병 오너들이 받을 수 있는 몸값이었고, 그중에서도 실력이 출중한 이들은 1500골드든 2000골드든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장기 계약에 비해 단기 계약의 의뢰금은 당연히 더 비쌀 수밖에 없었고, 60골드라면 다이아몬드 등급 용병으로서도 최상위 수준의 대우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 벨라디시에서 마라몬트의 로블 영지까지 가는 동안.

카보넬 상단의 배에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최소 500골드 이상의 의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는데.

하지만...

‘500골드 정도는 있으나 마나 한 돈이지.’

내게 있어 이 세계의 ‘돈’이란 그저 ‘기간트를 구매할 수 있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구매하려는 기간트들은 수십만 골드의 가격이 붙어있는 기체일 테니, 최소 ‘만’ 단위의 돈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좀 더 질러보는 게 좋겠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냥 목적지까지 편하게 도착한 셈 치지 뭐.’

나는 슬그머니 계약서를 내미는 로이얀 카보넬의 손을 무시한 채 다른 제안을 던졌다.

“전과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라... 난 그딴 불명확한 말은 질색이다. 그러니 이쪽에서 다시 제안하도록 하지.”

“네? 제안이라면...”

“일당은 30골드로 줄이겠다. 대신 침몰시키는 해적선 한 척에 1000골드, 해치우는 적 기간트 한 기에 2000골드를 받도록 하지.”

“......”

이는 해적왕국 바올린이 기간트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비다드나 마라몬트에 비해 영토와 인구가 1/10가량에 불과한 바올린이 그들과 더불어 수십 년간 대륙 서부 바다의 패권을 다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만이 지닌 독특한 기간트 운용술 덕분이라고 하는데.

물속에서의 움직임이 극히 제한되는 여타 기간트에 비해, 바올린의 기간트 중 일부는 비교적 자유로운 기동이 가능했고. 바다에서 그들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화를 퍼부어야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언제나 완벽하게 피해를 막아내지는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다행인 점은, 바올린 왕국이 보유한 20여기의 기간트 중 그런 이적이 가능한 기간트는 단 3기가 전부라는 점이었다.

‘그건 아마, 오너 쪽에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황당한 표정을 지었던 로이얀 카보넬은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내 제안이 담긴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었다.

“정말 이걸로 되겠습니까? 아시겠지만 바다에서는 기간트의 활용도가 극히...”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슥슥슥

이로써 역사상 유례없었던 용병 계약이 체결되었고.

카보넬 상단의 배 13척(대형 무역선 3척, 호위선 10척)이 벨라디시를 떠나 대륙 북부 이펜타르크제국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2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퍼어어어어어어엉

퍼어어어어어어어엉

“실드! 실드가 약해지고 있다! 당장 제어장치에 마석을 추가해!”

“디오니스호 반파! 구조작업을...”

“같이 죽고 싶어? 일단 뭐든 붙잡고 있으라고 해! 구조는 전투가 끝난 이후다!”

“넵!”

바올린의 해적 선단은 마치 약속된 것처럼 항해 이틀째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항 직전까지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역시나 정보가 새어 나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

로이얀 카보넬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겨났다.

“젠장, 첩자들을 색출해 내느라 쓴 돈이 얼만데...”

최근 몇 달간.

카보넬 상단은 유능한 탐정과 조사관들을 고용해 조사를 진행하고, 최면과 마법을 이용한 심문으로 상단에 잠입한 쥐새끼들을 솎아내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이는 그들의 주력 거래 품목으로 소금이 추가되었기 때문인데.

물에 젖는다고 해서 가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대부분의 거래 품목과는 달리, 소금은 물에 닿는 순간 끝장이었기에 보안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결국 맞닥뜨린 바올린의 해적들.

바다의 신 ‘파라모스’의 가호 없이는 건넌 수 없다는 도버슨해 너머의 거대한 섬 ‘마라’에 근거지를 둔 탓에, 대규모 토벌대를 보내는 것조차 어려웠고.

급기야 왕국으로까지 성장해 버린 이 해적 집단은 그 행사가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포로로서 가치가 없는 이들은 모두 죽여 물고기 밥으로 던져 주었고, 통행세 협상 같은 건 애초에 통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이례적으로 바올린의 해적들이 먼저 협상을 제안해오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마법으로 증폭되어 들려온 그들의 메시지는...

무역선과 그에 실린 물건을 두고 간다면, 나머지 배와 사람들은 순순히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는 배에 실린 것이 소금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로이얀 카보넬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기에 모든 배에 전투 준비를 명했다.

하지만 제대로 작정한 건지, 해적 선단은 카보넬 상단의 3배에 가까운 35척의 전투선을 이끌고 나왔고.

이는 도무지 승리를 점칠 수 없는 암울한 전력 차였다.

양측의 거리가 벌어져 있는 전투 초기의 공방은 선박마다 3~6문씩 보유하고 있는 마력포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마력포의 위력이야말로, 카보넬 상단이 바올린의 해적들에 비해 앞서는 유일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엄청난 돈을 투자해 호위선의 장갑과 마력포를 개량해 왔고, 심지어 가장 중요한 무역선에는 천문학적인 가격의 실드 마법 제어장치까지 설치해 둔 상태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퍼어어어어어어엉

“끄아아아아아악!”

“배, 배가 기울고 있다!”

“살려줘!”

전투 개시 10여 분 만에 해적선 5대가 박살 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상단의 호위선 2기 역시 완파되었다.

2배가 넘는 전과였지만, 양측의 전력 차이는 그 이상이었기에 전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포격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양측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어느새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사거리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카보넬 상단 소속(용병 포함) 마법사들과 해적 선단 소속 마법사들의 마법이 푸른 바다 위를 화려하게 수놓기 시작했다.

“파이어 스피어!”

“에어 웨이브!”

“스파이럴 토네이도!”

“윈드 블레이드!”

“썬더 캐논!”

개중에는 스노우의 스킬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5써클 상위 마법도 존재했다.

전면에 여러 겹의 실드를 전개한 채 이를 지켜보고 있던 스노우에게로 로이얀 카보넬이 다가왔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스노우님께서 나서주십시오.”

스노우는 최상급 엑스퍼트이자 6써클 마법사로 알려져 있었기에.

그가 6써클 마법으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로이얀 카보넬 역시, 6써클 마법사 한 명의 활약으로는 전황을 뒤집기 어렵다는 사실을 내심 인정하고 있었기에.

스노우에게 말을 건네는 와중에도, 그의 머리는 엄청난 속도로 계산기를 두들기며 어떻게든 손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었다.

‘이자가 시간을 벌어줄 수만 있다면, 한두 척의 무역선 정도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호위함 대부분을 희생한다면... 어쩌면 세 척 모두를 살릴 수 있을지도. 그렇다면 손해를 최소화할 수...’

그때, 양측의 (마법 포함)포격전을 감상하듯 바라보던 스노우의 입이 열렸다.

“지금부터, 눈 똑바로 뜨고 정확하게 기록하도록.”

“네?”

로이얀 카보넬은 너무나 태평한 스노우의 모습에 분노와 묘한 안도감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곧바로 분노가 안도감을 압도했고, 그는 조금 격앙된 어조로 말을 뱉어냈다.

“기록하라니? 대체 뭘 기록하란 말입니까? 그보다 지금 전황이 아군에 극도로...”

스르륵

순간, 스노우의 아공간 주머니가 열리며 휘황찬란한 무늬의 망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을 대충 둘러맨 스노우가 로이얀 카보넬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말을 반복했다.

“눈 똑바로 뜨고, 정확하게 기록해.”

그리고는 하늘 위로 빠르게 솟구치기 시작했고.

곧장 바올린의 해적 선단 위로 날아간 그로부터.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퍼어어어어어어엉

파츠츠츠츠츠츠츠츠

.

.

.

퍼어어어어어어엉

수십 개의 마법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마법 폭격의 집중 타겟이 된 세척의 전투선이 만신창이가 되어 가라앉기 시작했고.

이후 적선 중 하나로 낙하하기 시작한 그는.

파아아아아앗

공중에서 7미터가량의 강철 거인을 소환한 다음 곧바로 탑승.

그대로 배의 갑판 한가운데에 착지를 감행했다.

콰지지지직

10톤 이상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해적 전투선은 그대로 두 동강 나는 신세를 면치 못했고.

그런 참사를 불러온 기간트는 이내 조각 난 배를 밟고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타앗

곧장 두 번째 먹잇감을 향해 내리꽂혔다.

콰지직

그 광경을 바라보던 로이얀 카보넬이 홀린 듯 한 마디를 뱉어냈다.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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