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79화 (79/169)

79화 사막의 기간트(4)

#1

쾌적하고 안락한 비트 생활 4일 차의 늦은 아침.

변화 없는 일상에 조원 모두가 슬슬 지겨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을 무렵.

깜빡깜빡......

탁자 한가운데 놓아둔 통신용 마법구에서 갑작스레 붉은빛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어...”

“뭐야? 아직 정기 통신 시간은 멀었잖아?”

“당연하지. 그건 오후 6시라고.”

“그럼...?”

“일거리다!”

“대장! 대장을 불러와!”

하루 한 번 정규적으로 이루어지는 통신을 제외하고는, 지난 3일간 단 한 차례도 깜빡인 적 없었던 통신용 마법구.

그것이 정오조차 넘기지 않은 시각에 빛을 발했다는 건.

단 한 가지 사실만을 의미했다.

하플링들이 만들어 놓은 1인실에서 모습을 드러낸 스노우가 말했다.

“연결해라.”

“네.”

명목상의 보좌관인 란셀 티그리스가 통신용 마법구에 마력을 불어넣었고.

간단한 인사치레 이후 상대편으로부터 전해진 말은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4개 정찰조가 연락 두절 상태입니다. 4개 조 모두 22번 섬멸조의 관할로 확인. 현재 227번, 229번, 237번, 238번, 239번, 242번 정찰조가 예상 지점으로 투입......”

스노우의 22번 섬멸조가 담당하는 범위 내에서 활동 중인 정찰조 4개의 연락 두절.

정찰조와의 연락이 끊겼다는 건 높은 확률로 그들이 전멸했다는 걸 의미한다.

“정찰조 4개가 전멸할 동안 연락조차 취하지 못했다면...”

“적이 어지간한 전력이 아니라는 뜻이지.”

10인의 조원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바라보았다.

부하들의 시선을 받은 스노우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준비해라.”

22번 섬멸조의 사막 데뷔전이 시작되었다.

#2

통신구는 무척이나 비싼 마법 도구다.

때문에 섬멸조가 모든 정찰조와 직접적으로 통신을 주고받을 수는 없었다.

거미줄처럼 펼쳐진 정찰조의 보고는 본진으로 취합되고, 섬멸조는 결국 본진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그렇다 보니 섬멸조의 이동 경로는 본진의 예측을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정찰조의 정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본진이 예측한 적의 이동 경로는 맞을 수도 혹은 틀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경로를 잘못 예측했을 경우... 작게는 아군 정찰조의 피해가 확대될 것이고, 크게는 임무 자체(군량 수송 저지)를 실패하는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6써클 마법사(알려지기로는)인 나를 조장으로 두고 있는 22번 섬멸조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흔들린다.”

“죄, 죄송합니다. 트랜, 똑바로 들지 못해!”

“죄송합니다아앗!”

나는 출발하기 전 다시 한번 하플링들을 소환했고.

길쭉한 손잡이 4개가 달린 널찍한 판 위에 의자를 얹은 가마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리하여 불과 3분 만에 뚝딱 만들어진 그럴듯한 가마.

나는 그것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썰매와 실피드를 소환해 본진이 예측한 적의 이동 경로 근처까지 달렸다.

물론 나를 제외한 10명의 조원은 발에 땀이 나도록 달려야만 했고.

지정된 좌표까지 이동한 뒤.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놓은 가마를 꺼낸 난, 조원들을 번갈아 가마꾼으로 쓰며 넓은 범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동시에 ‘천리안(C)’스킬을 끊임없이 시전하며 반경 수km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적은 정찰조 4개를 순식간에 전멸시킬 정도의 전력, 그런데 아직까지 확실한 위치를 찾아내지 못한 거라면... 꽤 강력한 은신마법이나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게다가 투입한 전력의 질만큼 많은 군량을 운반하고 있을 테니.

적의 규모는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천 단위를 넘길 가능성도 있었다.

‘그 정도 인원이, 그것도 이동 중에 사용하고 있는 은신이라면 절대로 완벽할 수는 없을 테지.’

전설상의 아티팩트나 7써클 대마법사라도 나선다면 또 모르겠지만.

카이샨이 그런 아트팩트를 보유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고, 7써클 대마법사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멈춰.”

가마 위에서 ‘천리안(C)’ 스킬을 사용하길 30여 분.

대략 2km 전방에서 이상 현상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주변 풍경이 미세하게 일그러지는군... 빛의 굴절을 이용한 은신 마법인가?’

무심코 지나쳤다면 절대로 발견할 수 없었을 만큼 대단한 수법이었는데.

빛의 굴절을 이용한 걸로 보아, 사막 지형이 대부분인 카이샨의 실정에 걸맞게 발전한 은신 계열 마법인 듯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마법의 대단함이 아니었다.

‘하, 대체 범위가 얼마나 넓은 거야?’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는 미세한 일그러짐의 범위.

그것이 무려 수백여 미터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타앗

나는 가마에서 훌쩍 뛰어내린 뒤 조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2km 앞, 적이다. 대규모 수송부대일 가능성이 높다.”

란셀 티그리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지원을 요청할까요?”

“필요 없다.”

나는 눈치 없는 군인 자식을 한 차례 노려본 뒤 말을 이었다.

“적의 규모로 보아 기간트는 최소 5기 이상일 터. 그러니 전투는 나 혼자 진행한다.”

“그럼 저희는...”

“적에게 노출되지 않는 위치에서 대기해라. 그리고 만약, 전황이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퇴각과 동시에 지원을 요청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소규모도 아닌, 대규모 수송 부대라면 엑스퍼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모든 것은 양측의 기간트 대결에서 갈릴 터.

조원들은 고개를 끄덕인 뒤, 모처럼 스스로의 발을 이용해 사막을 질주하는 내 뒤를 따라 달렸다.

그렇게 1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이동한 뒤.

파아아아아앗

크로스보우를 소환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여기서 대기하도록.”

그리고는 지체없이 기간트에 탑승.

“테리마.”

온통 모래뿐인 광활한 사막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3

“바람의 인도, 매토템. 중력조절.”

사막에서의 전투 시 가장 힘든 건 푹푹 파이는 모래로 인한 기동의 어려움이다.

일반적인 병력의 경우에도 그럴 진데, 수 톤짜리 강철 덩어리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런 이유로, 나는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민첩을 증가시키고 무게를 줄일 수 있는 스킬들을 시전했다.

그리고 다음 순서로.

“고양이 발걸음.”

원래는 기척과 소음을 줄이는 용도로 쓰이지만, 모래 위를 걸을 때 약간의 행동력 보정 효과가 있는 스킬인 ‘고양이 발걸음(C)’ 스킬까지 연달아 사용한 뒤.

마지막으로...

“가속(C).”

순간적으로 이동속도를 상승시키는 가속 스킬을 사용해 적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칭

그러자 크로스보우를 발견한 것인지, 마치 유리가 깨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적들이 은신을 해제했다.

“휘유... 더럽게 많군.”

척 보기에도 200여 마리는 되어 보이는 바잘 무리의 등에는, 마리당 십여 개에 달하는 곡식 가마니들이 실려 있었고.

그를 관리 및 호위하기 위한 병력이 100여 명 정도 따라붙은 걸로 보였다.

그리고...

파아아아아앗

파아아아아앗

파아아아아앗

.

.

.

파아아아아앗

대낮의 사막이라 희미하게 보이는 빛무리와 함께 등장한 다수의 기간트들.

“하나, 둘... 아홉? 와우!”

수송부대의 규모가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설마 아홉 기나 되는 기간트를 호위로 보낼 줄은 몰랐다.

“바이샨 넷, 아트론 둘, 크로노스 둘... 음, 저 멋진 기간트는 처음 보는 놈이로군. 그때 그 용병 녀석의 기체(멜빈 가이우스의 바실론, 2300rp)와 비슷한 급인 것 같은데?”

적 기간트 아홉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전체적으로 화이트 베이스인 외부장갑에 금색과 붉은색으로 몇몇 부위가 도색 된 8미터 전후의 날렵한 기체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스으읍... 이거, 생각지도 못한 대어가 걸렸군.”

파앗

1번 무기 슬롯에 들어있는 7미터 길이의 장창을 소환했다.

섬멸조에 포함되어 사막으로 진출하기 전.

나는 기간트의 무장을 롱소드와 방패에서, 대검과 장창으로 바꾸었다.

다대일의 전투에서, 롱소드와 방패는 그리 효율적인 무기가 아니었으니까.

적들과의 거리는 이제 고작 50여 미터.

타아아아앗

나는 ‘도약(C)’ 스킬을 사용해 수십 미터 높이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사막의 하늘 위로 솟구치는 와중 몇 개의 스킬을 연달아 시전했다.

“인첸트 파이어 블레스터. 샐러맨더.”

화르르르르르륵

장창의 창날이 시뻘건 불길을 피워올렸고.

캬아아아아아아아악

허공에 나타난 불타는 도마뱀이 소름 끼치는 포효를 내지르더니 불타는 창날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내, 정점에 오른 기간트의 거체가 낙하운동을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기동을 목격한 탓인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그저 방패를 들어 올리는데 급급한 카이샨의 기간트들.

아홉 기의 기간트가 들어 올린 거대한 방패들마다 각자의 성향에 따른 마력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진한 빛이 감도는 건, 역시나 선두의 거대한 기간트가 들고 있는 5미터짜리 라운드실드였다.

하지만 내 목표는...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녀석의 옆, 자신의 몸통만큼이나 거대한 사각 방패를 들어 올린 출력 1800rp의 기간트 크로노스였다.

#4

카이샨 왕국의 근위기사인 쿠르드에게 중차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15만 병력이 갇혀있는 알마탄 요새를 지원하기 위한 군량 수송.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자신이 맡은 수송부대를 비롯해 3일이라는 기간 동안 무려 50개의 수송부대가 움직일 예정이었지만.

그중 진짜는 쿠르드의 부대를 비롯한 3개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모두 마라몬트 정찰조의 이목을 속이기 위한 더미에 불과했다.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먼저 출발한 2개 부대 중 1개는 적의 공격을 받아 오너 몇을 제외한 병력이 전멸해 버렸고.

다른 1개의 수송부대만이 가까스로 알마탄 요새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범위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

오너 2명의 희생을 바탕으로 군량의 2/3 가량을 알마탄 요새로 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고작 이 정도 임무를 실패하다니... 구진 이 멍청한 자식.”

그는 실패한 운송부대의 책임자이자 같은 근위기사인 구진을 욕했다.

첫 번째 기간트 대전에 참전한 근위기사는 고작 둘이었고.

당시 쿠르드는 왕도에 머물며 혹시 모를 테러에 대비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선에 파견되었던 선임 근위기사의 조언을 들었을 때 속으로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마라몬트에 대단한 실력자가 있다고? 고작 멜빈 그 용병놈을 잡은 걸로 호들갑이라니... 쯧.’

애초에 멜빈 가이우스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았던 쿠르드였다.

‘대륙에 명성을 날려? 이곳저곳 자주 기웃거리다 보니 이름이 알려졌을 뿐이다. 용병 놈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봤자, 대 카이샨 왕국의 근위기사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단신으로 사막을 질주해 오는 크로스보우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크로스보우? 한 기? 뭐야 저건... 미친놈인가?”

하지만 그 육중한 기간트가 자신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엄청난 점프를 선보인 뒤.

허공에서 웬 불타는 괴물을 불러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창날 속으로 그 괴물을 흡수하며 수 미터 크기의 불길을 내뿜기 시작했을 때는...

‘저, 저게 뭐야?’

마음 한편에 ‘불안’이라는 씨앗이 싹을 틔우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내리꽂히며 휘둘러진 창.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허억!”

일격에 마력을 두른 크로노스의 방패가 산산조각나며 사방으로 파편을 날렸고.

휘리리릭

곧바로 허공에서 한 차례 몸을 뒤집은 크로스보우가 원심력을 이용해 마력에 의해 시뻘겋게 빛나는 창을 내질렀다.

소수 병력으로 움직이는 은밀한 임무에 추가 장갑을 착용하고 나오는 기간트는 없었지만, 기본 방어력 자체가 워낙 뛰어난 크로노스였다.

콰드드득

하지만 크로스보우가 찔러넣은 창은 그 높은 방어력이 무색하게도, 단 한방에 크로노스의 몸통을 꿰뚫어 버렸고.

이내 창을 놓아버린 크로스보우는...

파앗

왼손에서 생성된 거대한 대검을 두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아직까지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카이샨의 기간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안돼에에에에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쿠르드가 카이샨의 두 근위 기간트 중 하나인 트리온(2200rp, 드워프제)과의 동화율을 급격하게 끌어올리며 움직이려 했지만.

서걱

콰드득

촤아아아아악

그 짧은 순간 바이샨 한 기의 목이 날아가고.

또 다른 한기의 몸통이 꿰뚫렸으며.

아트론의 한쪽 어깨가 잘렸다.

“빌어먹을!”

카아아아아아아앙

이후 등을 노린 쿠르드의 검격을 유려하게 받아친 크로스보우가 허리를 뒤틀며 오른쪽 다리를 뒤로 쭉 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크윽!”

실로 유려한 뒤차기였다.

쿵쿵쿵쿵쿵쿵...

상체와 하체의 연결부위를 강타당한 트리온이 뒤로 밀려났고.

콰드드드드득

촤아아아아아악

그 틈을 노린 크로스보우의 검이 어깨가 잘린 아트론의 몸통을 관통한 뒤.

연이어 목 없는 신세가 된 바이샨의 상체를 세로로 갈라버렸다.

그 직후, 바이샨의 상체를 갈라버린 크로스보우가 들고 있던 검을 내던졌는데.

기간트의 손을 떠난 대검에는 황금빛 전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간 대검이 아트론의 직격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고.

폭발에 의해 발생한 연기가 사라지며.

방패와 더불어 상체의 1/3이 날아가 버린 아트론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제서야 움직임을 멈추는 크로스보우.

황량한 사막 위.

연속된 폭음과 폭발로 인한 두려움으로 몸부림치는 바잘 무리와, 그보다 더한 공포감에 사로잡힌 100여 명의 카이샨 왕국 병사들.

그리고...

“미친...”

“마, 말도 안돼...”

“이건 꿈이야...”

“아, 악마!”

교전 시작 후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무려 5명의 아군 오너를 잃은 근위기사 쿠르드와 그 외 3기의 기간트 오너 역시.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압도적인 공포와의 조우로 인해.

부르르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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