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82화 (82/169)

82화 동부 전선(2)

#1

“동부?”

“정확하게는 북부 국경의 동부전선이지.”

“이름이야 어쨌건, 그쪽 일을 맡기고 싶다는 겁니까?”

“그렇네. 어차피 계약의 주체는 서부군이 아닌 마라몬트 왕국이니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그거야 상관없습니다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평범한 임무는 아닌 것 같군요.”

윌리엄 다이슨 서부군 총사령관의 막사.

사막에서 적 수송부대를 괴멸시킨 후 대량의 전리품까지 획득한 나는, 22번 섬멸조의 비트로 파견된 마라몬트 정규군 1000여명의 호위를 받으며 알마탄 요새로 돌아왔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사령관의 부름을 받아 그의 막사에서 독대를 하게 되었다.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적 요새를 포위하고 있는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사령관과 독대...

일단 이것부터가 그가 꺼낼 말이 평범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던 윌리엄 다이슨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자네도 들었겠지? 동부 전선의 상황을?”

“그렇지 않아도 제법 시끄럽더군요.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더 심각하네. 무엇보다 오너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 이곳만큼 단시간에 승패가 갈린 건 아니지만, 전투가 꽤 오래 지속된 탓에 피해가 더 커진 것 같더군. 솔직하게 말하겠네. 자네에게 맡기고 싶은......”

이후 꽤 긴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핵심은 매우 간단했다.

‘이전 임무와 정반대? 아니,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동부 국경의 알마탄 요새와 같은 역할을 하는 ‘에툼비 요새’.

그곳으로 향하는 보급품의 최종 기착지인 카이샨 왕국의 영지 ‘모안다’가 이번 임무의 목적지였다.

현재 마라몬트 왕국의 동부 국경 요새를 포위하고 있는 카이샨 왕국군은 물경 25만이었고.

동부 전선 정찰조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에게로 향하는 보급품의 이동 경로는 모안다(최종집결) -> 에툼비(경유) -> 25만 카이샨군(목적지) 순이었다.

사령관이 맡기려는 임무는 바로 ‘모안다’에 대한 테러.

‘나쁘지 않군.’

나로서도 마냥 전투가 벌어지길 기다리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움직여 전과를 올리는 쪽이 취향에 맞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받아낼 수 있는 건 최대한 받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사령관과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꽤 위험한 임무로군요. 그렇다면 그만한 대가를 준비하셨을 것 같은데?”

윌리엄 다이슨 사령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만약 이 임무를 맡아준다면, 수락하는 즉시 50포인트를 가산해주겠네. 그리고 성과에 따라......”

이후 몇 번의 조율 끝에 협상은 끝을 맺었다.

사령관은 꽤 세밀한 보상안을 준비해 왔지만. 나는 복잡한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에, 역으로 단 두 개로 나뉜 보상안을 들이밀었다.

테러 성공 시 추가 50포인트.

군량의 50% 이상 타격 시 추가 50포인트.

쉽게 말해, 적의 군량 중 50% 이상을 없애버리면 총 150 킬 포인트를 지급받게 되는 셈이었다.

윌리엄 다이슨 사령관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좋아, 그 정도 성과를 올릴 수만 있다면... 그리 과한 보상은 아니로군. 잘 부탁하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웃었다.

마라몬트와 계약하며 내가 목표로 삼았던 킬 포인트는 500.

공교롭게도 첫 번째 기간트 대전과 사막 전투에서 잡아낸 기간트의 등급은 완전히 같았기에, 두 번 모두 117의 킬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고.

수적 열세인 상황을 감수하고 전장에 나서는 대가로 받은 40포인트.

거기에 사막 전투의 전리품을 넘긴 대가로 받은 20포인트까지 더해.

현재 내가 보유한 킬 포인트는 294였다.

여기에 임무 수행의 대가로 150포인트를 추가하고.

그 와중에 기간트 몇 기를 더 잡아낼 수만 있다면...

‘어쩌면, 이번 임무 한 번으로 목표 포인트를 전부 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2

동부 전선으로 향하게 될 인원은 모두 여섯이었고.

그 구성은 나를 포함한 기간트 오너 넷과 상급 엑스퍼트 둘이었는데.

그 인선으로 인해, 기사단장 전용으로 제공된 내 막사 안은 이른 아침부터 매우 소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해야만 했다.

“크하하하하, 역시 단장이 보는 눈이 있구만. 당연히 날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지. 크하하하하하......”

“이봐,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저런 무식한 놈이랑 그런 위험한 임무를 함께 하겠다니... 그런 건 역시 지략가인 나 맷 스팅리와... 으억!”

“저리 비켜. 단장, 대체 무슨 생각인 거죠? 멧돼지 같은 저스틴보다 제가 못하단 말인가요?”

“크흠, 이런 은밀한 작전에는 역시 엘프가...”

“넌 반쪽짜리잖아!”

“반쪽이라도 엘프는 엘프지.”

적 기간트들이 득시글거리는 요새를 포위하고 있는 현 서부군.

그중에서도 에이스 중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용병 4인방을 모조리 차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저스틴 크로비스와 그의 추종자인 두 오너, 케일 마틴과 애덤 가필드였고.

이들을 보좌하기 위한 상급 엑스퍼트 요한슨과 내 전담 보좌관이자 기록관인 란셀 크로비스가 동부 원정 파티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네 명의 오너 중 저스틴 크로비스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기간트인 카트린(1800rp, 샌포드제)이 대규모 군량에 타격을 가해야 하는 이번 임무에 최적화된 기체라는 판단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록산느(1400rp, 이펜타르크제)’의 오너인 케일 마틴과 애덤 가필드, 두 오너와 꽤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왔다는 것이 이유였다.

임무의 특성상 소수 정예로 움직여야 하는 만큼, 오너들 간의 호흡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호들갑 떨지 말고, 이곳이나 잘 지키고 있도록.”

나는 한 마디로 녀석들을 침묵시킨 뒤.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저스틴 크로비스를 대동한 채 막사를 나섰다.

#3

“예상대로 경계가 그리 삼엄한 편은 아니로군.”

“마라몬트쪽 국경 요새를 포위하고 있잖아. 사실상 이곳이 위험할 일은 없지.”

“어우, 근데 여긴... 알마탄보다 성벽이 더 높은 것 같은데?”

록산느의 오너 케일 마틴이 에툼비 요새의 까마득한 성벽을 바라보며 탄성을 터뜨렸고.

마라몬트 왕국에서 꽤 오래 활동한 상급 엑스퍼트 요한슨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야... 대대로 마라몬트의 군대는 서부보다는 동부의 세력이 강했으니까요.”

“응? 그랬나?”

“네, 아무래도 카이샨의 왕도와 가까운 쪽이 동부 국경이다 보니.”

“그럼 이번 패배가 훨씬 더 뼈아프게 느껴지겠군.”

“아무래도 그렇겠죠.”

37세인 용병 요한슨은 29살이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상급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였지만, 애석하게도 기간트 운용에 관한 재능이 없어 오너의 길은 진즉에 포기했다고 한다.

‘비싼 돈 내고 아카데미까지 다녀봤는데... 139명의 오너 지망생 중 138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은 다음 날, 곧바로 때려치워 버렸죠.’

이곳까지 오는 여정 동안 들었던 이야기였다.

‘결과적으론 훌륭한 판단이었군.’

그도 그럴 것이, 훈령병 프로필에 기록된 요한슨의 파일럿 재능은 무려 ‘F-급’.

파일럿(S) 특성의 고유스킬 ‘호랑이 교관(S)’을 각성한 이후 F- 등급을 목격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 녀석은... 자동차 핸들을 쥐는 것만으로도 살인미수인 수준이었었지.’

과연 하늘은 공평한 것인지.

오너로서의 재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요한슨이었지만, 엑스퍼트로서의 재능만큼은 꽤 출중한 편이었는데.

그보다 5살이 많은 상급 엑스퍼트 케일 마틴이나 애덤 가필드와 비교해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 임무에 차출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마라몬트와 카이샨의 지리에 밝다는 것 이외에도, 기본적으로 뛰어난 엑스퍼트인 오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안다 영지로 향하는 길.

정찰을 위해 들린 에툼비 요새의 방비는 높은 성벽에 비해 그리 삼엄해 보이지는 않았다.

‘에툼비 요새 방향은 신경 쓸 필요가 없겠어.’

서부 국경의 마라몬트군과 마찬가지로, 대승을 거둔 뒤 마라몬트의 국경 요새를 단숨에 포위해 버린 동부의 카이샨군은 후방에 대한 방비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아무래도 카이샨 왕국 역시, 마라몬트의 국경 요새 너머로 대부분의 정찰조를 투입했을 것이기에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뭐, 이쪽으로선 나쁠 게 없지.’

나는 ‘천리안(C)’ 스킬을 사용해 요새 내부의 정찰까지 마친 뒤.

“출발한다.”

다섯 명의 원정대원들과 함께 에툼비 요새 너머.

‘모함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4

사막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곳의 밤은 낮보다 더욱 혹독하다.

수분 보충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더위로 인해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낮과 수십 도의 온도 차를 보이는 사막의 밤은, 그저 시간의 흐름만으로도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었는데.

쉽게 말해, 제대로 된 방한 대비를 하지 않고 잠들면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법(?)에 능통한 리더를 둔 동부 원정대는 그가 제작한 임시 비트에서 따뜻한 밤을 보낸 뒤 쾌적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언제 봐도 놀랍군.”

“그러게, 마법사는 정말 대단해.”

“아무 마법사나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아니지.”

“두말하면 잔소리.”

하룻밤을 보낸 비트를 소멸시켜 흔적을 없애버린 뒤 지체없이 출발을 선언하는 스노우.

선두에서 일행을 이끄는 이는 모안다 요새의 위치를 알고 있는 요한슨이었다.

간간이 적의 정찰조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원정대의 존재가 노출될 위험이 있었기에 굳이 그들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나왔다.”

“드디어 도착했군.”

“저기가 모안다 영지인가?”

“모래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이따금 등장하는 사막 몬스터들을 때려잡으며 하루를 더 이동한 끝에.

원정대는 모안다 영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저건...”

“허...”

“확실히 여기에 뭔가 있긴 한가 보군.”

요새까지는 여전히 1km 이상 떨어진 위치였지만, 전원 상급 엑스퍼트로 이루어진 원정대원 중 그것을 보지 못한 이는 없었다.

거대한 영지의 외성 성문 앞에 서 있는 두기의 강철 거인.

“여기서 대기해라.”

그 말을 남긴 스노우가 은신해 있던 구릉 밑으로 몸을 날렸다.

“헉!”

“대장!”

“어디로 가시는......”

스르르륵...

모래에 발이 닿기 직전, 스노우의 모습이 허공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하지만 기감이 극도로 발달한 일행은 그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 강력한 은신 마법은 아니야.”

“그럼 요새 가까이 접근할 생각은 아닌가 보군.”

“아무래도 마법진의 범위를......”

그들의 예상대로 요새 방향으로 절반 정도 이동했던 스노우는 다시 방향을 틀어 일행이 은신해 있는 곧으로 돌아왔다.

“소환 가능한 거리는 대략 500미터다.”

기간트가 성문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역시.

이 영지에 설치 되어 있는 소환 방해 마법진 때문인 듯했다.

이후 한동안 말없이 모안다 요새를 바라보던 스노우가 그곳으로부터 시선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요새 안에도 16기가 더 있군.”

““......!””

그러니 이제부터 그들은...

18대 4의 전투를 대비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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