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84화 (84/169)

84화 동부 전선(4)

#1

일격으로 바이샨의 오너를 죽여버리자, 함께 성문을 지키던 또 다른 바이샨 한 기가 검과 방패를 소환하며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이렇게 한 놈씩 차례대로 와주면, 시간을 끌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방패로 몸의 2/3를 가린 바이샨의 검이 가슴을 노려왔다.

성급한 쇄도에 비해, 검을 이용한 공격은 교과서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정석적이었다.

빠르게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며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은 플레일의 꼬리부분으로 녀석의 검을 쳐냈다.

카아아아아아앙

기간트의 무기답게 전체가 합금으로 제작된 플레일과 바이샨의 롱소드가 맞부딪치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호... 제법인데?’

평범한 방어 동작일 뿐이었지만, 방어를 행한 무기에 실린 마력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마력을 잔뜩 머금은 플레일과의 마찰을 이겨내지 못한 바이샨의 롱소드가 고통을 호소하듯 검신을 부르르 떨며 튕겨 나갔음에도.

바이샨의 오너는 끝끝내 방패를 견착한 왼팔을 전면으로 끌어당겨 빈틈을 최소화했고.

방패의 무게를 이용해 몸의 균형까지 제대로 유지해냈다.

재능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성실한 녀석인 것만큼은 확실했다.

저런 건 오로지 고강도의 훈련에 의해서만 몸에 새겨지는 것이었으니까.

“이런 곳에서 죽기엔 아까운 놈인 것 같지만...”

전장에서 만난 이상, 자비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단단한 방어 태세라 한들, 감당할 수 없는 힘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나는 ‘곰토템(C)’ 스킬을 시전해 힘을 증폭시킨 뒤, 마력으로 강화한 플레일에 ‘경화(C)’ 스킬을 걸어 강도를 높였고.

그 직후 ‘블레스터(C)’ 스킬을 인첸트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휘두른 플레일이 바이샨의 방패와 맞닿기 직전의 순간, ‘중력 조절(C)’ 스킬을 이용해 무게를 최대치로 늘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조금 전, 첫 번째 기간트의 몸통을 박살 냈을 때보다 더욱 요란한 굉음이 터져 나왔고.

이윽고, 산산조각난 방패의 파편에 온몸이 난자당한 바이샨의 모습이 드러났다.

쿠우우웅

강철 거인의 두 무릎이 사막의 모래로 뒤덮인 대지와 맞닿았다.

방패가 견착 되어 있던 왼팔은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고.

상체 외부장갑 역시 대부분 파괴되어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처참한 몰골이었다.

무릎을 꿇은 바이샨은 움직임이 없었다.

......쿵쿵쿵쿵쿵쿵......

묵직한 충격음들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영지 내부에 있던 기간트들이 성문을 향해 몰려들고 있는 듯했다.

움직임이 멎었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바이샨.

파아앗

나는 플레일을 쥔 반대쪽 손에 대검을 소환한 뒤.

콰드득

바이샨의 몸통에 찔러넣어 오너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화아아아아앗

그제서야 옅은 빛무리와 함께 모습을 감추는 바이샨.

그리고 그와 동시에.

쿵쿵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쿵......

기간트 십 여기가 모안다 영지의 거대한 성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크로노스, 바엘로그, 아트론, 바이샨... 저건 처음 보는 기첸데? 그나저나 아홉 기라...”

목표는 15기 이상의 기간트를 성 밖으로 끌어내는 것.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기간트가 9기라면, 이미 박살 난 두기까지 합해 고작 11기에 불과했다.

이대로는 작전을 시작할 수 없었다.

저스틴 크로비스의 실력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세 기로 일곱 기의 기간트를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정찰 시 목격한 카이샨의 근위기간트 트리온(2200rp)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트리온이 포함된 일곱 기의 기간트라면 아군의 승산은 희박했다.

‘남은 녀석들까지 끌어내려면... 제대로 된 위기감을 느끼게 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군.’

파아앗

나는 대검의 소환을 해제한 뒤.

다시금 플레일을 양손으로 움켜쥔 다음.

화르르르르륵

화르르르르륵

화르르르르륵......

머리 위로 거대한 불덩어리들을 띄워 올렸다.

#2

카이샨 왕국의 근위기사 마간은 부관으로부터 황당한 보고를 받았다.

“뭐? 기간트 한 기? 그것도 크로스보우?”

“네, 경계에 들어서기 직전 소환했다고 합니다.”

“미친놈인가? 아니면 정찰조를 이끌고 온 마라몬트의 오너? 아니, 그렇다 해도 미치건 마찬가지로군. 대체 기간트는 왜 소환한 거야?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버리고, 도망치면 굳이 쫓을 필요는 없다고 전해. 어차피 정말로 뭔가 해보려고 온 녀석은 아닐 테니까.”

“알겠습니다.”

부관을 돌려보낸 마간은 느긋하게 카이샨의 전통주 ‘마오파’를 음미했다.

전쟁 중 개인적인 음주는 강력한 징계 사항이었지만.

이곳 모안다 영지의 영주라 한들, 근위기사이자 ‘라샨(카이샨을 구성하는8부족 중 하나)’의 ‘하르판(부족의 후계자)’인 그에게 책임을 물으려 할 리 없었다.

쪼르르르르...

마간의 곁에 있던 반라의 미녀가 비어버린 잔에 술을 채워주었고.

그가 세 번째 잔을 들이키려는 찰나.

벌컥

노크조차 없이 방문이 열렸고.

조금 전 보고를 마치고 나갔던 부관이 다급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간의 미간에 세 가닥 주름이 돋아났다.

“이게 무슨 짓이지?”

평상시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부관이었다.

하지만 헐레벌떡 자신의 처소로 뛰어든 그의 모습은 평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큰일 났습니다, 하르판!”

“하르판이라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카잘경과 하산경이 전사하셨다구요!”

덜컥

순간, 입으로 술잔을 가져가던 마간의 손이 정지했고.

한껏 풀어져 있던 그의 눈에 정광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뭐? 누가 죽어?”

“성문을 지키던 카잘경과 하산경입니다.”

“누가 그들을? 설마 조금 전 네가 말한 그...”

“네, 교전 중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마간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그 보고를 한 건 고작 2분 전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고작 2분 만에 바이샨의 오너 둘을 죽였다는 뜻이로군. 그 크로스보우의 오너가.”

“두, 두분 모두 일합을 버티지 못하셨다고...”

챙그랑

마간이 내던진 술잔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파편을 튀겼다.

그의 전신에서 숨 막힐듯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여인은 물론, 초급 엑스퍼트인 부관마저 정말로 숨이 막히는 듯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드르륵

마간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성문으로 간다.”

#3

쿵쿵쿵쿵쿵쿵쿵... 쿠우웅

전력을 다해 도착한 성문 앞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마간과 그의 직속 휘하 셋은 입을 떡 벌린 채, 잠시 아무런 행동조차 취할 수 없었다.

마간의 세 부하 중 하나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이, 이게 대체...]

모안다 영지의 외성 앞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기간트는 총 여덟.

그중 하나는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육중한 체형의 기간트 크로스보우였다.

도무지 중갑형 기간트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엄청난 스피드.

아군 사이를 헤집으며 중간중간 먹여대는 정확한 칼질.

그리고 허공에 생성되어 카이샨의 기간트들을 향해 내리꽂히는...

[마법?]

[이럴 수가...]

[기간트로 저런 고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불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창은 얼핏 보기에도 기간트의 신장에 뒤지지 않는 크기였고.

사막의 밤하늘에 작은 태양처럼 떠오른 불덩어리들의 경우에는, 무려 직경이 10미터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 불덩어리에 직격당한 아트론 한 기가 화염에 휩싸이며 20여 미터를 튕겨 나갔고.

쿠당탕탕탕...

모래가 얇게 덮여있는 지면에 충돌한 기간트는 전신이 새카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다행히 오너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는지 곧바로 몸을 일으켰지만.

타격이 없지는 않았는지, 잠시 비틀거리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네 오너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마간님.]

[뭐냐, 타오.]

[아군 기간트가... 일곱 기밖에 없습니다.]

[......!]

그러고 보니 조금 전 나가떨어진 아트론을 포함해, 크로스보우를 상대로 격전을 벌이고 있는 아군 기간트는 고작 일곱 기에 불과했다.

그 말인즉슨.

[그새... 두 기가 더 당했다고?]

부관을 보고를 받고 이곳까지 달려오는 데는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저 크로스보우는 고작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아군 기간트 네 기를 해치워 버렸다는 뜻이었다.

마간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어졌다.

[우선... 저 빌어먹을 새끼부터 잡겠다.]

[네!]

마간의 트리온과 타이가(1500rp, 드워프제) 세 기가 전장에 합류하려는 순간이었다.

피유우우우우우우우우우,..

별안간 강렬한 공세를 펼쳐 카이샨의 기간트들을 떨궈낸 크로스보우가 허공을 향해 엄청난 크기의 불덩어리를 쏘아 올렸다.

그리고 이내...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까마득한 높이까지 도달한 불덩어리가 폭발하며.

사막의 밤하늘에 엄청난 크기의 불꽃을 그려냈다.

#4

“저스틴! 신호다!”

“불꽃이야! 엄청나게 큰데!”

“나도 눈 있어, 이 새끼들아. 준비해, 바로 진입한다. 요한슨 너도.”

“네!”

모안다 영지의 북문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대기하고 있던 원정대 4인방(비오너인 요한슨 포함).

그들의 눈에 밤하늘에 펼쳐진 엄청난 불꽃의 개화가 목격되었고.

저스틴을 비롯한 세 오너는 각자의 기간트를 소환했다.

파아아아아앗

파아아아아앗

파아아아아앗

양어깨에 거대한 마력포를 장착한 투박한 생김새의 황갈색 기간트 카트린.

그리고 흔치 않은 여성형 기간트 록산느 두기가 옅은 빛무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카트린에 탑승하기 전, 저스틴 크로비스가 요한슨에게 지시를 내렸다.

“성문이 완전히 파괴되고 나면 곧바로 따라붙어. 창고에 도착하면 우리가 적 기간트들을 제압하는 사이 작업을 마쳐야 한다.”

“알겠습니다.”

모안다 외성의 남문과는 달리.

북문에는 소수의 병력만이 배치되어 있을 뿐이었고, 기간트의 모습 역시 보이지 않았다.

“시작한다. 테리마.”

카트린에 탑승한 저스틴 크로비스가 동화율을 끌어올리며 성문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파아앗

오른손에 소환된 롱소드에 마력을 집중시키자, 검은 서서히 시퍼런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기간트를 발견한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접근한 카트린이 성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아무리 단단한 성문이라 한들, 1800rp급 기간트가 전력을 다한 일격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강화 마법의 영향으로 완전히 박살 나는 것만큼은 면한 듯했지만, 한쪽만 높이 20미터 너비 15미터에 이르는 성문에는 기간트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버렸다.

원정대의 세 기간트는 지체없이 그 구멍 사이로 몸을 날렸고.

요한슨 역시 당황한 적병 서넛을 베어내며 그 뒤를 따랐다.

사전에 들었던 대로 오른쪽으로 난 대로를 따라 달린 그들의 눈앞에.

얼마 지나지 않아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휘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더니...]

[정말 오질나게 큰데?]

[군량을 얼마나 쌓아놨을까?]

전력을 다해 달린 그들이 창고에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창고 앞에는...

[적이다. 전투 준비!]

[난 준비 됐어!]

[대장의 말대로야. 정말 별거 없는데?]

당황한 듯 부산스런 움직임을 보이는 세 기의 기간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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