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65화 (65/169)

65화 달빛과 별빛, 그리고 어둠

#1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퍼어어어어어엉

새카만 전신을 한껏 웅크린 채 거대한 방패를 어깨로 받힌 아트론의 머리 위로.

8미터에 가까운 얼음 창 두 개와 직경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불덩어리 하나가 내리꽂혔다.

아트론의 거대한 몸을 완전히 가린, 길이 7미터 너비 4미터에 이르는 타워 실드를 강타한 얼음 창이 산산이 부서지며 파편을 흩날렸고.

뒤이어 충격을 가한 불덩어리의 엄청난 열기에 의해, 그 파편들은 순식간에 흔적조차 없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세 개의 마법에 실린 물리력을 감당하지 못한 아트론은 뒤로 십여 걸음이나 밀려나 버렸다.

쿵쿵쿵쿵쿵쿵......

겨우 걸음을 멈추며 균형을 바로잡은 아트론이 재빨리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기간트에 탑승하기 전에 만들어낸 그것의 다섯 배에 달하는 웅장한 크기의 석벽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조금 전까지 그 위에서 마법을 시전하던 7미터짜리 강철거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앙

카아아아아아아앙

카아아아아아아아앙...

석벽의 아래.

그곳에는 ‘툴루에(카이샨을 구성하고 있는 8부족 가운데 하나)’의 오너 중 서열 3위이자 알마탄 요새의 경비대장인 구너의 베너젤(7.6미터, 8.8톤, 1800rp, 드워프제)이 육중한 덩치의 크로스보우(7.2미터, 9.3톤)를 상대로 엄청난 연격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크로스보우는 중갑형 기간트답지 않게, 검 한 자루만으로 상급 엑스퍼트의 끝자락에 달해 있다는 구너의 고절한 검술을 모조리 받아내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물론 기간트에 탑승한 상태이기에 본신의 검술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구너는 기간트 조종 실력 역시 카이샨의 오너 중 20%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였다.

게다가 두 기간트의 출력 차이는 무려 700rp.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대결은 무려 50여 합을 겨루는 동안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채 완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하나둘씩 깨닫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실력자다.’

크로스보우의 오너는 두 단계는 윗줄의 고성능 기체를 상대하는 와중에도, 틈을 노려 공격을 시도하려는 다른 두 기간트에 대한 견제를 잊지 않았는데.

어찌나 시의적절하게 마법을 구사하는지, 두 기간트의 대결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경 30미터 이내로는 도무지 접근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크윽!”

아트론의 오너인 반할은 일정 영역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어김없이 날아드는 불의 창을 막아내며 침음성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위력은?”

방패의 내구도는 이미 70%가 날아가 버린 상태였고.

상체와 하체의 관절 부위마저 각각 6.7%와 8.4%가 손상되어 버린 상태였다.

마법에 의한 직접 타격이 아닌, 그 여파를 감당해 내는 것만으로도 기간트의 신체에 무리가 가버린 것이다.

“마법 하나하나가, 최소 5써클 최상위 수준의 위력이란 건가?”

분명 크로스보우의 오너가 사용하는 마법은 3,4써클 수준의 중급 마법이었다.

다만 그 크기가 일반적인 마법의 수 배에 달했고, 위력 또한 그에 걸맞게 폭증한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베너젤과 크로스보우의 1대1 대결이 이어진 지도 5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부터 순식간에 전투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쉐에에에에에엑

따아아아앙

위에서 아래로 베어오는 검의 옆면을 마력을 응집한 손끝으로 쳐내는 말도 안 되는 기예를 선보인 크로스보우.

베너젤의 검은 속절없이 오른쪽으로 튕겨 나갔고.

훤히 비어버린 가슴으로 몸을 180도 회전시킨 크로스보우의 팔꿈치가 작렬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충격으로 허공에 떠오른 채 뒤쪽으로 밀려나는 베너젤.

그리고 다음 순간.

슈와아아악...

잔상이 남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 크로스보우가 베너젤의 뒤를 잡았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거머쥔 검을 한껏 뒤로 끌어당긴 다음.

콰드드드드득

여전히 공중에 뜬 채 뒤로 밀려오던 베너젤의 등을 관통해버렸다.

이윽고 검을 놓아버린 크로스보우는 베너젤을 구원하기 위해 한발 먼저 움직인 볼테스(1300rp, 드워프제)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고.

파앗

잠시 뒤 옅은 빛과 함께 다시 나타난 검을 휘둘러...

츠가가각

볼테스의 몸통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아아아아앗......

2미터를 훌쩍 넘는 거한 가빈을 필두로, 알마탄 요새의 성문에서 튀어나온 십 수명의 오너들이 일제히 기간트를 소환했다.

그러자 다시 한번 미련 없이 검을 놓아버린 크로스보우는.

드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륵......

하나하나가 15미터 이상의 높이를 자랑하는 십수 개의 석벽을 촘촘하게 쌓아 올린 뒤.

타앗

타앗

타앗......

엄청난 속도로 그것들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석벽 위에 또다시 석벽이 솟아오르기를 다섯 차례.

80여 미터 높이의 석벽 꼭대기에 올라선 강철거인이 거만한 자세로 아래쪽을 내려다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이적에 경악한 카이샨의 오너들은 이미 전원 움직임이 멎어버린 상황.

꿀꺽

조금 늦게 움직였다는 이유로 목숨을 건진, 아트론의 오너 반할은 마른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멍청한 구노, 일단 대화라도 해볼 일이지...”

아마 지옥에 있을 구노 역시.

그런 후회를 하고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는 반할이었다.

#2

처음에는 막 오너가 된 놈의 치기라고 생각했다.

가빈 올맥이 들었던 정보에 따르면, 저 동양인 마검사는 오너가 된 지 채 한 달조차 되지 않는 애송이(어디까지나 오너로서)였으니까.

구노와 수하들의 공격을 간단하게 받아내는 그의 검술과 마법 실력은 과연 대단했다.

‘6써클 마법사에 최상급 엑스퍼트라니... 말 그대로 괴물이로군.’

하지만 ‘진짜 괴물’인 소드마스터를 직접 목격한 적이 있는 가빈 올맥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기간트 전투라는 건 본신의 실력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동일한 운종 실력을 지니고 있다면, 본신의 실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승리를 거머쥘 확률이 높겠지만.

가빈 올맥이 판단하기에 둘 중 더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기간트 운종 실력이었다.

그렇기에 본신의 실력이 상급 엑스퍼트 수십 명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강자라 할지라도... 기간트 전투에서 그런 무쌍을 찍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최고의 실력자가 엄청난 기간트 운용술을 익힌 채, 최상급 기체에 탑승하면 가능하겠지.’

그리고 그런 인물을 꼽는 것은 전 대륙을 통틀어 열 손가락이면 충분했다.

최초 구노의 베너젤과 호각을 이룰 때는, 이번에도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생각에 슬며시 입가를 들어 올렸던 가빈 올맥이었다.

그가 구너를 상대하며 다른 두기의 기간트를 마법으로 견제를 시도하는 모습을 선보인 순간에는, 기간트 운용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것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2분, 3분... 시간이 흘러감에도 처음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는 전장의 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다.

‘씨발, 저건 그냥... 가지고 놀고 있는 것뿐이잖아!’

이 자리에 있는 수십 명의 카이샨 측 인물 중.

오직 오랜 용병 생활로 단련된 눈치와 구너 이상으로 최상급의 경지에 가까이 닿아 있는 가빈 올맥만이 알아차린 진실이었다.

그는 재빨리 구너의 수하 중 하나에게 말했다.

“이봐!”

“네, 네?”

“당장 가서 구산에게 오너들을 몽땅 데리고......”

알마탄 요새 내에서 가빈 올맥이 지닌 영향력은 결코 구너의 아래가 아니었기에, 구너의 부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빠르게 달려 성문을 넘었다.

그리고 고작 1분 뒤.

콰드드드드득

“젠장,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기어이 본색을 드러낸 크로스보우에 의해, 구너의 베너젤은 채 2합조차 버티지 못한 채 몸통을 꿰뚫리고 말았고.

순식간에 그의 부하가 탑승한 볼테스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 순간.

“으아아아아악! 구너의 복수다! 저놈을 죽여!”

구너의 형인 구산을 비롯해 십 수명의 툴루에 출신 오너들이 기간트에 탑승하며 크로스보우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 선두에는 아군의 존재를 눈치챈 가빈 올맥의 자벨린이 자리하고 있었다.

“괜히 덤터기 쓰지 않으려면... 뭔가 하는 척이라도 해야겠지.”

이런 곳에서도 베테랑 용병의 단련된 눈치는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용맹한 발걸음은...

드르르르르륵......

순식간에 자그마한 규모의 동산을 만들어낸 거대한 석벽의 빠른 증식 앞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미친...”

7서클 대마법사나 만들어낼 법한 경이적인 이적에, 카이샨의 오너들은 모두가 발을 멈췄고.

까마득한 높이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강철거인을 향해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3

[베너젤(A) : 7.6m, 8.8톤(벨런스형). 출력 1800rp. 오르비스 대륙 북서부에 위치한 드워프 왕국 ‘엘가드’ 산하의 왕립병기창에서 제작된 기간트다. A-급 마력엔진을 탑재하여 동급 기간트 대비 출력이 떨어지지만, A+급 합금으로 이루어진 기체의 견고함은 동급 대비 매우 뛰어난 편. 장인의 손길이 닿아 매우 멋진 외관을 자랑한다. 엘가드제 기간트의 특색인 ‘마력 회로 강화’가 적용되어 오버클럭 시 안정도가 뛰어나다.]

멋들어진 외관의 검붉은 기간트는 역시나 드워프들의 솜씨였다.

베너젤이라는 A등급 기체를 분석하는 데에는 5분 37초가 걸렸는데.

마법보다는 손재주가 뛰어난 드워프족답게 장갑이 매우 튼튼했고, 마력엔진의 수준은 조금 부족했다.

그리고 내게는 멋진 외관보다도 못한 특색이었지만.

드워프의 섬세한 손길로 만들어내는 마력 회로의 정밀함으로 인해, 오버클럭 시 기간트의 신체와 마력엔진에 가해지는 부담을 대폭 줄여주는 것이 드워프제 기간트의 특잠점이었다.

그렇게 해서 올라가는 오버클럭의 한계 수치는 고작 2% 전후에 불과했지만.

오버클럭 수치가 1% 올라간다고 해서, 기간트의 성능 역시 1%만 증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 1,2%만으로도 적게는 3,40%에서 많게는 2배에 이르는 성능 향상을 이루어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바로 기간트의 오버클럭이었다.

일반적인 기간트들의 경우 오버클럭 수치는 최대출력의 2% 전후.

보통은 2%를 30초 정도 유지하는 것이 한계였고, 그 한계를 벗어나면 마력엔진의 폭발 위협에 노출되어 버린다.

하지만 드워프제 기간트의 경우, 2%의 오버클럭 정도는 1분 이상 유지 할 수 있었고. 3%, 기체에 따라서는 4%까지도 30초가량 유지할 수 있었기에...

‘가격에 상관없이 최고의 기간트를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드워프제 기간트를 꼽는다고 하지.’

물론, 내 경우엔 그런 기능 없이도 오버클럭 4% 정도는 1분 이상 유지가 가능했기에 딱히 군침을 흘릴 만한 특색은 아니었다.

‘내가 타면 5,6%도 가능하려나?’

적당히 시간을 끌며 분석을 마친 난, 그 즉시 베너젤의 공격을 쳐낸 뒤 곧바로 반격해 숨통을 끊어놓았다.

그리고 몸통이 꿰뚫린 베너젤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한 기의 기간트에게도 사형선고를 내렸다.

왜냐하면 ‘탐색(C)’ 스킬 덕에, 꽤 커다란 마력 반응들이 성문을 향해 몰려들고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십 여기가 훌쩍 넘는 기간트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베너젤을 능가하거나 버금가는 크기의 기체도 섞여 있었다.

아무리 ‘파일럿(S)’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들, 고작 1100rp에 불과한 크로스보우로는 저 많은 기간트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물론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한다면 못 할 것도 없겠지만.’

계약도 맺지 않은 입장에서 굳이 그런 서비스를 해줄 이유가 없었다.

“뭐, 그래도...”

양국 간의 전운이 무르익고 있는 상황.

이곳 알마탄 요새를 감시하는 마라몬트 측 인원이 없을 리 없었다.

당연히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모조리 바르틴 요새의 수뇌부에게 보고될 테니.

그 보고서에 적힌 내용에 따라 내가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이 달라질 터였다.

“어차피 카이샨 쪽으로 가는 건 글렀으니... 몸값이나 최대한 올려봐야겠군.”

카이샨측 기간트들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지금이 기회였다.

파앗

나는 조금 전 기간트를 해치운 곳에 떨어져 있던 검을 소환한 다음, 몇 가지 스킬을 시전했다.

“인첸트 경화, 인첸트 번플레어, 인첸트 플레임, 인첸트 블래스터......”

그리고 다음은...

“셀러맨더 소환.”

화르르르르르륵

사막의 밤하늘 위로.

입에서 연신 불길을 토해내는 4미터 크기의 거대한 도마뱀이 모습을 드러냈고.

카아앗

캬아아앗

이내, 불만스러운 듯 몇 차례 잔불을 토해낸 다음.

스르르륵

크로스보우의 손에 들린 불타는 검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삽시간에 몇 배로 몸집을 불리는 불길.

그제 서야 심상치 않음을 느낀 적 기간트들이 황급히 석벽 위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쯧, 조금 늦었다.”

나는 손에 들린 검을 뒤로 끌어당기며 마지막 스킬을 외쳤다.

“실피드.”

휘이이이이이잉

평상시보다 몇 배는 거세게 몰아치는 거대 실피드가 일으킨 바람을 타고.

슈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알마탄 요새의 성벽을 향해.

거대한 불길을 머금은 기간트의 검이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대한 불길을 머금은 먼지구름과 시커먼 연기, 거기에 허공으로 비산한 엄청난 양의 돌무더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부, 불을 꺼!”

“성벽! 성벽을 확인해!”

잠시 뒤.

각고의 노력으로 불길과 연기를 몰아낸 뒤 드러난 모습에.

카이샨 측 인원들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방어 마법진으로 보호받는 높이 40여 미터, 두께 5미터가량에 이르는 알마탄 요새의 성벽.

그중 너비 30여 미터에 이르는 부분이 아래쪽 일부만을 남긴 채 완전히 날아가 버린 것이다.

“헬파이어...”

누군가 7써클 최강의 화염계열 공격 마법 ‘헬파이어’를 입에 올렸지만.

이 참상을 만들어 낸 것이 마법이 아닌, 한 자루 검(마법이 걸려있기는 했지만)이었음을 모두가 똑똑히 지켜봤었다.

무너져내린 성벽을 향해 있던 가빈 올맥을 비롯한 기간트 오너들의 고개가 일제히 석벽의 정상을 향했다.

..............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사막의 밤을 가득 채운.

달빛과 별빛, 그리고 어둠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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