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70화 (70/169)

70화 첫 번째 기간트 대전(1)

#1

윌리엄 다이슨 사령관으로부터 카이샨 왕국의 선전포고문을 전달받은 왕실의 고위 관료가 왕도를 향해 떠나간 이후.

두 왕국 간의 전쟁은 본격적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미 몇 주 전부터 척후부대나 (비오너로 이루어진)기사단 간의 소규모 전투가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었지만.

정식으로 전쟁이 선포된 이후에는 양국의 국경을 지키는 요새를 기점으로 수만 단위의 전투 병력이 풀렸고.

조금이라도 더 넓은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교전에 들어갔다.

물론 이런 일반 병력 간의 싸움이 전쟁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은 드물었다.

이들의 전투는 그저 ‘정보’와 ‘군의 사기’라는 측면에서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했는데.

이 전쟁의 메인은 누가 뭐라 해도...

드르르르르륵

철커덩

땅땅땅땅땅땅땅...

각각 수십의 인원에 둘러싸인 채, 바르틴 요새의 제1 연병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저 강철거인들이었다.

“히야, 대체 저게 다 얼마야...”

“뭐, 전쟁에 들어가는 자금의 1/3이 저기에 쓰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이봐, 저스틴. 어때? 저건 네 못생긴 기간트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이참에 한 세트 달라고 해보지 그래?”

“뭐 이 새끼야? 감히 카트린을 모욕하다니... 갑자기 세상 사는 게 지겨워졌냐?”

“아, 이참에 추가 장갑으로 전신을 꽁꽁 싸매는 건? 그런 다음 후방에서 네 카트린의 어깨에 달린 그 흉측한 마력포를 뻥뻥 쏴대는 거지. 움직이는 마법 병기가 되어 보자고.”

“이 되다만 검둥이 새끼가? 그딴 건 널 닮아 거무죽죽한 네 기간트에나 쳐 달던가!”

“지금 뭐라고 씨부렸냐?”

이따위 게 몰락 귀족과 제국 비밀요원 간의 대화라니...

“체인 라이트닝(D).”

파츠츠츠츠츠츠츠

“으억!”

“악!”

이마를 맞대며(키 차이로 인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꼴이었다) 으러렁 거리던 저스틴 크로비스와 맷 스팅리에게 따끔한 전기 자극을 선사해주자.

펄쩍 뛰며 비명을 토해낸 두 녀석이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무슨 짓이야!”

“따갑다고!”

조금 멍청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사실 이 두 녀석은 무려 10여 년 전 상급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강자다.

D등급 체인 라이트닝 스킬 정도는, 그들에겐 조금 심한 정전기 정도에 불과할 터.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는 두 사람에겐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한참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신 사납다. 싸울 거면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라.”

애초에 내가 원해서 달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 두 녀석은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기 시작했는데.

‘난 부단장이야, 단장을 보좌해야 한다고.’

‘나도.’

윌리엄 다이슨 사령관은 내게 이제는 33명으로 늘어난 용병 오너들로 구성된 ‘임시 기사단’의 단장직을 맡겼다.

먼저 제안받은 헬레나 오도넬과 카일 어네스트가 완장을 거부하는 바람에, 저 두 녀석이 용병 기사단의 부단장이 되어 버렸고.

부단장으로서 단장을 보좌한다는 명분을 들이밀며 내게 엉겨 붙는 중이었다.

그리고 현재.

임박한 대규모 기간트 전투에 대비하여, 연병장에서는 아군 기간트들에게 추가 장갑과 무기를 장착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나는 이를 구경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사령부 건물 내 (임시)단장실을 나섰고.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죽치고 있던 이 두 녀석 역시 나를 따라 털레털레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뭐, 이 녀석들에겐 익숙한 광경이라 별다른 느낌이 없는 것 같지만...’

‘파일럿(S)’ 특성을 지닌 내겐...

장관(壯觀)도 이런 장관이 없었다.

#2

최종적으로 요새에 집결한 162기의 기간트 중 추가 장비를 장착하는 기간트는 90%에 가까운 147기였다.

그리고 현재 연병장에는 그 절반에 해당하는 73기의 기간트가 오와 열을 맞춰 마라몬트 왕국이 제공하는 추가 장비들을 장착하고 있었다.

73기의 기간트 중 대략 절반 정도는 내게도 익숙한 ‘루페른제’ 기간트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기간트는 루페른 왕국의 스테디셀러인 ‘크로스보우’였다.

‘엄청나게 팔아치웠다고 하더니만...’

출력 대비 뛰어난 내구력과 방어력, 거기에 동화율 보정 기능까지 탑재했기에.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 엄청난 효율을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추가 장갑을 완벽하게 갖춘 크로스보우는...

‘아니, 저래서 제대로 된 기동이 가능해?’

그렇지 않아도 대표적인 비만 체형 기간트인 크로스보우는, 숫제 둥글둥글한 공처럼 보일 정도로 비대해져 있었다.

‘설마 굴러서 이동하는 건 아니겠지?’

이런 내 감상과는 달리...

“역시 대규모 전투에선 저만한 녀석이 없지.”

“뭐, 킬포인트 올리기 힘든 건 인정.”

“넌 저거 타본 적 있냐?”

“아니, 바클리 전엔 제페토(800rp, 이펜타르크제)랑 버미어(1200rp, 크샨트제)를 탔었지. 넌?”

“나도 없어. 내가 다닌 아카데미에 루페른제 기간트라곤 폴암이랑 제블린 같은 저등급 기체밖에 없었으니까.”

베테랑 용병인 저스틴 크로비스와 맷 스팅리는 크로스보우에 대한 평가가 제법 후했다.

‘하긴...’

양팔의 움직임이 제한될 정도로 장갑을 덕지덕지 발라놨으니, 몸통을 꿰뚫어 오너를 죽이는 건 어지간한 힘과 기교가 아니고서는 힘들 것 같긴 했다.

뭐, 사실 이쪽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연병장에 있는 73기의 기간트 중에는 내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체 역시 무려 아홉 종류나 존재했고.

나는 시간을 들여 그것들을 한 기 한 기 분석해나갔다.

파아아아아앗

[분석이 종료되었습니다.]

[린저(B+) : 7.3m, 8.1톤(벨런스형). 출력 1200rp. 오르비스 대륙 중부에 위치한 샌포드 왕국 산하 왕립병기창에서 제작된......]

파아아아아앗

[분석이 종료되었습니다.]

[크로셋(B+) : 7.2m, 9.4톤(중갑형). 출력 1300rp. 오르비스 대륙 북부 이펜타르크 제국 산하 황립병기창에서 제작된......]

.

.

.

파아아아아앗

[분석이 종료되었습니다.]

[지암비(A-) : 7.5m, 10톤(중갑형). 출력 1600rp. 오르비스 대륙 동부에 위치한 노스럼 왕국의 ‘헤이그 공작가’가 소유한 기간트 제작소 ‘임페르노’에서 제작된......]

그동안 획득한 경험치 덕분에, 한 기 당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2~3분에 불과했고.

9종류의 기간트를 모두 분석하고 나자.

[고유스킬 ‘위대한 결속’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고유스킬 ‘마력기체’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고유스킬 ‘한계돌파’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고유스킬 ‘원격조종’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고유스킬 ‘수복’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고유스킬 ‘호랑이 교관’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고유스킬 ‘격납고’의 공간이 확장됩니다.]

[고유스킬 ‘변형’의 변형률 최대치가 증가합니다.]

실로 오래간만에 폭랩의 시간이 찾아왔다.

#3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크로스보우는 아무런 추가 장비를 장착하지 않은 순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요새에 주둔 중인 오너 중 순정 상태의 기간트를 고집하는 건, 나를 포함한 용병 오너 5인방과 마라몬트의 최상위권 오너 10인이 전부였다.

이들은 모두 무수한 경험과 뛰어난 실력을 지닌 강자들로, 이들 중 1800rp 미만의 기간트를 타는 사람은 크로스보우를 지닌 내가 유일했다.

물론 그간 이루어진 몇 차례의 대련으로 인해, 그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는 없었다.

사실 전면전이 임박한 마당에, 나 같은 실력자에게 더 좋은 기간트를 지급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신용’이라는 문제를 떠나, 그건 이 세계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존 기간트와 계약 해지 시 받게 되는 정신적 충격을 해소하고, 새로운 기간트에 다시금 적응하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게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년 단위인 것이 이 세계의 상식이었다.

그런 이유로, 애초에 그런 제안은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간 몇 차례 기간트 전을 치러본 바로는...

‘뭐, 크로스보우 정도면 충분하지.’

혼자서 수십 기와 맞서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도망칠 궁리부터 해야 할 테지만.

전장에는 홀로 서는 것이 아니었다.

“준비는?”

“끝났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도 합류한다.”

““넵!””

바로 어제 합류한 녀석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용병 오너는 보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를 비롯한 간부(?)들에게 철저하게 길들여진 상태였다.

오만한 용병 오너들을 길들인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압도적인 실력.

다들 경험이 풍부한 만큼, 전장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는 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확실한 실력을 지닌 우두머리의 존재였다.

척척척척척척척......

나를 포함한 용병 오너 33인은 20만 병력과 수십 기의 강철 거인들이 도열 해 있는 바르틴 요새의 성문 밖으로 이동했다.

기간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는데.

추가 장비를 부착한 채로 소환 해제를 했다가는... 기껏 붙여놓은 것들이 모조리 떨어져 버리기에, 전장까지는 걸어서 이동해야만 했다.

파아아아아앗......

수십 명의 오너들이 옅은 빛과 함께 기간트의 콕피트로 이동했고.

마라몬트 군 수뇌부와 기간트에 탑승하지 않은 15인의 오너를 필두로.

첫 번째 전장을 향한 마라몬트 군의 진군이 시작되었다.

#4

기간트의 등장 이후 이 세계의 전투 양상은 오히려 매우 단순해졌다.

‘기간트 대전의 승리가 곧 전쟁의 승리.’

아무리 많은 병력이 존재한다 한들, 기간트라는 비대칭 전력에서 밀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물론 소수의 기간트로 정찰이나 점령지 관리 같은 일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었기에, 일반 병력 역시 그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기간트로 인해 대륙의 전쟁사가 다시 쓰이기 시작한 이후로.

수많은 경험치를 쌓은 인류에게는 한 가지 불문율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기간트를 이용한 적국 영토 내 게릴라전은 지양한다.’

...였다.

기간트가 전쟁이 투입된 초창기만 하더라도, 각국의 수도는 물론이고 그 외 주요 영지들에 대한 기간트들의 테러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었는데.

이는 운에 의지하는 것 이외에는 대응할 방법이 없는 매우 잔혹한 수법이었다.

한 번에 수십 기의 기간트를 소환해 습격을 시도할 경우, 그 정보를 미리 획득하지 않는 이상 일순간 발생하는 전력 차를 메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수법은 전쟁 당사자인 양국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고.

기간트 테러에 기간트 테러로 대응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그 피해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으로 불어나고 말았다.

대륙에 ‘불문율’이 자리 잡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원수지간인 마라몬트 왕국과 카이샨 왕국의 전쟁에도 적용이 되었는데.

두 번째 전쟁까지만 해도, 불문율 따윈 개나 주라는 듯 서로의 영토에 기간트 테러를 감행했던 탓에.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나라가 망할 뻔한 경험을 한 양국 역시, 세 번째 전쟁부터는 암묵적으로 대륙의 불문율을 이행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는 전쟁의 향방이 완전히 기울어지기 전까지만 유효한 사항으로.

왕도가 위기에 처하거나 아예 빼앗긴 경우에는 불문율이고 뭐고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선대의 실수를 거울삼아 불문율을 착실히 지키게 된 마라몬트 왕국과 카이샨 왕국.

두 나라는 양국의 국경 사이에 존재하는 세미놀 평원에 병력을 집결시켰다.

양국 군대 간 거리는 대략 1km.

각각 20만과 25만 병력이 서로를 노려보는 가운데.

양쪽 진영에 삐죽하게 솟아있던 강철 거인 수백 기가.

쿠웅쿠웅쿠웅쿠웅쿠웅......

전장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현시대 대륙의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그 서전인 ‘기간트 대전’을 치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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