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72화 (72/169)

72화 첫 번째 기간트 대전(3)

#1

“하나, 둘...... 서른셋? 하, 이거 진짜야? 마라몬트 놈들이 갑자기 미쳐버리기라도 한 건가?”

왕국 전쟁에 카이샨 쪽으로 참전한 용병 오너는 모두 17명이었고, 그중 8인이 이곳 서부 전장에 투입되어 있었다.

조금 전 헛웃음을 흘린 이는 1900rp급 기간트의 오너 브랜딘 던이었다.

현재 카이샨 기간트 전력의 좌군에는 8인의 용병 오너 중 자타공인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바실론(2300rp, 크샨트제)의 오너 멜빈 가이우스를 포함한 4인이 투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표현 방식은 다를지언정, 브랜딘 던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중이었다.

“비대칭 전략을 구사하더라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무리수를 뒀군.”

“첫 전투는 거저먹는 건가?”

좌군에 투입된 카이샨 측 기간트의 주력은 출력 1200rp의 드워프제 기간트 바이샨 29기와 마찬가지로 드워프제인 출력 1400rp의 아트론 15기였고.

이들의 지휘관인 카이샨의 귀족 오너 2인은 각각 출력 1800rp의 이펜타르크제 기간트 트램버와 1900rp의 드워프제 기간트인 트랙스를 타고 있었다.

우군과 중군에 비해, 카이샨 좌군의 지휘관 전력은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는데. 이는 이곳에 투입된 용병 전력이 그 수준 차를 메우고도 남을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2300rp 한 기와 2000rp 두 기 그리고 1900rp 한 기.

게다가 기간트를 운용하는 건 최소 12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베테랑 용병 오너들이었으니.

그 전력은 결코 카이샨 우군에 비해 못할 것이 없었다.

“이거... 자칫하면 몇 마리 못 잡고 끝나버릴 수도 있겠는데.”

“그렇군. 꼭 좋기만 한 것도 아닌데?”

“쯧, 생각이란 걸 좀 해라. 저놈들을 순식간에 끝장낸 다음, 다른 쪽으로 지원 가면 되잖아.”

“오,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크크크, 일단 여기서 킬 포인트 두세 개 정도는 올려놓고 생각하자고.”

멜빈 가이우스는 다른 오너들의 대화에 어울리지 않았다.

전운이 고조 될수록,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게 멍청할까?’

지기 위해 전쟁을 하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기 한기가 소중한 기간트 전력을 패배할 게 뻔한 전장에 밀어 넣는다고?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세 사람을 불렀다.

“브랜딘, 콘, 프란시스.”

세 사람이 일제히 그를 돌아보았다.

멜빈 가이우스는 예의라곤 밥 말아 먹은 용병 오너들 사이에서도 나름 존중받는 인물이었는데.

당연하게도 그 존중의 배경에는 그의 엄청난 실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멜빈님?”

브랜딘 던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멜빈 가이우스는 세 사람과 한 차례씩 눈을 맞춘 뒤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다. 너무 방심하지는 말도록.”

세 오너는 내심 그의 말을 ‘늙은이의 쓸데없는 걱정’ 정도로 치부했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들은 대충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인 이후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하지만 갑작스레 솟아오르는 석벽을 목격한 직후.

그들의 마음속에도 긴장감이란 것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석벽? 전에 요새 앞에서 깽판을 부렸다는 그놈이다!’

엄청난 마법 기간트에 대한 소문은 이미 알마탄 요새에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역시 마라몬트에서 보낸 녀석이었군.’

하지만 이례귤러의 존재를 감지했다고 한들, 이미 시작된 전투를 멈출 수는 없었다.

카이샨측 기간트들의 돌격이 시작되었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멜빈 가이우스의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뭐, 뭐야? 뒤로 밀리는 놈이 하나도 없다고?]

[벽을 두드린 느낌입니다!]

[이상할 정도로 반발력이 심합니다!]

[넘어진 새끼 누구야! 빨리 일어나서 합류해!]

[죄, 죄송합니다.]

애초에 돌진 대열에서 빠져있던 용병 오너들은 아군 채널에서 들려오는 카이샨 오너들의 통신에 어이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채널을 열었다.

[저것들 뭐야? 카이샨 놈들이 여기에 죄다 폐급들만 몰아넣었나?]

[하... 어떻게 10기 이상 많은 숫자를 가지고, 단 한 곳도 못 뚫을 수가 있지?]

[진짜 폐급들인가?]

그때 멜빈 가이우스의 중후한 음성이 채널을 통해 흘러나왔다.

[마법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충돌 당시 희미한 녹색 빛이 적 기간트들을 감싸고 있었어.]

[네에?]

[진짭니까?]

[그런 마법이 있다는 말은...]

그의 말이 이어졌다.

[뭔가 이상하다 했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놈이 있는 것 같다. 정신 똑바로 차려. 너희는 적들의 방진을 우회해 후방을 노리도록.]

[아, 넵!]

그제서야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눈치챈 용병 오너들이 동화율을 끌어올리며 적 방진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쿵쿵쿵쿵쿵쿵쿵쿵......

세 사람에게 지시를 내린 멜빈 가이우스는 적들의 전열을 깨뜨리기 위해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그가 대검을 들어 올려 크로스보우의 장갑을 내리치려던 그때.

쉬이이이이이이이익

재빨리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시야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십수 개의 거대한 창이 날아드는 모습이 잡혔다.

[마법이다! 대비...]

그의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 이미 얼음의 창은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멜빈 가이우스 자신은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가볍게 얼음창의 공격을 무력화시켰고.

나름 실력있는 몇몇 오너들 역시 피하거나 받아쳐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다섯 기의 기간트는 미처 반응하지 못해 대지 위를 나뒹굴고 말았는데.

그중 한기는 머리가 심하게 파손된 탓에 시야 기능을 상실해 전장을 이탈하고 말았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이게 무슨...]

그의 지시에 따라 후방으로 우회하려던 3기의 기간트 역시, 상대측 실력자들에게 막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법 폭격.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파츠츠츠츠츠츠츠츠츠

퍼어어어어어어어엉

마치 7써클 대마법사가 강림한 듯.

엄청난 위력의 마법들이 전장의 하늘을 수놓았고.

무려 17기의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아군 병력은 단 한 발자국조차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돼.’

멜빈 가이우스는 결단을 내렸다.

그를 따라 기간트 바실론의 고개가 허공을 향한다.

멀리 30미터가량 치솟은 석벽 위에서 마법을 난사하고 있는 기간트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크로스보우로군. 대체 저딴 하급 기간트로 어떻게...]

정말로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게 아니었다.

‘저놈을 잡아야 한다.’

이 전장의 승패는 높은 곳에서 마법을 난사하고 있는 저 기간트를 잡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각각 대단한 실력의 적에게 붙잡혀 있는 용병 오너들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46기나 되는 기간트로 고작 28기로 이루어진 방진을 뚫지 못하고 있는 카이샨 오너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내가 해야만 한다.’

멜빈 가이우스는 동화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뒤 마력엔진을 오버클럭시켰다.

쿵쿵쿵쿵쿵쿵쿵... 콰아아앙

엄청난 스피도와 도약으로 마라몬트 기간트들의 방진을 뛰어넘은 바실론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석벽을 향해 쇄도했다.

그런 그의 앞을...

카아아아아아아아앙

아름다운 무늬가 수 놓인 녹색 기간트가 막아섰다.

엄청난 기세를 내뿜으며 맞부딪힌 두 자루의 대검.

멜빈 가이우스는 자신을 막아선 이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외부로 연결된 통신 마법진을 개방했다.

[빌어먹을 하프 엘프 놈이로군...]

그러자 검을 맞대고 있는 기간트에게서도 청명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티가레스에서 본 이후 처음인가? 반갑다... 멜빈.]

카아아아아앙

맞붙었던 검을 떼며 서로 간의 거리를 벌리는 두 기간트.

그리고 연이어.

타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서로를 향해 달려든 두 기간트가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며 맞부딪혔다.

#2

전투는 치열했다.

물론 나는 제외.

30미터 높이의 석벽 위에서, 전장을 살피며 필요한 곳에 기계적으로 스킬을 쓰는 게 전부였으니 치열함 따위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범위를 마라몬트의 우군과 카이샨의 좌군이 맞부딪치는 지역으로 한정한다면, 전장은 총 세 개로 나뉜 상태였다.

먼저 가장 많은 기간트가 몰린 전장의 중앙.

그곳에서는 어떻게든 뚫어내려는 카이샨측 기간트들과,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를 필사적으로 막아내려 하는 마라몬트측 기간트들이 한데 엉켜 엄청난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슬슬, 한계가 오는 것 같군.”

버프와 마법 폭격의 도움으로 전열을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오너들 간의 실력이나 기간트의 성능 차가 그리 크지 않은 상태에서, 무려 15기 이상 많은 숫자의 적을 상대해야만 했기에.

마라몬트측 오너들이 먼저 지치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아직은 안돼. 조금 더 버텨줘야 한다고.”

사령관이 원하는 것은 중군과 좌군의 전투가 결착을 볼 때까지 전선을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아군이 너무 급격하게 무너져 빠르게 퇴각하는 상황만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

“될 수 있으면 팽팽한 상황이 오래 지속될수록 내겐 이득이니까.”

그러니까 양쪽 모두 지칠 대로 지치는 상황까지 가는 것이 베스트다.

고로 카이샨 쪽이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 역시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전선의 유지뿐.

그런 의미에서...

“리프레쉬, 리프레쉬, 리프레쉬...... 리프레쉬.”

나는 전열 유지를 위해 악전고투 중인 28기의 오너 중 10명에게 ‘리프레쉬(C)’ 스킬을 시전했다.

내가 익힌 것 중 가장 많은 마력을 잡아먹는 스킬인 만큼, 눈에 띄게 움직임이 둔해진 10인에게만 사용했음에도 7000의 마력이 소모되었다.

이는 무려 남아 있는 마력의 절반가량이었지만... 그 효과만은 확실했다.

가장 힘겨워하던 10기의 기간트가 마치 좀비처럼 되살아나 힘을 내자, 점차 밀리는 기색을 보이던 방진의 방어가 다시금 두터워지며 오히려 적 기간트들을 뒤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카이샨측 오너들의 공격이 무뎌졌고.

간간이 반격을 당해 장갑을 파괴당하는 기간트까지 나왔다.

“여긴 당분간은 신경 쓸 필요가 없겠군.”

당장은 마라몬트측의 기세가 살아나며 밀어붙이고 있지만, 리프레쉬 스킬은 결코 만능이 아니었다.

다시 체력이 빠지면 그 반동은 두 배로 다가올 터.

게다가 스킬 효과를 받지 못한 오너들의 체력 역시 계속 소모되는 상태였다.

“하지만 몇 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테지.”

두 번째 전장은 양측의 에이스급 오너들이 맞붙은 전열의 측면 지대.

양쪽 측면에서는 6기의 기간트가 1대1 승부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역시 헬레나는 압도적이군. 다른 녀석들도... 최소한 밀리는 것 같지는 않고.”

내가 신경 쓸 건 1대1을 방해하려는 놈들이나, 6기의 기간트를 피해 아군의 후방으로 우회 난입하려는 놈들을 스킬로 견제하는 것 정도였는데.

몇 기의 기간트가 스킬 세례로 인해 장갑이 우수수 파괴되자 어느 순간 시도하려는 놈들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석벽 아래의 전투.

척 보기에도 2000rp의 아란델에 비해 한 등급 위의 기간트를 상태로, 카일 어네스트의 악전고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기체 탓도 있지만, 오너의 조종 실력도 카일 못지않은 것 같군.”

더군다나 엑스퍼트로서의 역량 역시 적이 한 수 위인 듯했다.

“저 정도면 못해도 최상급이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카일 어네스트가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실라센!]

그의 부름에 화답하듯 거센 강풍이 몰아쳤고.

그 강풍의 진원지에는 신장 3미터가량의 푸른새가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바람의 중급 정령 실라센이었다.

아란델의 정령력 증폭마법진으로 인해 더욱 강력해진 중급 정령이 바람을 족쇄처럼 이용해 적 기간트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귀쟁이 새끼가 하찮은 수를...]

하지만 기간트의 성능과 엑스퍼트로성의 역량 모두 현저히 떨어지는 카일 어네스트가 열세를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적 기간트의 대검에 묵빛 기운이 선명해지더니 그대로 실라센의 바람을 갈라버렸고.

타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정령의 본체에 접근한 녀석은 그대로 정령의 몸뚱어리를 꿰뚫어버렸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악

소름끼치는 비명과 함께 실라센이 역소환 되어 버렸고.

[크헉!]

이는 소환자인 카일 어네스트에게도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티가레스에서 진 빚을 이 자리에서 갚아주지.]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은원이 있었는지, 진득한 살기를 뿜어낸 적 기간트가 대검을 들어 쓰러져 있는 아란델을 겨누었다.

나는 석벽 아래의 상황을 바라보며 남아있는 마력을 점검했다.

“쩝, 많이 줄긴 했군. 그래도 이 정도면 뭐... 둘 사이에 뭔 일이 있었는진 내 알 바 아니지만... 아직까진 한쪽이 무너지면 곤란하다고. 아이스 스피어, 아이스 스피어, 아이스 스피어.”

나는 얼음 창 세 개를 생성해 적 기간트에게 날려 보낸 다음.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앙

“리프레쉬, 매토템, 거북이토템, 곰토템, 인첸트 파이어 블래스터.”

적 기간트가 스킬 공격을 막아내는 사이, 아란델을 향해 온갖 버프를 쏟아부었다.

리프레쉬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회복 효과에 민첩, 방어력, 힘 30% 증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르르르르르륵

아란델의 대검에서 새빨간 불길이 이글이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닿기만 해도 폭발하는 화염마법검을 손에 쥔 셈.

비록 바람의 정령이 역소환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면 조금 전보다는 대등한 싸움이 가능할 터였다.

나는 말없이 위를 올려다보는 두 기간트를 바라보며 통신 마법진을 열었다.

[2차전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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