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71화 (71/169)

71화 첫 번째 기간트 대전(2)

#1

지구에서 던전 브레이크만을 전문적으로 처리했었던 탓에, 몬스터라면 수십만 단위의 군집을 지겨울 정도로 봐 왔지만... 인간의 병력 수십만을 눈에 담는 건 나로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양측 합계 45만에 달하는 병력.

그리고 병사들이 열어준 길을 따라 육중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전장의 중앙으로 이동하는 수백 기의 기간트들은 그 자체로 엄청난 장관이라 할 만했다.

조금 더 빨리 전장의 중심부에 도착해 진영을 잡기 시작한 것은 카이샨의 기간트들이었다.

이는 다분히 의도된 전략으로, 윌리엄 다이슨 사령관의 명령을 받은 지휘관들은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진군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이는 카이샨측 기간트들의 전력 비율을 알아낸 뒤 대처법을 정하기 위함이었는데.

사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리 의미 있는 작전은 아니었다.

이 세계 기간트 대전의 교범은 좌군과 중앙군, 우군을 나누고.

중앙에 가장 강력한 전력을 배치한 다음 양 측면 전력은 균등하게 가져가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과연 눈으로 확인한 카이샨 왕국 역시, 그 교범을 그대로 답습하는 중이었다.

162명의 마라몬트측 기간트 오너 중, 기간트 대전에 출진하지 않는 건 윌리엄 다이슨 사령관과 그의 호위를 위해 왕실이 파견한 근위기사 단 둘뿐이었다.

아마 카이샨 역시 초전부터 군의 우두머리가 전장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았을 터였다.

사령관이 말했다.

“예상대로 50기로군. 정말 자네들만으로 가능하겠나?”

기간트 전력이 열세(적어도 수적인 면에서는 확연하게)인 마라몬트 왕국이었기에.

기간트 대전을 하루 앞둔 어제.

군 수뇌부는 이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한 가지 작전을 제안해왔는데.

그 내용인즉. 용병 오너 33인만으로 구성된 전력으로, 대략 50기 전후로 예상되는 적의 양 측면 중 한 곳을 상대해 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물론 훨씬 더 많은 적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라’ 같은 양심 없는 요구는 아니었다.

‘중앙과 좌군의 승부가 결착을 볼 때까지 버텨줄 것.’

그들이 요구한 것은 바로 전선의 유지였다.

용병 부대가 그 정도 활약을 해준다면, 20여 기에 달하는 전력의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에 모든 용병 오너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고.

나는 작전을 수락하는 것으로 1만 골드, 작전 성공 시 추가 1만 골드를 용병들에게 지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었다.

사령관과 단둘이 자리를 가진 나는 한 가지 조건을 추가로 내걸었다.

‘중앙군과 좌군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전선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면... 킬포인트를 40점은 받아야겠습니다.’

‘40?’

‘킬포인트를 얻기 위해 날뛰면서 아군의 작전까지 고려할 자신은 없군요.’

대규모 기간트 전투를 경험해 본 적은 없었지만.

전투의 결과가 나올 정도라면, 적어도 4,5기 정도를 잡아내기엔 충분한 시간 아니겠는가.

잠시 고민하던 사령관은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었다.

‘생각보다 적의 전력이 강할 수도 있네. 실력자들을 꽤 많이 섭외했다더군.’

‘제 요구를 들어주신다면... 어떻게든 버텨내 보이겠습니다.’

‘좋아. 그대에게 걸어보도록 하지.’

‘실망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현재.

적 기간트 부대의 배치는 예상대로 좌군 50 중앙군 80 우군 50이었다.

이에 반해 우리 쪽 전력은...

첼시(2300rp, 이펜타르크제)의 오너 노만 리오넬 백작이 이끄는 57기의 기간트가 좌군을.

최상급 엑스퍼트이자 마라몬트 군부 내 오너 서열 2위인 배틀엑스(2500rp, 루페른제)의 주인 로버트 서튼 백작과 70기의 기간트가 중앙군을.

그리고 용병 오너로 구성된 임시 기사단의 기간트 33기가 우군을 맡고 있었다.

우군과 중앙군에 비해 확연하게 열세인 좌군.

하지만 나는 사령관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태연하게 답했다.

“적어도 저희 쪽이 먼저 뚫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타앗

그리고는 몸을 날려 용병 기간트 부대의 대열로 향하며 생각했다.

‘킬포인트도 노린다. 설마 40포인트를 주기로 했다고... 치사하게 추가 킬포인트로 뭐라 그러진 않겠지?’

#2

쿠웅쿠웅쿠우우웅

양측 합계 340기의 기간트가 300여 미터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나 역시 크로스보우를 소환해 마라몬트 측 우군의 선두에 섰다.

수백 기의 기간트가 뿜어내는 투기와 살기로 인해 몸이 오싹오싹 떨릴 지경.

‘이런 기분은 처음이로군.’

지구에서의 마지막 순간, 그 괴물 같은 등급 외 몬스터를 마주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었던 것 같은데.

전투의 시작이 임박했다.

[헬레나, 저스틴, 맷, 카일.]

[네.]

[불렀어?]

[말만 하라고.]

[네.]

대답과 함께, 나와 마찬가지로 추가 장비를 전혀 장착하지 않은 기간트 4기가 내 곁으로 모여들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헬레나와 저스틴, 맷은 적이 아군의 후방으로 우회하지 못하도록 막아라.]

[알겠습니다.]

[예아압!]

[간단하군.]

세 사람에게 명령을 내린 나는 아름다운 무늬가 전신을 수놓은 날렵한 기간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카일.]

[네.]

[넌 후방에 남는다. 남아서 날 향한 견제를 차단해라.]

[네? 그게 무슨...]

[시작할 것 같군. 나머지는 훈련했던 대로만 하면 된다, 그럼 살아서 추가 보상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추가 장갑을 덕지덕지 붙인 28기의 기간트가 각자의 무기를 들어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휘이이익!]

[반드시 살아남아 주겠어.]

[잊지 마, 에디. 네가 죽으면 네 의뢰비랑 추가 보상은 모두 내 차지라고.]

[넌 아닌 것처럼 말하지 마!]

[승리하면 거하게 한턱 내지!]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 티에리.]

용병들다운 자유분방한 반응.

이 모든 게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용병 나름의 방식이라는 걸 알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양측이 내뿜는 투기가 절정에 달했다.

[정렬!]

28기의 뚱뚱보 기간트들이 촘촘하게 밀착하며 일자 방진을 짰고.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기간트의 신장에 준하는 거대한 방패가 들려있었다.

방진이 완성되자 헬레나와 저스틴, 맷 콤비가 각각 기간트로 이루어진 거대한 성벽의 좌측과 우측으로 갈라졌다.

[단장, 나는 왜 후방에...]

의아한 듯 물어오는 카일 어네스트를 무시하며 스킬을 시전했다.

[록월, 록월, 록월.....]

크로스보우와 아란델의 발밑에서 거대한 석벽이 솟아올랐다.

30미터 높이까지 솟아오른 석벽은 단숨에 수십만 병력과 수백 기간트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록월. 경화, 실드.]

나는 태연하게 스킬을 시전해 크로스보우와 아란델의 상체 절반 정도를 가리는 나지막한 석벽을 만들어냈고 이를 강화했다.

이로써 마법 폭격을 위한 포대가 완성되었다.

‘이런 건 또 내가 전문이지.’

‘하늘의 개쌍놈’, ‘미치광이 폭탄마’라 불리던 자타공인 폭격 전문가의 재림이었다.

#3

쾅쾅쾅쾅쾅쾅...

쿵쿵쿵쿵쿵쿵...

나는 적 기간트들이 돌진해 오는 순간, 아군 기간트 28기에 일일이 스킬을 시전했다.

‘거북이 토템, 거북이 토템, 거북이 토템......’

[거북이 토템(C) : 착용한 갑옷류의 방어력을 12% 증가시킨다. 50% 이상 파손될 시 스킬이 해제된다. 초당 3의 마력을 소모한다.]

근력을 높여주는 ‘곰 토템’이나 방패의 방어력을 상승시키는 ‘경화’ 스킬 역시 유용했을 테지만, 28기나 되는 기간트에 모두 사용하기엔 아무리 나라도 마나가 부족했다.

‘당장 거북이 토템 하나만으로도 1분에 5000 이상의 마나가 소모되니까.’

거북이 토템은 가장 큰 충격이 발생하는 첫 번째 충돌에서 이득을 보기 위한 버프였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첫 충돌 이후 대략 10여 초가 지난 다음 곧바로 스킬을 취소시켰기에 소모된 마나는 1000이 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스킬들과 마찬가지로, 본신이 아닌 기간트의 마력엔진에 의해 증폭된 스킬의 위력은 엄청났다.

카이샨 측 우군의 선두에 선 것은 대부분 만만치 않게 추가 장비를 바른 기간트들이었다.

쿠당탕탕

드르르륵

콰아아아앙

하지만 가속도까지 붙어 있는 입장이었음에도, 적 기간트 중 몇몇은 충격으로 인해 중심이 무너져버렸고. 그중에서도 두 기는 뒤로 밀리며 지면을 나뒹구는 추태까지 보였다.

그리고 당황한 건 마라몬트측 오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생각보다 훨씬 할 만한데?]

[미친, 신입들을 전장에 데려온 건가? 넘어진 놈들은 뭐야?]

[마법! 마법이다! 대장이 마법을 쓴 게 분명해!]

[대장이 아니고 단장!]

[병신아, 지금 그게 중요해?]

서로의 몸에서 발산되는 은은한 녹빛을 확인한 아군 오너들의 사기가 치솟았다.

콰아아앙

그들은 방패를 지면에 박아넣은 뒤, 이를 어깨로 지지하며 적 기간트들의 공세를 버텨냈고. 틈을 노려 다른 손에 들린 검을 찔러넣었다.

하지만 버프가 사라지자 적들의 공세가 한층 거세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용병 오너들은 이를 악물고 점차 적의 공격을 버텨내는 것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잘 버티고 있군.’

하지만 저 상태가 지속되면 아무리 방어에만 치중한다 한들, 수적인 열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적 기간트 대여섯 기가 측면과 후방을 공략하기 위해 우회했고.

이를 아군의 에이스 오너들이 막아서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저쪽도 당장은 문제없을 것 같고.’

적과 아군이 밀착한 상태라 광역 스킬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조준, 아이스 스피어. 조준, 아이스 스피어. 조준, 아이스 스피어......”

내 머리 위로 7미터에 이르는 얼음의 창이 연속으로 생성되었고.

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12개(중복 가능한 최대 개수)의 얼음 창이 아군의 방패를 내리치고 있는 적 기간트들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마법이다! 대비...]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실력이 뛰어난 오너들은 훌쩍 뛰어 피하거나 검 혹은 방패로 마법 공격을 파훼하는 데 성공했지만.

다섯 기의 기간트는 미처 방어할 새도 없이 얼음의 창에 직격당해 뒤로 크게 물러나거나 대지 위를 나뒹굴고 말았다.

특히 비교적 작은 체구의 기간트 한 기의 경우, 머리의 일부가 파괴되는 바람에 시야에 이상이 생긴 듯.

비틀거리며 전장을 이탈하고 말았다.

[허, 무슨 마법의 위력이...]

옆에서 들려오는 감탄성을 무시하며 이번에는 불의 창 십여 개를 생성해 적진을 향해 날려 보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하지만 이미 마법 공격에 대한 경각심을 지니고 있었던 탓인지, 불의 창에 직격당하는 적 기간트는 없었다.

하지만 신경이 분산된 덕분에 28기의 아군 기간트들은 한결 편하게 전열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 정도로 끝나면 폭격이라고 할 수 없지.’

나는 여전히 90% 가까이 남아 있는 마력을 이용해 폭격을 이어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파츠츠츠츠츠츠츠

퍼어어어어어엉

거대한 바람의 칼날과 하늘에서 내려치는 벼락, 직경 6미터짜리 불덩어리에 적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마법 직격에 이은 아군의 칼질로 인해, 한 기의 카이샨측 기간트가 또다시 전열을 이탈하고 말았다.

움직이는 걸로 봐선 킬포인트를 올리는 데는 실패한 것 같았지만.

기간트의 검날에 묻은 피로 보아 작지 않은 부상을 입은 게 확실해 보였다.

결국 견디지 못한 카이샨측 기간트 몇 기가 활을 꺼내들었고.

신장 8미터가 넘어갈 듯한 적기가 하나가 엄청난 도약으로 아군 기간트들을 뛰어넘어 석벽을 향해 질주해 오기 시작했다.

터엉

터엉

터엉

적 기간트들의 화살 공격은 내가 생성해낸 실드를 뚫지 못한 채 허무하게 사그라들었고.

나는 놈들을 향해 얼음과 불로 이루어진 3,4미터 길이의 화살 세례를 되돌려 주며 입을 열었다.

[네 차례다, 카일.]

[...그런 것 같군요.]

최소 2000rp 이상으로 보이는 카이샨의 붉은색 기간트와 출력 2000rp의 엘프제 기간트 아란델이 석벽 아래에서 격돌했고.

나는 적 기간들의 힘이 조금 더 빠지기를 기대하며.

마법 폭격을 이어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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